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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Author
현종서
Date
2022-02-10 21:37
Views
1856
2020년 초에 "한국의 부흥"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하였다.
이 책에서, 조지 허버존스와 아더 노불이 1907년 부흥의 현상을 경험한 것을 생생히 연회에 보고했던 글을 번역 소개하였다. 그 번역 글은 사실, 20년전쯤 100만신도운동에 대한 보고의 글과 함께 출간하려 했다가 사정상 못하고 1907년도의 " 회개를 통한 교회 부흥 현상"을 소개하였고, 근년의 시사문제, 감리회 신학자들의 선언에 대해 복음주의 신학의 입장에서 논평한 글을 실었다. 소책자라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이 책을 이현석 목사에게 보내고 싶다. 이현석 목사는 연회 주소록에 보니 4명 정도 있는데, 어떤 주소가 이 소식과 나눔에 글을 올리는 목사인가?

우리 기감은 지난날 대한민국이라는 새 나라를 세울때, 역활을 많이 한 교단이다. 자유대한민국을 세우는데 기여를 하였고,( 기미 3.1 운동 민족 대표 33인중 6인이 감신 출신이었고, 상해 임정을 세우는데, 산파역활을 하고, 3.1운동 소식과 더불어 독립선언서를 이광수함께 번역하여 상해의 국제 신문을 통해 세계에 홍보한 이는 현순(감신 1회 졸업생)이었고, 그 임정을 끝까지 지켜 온 이는 김구, 그 맥을 이어 수립한 자유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정동교회 이승만 장로였다. 그후 애국가를 작사한 이가 최병헌 (또는 윤치호) 모두 감리회 인물들이었다. 정동, 상동, 종교 교회등에서 많은 애국인물들이 배출되었다.

감신은 한국 최초의 신학교였고, 고등교육기관이었다. 한국 모든 교파를 막론하고 한국 최초의 목사도 한국 감리교회가 배출한다.( 김기범, 김창식). 미국 유학도 감리회 인물들이 먼저하였고. 이승만 박사를 나라를 세우는데 기여 많이 하였다. YMCA 운동, 군부 시절, 민주화 운동, 산업이 한참일어날때의 산업선교 활동들도 있었다. 1960년대, 김활란, 홍현설 박사가 주축이 된 전국 복음화 운동도 하였다. 한국 영계의 거성들이 한국교회를 지도 하였다. 성결교회의 이성봉, 장로교회의 신현균,감리교회의 김성남,평신도로선 나운몽등, 원래 감리교회에서 자란 부흥사들이다.

우리 감리교 신학은 학문적으로도 세기의 개신교신학자인 칼발르트의 지도하에 박사를 받아 돌아 온 윤성범 박사가 있었다.(그분의 부친은 유교가정에서 자랐는 데, 하디 부흥회에 참석하여 은혜받고 목사가 된 분이다), 서울대 종교학 학과장 신사훈 박사는 원래 감리교도로 드루대 출신이었는데, 문선명의 통일교회를 비판하였다.

19세기 초에 들어와 점점 세력을 펼친, 신학적 자유주의 사상, 장로교회에서는 메이첸 등이 전면에 나서 반대하였는데, 그의 신학의 흐름을 이어받은 교파가 한국의 보수 장로교단(총신대, 고신대 등이다) 그러나 대교단들 감리회나 주류 장로교회는 자유주의 신학을 넓은 신학을 하겠노라하며 받아들였다. 그 결과로 이성위주의 진화론, 성경비평학, 프로이드 심리학, 공산주의와의 대화를 통해 맑시즘이 흘러들어 왔다. 부흥사들은 미국 교회의 부흥운동- 찰스 피니 , 디엘 무디, 빌리그래함 등, 대 각성운동( great awakening movement)을 받아들여 교회 부흥에 기여하였으나 신학현장은 자유주의적 경향의 신학을 받아들여 교회 현장과 부조화를 이루었다. 한때, 신학은 최신으로, 신앙은 보수로 하며, 조화를 꾀하고자 하였고, 서로 맞지 않은 철학이 교회내에 공존해 왔다.
그러다가 신학현장에 자유주의철학이 점점 그세력을 키워, 교회현장과 틈을 벌리다가 교회의 목회자를 기르는 신학교가 변하여 맑시즘적 운동의 정치인을 민주투사의 이름으로 길어내기도 하였다. ( 이것은 더욱 정밀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요즘에 보수신학으로 알려진 총신에도 퀴어신학이 침투하였다.
신학자들의 성서적 진리 보수와 변증의 사명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이제 초기에 자유주의 신학사상은 다른 종교 사상이라 외치면서 그의 정체를 일찌기 깨닫고 반대해온 메이첸의 외침은 선진적인 깨달음의 외침이었음을 뒤 늦게 깨닫고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흐름은 성경속의 초월적인 사건을 비이성적이라 느껴져, 합리적인 재해석을 하려는 일을 하다보니, 원죄설, 동정녀 탄생, 예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 재림등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들을 부정하며, 예수를 일반 성인의 한 사람으로 격하시키는 일들을 하였던 것이다.
21세기를 맞이하면서 19세기 초에 방심하며 반기독교적 이성주의적 자유주의 신학을 보다 발달되고 산업화된 사회에 필요한 새신학이라 받아들였었는데, 기독교의 본래적 교의를 파괴하는 것을 뒤 늦게 인식하고 기독교계는 다시 성경적 진리를 보수하자는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대한 민국은 1903년 하디의 부흥운동, 1907년의 평양부흥을 뿌리로 하여 교회의 부흥과 교회의 사회 참여-애국운동, 3.1운동, 상해 임정, 대한민국 수립, 6,25 를 극복하고 세워진 나라로 조선의 세종 시절보다 더 자유롭고 더 풍요롭고 번영한 자유민주 국가를 이루었던 것이다.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망각한 국민은 똑 같은 환란을 당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더 나아가 북한을 건설한 김성주(가짜 김일성)도 부모가 기독교인 이었고 교회를 다녔으나 청소년기 중국에 살며 삼국지 맑스 레닌 사상에 접하여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러시아의 초급장교가 되어 공산 러시아가 세우고 중공이 도와 북한의 공산 정권을 세웠던 것이다. 맑스도 청소년기 신앙인으로 신학교까지 들어갔다가 사탄교에 접하여 배교한 인물이었으니, 교회는 다녔으나 성령체험을 못한 이들이 공산주의의 그럴듯한 이념에 빠져 그의 노예들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맺은 열매로 그들의 본질을 안다고, 공산사회를 외치며 만들어낸 나라들이, 최악의 독재국가를 만들고, 인권을 말살하고 소수 새 귀족에 다수 가난한 국가를 만들었지 않았는가?
나치즘이나 코뮤나즘은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사람을 살리는 사상이 아니라, 인명 경시에 자기 사상에 반하면 죽이는 것을 서슴치 않는 유물론적 무신론적, 전체 주의 사상이었음을 보지 않았는가? 왜 이상과 맞지 않는 결과를 가져 올까? 거짓의 아비의 교훈을 받아 만들어진 사상이요 그것의 열매였기 때문이다.



Total Reply 2

  • 2022-02-11 08:56

    전** 인줄 알았습니다.
    평안하시지요?


  • 2022-02-12 01:05

    현종서 목사님께.
    저에 대한 ‘반복된 문구’를 보면, 혹자가 저에 대해서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관심”이란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캐릭터가 그렇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 공부를 해야겠다 결심하고, 1년 뒤에 전교 1,2등을 다퉜습니다. 제가 문과를 간다고 하니, 수학선생님이 “너가 무슨 문과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어떤 연유로 공부를 손에서 놓게 되었습니다. 외로운 구도자이지 normal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와 같은 無名小卒과 ‘논쟁하기 위한 논쟁’을 하게 되시면, 목사님의 명성만 해칠 뿐입니다.

    다만, 지난 웨슬리안 타임즈 “장재호 교수님” 기사를 읽어보니, 저만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이념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념의 언어는 시대의 지배 언어가 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시대 정신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념, 철학등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저만큼 이념서적을 읽은 사람도 드물 것이고, 시장주의 경제체제를 옹호하는 목사도 드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념 운운하는 혹자들에 대하여 저는 신랄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어입니까? 문장입니까? logic입니까?
    신경 언어와 성경 언어의 개념과 구조들을 연구하지 않고, 해석이 발달할 수 있을까요?
    제가 가지는 이런 질문들은, 계시에 대한 저만의 새로운 이해이기도 합니다.

    저는 목사님의 대지에 크게 공감하는 바가 있어서, 목사님과 논쟁은 피해왔습니다.
    저는 불신자의 집안에서 신학을 했습니다. 타 종교의 권리를 전적으로 인정하지만, 다원주의를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또, 저는 ‘교리’와 ‘직접적인 체험’을 중시합니다.
    단, 개인에게 은밀하게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내재적 증거’로 사용하고, 他者에게 외재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 직접적인 체험이 없었다면, 제가 신학대학에 가기 어려웠을 것이고, 여기서 논쟁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저와의 논쟁, 토론은 계속하시더라도, 어느 선에서는, 멈추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울러, 목사님의 호의는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제 고향은 천안이고, 현재 거주하는 곳은 고향 근처 아산입니다.

    감히 말씀드리면, 반동성애 운동이 과학에 무지하고 교리와 교회의 질서를 해치고, 정권교체에 대한 바램이 우상숭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쉽게 글을 쓸 수 없어 지체되었고, 오늘 일과가 바쁘고 늦었습니다. 더 늦추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부족하나마 글을 남깁니다.

    이현석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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