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소망
Author
함창석
Date
2021-12-3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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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5
2022년 새해소망
함창석
아침 태양이 솟아오르듯
어두운 땅에도 희망만 있으면
그곳에서 싹이 돋아났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 절망이라도
치유의 사자로 다가와
회복 역사를 이루는 건 소망이다
보잘 것 없는 재화보다는
소망을 논하는 자가
진정으로 위대한 승리자이고
참아 견디게 하며
담대함을 가져다주는 것은
자신이 품고 있는 희망찬 꿈이다
희망의 새해는 너를 오라고
지금 부르고 있지 아니 하더냐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고
만사가 용이하다고 가르치니
소망만큼 가까이 두고
친해져야 할 이웃이 전혀 없고나
고통의 언덕 너머에는
희망의 꽃이 활짝 피어나고
너의 가슴 속에 샘솟는 소망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되어
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으로
다가오는 한해가 되길 빌었다
함창석
아침 태양이 솟아오르듯
어두운 땅에도 희망만 있으면
그곳에서 싹이 돋아났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 절망이라도
치유의 사자로 다가와
회복 역사를 이루는 건 소망이다
보잘 것 없는 재화보다는
소망을 논하는 자가
진정으로 위대한 승리자이고
참아 견디게 하며
담대함을 가져다주는 것은
자신이 품고 있는 희망찬 꿈이다
희망의 새해는 너를 오라고
지금 부르고 있지 아니 하더냐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고
만사가 용이하다고 가르치니
소망만큼 가까이 두고
친해져야 할 이웃이 전혀 없고나
고통의 언덕 너머에는
희망의 꽃이 활짝 피어나고
너의 가슴 속에 샘솟는 소망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되어
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으로
다가오는 한해가 되길 빌었다
검은 호랑이
함창석
곰과 함께 등장하여
사람이 되고자 하였으나
금기를 지키지 못해 실패했다
호랑이가 견훤에게 젖을 먹여
영웅의 보호자이며
창업 조력자로 부각시켰다
호경이 토굴 잠을 자는데
토굴 입구에서
큰 호랑이가 크게 울부짖었다
이에 밖으로 나왔더니
바로 굴이 무너졌다
호랑이는 신의 사자로 등장해
성묘하는 효자를
등에 실어 나르거나
시묘하는 효자를 잘 지켰으니
호랑이를 산군이라 하여
산신각 산신도로 나타나고
오랜 세월 신수로 받들었다해
Sandol Method
호랑이는 생물종 분류로는 고양이과에 속하며 사자, 표범, 재규어와 근연속(Panthera)이다. 학명은 Panthera tigris altaica이다. 검은 가로줄무늬가 특징적인데, 생후부터 성장 후에도 남아 있다. 몸통은 길고 발은 비교적 짧고 코와 입 끝의 폭이 좁다. 귀는 폭이 좁고 그 등 면은 검은색이며 중앙에 크고 흰 얼룩점이 있다. 수컷은 암컷보다 크고 강한 턱과 긴 송곳니가 특징이다. 발톱의 발달이 좋고 특히 엄지발톱이 강력하다. 보통 때에는 발톱집 속에 넣어 둔다. 호랑이는 서울올림픽대회의 마스코트로 선정될 정도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동물이다.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에도 등장하며, 그 밖의 여러 설화를 비롯하여 그림과 조각 등 미술품에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주역』에서 호랑이의 방위를 지칭하는 인방도 만주와 우리나라를 지목하는 동북방인 것을 보면 우리 민족과 호랑이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하겠다.
(호랑이, 두산백과)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2 새해설교>
성경: 이사야 12장 1-6절
설교: 절망에서 희망으로
그때 사람들은 이렇게 노래할 것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찬양합니다. 전에는 주께서 나에게 분노하셨으나 지금은 나를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는 분이시니 내가 그를 신뢰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며 노래요 내 구원이 되셨네. 그러므로 사람들이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으리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라! 그가 행하신 일을 온 세상에 알리며 그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라! 여호와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으니 그를 찬양하여 온 세계가 그 소식을 듣게 하라. 시온에 사는 사람들아, 기쁨으로 외치고 노래하라!
절망은 상실감으로 인한 자포자기를 뜻하기도 하고 시련이나 고난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역개정판에는 ‘단념’으로, 개역한글판에서는 ‘고난’, ‘두려움’ 등으로도 표현했다.
일반적으로는 미래에의 희망을 잃은 정신적 상태를 의미하는데, 철학사상에서는 19세기 중반의 실존주의자 키에르케고르에 의해 사용되었다. 이에 따르면 인간에 있어서 최대의 불안ㆍ공포는 죽음이지만, 근본적으로 두려운 것은 의지나 행위의 주체인 인격이 스스로 생의 지고한 목표를 잃는 것이며, 절망이란 이러한 인격을 잃은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거꾸로 절망을 스스로 선택한 인간은 현실의 부조리나 불안을 느끼고 그것과 고투하는 인간이자, 영원을 의식하여 스스로 자유로운 행위를 통하여 영원을 창조하려고 하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절망은 인간의 위대성ㆍ지고함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상은 제1차 세계대전 후 자본주의 사회의 사상적 혼미 속에서 유행하여, 나아가 현재의 실존주의 사상에 여러 가지 형태로 받아들여져 있다. 그 편린은 야스퍼스의 '좌절'이란 개념에서도 보인다. 이렇게 설명된 절망은 자본주의 모순의 격화에 따라 노동자 계급의 투쟁이 고양되는 중에 위기적 상황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계급투쟁에 참가할 수 없는 쁘띠 부르주아ㆍ인텔리겐차의 정신 상황의 반영이며, 그 특징을 이루는 것은 구체적인 사회관계에서 추상된 개인으로서만 인간을 취급하는 것과 이러한 인간의 구원을 찾는 것이다.(임석진‧ 윤두병 외 20, 절망, 철학사전, 2009.)
소망은 바라는 바다. 현실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장래에 실현될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특히, 단순한 기대나 갈망의 차원을 넘어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뜻한다. 이 소망은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필수적인 특성이요, 그들이 갖는 영광스런 바람이다. 그리고 이 소망은 주께서 구원을 완성하시는 날 성도에게 영화롭게 성취될 것이다.
희망은 일을 이루거나 얻고자 바라는 기대. 소망 혹은 소원이다.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소망’으로 번역되고 있다. 가장 좋은 일에 대한 기대. 성경에서 소망은 헬라 문학에서처럼 단순한 기대나 갈망이 아니라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소망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뜻한다. 더욱이 소망은 성령의 은사로서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특성 중 필수적인 요소로 소개된다. 사도 바울은 이를 ‘부르심의 소망’이라 표현하였다. 이는 곧,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갖게 되는 영광스런 소망을 가리킨다. 이 소망은 성도를 부르신 주께서 그 구원을 완성하시는 때, 곧 만물이 주의 통치 아래 온전히 거하게 될 때 성도가 영화롭게 됨으로써 구현된다. 따라서 성도는 장차 천국에서 누릴 영생에 대한 기대를 가짐이 마땅한데 바울을 이를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라 하였다. 바울은 이 소망을 인하여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다고 했고, 그럼에도 성도들을 향해 항상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라고 권면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소망을 둔 성도는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더욱 주를 찬송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여호와를 경외하되, 정함이 없는 재물이나 세상 이익에 집착하는 소망 없는 사람의 모습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가스펠서브, 소망, 라이프성경사전, 2006.)
<가난-생계문제>
어느 날 한 과부가 엘리사에게 와서 이렇게 호소하였다. "저의 남편은 죽었습니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그 사람은 여호와를 잘 섬기는 예언자의 생도였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돈을 좀 빌려 쓴 것이 있는데 돈을 갚지 않는다고 빚쟁이가 와서 내 아들 둘을 데리고 가 종으로 삼겠다고 합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 어떻게 하면 좋겠소? 당신의 집에 무엇이 있는지 말해 보시오. "저의 집에는 작은 기름 한 병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이웃집에 가서 빈 그릇을 빌려 오시오. 되도록 많은 그릇을 빌려 와 당신의 두 아들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 차는 대로 옮겨 놓으시오." 그래서 그 과부는 두 아들과 함께 집으로 가서 문을 닫고 자기 아들이 갖다 대는 그릇마다 기름을 따라 붓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이 가득 차지 않겠는가! 그 과부가 자기 아들들에게 그릇을 더 가져오라고 했으나 그들은 "이제 남은 그릇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흐르던 기름이 곧 멈추고 말았다. 그래서 그 과부가 엘리사에게 돌아가서 그 모든 일을 보고하자 엘리사는 그녀에게 "당신은 그 기름을 팔아 모든 빚을 갚고 남는 돈으로 당신의 아들과 함께 생활하시오" 하였다.(왕상 4:1-7)
<절망-죽음문제>
안식일이 끝난 저녁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향료를 사 두었다. 안식일 다음날 동틀 무렵에 그들은 무덤으로 가면서 무덤 입구를 막아 둔 돌을 누가 굴려 줄까? 하며 서로 걱정하였다. 그러나 가서 보니 그 큰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들이 무덤 안에 들어갔을 때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오른편에 앉아 있지 않겠는가! 여자들이 그를 보고 놀라자 그 청년이 말하였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님을 찾는 모양인데 그분은 다시 살아나셔서 여기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의 시체를 두었던 자리이다. 너희는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가서 예수님이 전에 말씀하신 대로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서 거기서 그들을 만나실 것이라고 알려 주어라." 여자들은 무서워 떨며 정신없이 무덤에서 도망쳐 나왔으나 겁에 질려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였다. 안식일 다음날인 일요일, 이른 아침에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나셨다. 마리아는 슬픔에 잠겨 울고 있는 제자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말했으나 그들은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막 16:1-11)
<희망-부활문제>
그들이 가려고 하는 마을에 가까이 갔을 때 예수님이 더 가시려고 하시자 그들이 강력하게 권하며 "저녁때가 되어 날이 이미 저물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묵었다가 가십시오."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묵으려고 따라 들어갔다.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고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자 예수님은 순식간에 사라져 보이지 않으셨다. 그들은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 말씀을 설명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속에서 뜨겁지 않더냐?" 하고 서로 말하였다. 그러고서 그들이 즉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주님이 정말 살아나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제자도 길에서 있었던 일과 예수님이 빵을 떼어 주실 때 그분을 알아보게 되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직접 그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다들 잘 있었느냐?" 하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깜짝 놀라며 유령을 보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 그렇게 놀라며 의심하느냐? 내 손과 발을 보아라. 나다! 자,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으나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셨으나 그들은 너무 기뻐서 오히려 믿지 못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이 "여기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을 갖다 드렸다. 예수님은 그 생선을 받아 그들이 보는 앞에서 잡수셨다.(눅 24:28-43)
절망에서 희망으로 가는 지침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희망을 가져야 하니 사랑에 집착하지 말라. 고통의 감정을 되씹는 것은 그 순간의 희망마저 빼앗아가는 것이니 절망의 동조자가 되지 말라. 절망을 통과하는 과정을 통하여 행복과 축복의 에너지를 얻을 것이니 고통의 한 가운데서도 행복과 축복을 찾으라. 낙관주의자 ‘폴리아나’라고 불려도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영원한 낙관주의자가 되는 노하우를 터득하라. 희망의 뼈다귀를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라.”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말세에 내가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며 너희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노인들은 꿈을 꿀 것이다. 그 때에 내가 나의 남녀종들에게 성령을 부어 줄 것이며 그들은 예언할 것이다. 또 내가 하늘에서는 이상한 일과 땅에서는 징조를 보여 줄 것이니 곧 피와 불과 연기이다. 주의 크고 영광스러운 날이 오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으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행 2:17-21)
《 Happy New Year 》
새해 / 2022년 / 임인년
하나님이 주시는 "복된 선물"입니다
* 받으신 복 많이 누리세요
** 받으신 복 많이 나누세요
*** 축복의 통로가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