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Author
최세창
Date
2021-12-16 18:42
Views
2349
<빌립보서 2:12-18>
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7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1. 시작하는 말
잠언 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선택하신 하나님의 뜻은 잊어버리고, 선택된 그 자체만을 자랑삼는 영적 교만에 빠지는 바람에 구원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교인들로 교회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교인들 중에는 완전한 구원인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기도 전에, 교만병에 걸린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지 않고, 이기적 욕심을 좇거나, 합리적이다 싶은 생각을 좇습니다. 고린도전서 10:12을 보면,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했습니다.
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그리스도 예수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시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중생과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교인들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완전한 구원을 위해서 성령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만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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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에게는 신학이 삶과 결합되었습니다. 그는 말과 행동이 다르거나, 이론만 있고 실천이 없는 이중인격자와 달리,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 사도의 깊고 폭넓고 독창적인 복음의 신학은, 그의 삶에 그대로 구현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주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좇아 영생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다가 로마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기가 같이 있었을 때에나 떨어져 있는 때에도, 항상 하나님께 더욱 복종하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가르치고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완전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는 삶을 살아서, 사후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을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는 성결한 생활을 계속하여 완전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정말로 영생의 주 예수님을 항상 주권자요 주관자로 믿는다면, 마땅히 복종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과 교회 안팎의 임무 수행과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중생과 자유와 평화를 얻고,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을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기본적인 명령인 예배와 교제와 선교와 봉사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명령이자 신앙인의 의무이므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든지 안 나오든지 간에 준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키든지 안 내키든지 간에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맞거나, 복종할 만해서 복종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키지 않는 마음과 복종할 수 없는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억지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게끔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힘입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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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기쁘신 뜻인 인간 구원을 위해 인간 속에 의지를 심어 주시고, 또한 그 의지를 실현하는 행위의 원동력이 되십니다. 한마디로, 인류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고, 진행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각별한 은혜에 의해 자율적 존재로 창조된 인간들에게서 거부되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환자가 명의를 만났다 하더라도, 명의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한 고침을 받을 수 없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며 살지 않는 한 완전한 구원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해야 합니다. 우리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대해 의심하거나 망설이거나 쟁론하도록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복종하도록 부름받은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암 부드 대장은 83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종 때에, “대장의 승리 생활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성공의 비결이요? 다만 큰 권능의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의 명령을 순종한 것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미국의 정치가이며 웅변가로서 명성을 떨친 웨터 다니엘은 죽기 몇 시간 전에,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의 나의 소원은, 내 조물주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주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자비하심에 대하여 감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얼마나 복종해야 하는가에 대해 좋은 유머가 있습니다.
바보가 하도 졸라 대는 바람에, 어머니가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사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멀리서 보니까, 바보가 자전거에 타고서는 전봇대를 수없이 들이받고 넘어지곤 했습니다. 남의 집의 담까지 열심히 들이받고는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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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어머니가 가까이 가서, 야단치면서 뭐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흙투성이가 된 채, 바퀴가 뒤틀어진 자전거를 붙잡고 선 바보가 한 대답이 걸작입니다. “내 친구가 그러는데요. 자전거 타는 걸 배우려면 100번은 넘어져야 한대요.”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말씀을 바보처럼, 고지식하게 복종해 봅시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깊고 오묘한 것인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놀랍게 이뤄지는지 체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복종하는 생활이 이미 구원받은 우리를 성결하게 하고, 주위를 성화시키고, 죽은 후에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교인들에게 복종하여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흠 없고 순전한 자녀가 됨으로써,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빛들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이신 주님 안에 확고히 거하고, 주님의 말씀을 우리 심령에 새김으로써 주님의 생명의 말씀인 구원의 빛을 반사하는 빛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너무 어두워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함으로써 주님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세상이 주님을 안 믿는다고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씀대로 복종함으로써 생명의 말씀을 밝혀야 합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교인들이 그러한 복종의 생활을 할 때에 교역자들의 전력 질주와 온갖 수고가 헛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자랑할 것인 완전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9 이하를 보면,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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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사도로서 재림하실 주님 앞에 자랑거리인 완전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있게 하는 일을 위해서는, 그들의 믿음의 생활과 봉사 위에 순교의 피를 관제로 뿌릴지라도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완전한 구원을 받는 그들과 함께 기뻐하자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입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해 자기를 죽이는 생활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31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한 바울 사도의 고백이 나옵니다. 주님 안에서 교인들에 대한 바울 사도의 자랑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기 위해 날마다 자기를 죽이는 생활을 한 것입니다. 결국 순교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우리의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마음에 맞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기 위해서 얼마나 그런 마음을 죽여 보았습니까? 내키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기 위해서 얼마나 내키지 않는 기분을 죽여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기 위해서 얼마나 이기적 욕심을 죽여 보았습니까?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이미 죄 사함과 중생과 자유와 평화의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완전한 구원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을 경청하고, 원망과 시비가 없이 복종해야 합니다. 내 생각이나 기분에 따라 복종하거나, 안 하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9:27을 보면, 바울 사도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복종할 수 있게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복종해야 합니다. 복종하면 날마다 성결해지고, 사회를 성화시키고,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재림의 날이나 죽음의 날에, 목자의 자랑과 기쁨이 될 것입니다.
(설교 동영상 : 유튜브)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들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34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다수의 논문들
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7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1. 시작하는 말
잠언 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선택하신 하나님의 뜻은 잊어버리고, 선택된 그 자체만을 자랑삼는 영적 교만에 빠지는 바람에 구원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교인들로 교회 공동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교인들 중에는 완전한 구원인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기도 전에, 교만병에 걸린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지 않고, 이기적 욕심을 좇거나, 합리적이다 싶은 생각을 좇습니다. 고린도전서 10:12을 보면,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했습니다.
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그리스도 예수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시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중생과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교인들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완전한 구원을 위해서 성령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만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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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에게는 신학이 삶과 결합되었습니다. 그는 말과 행동이 다르거나, 이론만 있고 실천이 없는 이중인격자와 달리,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 사도의 깊고 폭넓고 독창적인 복음의 신학은, 그의 삶에 그대로 구현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주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좇아 영생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다가 로마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기가 같이 있었을 때에나 떨어져 있는 때에도, 항상 하나님께 더욱 복종하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가르치고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완전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는 삶을 살아서, 사후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을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는 성결한 생활을 계속하여 완전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정말로 영생의 주 예수님을 항상 주권자요 주관자로 믿는다면, 마땅히 복종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과 교회 안팎의 임무 수행과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중생과 자유와 평화를 얻고,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을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기본적인 명령인 예배와 교제와 선교와 봉사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명령이자 신앙인의 의무이므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든지 안 나오든지 간에 준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키든지 안 내키든지 간에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맞거나, 복종할 만해서 복종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키지 않는 마음과 복종할 수 없는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억지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게끔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힘입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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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기쁘신 뜻인 인간 구원을 위해 인간 속에 의지를 심어 주시고, 또한 그 의지를 실현하는 행위의 원동력이 되십니다. 한마디로, 인류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고, 진행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각별한 은혜에 의해 자율적 존재로 창조된 인간들에게서 거부되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환자가 명의를 만났다 하더라도, 명의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한 고침을 받을 수 없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며 살지 않는 한 완전한 구원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해야 합니다. 우리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대해 의심하거나 망설이거나 쟁론하도록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복종하도록 부름받은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암 부드 대장은 83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종 때에, “대장의 승리 생활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성공의 비결이요? 다만 큰 권능의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의 명령을 순종한 것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미국의 정치가이며 웅변가로서 명성을 떨친 웨터 다니엘은 죽기 몇 시간 전에,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의 나의 소원은, 내 조물주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주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자비하심에 대하여 감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얼마나 복종해야 하는가에 대해 좋은 유머가 있습니다.
바보가 하도 졸라 대는 바람에, 어머니가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사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멀리서 보니까, 바보가 자전거에 타고서는 전봇대를 수없이 들이받고 넘어지곤 했습니다. 남의 집의 담까지 열심히 들이받고는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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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어머니가 가까이 가서, 야단치면서 뭐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흙투성이가 된 채, 바퀴가 뒤틀어진 자전거를 붙잡고 선 바보가 한 대답이 걸작입니다. “내 친구가 그러는데요. 자전거 타는 걸 배우려면 100번은 넘어져야 한대요.”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말씀을 바보처럼, 고지식하게 복종해 봅시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깊고 오묘한 것인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놀랍게 이뤄지는지 체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복종하는 생활이 이미 구원받은 우리를 성결하게 하고, 주위를 성화시키고, 죽은 후에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교인들에게 복종하여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흠 없고 순전한 자녀가 됨으로써,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빛들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이신 주님 안에 확고히 거하고, 주님의 말씀을 우리 심령에 새김으로써 주님의 생명의 말씀인 구원의 빛을 반사하는 빛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너무 어두워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함으로써 주님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세상이 주님을 안 믿는다고 탄식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씀대로 복종함으로써 생명의 말씀을 밝혀야 합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교인들이 그러한 복종의 생활을 할 때에 교역자들의 전력 질주와 온갖 수고가 헛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자랑할 것인 완전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9 이하를 보면,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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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사도로서 재림하실 주님 앞에 자랑거리인 완전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있게 하는 일을 위해서는, 그들의 믿음의 생활과 봉사 위에 순교의 피를 관제로 뿌릴지라도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완전한 구원을 받는 그들과 함께 기뻐하자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입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해 자기를 죽이는 생활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31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한 바울 사도의 고백이 나옵니다. 주님 안에서 교인들에 대한 바울 사도의 자랑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기 위해 날마다 자기를 죽이는 생활을 한 것입니다. 결국 순교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우리의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마음에 맞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기 위해서 얼마나 그런 마음을 죽여 보았습니까? 내키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기 위해서 얼마나 내키지 않는 기분을 죽여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기 위해서 얼마나 이기적 욕심을 죽여 보았습니까?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이미 죄 사함과 중생과 자유와 평화의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완전한 구원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말씀을 경청하고, 원망과 시비가 없이 복종해야 합니다. 내 생각이나 기분에 따라 복종하거나, 안 하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9:27을 보면, 바울 사도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복종할 수 있게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복종해야 합니다. 복종하면 날마다 성결해지고, 사회를 성화시키고,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재림의 날이나 죽음의 날에, 목자의 자랑과 기쁨이 될 것입니다.
(설교 동영상 : 유튜브)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들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34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다수의 논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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