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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 목사를 향한 권면

작성자
노재신
작성일
2021-03-05 13:25
조회
666

이*환 목사는 뉴스엔조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습니다.

"잘릴까 봐 무섭다. 목사가 잘리면 뭐하고 먹고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내가 목회하고 싶은 감리회는 이 상태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많이 두렵다."

이 이야기 속에서 이*환 목사는 뭔가 크게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1. 무섭다는 것입니다.
무서움의 이유는 자신이 퀴어축제에 참여하여 축도한 것 때문에 자칫 잘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퀴어 축제의 축도를 맡게 되었을까요?
1) 사명감? 그도 아니면 2) 동성애자들을 사랑하여? 또 그도 아니면 3) 얼떨결에?

이*환 목사는 뉴스엔조이와의 인터부를 통해 자신은 누군가의 대타로 축도를 하게되었음이라 밝혔습니다.
그러니 그 말인 즉슨 3) 얼떨결에 퀴어축제의 축도를 맡게 됨이라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2. 주의태만:
얼떨결에란? 우선 깊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참여하게 되었다는 뜻이 담겨 있음입니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을 하였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급하게 결정해야만 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음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고는 언제나 얼떨결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 주의하고 살아가야 한다. 때론 길을 걷는 것도 주의해야 할 일이 있음인 것입니다. 하물며 운전을 할 때에는 더더욱 주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의태만'이라는 범과 사유도 있음인 것입니다.

'주의태만'은 억울한 면이 있음일 때 사용되는 것이며 이러한 경우 '정상참조'라는 것을 통해 범과에 대한 경중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운전 중 주의태만으로 사람을 사람을 상해하게 될 경우 주의태만은 그리 좋은 핑계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성경도 이와 같이 주의태만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그렇다면 이 얼떨결에에 해당하는 주의태만은 누구에 의해 이뤄진 것일까요? 이*환 목사는 익명의 축도 예정자를 지적하였습니다. 그 익명의 선임 예정자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음입니다. 감신 선배일지 아니면 평소에 알고 지내던 타교단 목사인지 그도 아니면 평소에 같은 사역을 담당하던 잘 알지 못하는 기관 소속의 목사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일은 묘하게 이렇게 일이 시작되는 것이 많습니다. 어쩌면 그 날의 날씨가 너무도 좋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3. 미필적고의:
왜 그 익명의 축도 예정자는 자신이 하기로 결정되었던 축도를 이*환 목사에게 맡기게 된 것일까요? 거기에 대하여도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이렇게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감리회 내에서 책임감을 갖고 있을 만한 감신 출신 중진 목사가 실재 축도의 예정자였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환 목사의 입장으로선 거역하기 매우 어려운 대타였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왜 감신 출신 중진 목사는 갑자기 예전되었던 축도를 펑크낼 수 밖에 없었을까요? 집안에 큰일이 일어났거나 교회에 급한 일이 발생을 하였기 때문일까요? 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면 왜 그 분은 축도를 펑크내야만 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환 목사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퀴어 축제에 참여하여 축도를 하는 것이 차후 매우 무서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득불 급하게 펑크를 낸 것이며 그 와중에 대타로 이*환 목사가 선택이 된 것입니다.

왜 하필 이*환 목사였을까? 그것도 간단합니다. 제일 만만한 후배 목사였기 때문이며 더불어 이*환 목사는 평소 교인(동성애자)의 문제를 두고 많은 고민 가운데 있었던 아직 순진한을 잃지 않았던 젊은 목사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필적고의'란 말이 있습니다. 사고가 날 것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방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환 목사를 퀴어축제 축도로 대타를 보낸 익명의 그 누군가는 미필적고의임을 알고도 이*환 목사를 보낸 것입니다.

4. 목회 현실의 벽에서:
이*환 목사는 또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목사가 잘리면 뭐하고 먹고사나" 목회의 현장은 순수한 열정만으로 가득했던 고등학교 학창시절과는 매우 다른 현실의 벽에 부딛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많은 목사들이 현실과 타협을 합니다. 더불어 목회 현실의 먹먹함 때문에 스스로 목회의 길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환 목사는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학창시절을 회고하였습니다.

"고3 때 감리회 교회를 다니게 됐다. 그때 소위 '은혜받았다'. 이런 얘기를 하면 웃을지 모르겠지만, 수련회에서 기도하다 예수님을 봤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선교사가 되고 싶어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진학했고, 세계 선교 동아리 활동을 했다. 다니던 교회가 보수적 분위기로 성령 사역하는 교회였다."고 말입니다.

어떤 예수님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환 목사가 거짓말로 지어낸 일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이*환 목사는 은혜로만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야 겠다는 생각으로 감신대학교에 들어갔으며 선교 동아리 활동으로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했던 다소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는 신학생이었고 목회자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목회의 현장에서 만난 현실의 벽은 먹고 살기에도 급급한 삶의 무게감이었을 것입니다. 그나마 이젠 목회라도 그만 두게 된다면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까?를 염려해야만 하는 목회 사명적 회의감에 젖어 있었던 현실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5. 목회 사명적 회의감:
이것은 목회적 권태기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목회에도 권태기가 찾아 옵니다. 이 권태기를 잘 이겨내는 것 또한 실력이며 신앙이며 열정이며 사명감입니다. 그러나 목회의 현실은 이러한 실력과 신앙과 열정과 사명감을 뺏어가기엔 너무도 충분한 삶의 현실의 벽이 됩니다.

이러한 목회의 현실에서 어떤 목사들은 현실과 잘 타협하여 살아갑니다. 또 어떤 목사들은 소위 말하는 줄타기를 통해 그 현실을 헤쳐나갑니다. 또 어떤 목사들은 그냥 모든 일들은 무기력하게 순응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목회를 그만 두기엔 너무도 멀리 왔기 때문이라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회 사명적 회의감에 빠졌을 즈음에 금번 퀴어축제 축도에 대한 재판의 건은 이동환 목사에겐 새로운 목회 사명적 열정이 찾아 오는 듯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환 목사는 말을 이었습니다.
"내가 목회하고 싶은 감리회는 이 상태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감리회의 이 상태란 무엇이었을까요?

6. 6년이란 긴 시간의 신학생 생활:

이*환 목사는 크게 모나지 않게 살았을 것이며 더불어 누군가로부터 욕먹을 일 같은 행동도 없었을 것이며 신학교의 몇몇 동기들과 같이 곁길로 빠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신학교 4년과 2년의 대학원 생활은 그동안 교회에서 받았던 은혜를 다 쏟아 내야만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또 다른 현실입니다.

'목회 할 사람은 뒤로 신학 공부할 사람은 앞으로' 공공연한 선긋기가 시작되는 현장이며, 자신의 생명과도 같게 여겼던 모든 신앙적인 신념들을 시험대에 올려 놓아야 하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순수 목회적 열정주의자들은 신학 공부를 대충 졸업만 할 정도로 합니다.

반면 공부에 열중인 신학생들은 언제 그런 은혜가 있었냐는 듯 세상의 지식을 쫓기에 급급하고 은혜로 가득 채웠던 마음은 깨끗이 청소되어 다 버리고 신학적 지식과 자랑과 명예심과 교만으로 가득 채우기도 합니다.

이*환 목사는 전자에 속하는 목회자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6년이란 긴 시간을 오직 은혜로 버텨 온 아직도 순수함을 버리지 못한 젊은 목사였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그 순수한 은혜로 만이 또 다른 시험대에 올라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7. 경기도 연회 재판위원회의 재판 과정:

연회 재판위원회의 구성은 목사와 장로들입니다. 그러니 대부분은 연회를 통해서 자세히는 모르더라도 직간접적으로 알고 지내던 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목사와 장로들, 그 분들은 한 참 후배요 젊은 목사인 이*환 목사에게 따뜻한 손길을 뻗어 줄 것이라 내심 기대를 하였을 지도 모릅니다.

다른 세상 재판관들도 아니고 쌩판 모르던 목사와 장로들도 아니고 같은 연회에 속하여 직간접적으로 알고 지내던 동역자이자 섬김의 분들이라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만난 목사들과 장로들은 이*환 목사가 평소에 생각하던 자상하고 온화한 그런 목사와 장로가 아님을 눈으로 직법 확인하고 실망하는 과정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이에 대하여 이*환 목사는 이렇게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리포트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리포트로 면피할 생각은 없었고, 경직된 이해를 풀어 나가는 단초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얘기를 주고받을 줄 알았는데 "다 읽었는데, 찬성이냐 반대냐"만 묻더라. 내가 순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8. 선의에 대한 오해:

이*환 목사는 무책임한 목사가 아닌 듯 합니다. 차라리 무책임한 목사였다면 재판의 과정을 통해 어떻게 하면 징계를 면해 볼까를 궁리하고 또 궁리하여 재판의 현실과 타협을 하려 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타협하기를 좋아했던 이*환 목사였다면 이미 목회의 현장에서 눈치 빠르게 현실과 타협을 하며 지금과는 또 다른 목회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책임감은 때론 무모한 행위를 합리화 시키거나 자신이 행한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자신 스스로 감례할 것이라는 의지를 다지게 됩니다. 그러한 의미로 이*환 목사는 리포트(소명서)를 통해 자신의 현재 입장을 담담히 작성하여 제출하였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진실은 통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을 의지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재판위원들의 모습은 전혀 자신과 대화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네가 한 일에 대하여 네가 무슨 일을 행한 것인지 스스로 답하기만을 바랬을 것입니다. 그것이 재판의 속성입니다. 재판은 대화가 아니라 입증이며 그에 대한 당사자의 자술(고백)입니다.

빌라도도 예수님께 한 가지의 질문만 하였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경기 연재위도 이동환 목사에게 한 가지의 질문만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동성애 예스냐 노냐"
그러니 이*환 목사는 동성애의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려 함이 아니라 연재위가 무조건 자신을 옭아 메려고만 한다고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실상은 그 반대였을 지도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예스라 하지 말고 노라고만 해라 그러면 무죄가 될 수 있으니....'

9. 허탈감과 답답함:

재판의 과정을 통해 이*환 목사는 허탈감 밖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불어 목사이자 장로인 재판위원회의 모습들이 너무도 답답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속으론 "저들이 진짜 그리스도인이 맞는가? 저들이 진짜 목사요 장로가 맞는가?"

그러니 이*환 목사에게 있어 연재위는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바꿔야 할 감리회의 적폐적 모습이라 보였을 것입니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현수방적부'의 실체를 보았음이라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교회는 누구든 포용할 수 있어야 하고. 절대 혐오하면 안 된다. 자기 검열을 하고 자기 목소리 못 내는 곳은 교회가 아니다."

10. 열열한 지지와 추켜세움:

재판이 결정되기 이전부터 이*환 목사 자신을 향한 집중조명은 다소 놀라웠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받자 보지 못한 환대이며 열열한 지지자들의 연호였을 테니 말입니다. 이러한 열열한 지지는 재판의 과정을 통해 너무도 분명히 느꼈던 허탈감과 답답함을 해소시켜주는 카타르시스와 같은 작용을 하였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동연회의 동역자이자 섬김의 직분인 목사와 장로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을 옭아 멜것인가 만을 노려 보는 것 같은데 그동안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나타나 열열히 지지를 하니 얼마나 가슴이 뛰고 설레였을 것입니까?

그리고 답답함과 허탈감에 빠져 있는 자신을 향하여 동성애를 지지하는 이들이 찾아와 걱정하지 말라 우리가 막아줄 것이고 우리가 힘이 되어 줄테니 걱정하지 말고 더욱 힘을 내고 소신을 지켜달라는 권면을 수없이 받았을 것이며, 자신의 행동이 참으로 용감한 행동이었음이라 추켜세워 졌을 것입니다.

"내가 한 일이 재판받을 만한 일인가 하는 황당함이 크다. 교단에 맞서야 한다는 두려움도, 도와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도 있다. 이 감정이 하루에 수십 번씩 교차한다. 그래도 기소 사실이 알려진 후 많이 응원해 주셔서 힘내고 있다.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문자 메시지나 페이스북 메시지로 힘내라고 연락해 온다. 오늘 아침에는 LA에서 전화가 왔다. 감리회 은퇴목사님이시라는데 "너무 귀하고 어려운 길을 가 줘서, 목소리 내 줘서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시더라. 눈물이 핑 돌았다. 언론에 실명으로 지지 인터뷰해 주시고, 오늘 같은 기자회견 열고 참석해 주시는 분들께도 정말 감사하다."

11. 사회적 이슈에 휘둘림:

퀴어 축제에 참여하여 축도한 것만으로 이*환 목사는 그 세계의 스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환 목사는 축도한 것 만으로 이렇게 역적으로 몰리고 이렇게 스타가 될 수 있는 일인가? 스스로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현상들에 대하여 의아해 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벌써 그날 축복식 한 성직자들을 따라다니면서 카메라로 찍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런 자리에 처음 간 건데, 어떤 사람은 느닷없이 내 팬이라면서 무지개 깃발 앞에 가서 사진 찍자더라. 그런 걸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끝나고 돌아가서는 '정말 거기 간 것 맞냐'면서 확인 전화가 엄청 왔다."

이*환 목사 스스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못한 일로 인해 사회적으로 첨예한 이슈에 휘둘리게 되었으며 스타화 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12. 타협할 수 없는 반항감:

"처음에 경위서 정도 내라고 할 때,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목회적·선교적 마음으로 갔지만 이런 행위가 교리와장정에 저촉된다면 법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겠다고 썼다. 그 정도면 충분히 소명했다고 생각했는데, 각서를 쓰라더라. 일종의 사상 검증 같았다. 마치 과거 '전향서' 쓰라는 느낌이어서 거부했다."

"자격심사위원회로부터 기소 요청을 받은 심사위원회도 '개전의 정'이 없다며 이 목사를 기소했다. 그런 활동을 지속하더라도 교단에는 한번 머리 숙이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타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나.

그런 건 타협이라기보다 전략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것이 꼭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먼저 내 성정상 이 과정이 납득되지 않았다. 두 번째로는, 내가 넘어가도 누군가는 또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래도 7년째 감리회에서 목회하고 있고, 내 주변에는 내 생각에 동의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게 없는 사람들이 걸리면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일 것 아닌가. 나는 숙이고 넘어갈 수 있지만 추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면 부딪혀야겠다고 생각했다."

13. 빗나간 사명감:

이*환 목사는 스스로 고백하기를 하나님의 일을 하기로 결심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목회의 현장에서 자신이 감당해야만 하는 목회의 현실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하였지만 어떨결에 시작된 동성애자들에 대한 지지 활동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또 다른 눈을 열게 해준 것이라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동성애자들을 위한 지지운동이 하나님의 일일까? 또한 하나님의 일이 동성애자들을 위한 지지운동일까? 하나님의 일과 동성애자들을 위한 일이 겹치면서 오해와 왜곡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동성애자가 아닌 것과 같이 동성애자가 하나님이 되어선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동성애자)을 위한 일을 잘 구별하고 구분하라고 신학공부를 한 것인데....
신학은 때론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동일시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론이 곧 인간론이 되는 것입니다.

학창시절과 신학교 시절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행동들이 하나님의 일로 둔갑된 상황인 것입니다.

"여태껏 이런 논의를 하지 못한 것을 보면 정말 신학적으로 경직돼 있는 것 같다. 앞서 종교 재판을 받은 변선환 학장(감신대)도 보수적 풍토에서 잘려 나갔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는데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식의 태도는 경직된 것이다. 한쪽 목소리만 듣지 말고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토론하자는 것이다. 보수든 진보든 다양한 스펙트럼의 신학자·목회자가 모여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입장을 세워 나가야 감리회가 정말 신뢰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14. 일그러진 영웅화:

이*환 목사는 자신도 모르게 동성애자들 사이에 스타가 되었으며 동성애를 지지하는 이들의 스타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스타성은 교회재판이라는 과정을 통해 키워졌고 부풀려졌으며 왜곡이 되었습니다.

이 왜곡과 부풀림을 이동환 목사 스스로 보아야 하고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현실은 이*환 목사를 깨닫지 못하도록 가만 두려 하지 않습니다. 환호하여 열열히 지지하고 영웅화를 시켜가며 더불어 신격(예수님 동격화)화를 이루고 있으니 말입니다.

"기사련은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 재판위원회를 향해 "2000년 전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예루살렘성전 권력자들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감리교단의 오늘 선고는 타인이 어떠한 존재이든 차별 없이 받아들이고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예수와 기독교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며 시대를 거스르는 퇴행적 선고라고 했다."
[출처: 뉴스앤조이]

15. 많이 두렵다.

진정 금번 소동을 통해 일어난 모든 일들이 진정 많이 두렵거든 이*환 목사 스스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영웅화 내지 신격화 허울(우상화)의 떠밀림(정치적 희생양)에서 벗어나 동성애자들의 예수가 되려 하지 말고 인류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받았던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기만을 바라며 기도하겠습니다.



전체 4

  • 2021-03-05 13:30


  • 2021-03-05 13:43

    1. 동성애를 반대하는 대부분의 장로님들은 신학에 대해서 비관용적인 것이 아니라, 신학은 목사님들끼리하고, 평신도들에게는 성경을 가르치라는 요구입니다. 틀린 말씀은 아니지요.
    2. 사람의 아이덴티, 인격을 다루는 것은 좋지가 않습니다. 성경말씀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타인에 대한 지나친 추정은, 목사님 자신에게는 논리적이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엄연한 폭력입니다. 저는 이렇게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2021-03-05 14:02

      1. 장로님을 비롯한 평신도들이 신학이 아닌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요구한다 하시는 말씀엔 동의합니다.
      그러나 신학은 성경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변증법적 신학이란 것도 존재하기도 합니다.
      더불어 세속화 신학이란 것도 존재하더군요. 물론 이러저러한 기독교 신학사를 가르칠 필요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2. 제가 언어 폭력을 가하고 있음이라 생각을 하시니 좀 유감스럽습니다. 진정 이동환 목사님이 그리 생각을 한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제게 글에 대한 삭제 요청을 한다면 삭제할 마음도 있습니다.
      언어 폭력과 같은 말에도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이 진정한 온유한 마음이라 생각을 합니다.
      니가 폭력을 가하고 그 사람에게서 온유함을 바라는 것은 대체 무슨 심뽀냐? 하신다면 뭐라 할 말은 없네요? ^^

      이*환 목사님 제 글이 자~~앙문의 욕이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진정 그리 느끼셨다면 연락주세요.(010-5557-2823)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 2021-03-05 14:16

    이*환 목사님! 생각과 행동을 멈추시고 성령의 감동을 얻으십시요.
    고등학교 시절 만났다 하신 예수님을 다시 찾아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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