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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悔改), 왕복거리가 필수입니다.

작성자
오재영
작성일
2020-12-17 13:53
조회
431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
18C 미국을 구한 청교도목사인 조나단 에드워즈,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시대를 가리켜 “이 시대의 가장 커다란 죄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것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공감하는 연극과 드라마를 대할 때가 있다. 감동이 진할수록 현실로 착각 하는 경우도 있다.
그 배우를 볼 때마다 실제인물로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것은 그 배우나 탤런트의 본 모습은 아니다. 배우는 자신이 외운 대사臺詞에 까지 삶으로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대사(臺辭)대로 살아야할 의무는 더더욱 없다. 그는 자신이 맡은 그 무대의 막이 내리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그 다음에는 얼마든지 전혀 다른 배역을 사실처럼 표현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배우가 아니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말하는 이들이 아니다.
자신이 읽고 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 에드워즈가 “영적 교만의 본질은 자기 처신에 대한 지나친 확신이다.” 하나님이 아닌 내 생각, 내 경험, 내 것, 내 이름을 중심에 둘 때 그때부터 罪는 시작이 된다. 그러므로 신앙인에게 특히 신앙의 지도자에게 제일 어려운 것이 자신의名聲을 초월하여 말씀을 따라 일하는 것이다.

사단의 올무와 덫에서 돌아오기 힘든 사람들...

수년 전, 분쟁으로 지리멸렬(支離滅裂)한 신앙공동체에 속한 이들을 한동안 대한 적이 있다.
목사도 있고, 장로와 권사 집사들을 비롯한 직분자들로서 진리를 내세우는 보통 신앙인들보다 열정이 특심한 소수의 사람들이다. 무덥고, 추위가운데서도 예배를 이어가는 이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모두가 예배와 함께 상상을 초월하는 상대편정죄에도 탁월함이 있었다. 오랜 세월을 싸워왔기 때문인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합리화 하는 이들이었다. 그 때문에 순진한 이들은 순간, 이들의 선동에 휘말린다. 누군가 그런 표현을 했다. “당연히 싸워야할 외부의 敵과 싸우는 데는 등신(等神)들, 힘을 모으고 합하여야할 내부와 싸우는 데는 모두가 귀신(鬼神)들”이라고...

아침 Q.T시간에 나눈 말씀이 생각 속에 맴돈다.
“신앙 공동체 안에는 서로가 기억하고 지켜야할 德目이 있다. 한마음을 품는 일, 이해심을 갖고 상대방을 공감하는 일, 서로 사랑하는 일, 자비함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를 돕는 일, 이로써 공동체가 분열하지 않고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어생활부터 악한 말과 거짓을 버리고 힘을 다해 의지를 선(善)으로 이끌어야 한다. 이처럼 악순환을 끊어버리고 선을 선택할 때 생명을 얻고 복을 상속받는 인생이 된다...”

지난 16일자 당당뉴스와 감게 소식란에 등장한 황당한 기사가 있다.
이 염병(染病)의 와중에 별 희한한 이들도 다 있다. 많은 이들이 매일 매일을 생명을 담보하는 戰爭터와도 같은 직장을 마음 졸이며 가고 오는, 모두가 전전긍긍하는데, 이들이야말로 한마디로 전형적인 關心鐘子들이 아닌가? 이들이 지난 수십년간을 성직자의 신분으로 미래의 리더가 될 젊은이들을 神學大學에서 가르쳐온 이들인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害惡을 끼쳤을까? 아무리 스펙을 쌓으면 무엇 하겠는가? 잘못된 이념을 받아들이는 순간 한 개인은 물론 주변사람들의 신세를 망치는데, 그것도 聖經을 빙자하여... 도대체 그게 치료할 대상이지 없는 賞牌주어 영웅시할 대상인가? 평소에 점잖고 예의 바르기에 왜? 은퇴를 앞당기느냐고 했더니, 오라는데 없어서 은퇴한다는 말에 함께한 모두가 웃었는데, 더 이상 궤변과 요설로 교단과 학교에 罪 짓지 않고 자원은퇴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그나저나 상패 받은 젊은이의 앞날이 걱정이다.

牧師라 하여 모든 일 제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바알브올의 사건이다. 거룩과 순결을 잃어 선민의 자격상실로 하나님께서 진노가운데 명령하셨다.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목매어 달라 그리해야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會幕문앞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두령 중 시므리는 미디안족장 수르의 딸을 데리고 모세와 온 회중들의 앞을 보무(步武)도 당당히 자신의 막사로 들어갔다. 둘 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의 창에 의하여 년 놈의 배를 꿰뚫어 염병을 그치게 한 사건이다.(민25장). 이 염병으로 이만 4천명이 죽었다.

누군가 그런 표현을 했다. 광야(廣野)에서 목이 타는 사람의 눈에는 신기루가 보인다.
그런 이들에게 사탄은 더욱 그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그의 귀에 그리 속삭이면서, “네게는 아무 문제가 없어, 이제까지 해온 일들을 봐, 매일 밤 너는 모임을 열고, 사람들은 밤낮으로 도움을 얻으려고 네 집을 찾아오잖아, 지금 하던 대로 계속해.”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반짝이는 모든 것이 금이 아닌 것처럼, 빛나는 모든 빛이 “그 빛”이 아니다. “명 총잡이는 항상 자신의 어깨너머를 살핀다”는 말처럼, 경험 많은 뱃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배를 소유하고 있다 해도 바다를 결코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 바다 멀리 나가면 당연히 폭풍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악의 사태도 늘 염두에 둔다.

영적 항해를 준비하는가?

요트로 대서양을 횡단한다는 기사를 본다. 건축설계를 하는 전문가들은 지붕부터 그리지 않는 것처럼, 그를 보는 뱃사람들의 상상력은 보통사람들과 다르다. 배 밑바닥의 내면에 대한 관심이 크다. 요트의 중요한 생명력은 외부의 화려한 돛과 위용을 과시하는 그 폭의 화려함이 아니다. 용골(龍骨)과 밸러스트, 배의 아래가 반드시 수면위쪽보다 무거워야 한다. 그 무게에 따라 거대한 폭풍에도 본래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다. 신앙의 길도 그가 어느 과정을 거쳐 오늘의 위치에 이르렀든지 어떠한 능력을 소유했든지, 모두가 필연적으로 바다를 횡단해야하는 항해와 같다. 그 과정에서는 언제나 예기치 못한 풍랑을 통과해야한다. 개인이든 단체든 다르지 않다.

유능한 선장은 그 위기의 때마다 함께하는 이들을 지도하여 이 위기를 벗어나게 한다.
이같이 영적인 길을 지도하는 탁월한 스승들도 그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것은 언제나 자신의 내면의 공간인 “영혼 또는 마음”이었다. 이러한 영혼을 돌보는 스승들은 凡人들의 시선으로는 언제나 유별난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인생의 수면 아래쪽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찾았기 때문에 수면 위쪽의 외양보다는 내면의 마음에 대부분의 관심을 쏟는다. 그러다 보니 대개 이상하고 비실제적이며 현실과 맞지 않는, 때로는 현실을 위협하는 사람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영혼의 牧者로서 神託의 사명을 감당하는 이들마다 사역 중에 이들을 만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은혜요 크나큰 복이다. 그 분들의 신앙의 그 의연함과 당당함은 모진 세속의 유혹을 이기며 혹여 실패의 아픔에서도 나쁜 행위를 식별하고 인정하는 능력을 소유하기 위하여 재건과정의 고통을 받아들여 성숙시키기 때문이다.



전체 4

  • 2020-12-17 14:12

    아이쿠.. 원로목사님께서 그 복잡한 신학대戰에 발을 담그시나요?
    동성애는 해가 크고 유익이 적은 주제입니다. 저는 은퇴하신 목사님께서 이 주제는 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2020-12-17 14:43

    공감합니다. 끊임없이 반성적 성찰의 도화선이 되는 글을 올리시는 오목사님이 부럽기도 하고요,


  • 2020-12-17 15:09

    목사님! 관심과 격려 감사합니다.
    아는 분께서 카톡 문자로,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비극은 惡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善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다. - 마틴 루터 킹 -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댓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를
    당한다는 것이다. - 플라톤 -

    존, 칼빈도 “백성들이 우매하면 하나님이 우매한 지도자를 세워 그 백성들을
    징계하시고 백성들이 바로서면 하늘이 그에 맞는 현명한 지도자를 세워주신다.”

    ※.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은혜를 모르고 안일하게 지냈습니다.


  • 2020-12-19 12:10

    예수님은 왜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나?
    어젯밤 포도주 반잔을 들고 잠자리에 들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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