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 兄弟 사랑
Author
함창석
Date
2024-12-10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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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
주 안에 兄弟 사랑
함창석
태초 창세기 아담과 하와 이후
형제인 가인과 아벨처럼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과 베냐민처럼
배는 다르고 아버지만 같으며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처럼
씨는 다르고 어머니만 같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친척인데
형제라 부르기도 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동료인데
형제라 부르기도 합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면
예수는 영적인 형제라고 합니다
제자들끼리 형제라 부릅니다
바울 사도는 서신에서
교우들을 형제라 부릅니다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과 예수 어머니
마리아는 사촌 자매입니다
손위 오라버니와 누이동생이나
손위 누님과 남동생은
남매라고 부릅니다
소자는 삼형제 네자매
한 부모하 칠남사녀입니다
소자는 일남일녀인데
남매라고 부릅니다
혈연적으로 영적으로 신의적으로
맺어진 형제 자매와 남매
다양한 호칭들이 있습니다
【Main Faith】
‘형제’는 형과 아우를 아울러 이를 때에도 쓰이고, 형제와 자매, 남매를 통틀어 이르는 동기(同氣)의 뜻을 나타낼 때에도 쓰입니다. 전자는 ‘그는 슬하에 아들 형제만 두었다.’와 같이, 후자는 ‘부모 형제’, ‘그녀는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랐다.’와 같이 쓰입니다. 그리고 여자끼리의 동기(同氣) 즉 언니와 여동생 사이를 이르는 경우에는 '자매'를 쓸 수 있습니다. 오빠와 여동생, 누나와 남동생은 남매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교우들끼리 스스로 형제라 하기도 합니다.
형제는 양부모가 같든지(예. 아벨과 가인, 창 4:2,8), 아버지가 같든지(요셉과 베냐민, 창 35:24; 42:15), 어머니가 같은(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대상 3:5) 남자 동기(同氣) 사이를 가리키는 것이 본래의 의미이다. 그러나 다른 관계에서도 '형제'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구약에서 예를 들면 친척 관계(예. 창 14:16, 아브라함과 롯, 히브리 원문에는 '자기 형제 롯'이라고 되어 있다), 동료 관계(벤하닷과 아합, 왕상 20:32), 친구 관계(다윗과 요나단, 삼하 1:26), 같은 지파(민 8:26), 또는 이스라엘과 에돔 사이의 관계(신 23:7) 등에서 형제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 곧 신자들이 자기의 형제라고 말씀하셨으며,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의 신자들을 형제라 불렀다(마 12:50; 롬1:13). 히브리서에, 예수께서는 언약 백성들을 자기의 형제라고 부르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히 2:11).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하나에서 났기'(아브라함을 가리킴) 때문이다. 마 7:3, 4에서 예수님은 '이웃'을 가리켜 형제라 불렀다. 제자들이 자기들끼리는 서로 형제라 불렀지만(예. 골 4:7,9, 15; 벧후 3:15), 주님을 형제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H.F.von Soden, TDNT 1(1964) p.p.144-146; H.Ringgren, TDOT1,rev.ed.(1977) : p p.188-193)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함창석
태초 창세기 아담과 하와 이후
형제인 가인과 아벨처럼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과 베냐민처럼
배는 다르고 아버지만 같으며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처럼
씨는 다르고 어머니만 같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친척인데
형제라 부르기도 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동료인데
형제라 부르기도 합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면
예수는 영적인 형제라고 합니다
제자들끼리 형제라 부릅니다
바울 사도는 서신에서
교우들을 형제라 부릅니다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과 예수 어머니
마리아는 사촌 자매입니다
손위 오라버니와 누이동생이나
손위 누님과 남동생은
남매라고 부릅니다
소자는 삼형제 네자매
한 부모하 칠남사녀입니다
소자는 일남일녀인데
남매라고 부릅니다
혈연적으로 영적으로 신의적으로
맺어진 형제 자매와 남매
다양한 호칭들이 있습니다
【Main Faith】
‘형제’는 형과 아우를 아울러 이를 때에도 쓰이고, 형제와 자매, 남매를 통틀어 이르는 동기(同氣)의 뜻을 나타낼 때에도 쓰입니다. 전자는 ‘그는 슬하에 아들 형제만 두었다.’와 같이, 후자는 ‘부모 형제’, ‘그녀는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랐다.’와 같이 쓰입니다. 그리고 여자끼리의 동기(同氣) 즉 언니와 여동생 사이를 이르는 경우에는 '자매'를 쓸 수 있습니다. 오빠와 여동생, 누나와 남동생은 남매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교우들끼리 스스로 형제라 하기도 합니다.
형제는 양부모가 같든지(예. 아벨과 가인, 창 4:2,8), 아버지가 같든지(요셉과 베냐민, 창 35:24; 42:15), 어머니가 같은(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대상 3:5) 남자 동기(同氣) 사이를 가리키는 것이 본래의 의미이다. 그러나 다른 관계에서도 '형제'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구약에서 예를 들면 친척 관계(예. 창 14:16, 아브라함과 롯, 히브리 원문에는 '자기 형제 롯'이라고 되어 있다), 동료 관계(벤하닷과 아합, 왕상 20:32), 친구 관계(다윗과 요나단, 삼하 1:26), 같은 지파(민 8:26), 또는 이스라엘과 에돔 사이의 관계(신 23:7) 등에서 형제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 곧 신자들이 자기의 형제라고 말씀하셨으며,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의 신자들을 형제라 불렀다(마 12:50; 롬1:13). 히브리서에, 예수께서는 언약 백성들을 자기의 형제라고 부르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히 2:11).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하나에서 났기'(아브라함을 가리킴) 때문이다. 마 7:3, 4에서 예수님은 '이웃'을 가리켜 형제라 불렀다. 제자들이 자기들끼리는 서로 형제라 불렀지만(예. 골 4:7,9, 15; 벧후 3:15), 주님을 형제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H.F.von Soden, TDNT 1(1964) p.p.144-146; H.Ringgren, TDOT1,rev.ed.(1977) : p p.188-193)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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