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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신학대학교를 염려한다.

작성자
오재영
작성일
2020-11-28 06:41
조회
633
소중한 遺産...
역사의 격동기, 거센 태풍 앞에 풍전등화처럼 망국의 격랑에서도 130여년을 꿋꿋이 神託에 자신을 드렸던 조국대한민국 최초의 신학교 감리교신학대학교. 오백여년 전, 가톨릭의 혼란 중에 예수회 일곱 명의 수사들이 함께 고백했다는 기도문처럼, 척박한 땅에 우리믿음의 선진들은 신앙교육의 이념을 ‘敬虔 ‧ 學問 ‧ 實踐의 하나님의사람 세우기’로 삼아 오늘도 1천여 명의 공동체들이 미래의 예언자들을 양육하고 훈련하는 선지동산으로 세워가고 있다.

이처럼 그 누구도 함부로 폄훼할 수 없는 눈물과 피땀의 흔적들로 이어온 감리교신학대학이 잠시 신앙의 正道에서 벗어나 염려하는 소식들이 들려 온지 꽤 여러 해가 되었으나 여전히 혼돈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므로 동시대를 함께하는 이들을 비롯하여 같은 교단에 소속된 많은 성도들을 포함한 목회자와 평신도지도자들이 염려를 하고 있다. 진정 해결할 답(答)을 모르기 때문에 이처럼 지리멸렬하는 모습들인가? 이제는 구성원들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 앞서간 선배들의 행적에서 좋은 점은 보존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는 책임 있는 이들마다 자신을 희생하는 지혜와 뜻을 모으는 분발을 촉구한다.

신학교(神學校)...

네이버 검색 창에는 신학교(神學校)를, 신학(神學)을 가르치어 교역자의 양성을 목적(目的)으로 하는 학교(學校)라 말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지만 한마디로 신학은 하나님을 배우는 學問이다. 어느 분이 그런 표현을 했다. 이시대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그것은 “신학교에서 말씀에 대한 거룩한 확신을 가진 설교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스승과 선생’의 차이를 “선생은 지식을 배워서 지식을 전하는 사람이며, 스승은 세상의 진리를 느끼고 그것을 다시 느낌으로 전하는 분이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스승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을 다 경험하신 우리 모두가 본받고 따르는 예수님이 계시다.

오래전 목사와 신앙인들 사이에 회자되는 이야기 중에, 신학교에 처음 들어갈 때에는 목사로 출발한 이들이 바로배우지 못하면 졸업할 무렵에는 無神論者가 되어 나온다. 맨 처음 주님만나 불타는 열정의 꿈을 안고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순진한 이들이 신학교에서 서구신학계에 범람하고 있는 자유주의 높은 파도와 합리주의, 세속에 물든 이들의 궤변에 가까운 예리한 논리와 이론을 배우는 동안 점차 변질된 福音으로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린 채 경건의 모양만으로 교활한 사탄과의 영적전투를 하겠다고 출발하는 이들이 과연 說敎者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어느 분은 설교의 정의를 “설교는 죽어가는 영혼의 입에 생명수를 넣어주는 것이며, 또 구원과 파멸사이에서 고민하는 영혼에게 생명으로 돌아오도록 그 마음을 잡아주는 것이다.”라 했다.

학교(學校)밖으로 들려오는 소식들...

무엇보다도 미래의 영혼을 교도할 소명을 따라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기에 무한책임을 지고 있는 교수들은 각자 자신의 성찰과 준비할 과제에 힘쓰기를 기대한다. 가끔 예상치 못한 소문과 함께 등장하는 교수들 중에 인격화된 신학과 그에 따른 품격을 미처 구비하지 못한 채 경박스럽고 돌출된 행동으로 실망을 주는 이들이 있다. 본인의 언행과 가르침은 신학교에 문을 두드린 한 인간을 장차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존귀한 이로 성숙하게 할 수도 있고 본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을 사단의 전리품으로 만드는 사단의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난날 스승이라는 이들이 편을 갈라 분쟁하며 기도회를 빙자하여 텐트를 치고 종탑위에 변기통까지 올리던 모습들이 아직도 생각 속에 떠오른다. 그 모습들이 선지동산에서 가능한 일들인가?

수주 전, 가뜩이나 설왕설래 말 많은데 외부강사의 설교에 대하여 여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고 사과를 요구 했다는 소문도 있다. 도대체 이 참담한 시대에 미래의 영적 전사들을 양육하는 신학교에 가서 그리 할 말들이 없는가? 분명치도 않은 내용에 더하여 자신의 자랑이나 늘어놓는, 그야말로 ‘부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사람은 누구나 전능자 아니기에 때때로 오해와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의 마음가짐이다. 미래의 일당백을 감당할 영적 지도자들을 염원하는 간절함과 절절함으로 대하는가? 아니면 적당히 자기자랑으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 하는가, 책임 있는 이들은 외래의 객원교수와 강사선정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20代에 건방지고 시건방짐은 정상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와 함께 수많은 실패를 통하여 배우며 성숙해진다.
목사의 설교 일부표현에 대하여 학생들이 그를 빌미로 게시판에 대자보를 붙였다는 소식은 공동체 모두의 아픔이다. 간혹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강사를 볼 때면 자신은 이다음에 저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으로 더욱 기도와 학업연마에 힘써야한다는 생각이다. 그이들의 모습은 이제 곧 현장에서 본인들이 겪어야할 미래자신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 모습들을 교훈으로 받지 않고 비난하기에 급급하고 지나쳐버리면 장차본인들이 정작 설교단에 섰을 때 자신도 설교를 듣는 이들로부터, “저이도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간이구나!” 취급받는 지도자 된다.

그것은 영혼을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도구가 될 인물들마다 깊은 우물의 물을 길어 올리듯 수고가 동반되고, 자신의 희생적 영혼이 담기지 않은 사역은 단 한 사람도 변화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존중과도 거리가 먼 냉소적이 되고, 피차상처만 안기게 된다. 주님과도 관계없이 한마디로 고생은 고생대로 인생은 인생대로 망가지는 첩경이다. 지금도 자신이 고생한 근거를 들이밀면서 모든 대화를 시작하는 이들이 있다. 모두가 자신이 고생한 이력이 ‘자기 義’가 되어 버린 사람들로 가련한 존재들이다. 본인은 큰소리치면서 살아가는 줄 알지만 이들이야말로 바보가 된 불쌍한 사람들이다.

소명者 에게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겸손이다.

사역자마다 전능자 아니기에 후회와 아쉬움, 등등. 살아봐야 비로써 느끼는 것들이 꽤 많다. 사역에도 이십대에 알 수 없는 삼십대가 되어야 비로써 알게 되는 삶의 지혜가 있고, 삼십대에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붙잡아지지 않는 사십대의 빛을 발하는 연륜이 있다. 모두가 인생의 굽이굽이를 아픔으로 돌아 실제로 겪어봐야 알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이다. 누구나 미래 바른牧師의 길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사역의 길 또한 그리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는 먼저 본인보다 앞선 이들을 찾음이 지혜다. 그들에게는 본인들이 책만으로는 알 수 없는 뭔가를 사역의 현장에서 부대낌으로 터득한 소중한 것들이 있다.

그들은 본인이 살면서 경험할 기쁨, 아픔, 갈등, 눈물, 영광, 분노 같은 것들 모두를 이미 어려운 환경에서 절절하게 경험한 분들이다. 그 고단한 삶을 견뎌 온 분들에게 그 삶에 대한 존경과 예를 보이며 열린 마음으로 듣는 것도 본인을 한 단계성숙하게 하는 훌륭한 자세다. 어리석은 이들마다 앞선 이들을 별것 아닌 것으로 알지만 그들을 향해 고개 숙이는 그 순간의 그 모습조차도 자신의 인격으로 타인의 시선에 담긴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글을 마치며...

언젠가 그런 표현을 듣고 마음에 다짐한 적이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충고를 할 때, 그 충고를 하고나서 아, 그 충고 잘했다. 라고 생각되는 것은 잘못된 충고라는 것이다. 충고를 하고나서도 혹시 저 사람이 내 충고 때문에 아파하지나 않을까? 돌아서서 염려하고 또 염려하며 아파하는 그 마음으로 그가 한 그 충고가 진짜 충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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