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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양심의 저주, 믿음의 복: 예수 오시기 전의 구원≠율법(양심) 행위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0-11-20 11:26
조회
396
<갈라디아서 3:10-14, 시편 71:15>

10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12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15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1. 시작하는 말

성공과 출세와 축재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온갖 수고와 노력들을 합니다. 그러나 영생의 주 예수님을 제외한 사대 성인과 인류의 공통적인 본질이 피조성과 죄성, 가능성과 자율성, 유한성과 상대성, 나약성과 필멸성이라는 사실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고, 성결하게 살다가 영원한 천국 삶을 누리는 구원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잠시 후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양심이나 법대로 살면 구원받는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양심이나 법은 시대와 장소, 전문가와 권력자에 따라서 선과 악, 시와 비가 뒤바뀌므로 구원의 방도가 될 수 없습니다.

2. 율법과 양심의 저주와 믿음의 복

바울 사도는 죄 사함과 성령을 좇는 성결한 삶과 천국의 영생이라는 구원 문제를 다룰 때에는, 율법이나 양심을 거의 같은 의미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 행위나 양심 행위나 종교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신학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유대교의 경전인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저주”의 헬라어 카타란(κατάραν)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영원한 멸망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주 아래 있는 것에 대해 빈센트(Vincent)는, “최후의 심판 아래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율법을 범한 결과로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고, 그로 인한 모든 저주가 현세에서나 내세에서 따른다는 뜻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루터(M. Luther)는 저주 아래 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죄와 악마와 영원한 죽음 아래 있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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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한 바울 사도의 선언은, 그가 헬라의 종교들과 철학 사상들, 그리고 유대의 종파들과 율법에 능통한 지도자인 율법주의자였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무게가 있는 것입니다. 그 바울은 교인들을 체포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 복음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율법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저주 아래 있는 이유에 대해, 율법의 한 책인 신명기 27:26을 인용했습니다.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율법의 요구를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령 율법을 문자대로 다 지켰다고 해도,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취지를 어긴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느라 많은 피를 흘리는 사람을 치료하지 못하는데, 주 예수님은 안식일 법의 취지는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하시고, 안식일에도 환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율법의 문자적 의미나 율법의 근본 취지라는 점에서 율법의 요구를 다 만족시킬 수 없으므로, 죄와 사단과 영원한 멸망 아래 있는 것입니다.
구원 문제에 있어서, 유대인의 율법에 해당하는 이방인의 양심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한 번도 양심, 그것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선과 악이 뒤바뀌는 상대적인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생각과 언행을 안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한 가지 법을 위반하면 범법자인 것처럼, 한 번이라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언행을 했으면 양심대로 살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적인 사람들로서 법을 제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국사를 다루고, 양심과 법적으로 본을 보여야 하는 여야 의원 모두가 마음과 뜻을 같이하여 만장일치로 세비를 올리곤 하였고, 보좌관도 더 늘리곤 했는데, 그들의 주인인 국민 중에 어느 누가 양심적인 행동이었다고 하겠으며, 좋은 법이라고 지지하겠습니까? 게다가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툭하면 당파 싸움을 벌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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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모든 인간이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으며, 따라서 율법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율법주의자가 저주 아래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을 때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 때문에 율법을 주셔서 모든 인간에게 죄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범죄를 막을 힘이 없고, 탐심을 갖지 말라고 하는 법이 탐심을 갖게 하는 것처럼, 법은 죄를 짓도록 충동질하는 역기능이 있습니다. 율법은 죄가 어떠한 것들인가를 가르쳐 죄를 안 짓게 하는 것인데, 그 때문에 몰랐던 죄들을 더 많이 알고 행하게 하는바 죄를 증가시키는 역기능도 있습니다. 그리고 죄는 기회를 얻어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한 율법으로 말미암아 인간을 사망과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인간에게 저주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율법을 다 성취할 수 없는 결정적인 원인은, 인간의 육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 힘 때문입니다.
루터(M. Luther)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율법을 주시기 전에 아셨으므로 아브라함 안에서 우리에게 축복을 약속하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율법의 한 책인 하박국 2:4에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래 하박국 2:4은, 이스라엘이 갈대아의 침략으로 극심한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역사적으로 이뤄진 예언의 말씀에서,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성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과 성결한 삶과 영생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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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도 하나님의 역사의 결과입니다. 마태복음 16:16 이하를 보면,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했을 때, 주 예수님은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2:8 이하에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믿게 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죽은 후에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죽은 후에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믿지 않으면, 지옥의 불 못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강원도에 사는 오 씨가 부산으로 출장을 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아내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만 실수로 이메일 주소를 잘못 치는 바람에 엉뚱하게도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김 목사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메일을 읽은 사모님이 기절했습니다.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여보, 무사히 도착했소. 그런데 이 아래는 정말이지 무척 뜨겁구려!”
요즘엔, 지옥의 불 못을 더 뜨겁게 뜯어 고치느라 정신없다고 합니다. 불 못에 떨어지면 뜨겁다고 해야 하는데, 한국 노인들은 “어, 시원하다!”라고 딴소리만 해 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구원에 있어서 율법의 원리와 믿음의 원리는 전혀 다릅니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고 했는데, 문제는 율법의 모든 조항을 완전히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나라의 법을 다 알고 지킬 수도 없고, 또 모든 법이 다 옳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한 가지 법을 어겨도 범법자입니다. 따라서 율법 행위로 구원받고자 하는 자는 저주 아래 놓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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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구원받는 원리인 복음의 복은 이렇습니다. 세상에 구원이 없는 것을 아시는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죄를 짊어지시고,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힌 저주가 되심으로써, 율법과 양심의 저주에서 인류를 속량하셨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죄와 멸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는 영원부터 선재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복이 아브라함처럼 믿는 이방인에게도 미치게 하고, 믿음으로 인해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최대의 가치 평가의 근거를 깨닫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 같은 게 뭘…’ 하지 말고, ‘내 주제에 뭘…’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나 하는 실패와 패배를 했다고 자학하거나 자괴지심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교만으로 자신을 비하해도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나란, 하나님의 성육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저주를 받아 운명하시기까지 하면서 구원한 존재입니다. 또, 성령께서 내주하신 존재이고, 그 성령의 약속을 받은 존재입니다. 믿는 우리는 얼마나 값진 존재인가를 알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태도로 일하며 살아야 합니다.

3. 맺음말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선과 악, 시와 비가 뒤바뀌기도 하는 율법 행위나 양심 행위, 도덕이나 종교로 구원받으려 자는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이나 양심, 도덕이나 종교를 통해 죄인임을 알게 하시고,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저주의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믿음으로 의 곧 죄 사함과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받은 사람은 율법과 양심과 죄와 멸망의 저주에서 자유롭게 된 것입니다. 또, 성령의 약속인 은사와 열매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로 일하며 살다가 죽은 후에 영원한 천국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의와 구원을 입으로 전하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웃기는 이야기(편저) /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전체 5

  • 2020-11-20 12:50

    아멘.

    사회의 법은 죄가 무엇인지?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알려줍니다. 모세의 율법도 이와 마찬가지로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해서, (롬)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그가 선하다, 성인이다,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양심에는 ❶ 미혹하는 영과 귀신을 따르는 악한 양심과 ❷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긴 선한 양심도 있습니다. <(딤4:1,2)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히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종교적인 일들, 즉 예배 참석, 교회 출석, 종교 의식에 동참을 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게 아닙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로 부터 구속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 2020-11-20 13:04

      필자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관련하여 의견을 피력하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주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유대인들은 율법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고, 이방인들은 양심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반 복음적인 주장입니다. 물론, 모든 종교는 구원의 길이라고 하는 종교다원주의신학도 반 복음적인 학설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와 모든 종교 교리를 다 알지도 못하고, 종교란 머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인데 모든 종교를 믿고 행하며 살지도 않았으면서 모든 종교에는 구원이 있다고 하는 주장은 억설입니다.


      • 2020-11-20 13:16

        예...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분만이 유일한 길이시고 다른 길은 없습니다. 얼핏 보기엔 대부분의 종교들은 자기 힘과 자기 방식으로 구원을 추구하고 있으나...... 해탈, 수양, 도덕적 생활, 살인에 참여, 희생, 가학, 곤궁한 삶, 의복, 의식 등 ...... 헛된 일로 보입니다.


        • 2020-11-20 13:47

          필자의 답글에도 공감하시고, 댓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0-11-20 12:52

    율법 행위이든 양심 행위이든 윤리 도덕 행위이든 어떤 종교 행위이든 다른 어떤 방도이든 간에, 지옥으로 몰아가는 죄의 사함과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이 죄 아래 있는 인류 구원을 위해 오실 필요가 없고, 또 하나님께서 주 곧 메시아를 보내신다는 약속도 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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