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4:22-27(설교: 권력의 덫에 걸린…)의 주경신학적 연구
Author
최세창
Date
2025-03-1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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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변명을 들은 벨릭스 총독(23:24의 주석을 보라.)이 재판을 연기한 것에 대해, 누가는 【22】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고로 연기하여 가로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라고 하였다.
벨릭스 총독은 가이사랴에 오래 있었으므로 이달리야대의 백부장 고넬료(10:1)나 전도자 빌립(8:40, 21:8)이나 유대인 아내 드루실라(24절)를 통해 도 곧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바울이 죄가 없는 것을 알았지만, 천부장 루시아(21:31의 주석을 보라.)가 내려오면 처리하겠다고 하면서 재판을 연기하였다. 재판을 연기한 이유는 바울에게서 돈을 받고자 했기 때문이었고(24:26),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24:27). 그는 기회주의자였다.
바울에 대한 벨릭스 총독의 처리에 대해, 누가는 【23】백부장을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 친구 중 아무나 수종하는 것을 금치 말라 하니라라고 하였다.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가 쇠사슬을 맨 상태의 자유를 준 것인지 쇠사슬을 매지 않은 상태의 자유를 준 것인지 알 수 없다. 벨릭스 총독이 바울의 무죄를 확인한 점과 로마 시민임을 안 점과 24:26의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를 미루어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친구 중 아무나 수종하는 것을 금치 말라 하니라는, 바울의 친구들이 ‘헤롯 궁’(23:35의 주석을 보라.)에 구금된 바울을 면회하여 시중하는 것을 금치 말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바울을 헤롯 궁에 구류한 벨릭스 총독에 대해, 누가는 【24】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이라고 하였다.
수일 후에는 바울을 가이사랴의 ‘헤롯 궁’(23:35의 주석을 보라.)에 구류한 지 수일이 지난 때를 가리킨다.
벨릭스 총독은 23:24의 주석을 보라.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Δρουσίλλῃ)는 야고보 사도를 죽인 헤롯 아그립바 1세(12:1-2.)의 막내딸이자 헤롯 아그립바 2세의 누이이었다(25:13). 주후 44년, 그녀의 아버지가 죽기 직전에 아직 6살도 되지 않은 그녀를 콤마게네(Commagene)의 왕자인 에피파네스(Epiphanes)와 약혼하게 하였다. 그 조건은 그녀의 약혼자가 유대교도가 되는 것이었으나, 후에 그녀는 할례를 거부한 에피파네스와 파혼하였다. 그런 다음에, 그녀는 15세 때, 같은 조건으로 에메사(Emesa) 왕 아지스(Azizus)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큰언니에게 미움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미인이었다. 그녀의 미색에 반한 벨릭스 총독이 그녀를 유혹했고, 그에게 빠진 그녀는 18세 때에 유대의 율법을 어기고 남편과 이혼하고, 벨릭스의 세 번째 아내가 되었다. 이 사실에 대해, 슈에러(Schuerer)는 “그녀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벨릭스는 그 아름다운 왕비를 보자 열정에 불타올라 그녀를 소유하기로 결심했다. 구브로의 시몬이라는 마법사의 도움으로 그는 그녀를 설득하여 결혼하였다.”①라고 하였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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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 R. Earle.
2) 참조: R. C. H. Lenski, E. Haenchen, 黑崎幸吉, 이상근, R. Ear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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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은, 벨릭스 총독이 유대인 아내인 드루실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울을 불러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들었다는 것이다.
럼비(Lumby)는 “사도 바울이 역설하고자 한 것은 모든 유대인들이 대망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고 나사렛 예수가 그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야라는 신앙이었다.”③라고 하였다.
그 내용에 대해, 누가는 【25】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라고 하였다.
의는 디카이오쉬네스(δικαιοσύνης)이며, 바울의 용법인 ‘하나님의 은혜를 인한(엡 2:8)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롬 3:20)는 교리를 표현하는 말과 같은 것이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것에 대해, 바울 자신은 빌립보서 3:9에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라고 설명하였다. 즉, 율법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었기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의 인격의 변화가 아니라, 오히려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가 비록 의롭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의로운 존재로 간주하신 것이다”(R. C. H. Lenski). 이것이 바로 칭의이다.
칭의의 사상적 배경은 구약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법적인 의미를 갖는다(출 23:7, 사 5:23). 다이스만(A. Deissmann)은 “그리스도 안에서 고소를 당한 인간에 대한 고소가 취하된다. 그는 정죄가 아니라 자유로 판정된다. 이러한 무죄 석방이 바울의 칭의이다.”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칭의란 죄가 없는 자에 대한 무죄 석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있으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란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이다”(M. Luther).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이다(롬 3:12, 22, 26). “이것으로 인간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즉 생명에의 참여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J. S. Stewart).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의, 혹은 선포한 의란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다(H. A. A. Kennedy, J. S. Stewart, J. Knox). 이 선물은 과거에 주어진 것이거나 미래에 주어질 것이 아니라 현재에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의롭다는 무죄 선포도 현재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 칭의의 완전한 소유는 미래의 영역에 놓여진다. 이 점에 대해서 다이스만(A. Deissmann)은 “우리는 칭의에 관한 바울의 사상에서 현재적 소유의 의식과 미래의 충분한 소유의 기대 사이의 역동적 긴장을 본다.”라고 하였다.}(롬 1:17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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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in R. Ear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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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은 기독교인은 의로운 생활을 하게 마련이다. 이 교리는 불의하게 남의 아내를 가로챈 벨릭스 총독과 그 아내에 대해 바른 소리가 되었다.
절제는 엥크라테이아스(ἐγκρατείας)이며 ‘자제’, ‘극기’를 의미한다(갈 5:23, 벧후 1:6). 특히, 여기서는 “관능적 쾌락의 절제”(R. Earle)를 의미한다.
장차 오는 심판은 의와 절제와 함께 후 사도 시대 선포의 중심 주제이었다(E. Haenchen).
바울의 세 가지 주제의 강론을 들은 벨릭스는, 세 번째 아내인 드루실라와의 불의하고 무절제한 결혼에 대해 찔림을 받았고, 또한 다가올 심판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바울에게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라고 하였다.
물욕이 대단한 벨릭스 총독에 대해, 누가는 【26】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라고 하였다.
벨릭스 총독은 양심의 찔림과 다가올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뇌물을 받고자 하는 탐심이 더 강해서 바울을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였다. 물론, 마음이 다른 데 있는 그가 바울의 설교를 제대로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그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을 기회를 뇌물을 먹을 기회로 여겼다. 그는 세상적으로는 출세한 사람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아주 몽매한 사람이었다.
불의하고 불성실한 벨릭스 총독 때문에 바울이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에 대해, 누가는 【27】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라고 하였다.
루시아 천부장(21:31의 주석을 보라.)은 내려오지 않았으며, 따라서 재판은 속개되지 않았다(24:22). 재판이 더 이상 열리지 않았으므로, 바울은 로마 황제에게 항소도 못한 채, 벨릭스 총독의 후임인 베스도 총독이 부임할 때까지 약 2 년간 구류되어 있었다. 벨릭스 총독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울을 구류하여 둔 것이었다.
불성실하고 불의하고 악하고 음란하고 욕심이 많은 벨릭스 총독이 파면된 것은, “유대인들의 고소”(Josephus, Ant. 20:7, 8)④와 “도처에서 소요가 일어났기 때문이며, 그때 그는 유배의 형까지 받았으나, 그의 형제 팔라스(Pallas: 23:24의 주 참조)의 노력으로 그 집행만은 면했다”(이상근).
후임자인 베스도(Φήστον)는 60년(R. C. H. Lenski, 이상근)⑤ 이전에 네로 황제에 의해 유대의 총독이 되었는데 2년 후에 죽었다. 그는 벨릭스 총독보다 더 선량한 정치가였다. 고상한 인격과 온순한 성품으로 공정한 선정을 베풀려고 노력하였고, 도적들과 암살자들을 진압하였다(Jos. Ant. xx. 8:10. B. F. ii. 14:1).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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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in R. C. H. Lenski.
5) R. Earle는 59년이라고 한다.
6) in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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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 출처: 최세창, 사도행전(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594-598.
벨릭스 총독은 가이사랴에 오래 있었으므로 이달리야대의 백부장 고넬료(10:1)나 전도자 빌립(8:40, 21:8)이나 유대인 아내 드루실라(24절)를 통해 도 곧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바울이 죄가 없는 것을 알았지만, 천부장 루시아(21:31의 주석을 보라.)가 내려오면 처리하겠다고 하면서 재판을 연기하였다. 재판을 연기한 이유는 바울에게서 돈을 받고자 했기 때문이었고(24:26),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24:27). 그는 기회주의자였다.
바울에 대한 벨릭스 총독의 처리에 대해, 누가는 【23】백부장을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 친구 중 아무나 수종하는 것을 금치 말라 하니라라고 하였다.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가 쇠사슬을 맨 상태의 자유를 준 것인지 쇠사슬을 매지 않은 상태의 자유를 준 것인지 알 수 없다. 벨릭스 총독이 바울의 무죄를 확인한 점과 로마 시민임을 안 점과 24:26의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를 미루어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친구 중 아무나 수종하는 것을 금치 말라 하니라는, 바울의 친구들이 ‘헤롯 궁’(23:35의 주석을 보라.)에 구금된 바울을 면회하여 시중하는 것을 금치 말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바울을 헤롯 궁에 구류한 벨릭스 총독에 대해, 누가는 【24】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이라고 하였다.
수일 후에는 바울을 가이사랴의 ‘헤롯 궁’(23:35의 주석을 보라.)에 구류한 지 수일이 지난 때를 가리킨다.
벨릭스 총독은 23:24의 주석을 보라.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Δρουσίλλῃ)는 야고보 사도를 죽인 헤롯 아그립바 1세(12:1-2.)의 막내딸이자 헤롯 아그립바 2세의 누이이었다(25:13). 주후 44년, 그녀의 아버지가 죽기 직전에 아직 6살도 되지 않은 그녀를 콤마게네(Commagene)의 왕자인 에피파네스(Epiphanes)와 약혼하게 하였다. 그 조건은 그녀의 약혼자가 유대교도가 되는 것이었으나, 후에 그녀는 할례를 거부한 에피파네스와 파혼하였다. 그런 다음에, 그녀는 15세 때, 같은 조건으로 에메사(Emesa) 왕 아지스(Azizus)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큰언니에게 미움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미인이었다. 그녀의 미색에 반한 벨릭스 총독이 그녀를 유혹했고, 그에게 빠진 그녀는 18세 때에 유대의 율법을 어기고 남편과 이혼하고, 벨릭스의 세 번째 아내가 되었다. 이 사실에 대해, 슈에러(Schuerer)는 “그녀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벨릭스는 그 아름다운 왕비를 보자 열정에 불타올라 그녀를 소유하기로 결심했다. 구브로의 시몬이라는 마법사의 도움으로 그는 그녀를 설득하여 결혼하였다.”①라고 하였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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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 R. Earle.
2) 참조: R. C. H. Lenski, E. Haenchen, 黑崎幸吉, 이상근, R. Ear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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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은, 벨릭스 총독이 유대인 아내인 드루실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울을 불러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들었다는 것이다.
럼비(Lumby)는 “사도 바울이 역설하고자 한 것은 모든 유대인들이 대망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고 나사렛 예수가 그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야라는 신앙이었다.”③라고 하였다.
그 내용에 대해, 누가는 【25】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라고 하였다.
의는 디카이오쉬네스(δικαιοσύνης)이며, 바울의 용법인 ‘하나님의 은혜를 인한(엡 2:8)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롬 3:20)는 교리를 표현하는 말과 같은 것이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것에 대해, 바울 자신은 빌립보서 3:9에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라고 설명하였다. 즉, 율법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었기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의 인격의 변화가 아니라, 오히려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가 비록 의롭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의로운 존재로 간주하신 것이다”(R. C. H. Lenski). 이것이 바로 칭의이다.
칭의의 사상적 배경은 구약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법적인 의미를 갖는다(출 23:7, 사 5:23). 다이스만(A. Deissmann)은 “그리스도 안에서 고소를 당한 인간에 대한 고소가 취하된다. 그는 정죄가 아니라 자유로 판정된다. 이러한 무죄 석방이 바울의 칭의이다.”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칭의란 죄가 없는 자에 대한 무죄 석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있으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란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이다”(M. Luther).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이다(롬 3:12, 22, 26). “이것으로 인간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즉 생명에의 참여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J. S. Stewart).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의, 혹은 선포한 의란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다(H. A. A. Kennedy, J. S. Stewart, J. Knox). 이 선물은 과거에 주어진 것이거나 미래에 주어질 것이 아니라 현재에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의롭다는 무죄 선포도 현재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 칭의의 완전한 소유는 미래의 영역에 놓여진다. 이 점에 대해서 다이스만(A. Deissmann)은 “우리는 칭의에 관한 바울의 사상에서 현재적 소유의 의식과 미래의 충분한 소유의 기대 사이의 역동적 긴장을 본다.”라고 하였다.}(롬 1:17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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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은 기독교인은 의로운 생활을 하게 마련이다. 이 교리는 불의하게 남의 아내를 가로챈 벨릭스 총독과 그 아내에 대해 바른 소리가 되었다.
절제는 엥크라테이아스(ἐγκρατείας)이며 ‘자제’, ‘극기’를 의미한다(갈 5:23, 벧후 1:6). 특히, 여기서는 “관능적 쾌락의 절제”(R. Earle)를 의미한다.
장차 오는 심판은 의와 절제와 함께 후 사도 시대 선포의 중심 주제이었다(E. Haenchen).
바울의 세 가지 주제의 강론을 들은 벨릭스는, 세 번째 아내인 드루실라와의 불의하고 무절제한 결혼에 대해 찔림을 받았고, 또한 다가올 심판에 대한 공포 때문에, 바울에게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라고 하였다.
물욕이 대단한 벨릭스 총독에 대해, 누가는 【26】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라고 하였다.
벨릭스 총독은 양심의 찔림과 다가올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뇌물을 받고자 하는 탐심이 더 강해서 바울을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였다. 물론, 마음이 다른 데 있는 그가 바울의 설교를 제대로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그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을 기회를 뇌물을 먹을 기회로 여겼다. 그는 세상적으로는 출세한 사람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아주 몽매한 사람이었다.
불의하고 불성실한 벨릭스 총독 때문에 바울이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에 대해, 누가는 【27】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라고 하였다.
루시아 천부장(21:31의 주석을 보라.)은 내려오지 않았으며, 따라서 재판은 속개되지 않았다(24:22). 재판이 더 이상 열리지 않았으므로, 바울은 로마 황제에게 항소도 못한 채, 벨릭스 총독의 후임인 베스도 총독이 부임할 때까지 약 2 년간 구류되어 있었다. 벨릭스 총독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울을 구류하여 둔 것이었다.
불성실하고 불의하고 악하고 음란하고 욕심이 많은 벨릭스 총독이 파면된 것은, “유대인들의 고소”(Josephus, Ant. 20:7, 8)④와 “도처에서 소요가 일어났기 때문이며, 그때 그는 유배의 형까지 받았으나, 그의 형제 팔라스(Pallas: 23:24의 주 참조)의 노력으로 그 집행만은 면했다”(이상근).
후임자인 베스도(Φήστον)는 60년(R. C. H. Lenski, 이상근)⑤ 이전에 네로 황제에 의해 유대의 총독이 되었는데 2년 후에 죽었다. 그는 벨릭스 총독보다 더 선량한 정치가였다. 고상한 인격과 온순한 성품으로 공정한 선정을 베풀려고 노력하였고, 도적들과 암살자들을 진압하였다(Jos. Ant. xx. 8:10. B. F. ii. 14:1).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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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in R. C. H. Lenski.
5) R. Earle는 59년이라고 한다.
6) in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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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 출처: 최세창, 사도행전(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594-598.
아멘.
최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
필자의 주경신학적 연구에 대해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최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