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성탄절 설교)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0-12-21 14:37
조회
948
(설교 동영상: 유튜브)
<요한복음 1:14-18>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 시작하는 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영이신 무한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유한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나 성령의 역사로 깨닫고 믿을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성령의 역사로 믿게 되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믿기 위해서 알아야 하고, 성경 말씀을 알기 위해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기 위해서 성령의 역사를 좇아 믿어야 할 성경의 중요한 부분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성육신 사건입니다. 매우 중요한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를 따라 약속된, 그리스도 예수의 강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2. 성육신과 세례 요한의 증언
성육신 사건이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것입니다. “말씀”의 원어는 로고스(λόγος)인데, ‘말씀’으로 번역해 놓았기 때문에 흔히들 ‘언어’로 알고 있지만, 원어의 의미는 ‘언어’도 ‘말씀’도 아닙니다. 물론, 언어로서의 말씀도 아닙니다.
원래 로고스는 헬라 세계의 용어로 ‘우주를 지배하는 이성’, ‘지성’ 또는 ‘이성’, ‘우주를 존재하게 한 합리적인 원칙’ 등을 의미했습니다. 헬라 세계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각양각색의 ‘종자 로고스’가 부여되었으므로, 우주를 존재하게 한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 이성적으로 살아야 하거나, 지성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고하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과 새로운 인식을 형성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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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사도는, 인간을 구원하러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표현하기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럴 듯한 것으로 여겨진 로고스에다가 기독교적 의미를 담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로고스 곧 그리스도는 새 생명을 비롯한 만물 창조의 중보자이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의 계시자이시며,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의 중보자이시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창조주요 섭리자요 구원자요 심판자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그대로 드러내시는 성자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말씀 곧 로고스가 육신이 되신 것인 성육신은, 영원부터 선재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루터(M. Luther)는 “역설적 사건인 성육신은 지상에서 일어난 가장 놀라운 기적이며, 신비이므로 아무도 독자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이 사건은 인간의 이성 및 이해력을 넘어서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다만,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성육신에 관한 성경의 증언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육신이란 성부의 파견이자 성자의 자발적 행위입니다. 성육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루터(M. Luther)는 “그리스도의 본질은 신성과 인성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결합은 인간의 이해력을 완전히 초월하는 비밀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자 참 인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성육신의 의의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인류에게 참 하나님을 알게 하는 근거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병을 고치시고, 악귀에게 심신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서 악귀를 쫓아내 주시고,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면서까지 영육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등의 주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존재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주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존재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스트와트(J. S. Stewart)는 “바울에게 주 예수님이란,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본질과 존재가 가장 완전히 계시됐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참 하나님을 알게 되는 주 예수님의 마음을 얼마나 품고 있는 겁니까? 빌립보서 2:5을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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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성육신의 의의는 참 인간이 계시된 것입니다. 죄 중에 잉태되어 마귀의 덫인 죄에 매여 사는 인간들에게, 되어야 할 참된 자기의 모습과 취해야 할 올바른 언행의 삶에 있어서 본받을 대상의 출현이라는 중대한 의의를 내포한다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1:1을 보면, 바울 사도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주 예수님을 얼마나 본받고 있습니까? 쉬는 날, 서둘러 교회에 와서 주 예수님의 새로운 면모를 가슴에 새기지 못한다면 얼마나 속상합니까? 설교를 듣고도 주 예수님을 본받아 생각하지도 않고, 행동하지도 않는다면 속상하고 억울하지 않습니까? 이 질문이 이상하게 들린다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 성육신의 의의는 메시아의 출현입니다. 죄 아래 있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본격적으로 전개됐다는 뜻입니다. 성육신은 죄로 인해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긍정이고, 역사 안에서의 구체적인 구원 행위의 효시이며, 인류의 모든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해답이십니다. 요한 사도는 요한일서 3:8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라고 선언했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우리는 죄와 염려와 불안과 온갖 굴레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까? 죽음의 두려움에서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영원한 멸망에서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오늘 죽는다고 해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인간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에 대해, 요한 사도는,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따라 인간이 되어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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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은 강림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해서,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라고 외쳤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보다 6개월 늦게 탄생하셨고, 공적 활동 역시 늦었지만, 오히려 세례 요한보다 절대적으로 위대한 것은 영원부터 선재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어떤 천재적 종교성을 지닌 사람의 사색과 명상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본 것에 대해 사람들이 증언하고 선포함으로써 형성된 체험의 종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늘의 신적인 모든 영광과 존엄을 포기하시고, 인간이 되셔서 극도의 고통과 극도의 치욕인 십자가까지 지신 주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얼마나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주 예수님을 얼마나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까? 요한 사도는,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매일매일 은혜 위에 은혜를 받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4:16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성육하셨다면, 율법의 의의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율법은 우리와 똑같이 구원받아야 할 인간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나, 구원의 은혜와 진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입니다.
율법은 구원의 방도가 아니라, 죄 인식과 정죄와 징벌과 심판의 선언인 것입니다. 율법의 효능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하거나 증언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은혜와 진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행과 대속 제물이 되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만민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사실을 가리켜, 요한 사도는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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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 하나님께서 성육하셔서 언행을 통해 성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본질과 의와 진리와 자유와 평강 등의 속성을 나타내신 것처럼, 믿는 우리도 생활을 통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하지 않습니까?
로버트 슐러 목사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 여인이 시장에서 작은 고기만 골라 사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상인이 왜 작은 고기만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부인은 서슴없이, “우리 집 프라이팬이 작아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상인은, “부인, 고기를 사기 전에 프라이팬을 바꾸세요.”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내면을 성육신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의 외모도 바뀌고, 가정도 바뀌고, 이웃도 바뀌고, 사회도 바뀌고, 나라도 바뀔 것입니다.
3. 맺음말
빌립보서 2:5 이하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라고 했습니다.
어느 종교의 경전에도, 창조주요 섭리자요 구원자요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성육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이므로, 그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하는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과 근본적으로나 본질적으로나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웃기는 이야기(편저) /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요한복음 1:14-18>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 시작하는 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영이신 무한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유한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나 성령의 역사로 깨닫고 믿을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성령의 역사로 믿게 되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믿기 위해서 알아야 하고, 성경 말씀을 알기 위해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기 위해서 성령의 역사를 좇아 믿어야 할 성경의 중요한 부분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성육신 사건입니다. 매우 중요한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를 따라 약속된, 그리스도 예수의 강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2. 성육신과 세례 요한의 증언
성육신 사건이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것입니다. “말씀”의 원어는 로고스(λόγος)인데, ‘말씀’으로 번역해 놓았기 때문에 흔히들 ‘언어’로 알고 있지만, 원어의 의미는 ‘언어’도 ‘말씀’도 아닙니다. 물론, 언어로서의 말씀도 아닙니다.
원래 로고스는 헬라 세계의 용어로 ‘우주를 지배하는 이성’, ‘지성’ 또는 ‘이성’, ‘우주를 존재하게 한 합리적인 원칙’ 등을 의미했습니다. 헬라 세계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각양각색의 ‘종자 로고스’가 부여되었으므로, 우주를 존재하게 한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 이성적으로 살아야 하거나, 지성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고하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과 새로운 인식을 형성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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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사도는, 인간을 구원하러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표현하기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럴 듯한 것으로 여겨진 로고스에다가 기독교적 의미를 담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로고스 곧 그리스도는 새 생명을 비롯한 만물 창조의 중보자이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의 계시자이시며,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의 중보자이시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창조주요 섭리자요 구원자요 심판자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그대로 드러내시는 성자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말씀 곧 로고스가 육신이 되신 것인 성육신은, 영원부터 선재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루터(M. Luther)는 “역설적 사건인 성육신은 지상에서 일어난 가장 놀라운 기적이며, 신비이므로 아무도 독자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이 사건은 인간의 이성 및 이해력을 넘어서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다만,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성육신에 관한 성경의 증언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육신이란 성부의 파견이자 성자의 자발적 행위입니다. 성육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루터(M. Luther)는 “그리스도의 본질은 신성과 인성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결합은 인간의 이해력을 완전히 초월하는 비밀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자 참 인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성육신의 의의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인류에게 참 하나님을 알게 하는 근거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병을 고치시고, 악귀에게 심신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서 악귀를 쫓아내 주시고,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면서까지 영육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등의 주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존재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주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존재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스트와트(J. S. Stewart)는 “바울에게 주 예수님이란,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본질과 존재가 가장 완전히 계시됐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참 하나님을 알게 되는 주 예수님의 마음을 얼마나 품고 있는 겁니까? 빌립보서 2:5을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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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성육신의 의의는 참 인간이 계시된 것입니다. 죄 중에 잉태되어 마귀의 덫인 죄에 매여 사는 인간들에게, 되어야 할 참된 자기의 모습과 취해야 할 올바른 언행의 삶에 있어서 본받을 대상의 출현이라는 중대한 의의를 내포한다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1:1을 보면, 바울 사도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주 예수님을 얼마나 본받고 있습니까? 쉬는 날, 서둘러 교회에 와서 주 예수님의 새로운 면모를 가슴에 새기지 못한다면 얼마나 속상합니까? 설교를 듣고도 주 예수님을 본받아 생각하지도 않고, 행동하지도 않는다면 속상하고 억울하지 않습니까? 이 질문이 이상하게 들린다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 성육신의 의의는 메시아의 출현입니다. 죄 아래 있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본격적으로 전개됐다는 뜻입니다. 성육신은 죄로 인해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긍정이고, 역사 안에서의 구체적인 구원 행위의 효시이며, 인류의 모든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해답이십니다. 요한 사도는 요한일서 3:8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라고 선언했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우리는 죄와 염려와 불안과 온갖 굴레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까? 죽음의 두려움에서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영원한 멸망에서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오늘 죽는다고 해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인간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에 대해, 요한 사도는,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따라 인간이 되어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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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은 강림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해서,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라고 외쳤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보다 6개월 늦게 탄생하셨고, 공적 활동 역시 늦었지만, 오히려 세례 요한보다 절대적으로 위대한 것은 영원부터 선재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어떤 천재적 종교성을 지닌 사람의 사색과 명상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본 것에 대해 사람들이 증언하고 선포함으로써 형성된 체험의 종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늘의 신적인 모든 영광과 존엄을 포기하시고, 인간이 되셔서 극도의 고통과 극도의 치욕인 십자가까지 지신 주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얼마나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주 예수님을 얼마나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까? 요한 사도는,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매일매일 은혜 위에 은혜를 받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4:16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성육하셨다면, 율법의 의의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율법은 우리와 똑같이 구원받아야 할 인간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나, 구원의 은혜와 진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입니다.
율법은 구원의 방도가 아니라, 죄 인식과 정죄와 징벌과 심판의 선언인 것입니다. 율법의 효능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하거나 증언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은혜와 진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행과 대속 제물이 되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만민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사실을 가리켜, 요한 사도는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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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 하나님께서 성육하셔서 언행을 통해 성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본질과 의와 진리와 자유와 평강 등의 속성을 나타내신 것처럼, 믿는 우리도 생활을 통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하지 않습니까?
로버트 슐러 목사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 여인이 시장에서 작은 고기만 골라 사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상인이 왜 작은 고기만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부인은 서슴없이, “우리 집 프라이팬이 작아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상인은, “부인, 고기를 사기 전에 프라이팬을 바꾸세요.”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내면을 성육신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우리의 외모도 바뀌고, 가정도 바뀌고, 이웃도 바뀌고, 사회도 바뀌고, 나라도 바뀔 것입니다.
3. 맺음말
빌립보서 2:5 이하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라고 했습니다.
어느 종교의 경전에도, 창조주요 섭리자요 구원자요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성육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이므로, 그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하는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과 근본적으로나 본질적으로나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웃기는 이야기(편저) /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아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신을 통해 오신 사건을 놓고서 그간 하나의 세상의 축제로 삼아 흥청거리던 분위기는 작금의 ‘코로나19’로 인해 지구상에서 싹 가신 것 같습니다. 축제의 주인공 행세를 하던 산타도 출입제한으로 활동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회에 초림의 예수께서 오신 의미를 조용히 찾아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 만이 하셨습니다. 성경에 있는 정확한 기록을 통해 그가 인간이라는 것을 확실히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3년반 정도의 공생애에서는 바쁘고 정확하고 계획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를 확실히 나누셨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고, 죽음의 권세를 깨뜨렸고, 사탄의 정체를 확인하셨고, 사탄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길을 가르치셨고, 인간이 죄인이라고 가르치셨고, (바리새인 같은 종교인들의 위선을 드려내셨고), 죄에서 구원을 받는 길을 보여주셨고, 천국과 지옥을 보여주셨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고, 그가 십자가 사건을 통해 가심으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유대인들의 종교에서 이방인들까지 복음을 여는 교회시대를 여셨습니다.
창세-아브라함-율법시대-초림-교회시대-재림-1000년왕국으로 이어지는 인류 역사의 주요한 이정표가(milestone)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모든 성경의 주제이며, 예언과 역사적 성취이며, 성경에 들어 있는 모든 신비와 비밀의 주인공이십니다. 그는 그리스도이셨고, 현재 하늘의 대제사장이시고, 앞으로 다시오실 왕이십니다.
필자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관련하여 의견을 표하셔서 감사합니다.
3년반은 공생애고 그럼 나머지 삶은 모라해야하나 참 그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