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1회: 나.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의 찬미(5:8-10)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0-11-16 10:26
조회
653
어린양으로 상징된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던 두루마리 책을 취하셨을 때의 상황에 대해, 요한은 【8】[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로 시작한다.
[네 생물]은 4:6의 주석을 보고, [장로들]은 4:4의 주석을 보라.
[어린양 앞에 엎드려]의 [어린양]은 5:6의 주석을 보라.
[각각]은 네 생물로 묘사된 최상위의 네 천사들과 이십사 장로들로 표현된 상위의 이십사 천사들 모두에게 관련되는 것이다.
[거문고]는 키타란(κιθάραν)이며 ‘수금’(竪琴)이라고도 하는데(시 33:2, 98:5), 오늘날의 하프 악기나 기타 같은 악기일 것이다. 옛날부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 사용한 악기이다(14:2, 15:2, 삼상 16:16, 23, 시 33:2, 37:2, 43:4, 57:8, 71:22, 81:2, 92:3, 98:5, 108:2, 147:7, 150:3).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의 [향]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 사용한 것인데(시 141:2, 사 6:3-4, 눅 1:9-10①), 여기서는 [‘성도’(3:7의 “거룩하고”의 주석을 보라.)의 기도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금 대접](φιάλας χρυσάς)은 번제를 드릴 때에 사용하는 넓고 얕은 제사 용기인데, 여기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담는 용기를 의미한다.
모운스(R. H. Mounce)는 “기도를 어린양께 바치는 것은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중보자가 되심을 시사한다.”라고 하였다.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보화로 여기시고, 향취와 같이 즐기신다는 사실은, 기도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천사들의 찬미에 대해, 요한은 【9】[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라고 하였다.
[새]는 카이넨(καινὴν)이며, {“네오스(νέος)와 대조되는 말이다. 이 말은 네오스(νέος)와 구별되는바 한결같은 새로움(카이노스, καινός)을 의미하므로, 항상 카이노스(καινός)가 아닌 것보다 우월함을 의미하는데, 네오스(νέος)가 아닌 것보다 좋거나 나쁠 수가 있다”(A. Plummer)}(고후 3:6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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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자의 누가복음 1:9-10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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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노스(καινός)는 질적인 새로움을, 네오스(νέος)는 시간적인 새로움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는 하나님의 구원과 자비를 위한 것이거나(시 32:7, 33:3, 40:3, 96:1, 98:1, 144:9, 149:1, 사 42:10), 여호와의 원수가 진멸된 것에 관한 것이었다(사 40:9-10). 본서에서는 새 노래의 내용이 어린양과 어린양이 하신 일이다.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는 5:2의 주석과 5:5의 주석을 보라.
[일찍 죽임을 당하사]는 9절의 주석을 보라.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는 “인종별, 언어별, 집단별 및 국가별로 본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상근)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3:16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하였다.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방도, 즉 십자가에 못박혀 흘리신 피(죽음)를 대가로 지불하고, 죄인인 인간을 사서 하나님께 바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인인 인간은 이 놀라운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베드로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②라고 하였다.
그 바쳐진 자들에 대해, 요한은 【10】[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더라]라고 하였다.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와 [왕 노릇하리로다]는 1:6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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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필자의 베드로전서 1:18-19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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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178-180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네 생물]은 4:6의 주석을 보고, [장로들]은 4:4의 주석을 보라.
[어린양 앞에 엎드려]의 [어린양]은 5:6의 주석을 보라.
[각각]은 네 생물로 묘사된 최상위의 네 천사들과 이십사 장로들로 표현된 상위의 이십사 천사들 모두에게 관련되는 것이다.
[거문고]는 키타란(κιθάραν)이며 ‘수금’(竪琴)이라고도 하는데(시 33:2, 98:5), 오늘날의 하프 악기나 기타 같은 악기일 것이다. 옛날부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 사용한 악기이다(14:2, 15:2, 삼상 16:16, 23, 시 33:2, 37:2, 43:4, 57:8, 71:22, 81:2, 92:3, 98:5, 108:2, 147:7, 150:3).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의 [향]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 사용한 것인데(시 141:2, 사 6:3-4, 눅 1:9-10①), 여기서는 [‘성도’(3:7의 “거룩하고”의 주석을 보라.)의 기도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금 대접](φιάλας χρυσάς)은 번제를 드릴 때에 사용하는 넓고 얕은 제사 용기인데, 여기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담는 용기를 의미한다.
모운스(R. H. Mounce)는 “기도를 어린양께 바치는 것은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중보자가 되심을 시사한다.”라고 하였다.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보화로 여기시고, 향취와 같이 즐기신다는 사실은, 기도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천사들의 찬미에 대해, 요한은 【9】[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라고 하였다.
[새]는 카이넨(καινὴν)이며, {“네오스(νέος)와 대조되는 말이다. 이 말은 네오스(νέος)와 구별되는바 한결같은 새로움(카이노스, καινός)을 의미하므로, 항상 카이노스(καινός)가 아닌 것보다 우월함을 의미하는데, 네오스(νέος)가 아닌 것보다 좋거나 나쁠 수가 있다”(A. Plummer)}(고후 3:6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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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노스(καινός)는 질적인 새로움을, 네오스(νέος)는 시간적인 새로움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는 하나님의 구원과 자비를 위한 것이거나(시 32:7, 33:3, 40:3, 96:1, 98:1, 144:9, 149:1, 사 42:10), 여호와의 원수가 진멸된 것에 관한 것이었다(사 40:9-10). 본서에서는 새 노래의 내용이 어린양과 어린양이 하신 일이다.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는 5:2의 주석과 5:5의 주석을 보라.
[일찍 죽임을 당하사]는 9절의 주석을 보라.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는 “인종별, 언어별, 집단별 및 국가별로 본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상근)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3:16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하였다.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방도, 즉 십자가에 못박혀 흘리신 피(죽음)를 대가로 지불하고, 죄인인 인간을 사서 하나님께 바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인인 인간은 이 놀라운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베드로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②라고 하였다.
그 바쳐진 자들에 대해, 요한은 【10】[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더라]라고 하였다.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와 [왕 노릇하리로다]는 1:6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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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필자의 베드로전서 1:18-19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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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178-180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첨부파일 : 20201115_181303.jpg
첨부파일 : 004-1.jpg
제가 보기에는 숫자 4는 세상, 24는 12+12 로 보이며 이는 이스라엘의 상징 12와 12제자 혹은 12명의 이방인 장로를 예표한다고 봅니다. '금'은 거룩을, '은'은 성도들의 행실을,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은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이 구약시대의 유대인/이스라엘에 한정되어 머물지 않고, 교회시대에는 온 세상과 이방인들에게 널리 펴지는 것 말하고 있습니다.
필자의 요한계시록 연재에 관심을 보이시고, 의견을 표하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