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덫에 걸린 벨릭스 총독
Author
최세창
Date
2025-03-1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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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4:22-27>
22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고로 연기하여 가로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백부장을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 친구 중 아무나 수종하는 것을 금치 말라 하니라 24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27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1. 시작하는 말
성공한 사람이나 권력을 쥔 사람들을 보면, 이렇다 할 약점이 없는 것 같고, 모든 면에서 제대로 갖춰진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들 중에도 이러한 착각에 빠져서 위세를 떨치고, 교만을 부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선천적인 약점이 있고, 성장 과정의 약점이 있고, 성장한 후의 약점이 있습니다. 특히, 오늘 설교하는 약점인 성공하고 권력을 쥔 사람들의 약점도 있습니다. 이 약점을 가리켜, 저는 권력자의 덫이라고 말합니다. 이 덫은 권력자의 탐욕과 기회주의입니다. 법적인 힘이나 남들보다 먼저 정보를 얻는 등의 기득권을 악용해서, 여느 사람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엄청난 탐욕을 채웠다가 패가망신한 사람들과 사형을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설령 그 짓거리가 들통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짓거리는 분명히 인격 자해요 인격자살입니다.
2. 기회주의자인 벨릭스 총독의 권력의 덫
어리석은 짓을 가리켜, ‘소경 제 닭 잡아먹기’라고 하는데, 권력자의 덫인 탐욕을 채우는 것은 제 자신을 잡아먹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복음 전파 때문에, 유대 지도층의 고소를 당한 바울을 재판한 벨릭스 총독에게서도 나타났습니다.
피고인인 바울 사도의 변명을 들은 벨릭스 총독은, 이미 도인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벨릭스 총독은 가이사랴에 오래 있었으므로, 이달리야대의 백부장인 고넬료나 전도자인 빌립이나 유대인 아내인 드루실라를 통해 복음의 도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벨릭스 총독은 바울 사도의 변명을 듣고 죄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무죄로 석방하지 않고, 루시아 천부장이 내려오면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재판을 연기한 이유는 바울 사도에게서 뇌물을 받고자 했기 때문이었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벨릭스 총독은 여느 권력자들처럼, 기회주의자이며 탐욕가이었습니다.
벨릭스 총독은 백부장에게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바울의 친구 중 누구라도 수종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벨릭스 총독이 나름대로 바울을 배려한 것입니다.
세상 지혜라는 게 이런 겁니다. 무죄로 석방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정치적인 계산상 고소한 유대 지도층의 환심을 얻기 위해 재판을 연기하고, 바울을 구속하되 최대한 편의를 봐 준 것입니다. 제 딴에는 양쪽을 다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그렇게 했다고 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 지도층이 벨릭스 총독을 좋아하겠습니까, 바울 사도가 무죄인 줄 알면서도 석방하지 않는 벨릭스 총독을 좋아하겠습니까? 실상, 벨릭스 총독의 세상적이며 정치적인 지혜는, 양쪽을 다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짓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르다면 모를까, 상반되는 사람이나, 상반되는 것을 다 좋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과 세상에 속한 사람이 상반될 경우에나, 하나님의 일과 세상 일이 상반될 경우에는 양쪽을 다 좋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다 만족하게 하려는 사람들은, 양쪽을 다 잃어버리게 마련입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이해관계를 따져 보고 나서, 하나님 편에 서거나 세상 편에 서는 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나 하나님 편에 서야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1:10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좋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사람들을 좋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를 가이사랴에 있는 헤롯 궁에 구금한 벨릭스 총독은 수일 후에, 세 번째 아내가 된 유대 여인인 드루실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도에 대해 들었습니다. 럼비(Lumby)는 “사도 바울이 역설하고자 한 것은 모든 유대인들이 대망하는 메시아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고, 나사렛 예수가 그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라는 신앙이었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그러자 남의 아내이었던 미녀인 드루실라를 가로챈 벨릭스 총독은 두려워하면서,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라고 했습니다.
첫째, “의”의 헬라어 디카이오쉬네스(δικαιοσύνης)는 도덕적 정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격 수양이나 종교 행위나 율법 행위나 양심 행위 등에 의해 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일컬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칭의는 인간이 의로운 존재가 되는 인격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대속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인간이 비록 의로운 존재로 바뀐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대속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인간을 의로운 존재로 간주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은 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의롭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완전무결한 삶을 살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동기와 목적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믿기 전의 죄악 생활을 계속하는 교인이 있다면, 그는 참된 교인이 아닙니다.
벨릭스 총독은 남의 아내의 미색에 반해서 유혹하여 가로채는 등 불의의 대명사이었습니다.
둘째, “절제”의 헬라어 엥크라테이아스(ἐγκρατείας)는 ‘자제’, ‘극기’를 뜻하는데, 특히 ‘관능적 쾌락의 절제’를 의미합니다.
선진국에도 권세 등등하던 사람들이 관능적 쾌락의 절제를 못해서 성추행과 성폭행을 한 것이 드러나서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의 어느 가정이나 생지옥이 되는 요인 중 하나는, 관능적 쾌락의 절제를 못한 탈선입니다.
어느 신문에 황당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삼십 대 된 사람이 헐레벌떡거리며 사람이 많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더니 갑자기 속옷까지 다 벗고는 알몸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알고 보니까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던 십대들과 부딪쳐서 같이 넘어졌는데, 사과는커녕 욕을 하면서 때려죽인다고 쫓아와서 그랬다고 합니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속옷까지 벗어버린 것은 절제를 못한 것입니다.
셋째, 장차 오는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있을 최후 심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적인 하나님의 심판도 있습니다. 또, 사람마다 구원받기 위한 회개와 믿음의 기회는, 죽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에 의해 시작된 인생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을 보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특히, 이 심판이라는 말에 벨릭스 총독은 두려워하면서 일단 바울 사도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벨릭스 총독과 얼마나 다릅니까? 우리는 칭의와 의롭고 성결한 언행과 절제와 심판에 대한 설교를 양심의 찔림도 없고, 두려움도 없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시더라도,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소심하고, 출세에 대한 욕심과 색에 대한 탐욕이 많았던 벨릭스 총독은, 재물의 탐욕 또한 대단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드루실라의 불의와 무절제가 다 심판을 받을 죄악임을 알고 두려워하면서도, 바울 사도에게서 뇌물을 받을까 해서 더 자주 바울을 불러서 대화를 하곤 했습니다. 물론, 마음이 다른 데 있는 벨릭스 총독이, 바울 사도의 설교에 제대로 은혜를 받을 리가 없었습니다. 벨릭스 총독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을 좋은 기회를, 뇌물을 먹을 기회로 여겼습니다. 벨릭스 총독은 남달리 출세한 사람이요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아주 무지몽매한 사람이었습니다.
벨릭스 총독은 바울에게서 뇌물을 받을까 하고, 또 유대인의 마음을 얻을까 해서 죄 없는 바울을 2년 동안이나 구금했습니다. 이와 같은 권력자의 탐욕과 기회주의는 권력자 자신을 잡는 덫입니다. 결국 그는 유대인들의 원성을 샀고, 유대인들의 청원을 들은
네로 황제에 의해서 파면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임자가 베스도 총독입니다.
3. 맺음말
벨릭스 총독과 같은 권력자나 권세자는, 권세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충성스레 섬기라고 정하신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국가마다 일부 고위층과 의원들과 공직자들이, 주식 정보나 부동산 정보나 재개발 지역 정보를 이용하는 범법과 불의한 방법으로 치부하였고, 뇌물을 받아 챙겼습니다. 그 죄악의 결실로 보다 더 높은 지위와 보다 더 많은 재물을 얻는 악순환을 거듭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하는 자녀를 범죄자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기막힌 사실을 깨닫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속 자행하는 그런 죄악이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2:4을 보면,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라고 했습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_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아멘.
최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
필자의 설교에 대해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최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별도 게시물로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