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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27-33(예수의 권위 문제)의 주석

Author
최세창
Date
2024-09-25 11:31
Views
1297
<비교 : 마 21:23-27, 눅 20:1-8>

예수님의 권위 문제에 관한 논쟁 기사는 【27】[저희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로 시작된다.
[저희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는 나귀를 타고 첫 번째 입성하신 것(11:9-10)과 두 번째 입성하여 성전을 정결케 하신 것(11:15-16)에 이어, 세 번째 입성하신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레인(W. L. Lane)은 “예수님은 분명히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기간 내내 성전을 선교의 초점으로 삼으셨다.”라고 하였다.
[성전](히에로, ἱερῷ: 11:15의 주석을 보라.) 안에 두 개의 유명한 회랑이 동쪽과 이방인의 뜰의 남쪽에 있었다. 동쪽에 있는 회랑은 ‘솔로몬의 회랑’이라고 일컬어졌는데, 그것은 높이가 약 12m나 되는 고린도식의 두리기둥이 늘어 서 있는 장엄한, 지붕이 있는 가로이었다. 보다 더 화려한 남쪽의 회랑은 ‘왕의 회랑’이라고 일컬어지는데, 거기에는 지름이 약 2m, 높이가 약 10m나 되는 흰 대리석 두리기둥 162개가 네 줄로 늘어 서 있었다(W. Barclay).
랍비와 일반 교사들은 이러한 두리기둥 사이를 산책하거나 걸으면서 가르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걸어다니면서 가르치신(마 21:23, 눅 20:1)➊ 곳도 이러한 회랑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때, 유대교를 지탱하고 있는 [대제사장들](8:31의 주석을 보라.)과 [서기관들](1:22의 주석을 보라.)과 [장로들](7:3의 주석을 보라.)이 예수께 나아왔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장로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족장 또는 지파의 우두머리이었다. 사실상, 모든 성이나 조금이라도 중요한 마을은 다스리는 장로들을 두고 있었다. 이들 중에 뛰어난 지역의 장로들이 최고 기관인 산헤드린(공회: 구성원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의 회원이 되어 ‘평회원’이라고 일컬어졌다.”라고 하였다.
예수께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온 것은 공회 회원 모두가 아니라, 당국의 대표들이었을 것이다.➋ 이들이 예수님을 힐문한 것에 대해서, 마가는 【28】[가로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세를 주었느뇨]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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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세를 주었느뇨]라고 힐문한 것은, 그 교권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궁지에 빠뜨리고 예수님과 백성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한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힐문의 요지는 예수님의 권세의 종류와 출처에 관한 것이었다.
힐문의 동기인 [이런 일](복수형인 타위타, ταύτα)에 대해서는 (1) 성전을 정결케 하신 일이라는 설➌, (2) 성전을 정결케 하신 일과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이라는 설(E. P. Gould), (3) 왕자와 같은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을 정결케 하신 일과 가르침이라는 설(E. Bickersteth, 黑崎幸吉), (4) 앞의 것들을 포함한 모든 행적들이라는 설➍ 등이 있다.
이미 예수님의 앞선 행적도 예루살렘에까지 알려져 있었을(3:8)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교권자들이 예수님을 제거할 구실을 찾기 위해 사람들을 파견한 일도 있었다는 점(3:22, 7:1)을 보아 (4)설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힐문은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들 외에는 성전에서 권세를 가진 자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으며”(A. E. Sanner), “모든 종교적인 권세는 산헤드린(공회)에 있다고 생각했고, 산헤드린에서 인정하지 않는 권세는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단정했던 것이다”(이상근). 실은, 그들도 “예수가 어떤 종류의 권세를 주장하는 것을 알았지만, 성전의 위계 제도에 젖어 버린 그들에게는 공적 권세가 아닌 개인적인 권세는 모호한 것이며 불확실한 것이었다”(E. P. Gould).
그렇다고 하면, 그들의 힐문의 의도는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었음이 분명해진다. 이 점에 대해, 마경일 님은 “예수는 공식적인 제사장도, 공인된 율법 교사도 아니다. 더구나 로마 정부로부터 어떤 정치적 권한을 부여받은 일도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질문은 예수의 교훈과 행동의 비합법성을 지적하고, 이를 밝혀 군중의 열광적인 인기를 냉각시키려는 것이었다.”라고 설명하였고; 그닐카(J. Gnilka, 하권, p. 187)는 “단지 그의 권위의 원천으로서 하나님을 가리키거나, 그를 가짜 예언자로 폭로하려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어드만(C. R. Erdman), 바클레이(W. Barclay), 산너(A. E. Sanner), 헨드릭슨(W. Hendriksen) 등은 예수께서 본래 하나님으로서 지닌 권세나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된 권위라고 주장하면, 신성 모독 죄로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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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게 된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어드만(C. R. Erdman)은 예수께서 권세를 위임받았다고 하면 유대 나라의 안정된 권위를 분열시키고, 제가 그 권위를 갖고자 한다는 죄명을 쓸 것이라고 하였다. 산너(A. E. Sanner)는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서의 권세를 주장하면 로마에 대한 반역자가 될 것이고, 아무 권세도 없다고 하면 사기꾼으로 낙인찍힐 것이라고 하였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예수께서 권세를 부여받았다고 하는 신임장이 없다고 하면, 그에 대한 무리의 존경심이 줄어들 것이라고 하였다. 바클레이(W. Barclay)는 예수께서 스스로의 권세를 가지고 한 일이라고 하면, 그 이상의 파괴를 하기 전에 과대망상증 환자로 취급되어 체포될 것이라고 하였다[참조: 3:21-22].
그와 같이 간교한 머리를 쓰는 교권자들의 영적 우둔에 대해, 黑崎幸吉이 잘 설명하고 있다. “직업적 종교가나 종교 정치가는 인간으로부터 나온 권위나 제도에 의하여 주어진 권위는 절대시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권위에 대해서는 눈먼 장님일 뿐 아니라, 오히려 이를 박해한다. 그들은 스스로 사람으로부터 나온 권위를 가진 것을 자랑삼고, 예수가 이를 갖지 않았으므로 그의 행동이 법에 저촉된다고 지적하며, 이를 이유 삼아 예수를 죽이려 했다. 직업적 종교가들은 항상 이와 같이 참 신앙을 박해한다.”
그러한 교권자들의 간계를 훤히 아시는 예수님이 그들의 어떤 의도에도 말려들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궁지에 빠뜨리는 질문을 하신 것에 대해, 마가는 【29】[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내게 대답하라]라고 하였다.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것(10:3, 12:16)은 랍비들의 습관이었다. 그와 같은 예수님의 질문은 단순한 회피나 함정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들의 맹목을 깨닫고 고백하고 시력을 구할 또 다른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R. A. Cole). 실상, 세례 요한의 권위의 출처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예수님의 권위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는 것이다.
[요한의 세례](1:4-7의 주석을 보라. 참조: 마 21:25, 요 1:26-27)[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인 물의 세례만이 아니라, 그의 모든 사역과 교훈의 출처를 묻는 것이다(E. Bickersteth, W. Barclay, W. W. Wessel)➎ 이 질문은 예수께서 메시아로서의 자신과 자신의 교리와 모든 설교와 표적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거를 염두에 두신 것이다(막 1:7-8, 눅 3:6, 15-17, 요 1:19-27, 29-31, 33-34, 10: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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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서냐]는 하나님께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아 파송된 자의 활동이었느냐는 뜻이고, [사람에게로서냐]는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간적 권위에 의한 활동이었느냐는 뜻이다.
예수님의 질문에 교권자들이 궁경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마가는 【31】[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서로 의논하여]는 “그들의 당황스러움을 잘 말해 준다. 동시에 설화자는 그들이 그들 자신의 생각에 따라 판단을 내리지 않고, 전술적인 생각에 따라 판단을 내리려 한다는 것을 알리려 하는 것이다”(J. Gnilka, 하권, p. 188).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하나님에게서 파견된 선지자임을 인정하는 것이 되며, 따라서 그들이 세례 요한을 믿지 아니한 것이 추궁거리가 된다. 그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이 메시아로 선포한 예수님의 권위가 신적인 것임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것이 되고 만다.
계속된 그들의 의논에 대해, 마가는 【32】그러면 [사람에게로서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저희가 백성을 무서워하는지라]라고 하였다.
앞 구절(31절)과 달리, [사람에게로서라]고 대답하면, 세례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어 회개하고 세례받은 모든 백성들에게서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그 백성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 대답도 할 수 없었다(참조: 마 14:5). 이와 같이 교권자들은 기회주의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교권자들의 결론적 대답에 대해, 마가는 【33】[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였다.
기회주의자들다운 그들의 비열한 대답과 자신의 약정에 따른 예수님의 당당한 선언이 잘 드러나 있다.
그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라고 하여 정당한 대답을 회피하는 비열함을 드러내었다. 그들의 비열한 대답 아닌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다.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대답해 줄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山口 昇은 “여기에는 암암리에 하늘로부터 오신 자로서의 예수님의 권위의 주장과 자신이 나타나 있다.”라고 하였고, 레인(W. L. Lane)은 “예수의 권위는 신적 소명과 능력으로 공인된 것을 전제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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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R. A. Cole, W. Barclay, W. Hendriksen, 이상근.
2) W. L. Lane, W. Hendriksen, W. Barclay, J. Gnilka, 하권, p. 187, 山口 昇, 마경일, 이상근.
3) W. W. Wessel, C. E. G. Swift, A. E. Sanner, 이상근.
4) H. Alford, W. Hendriksen, J. Gnilka, 하권, p. 187, 山口 昇, 마경일.
5) 참조: J. A. Bengel은 「마가복음 주석」에서 요한의 세례는 그의 전 사명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 출처: 최세창, 마가복음(서울: 글벗사, 2006년 3판 1쇄), pp. 512-517.



Total Reply 4

  • 2024-09-26 08:16

    최 목사님 안녕하세요?
    본문 해석에서 여러 사람의 다양한 입장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경 말씀들을 읽고 내가 깨달은 관점과 비교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한편, 이들의 주장이 선험적일 때, 이들의 주장이 옳겠으나 전통 속에 숨어 있는 사탄의 누룩이 없다고 단정할 이유는 없기에 이를 분별하는 눈이 감길까? 염려해 경계를 동시에 합니다. 이 부분에 성령께서 도와주시길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권위는 ❶성경 말씀 창세기부터 구약 전반에 걸쳐 예언과 이 성취에 해당하며, ❷변화산 기도에서 두 증인이 [마17: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등장합니다. ❸예수님의 기적은 무기물인 바다를 잠잠케 하신 것 등 인간은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❹초림과 재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등장은 필연적이나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의 지위와 권위에 취해 이를 깨닫지 못합니다.

    역사적으로 로마 카톨릭은 그들 사제 외에는 그들 교도뿐만 아니라 모든 일반인을 상대로 성경을 소지도, 읽지도, 해석도, 설교도 못하게 막았고, 이런 비성서적이고 불합리한 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트집잡아 성경대로 믿는 성도 수천만 명을 마녀사냥해 죽였습니다. 좀 다른 측면에서 현대에서도 종교적 권위를 자기 이권 영역으로 내세우는 이들은 성경 해석이나 신학에서도 비슷한 배타적 태도를 취하나, 이는 사탄이 딱 좋아할 도그마(dogma)입니다.


    • 2024-09-26 19:25

      필자의 마가복음 11:27-33의 주석에 대해, "최 목사님 안녕하세요?본문 해석에서 여러 사람의 다양한 입장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 2024-09-26 19:30

        다자 대조 연구 방법이란 수많은 학자들의 견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비평하며 대조하면서 취사 선택하거나 종합하고, 기존의 견해들과 다른 견해를 도출하는 것입니다.


        • 2024-09-27 09:27

          ‘다자 대조 연구 방법’은 효과적이고 성과를 기대할 만한 학문 방식으로 사료합니다. 또한, 스스로 성경을 읽을 때, 생길 수 있는 ‘인간의 오류 human error’, 무지와 나태가 염려되고 이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비교가 적당하다고 사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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