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독] 선거 무관합니다.
Author
민관기
Date
2024-09-24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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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위안부소녀 기림의 날 예배 및 추도식
2024.8.14 오전 11:00 ~11:50
<사회 : 박영규 목사 공동추도위원장>
여는말씀 박영규 목사(위안부 기림교회)
묵상기도
찬송 620장/여기에 모인 우리 (1절)
기도 민바디 청년학생(위안부 기림회 청년대사)
말씀 서철 동대문교회 담임목사
추도식
<사회 : 민병덕 국회의원 공동추도위원장>
1. 공동 추도사1 감리회 역사지도부 : <이철>, <안정균>, <김영민>, <이용원>(감독회장, 전·현 역사보존위, 현 선교국위)
2. 공동 추도사2 : <김민석>, <남영희>, <이언주>, <김용만>, <이수진> 특별 추도위원 = 위는 직접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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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동 추도사3 : 장로교-성결교-침례교 : 곽부현, 김응기, 남윤국, 라용주 등
4. 공동 추도사4 : 감리회 목회자 = 감독회장 후보 김정석, 윤보환, 이광호 등이며, 각 연회 감독 후보 김성복, 서길원, 유병용, 조장철, 정복성, 황규진, 서인석, 김종필, 이영훈, 정인수, 공기현, 우광성, 백종준, 오금표, 이웅천, 이성수, 박인호, 박준선, 김영윤, 안효근 등입니다. [가나다순이며 연회는 연회록기록순]
*감리회 목회자와 평신도 : 곽일석, 김미숙, 김정수, 김필수, 김학중, 리은주, 문영배(사회평신도국 총무), 박동찬, 박명석, 박민용(전 협성대 총장, 상동교회 장로) 신현승, 신현주, 원성웅, 이명환, 이용윤, 임일우, 태동화, 한종우 등 [존칭 생략, 가나다순]
*광복회 이종찬 회장, 헌정회 정대철 회장, 곽상언-김동아-양문석 국회의원, 탁사최병헌사업회 송광호 상임고문 등도 추도의 뜻을 밝히셨습니다. 이 외에도 일반인들의 동참이 다수 있습니다.
*총회 역사보존위원회 위원은 이광섭, 최태수, 부경환, 황규진(서기), 최양섭. 이기록, 정무동, 백두진, 임춘희, 김현, 소요한, 홍민기, 민관기(부위원장)와 김영민(위원장) 등 14인 등 3과 4 이하는 간접 추도사입니다.
5. 역사선언서는 감리회 역사전략재단 추진위 산물임과 유네스코 인물과 기록물 추진 사항 등 간략한 보고를 민관기 목사가 합니다.
78명 명단 : 스웨덴 예테보리의 세계감리교대회에서 청년대표단의 일원 민오디 양<당당뉴스 특파원, 위안부소녀기림교회 청년대사, 중부연회 부평동지방 이웃사랑교회 파견> 발표
명단의 유족 등과는 협의를 한 바가 없으며, 감리교회의 역사보존위원회와 탁사최병헌사업회, 황기환사업회 등이 감리회 역사전략재단 추진위의 이름으로 결정한 미완의 명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국민과 그리고 세계인류의 뜻에 따라 추진함을 알려드립니다.
헌금 격려사 및 헌금기도 김성기 목사(예수제자교회)
축도 정혁 목사(동대문교회 원로)
기념촬영과 식사
장소 : 일본 대사관 소녀상 앞(안국역~경복궁역 사이)
일시 : 2024.8.14 오전 11:00 ~11:50
주최 : 위안부소녀기념교회
주관 : 감리회역사전략재단추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경기도 대일굴욕외교대책위원회 등의 공동추도위원회
후원 : 기독교대한감리회, 역사보존위원회, 감리회 역사전략재단 추진위, 동대문교회 스크랜턴역사문화원, 애국지사최용신기념사업회, (미스터션샤인)황기환지사기념사업회 한국측 위원회, 탁사최병헌목사기념사업회, 한-미주 기념사업회중 스크랜턴가 아펜젤러가 노블가, 존스가 하디, 홀가, 헐버트목사 기념사업이 중점, 여성지사총기념사업회, ㈜예술기획 파홀로 등
● 역사선언서는 감리회 역사전략재단 추진위 산물임과 유네스코 인물과 기록물 추진 사항 등 내용 생략
78명 명단 : 서울과 함께 스웨덴 예테보리의 세계감리교대회에서 청년대표 발표
아래 명단은 유족 등과 일체의 연락을 한 바가 없으며 감리교회의 역사보존위원회와 탁사최병헌사업회, 황기환사업회 등이 감리회 역사전략재단 추진위의 이름으로 결정한 미완의 명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국민과 그리고 세계인류의 뜻을 물어 일을 추진함을 알려드립니다.
[고종황제, 명성황후는 쇄국에서 개화로의 국가발전전략을 단행하다가 한 분은 시해을 당하셨고, 한 분은 광무개혁을 추진하다 국권을 피탈당하고 독살 순국의심을 받는 분이라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기존 건국훈장 추서자 또는 미추서자로서 감리교인만이 아닌 민족과 세계 속의 인물들로 감리교회가 정하고 유네스코 인물등재를 추진하며, 의사를 묻는 78명만 대표적으로 발표하며, 기록유산 등재는 약 11건입니다.
** 특별히 김학순 집사, 전태일 열사
*. 남성지사는 백범 김구, 일성 이준, 도마 안중근, 매헌 윤봉길, 백야 김좌진, 몽양 여운형, 남강 이승훈, 의암 손병희, 만해 한용운, 계정 민영환, 면암 최익현, 도산 안창호, 송재 서재필, 여천 홍범도, 한지 김상옥, 이재명, 은재 신석구, 전덕기, 해석 손정도, 한서 남궁억, 우당 이회영, 성재 이시영, 일송 김동삼, 석주 이상룡, 부재 이상설, 한흰생 주시경, 석오 이동녕, 이규갑, 나석주, 김익상, 금연 정일형, 김영학, 최인규(2023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등 [목회자와 평신도]
*. 여성지사는 유관순, 남자현, 안경신, 최용신, 리효덕, 하란사 등 [목회자와 평신도]
*. 초대 목사, 신학자이자 민족의 정신적 스승 탁사 최병헌이 있으며, 비슷한 반열의 다석 유영모
*. 타종교의 건국훈장 미추서자들인 녹두장군 전봉준과 김개남, 손화중 그리고 수운 최제우와 해월 최시형 그리고 건국훈장 추서자인 대종교의 나철 등
*. 국민들의 의견을 반드시 들어야 할 나라를 지킨 우남 이승만, 농지개혁을 성공시키고 조국도 수호했으나. 평화통일 주장하다가 우남에 의해 사법살인 당하고 대법원 무죄평결 받은 죽산 조봉암 또한, 애국가의 안익태, 3.1 독립선언서의 육당 최남선, 한국의 슈벨트이자 포스터인 난파 홍영후 등
이 분들의 공적을 없는 것으로 취급할 것이냐? 있다면 어떻게 예우할 것이냐?를 묻는 것이며 건국에 대한 공로만이 아니라 인류의 공영사적 관점에서 해석할 분들이다. 라고 우리는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 이어령 선생, 생존하는 분으론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와 빛민족문화연구원 박해조 선생이 있어 한국인은 55명이고
*. 스크랜턴가(2인), 아펜젤러가(3인), 홀가(3인), 노블, 무스, 무어, 벙커, 존스, 하디, 헐버트, 언더우드가(3인), 세브란스, 미드, 볼드윈, 파이퍼 등의 개인과 미국 북/남 감리회, 캐롤라이나 미국연회, 세계 YMCA, 세계 YWCA, 세계 절제회 등으로 23명(단체는 인물 미기명)으로 총 78명. 이중 외국인중에선 헐버트만 건국훈장과 문화훈장 동시 추서자임을 밝힙니다. 외국인이나 민족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에 대한 예우가 아직 없는 것을 어찌해야 할까요?
<위는 인명은 종교 구분없이 민족과 인류공영의 관점>
*. [11개 기록물 명부] :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는 1. 동학혁명 자료 2. 독립유공자 공훈록(18,000여 명) 3. 독립운동사 자료집 4. 일제측의 재판기록물과 총독부의 요시찰 보고서 5. 태평양전쟁의 희생자들인 위안부, 징용, 학도병과 야스쿠니 합사된 대한인들 6. 관동대지진 7. 우카시마호 피해자 8. 사할린동포 9. 만주, 연해주, 몽골, 중앙아시아 10, 미주, 하와이, 멕시코, 쿠바, 유럽과 서러시아 11. 원폭피해자 등의 총 자료를 엄선하여 제출할 것입니다. 중국측의 피해 자료들인 731부대, 난징대학살 등의 중일전쟁 자료와 태평양전쟁 자료는 당사국과 협의 필요
*, 부기 :
1. 강제신사참배 거부 투옥(약 200~2,000여명?)과 순교-순국자(6~50여명?)에 대한 건국훈장*포장*표창 예우 청원
2. 외국인 선교사, 의사, 교사, 문화인, 언론인 약 6,000여 명에 대한 수교-건국-국민-문화훈장*포장*표창 예우 청원
<종교 구분 없음>
3. 감리교회 내부 인사 건국/국민/문화/무공훈장*포장*표창 예우를 구분하여 공적에 맞는 청원
대표인사로는 홍현설, 이호운, 박설봉 목사/ 양주삼, 김유순, 류형기, 송정률, 김선도, 이호문, 변선환 목사/ 근자 소천하신 정판수 목사 등이고, 이 외에도 장로회, 남선교회, 여선교회, 청년회 등에서 활약하여 사회에 큰 공헌을 남긴 이들이 수다하여, 이 분들에 대한 전면 조사를 실시하여 정부에 청원 예정입니다.
<교우들의 자료 제공이 매우 중요합니다> <존칭 감독도 목사로 통일>
소천하신 초대 신앙인, 광복후 신앙인 그리고 현재 임직을 마친 분이나 앞으로 임직을 마칠 분이나 임직을 맡아 공적을 세울 모든 분들이 대상일 수 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과 성도들의 뜻만으로 이루어집니다.
4. 특별히, 나라의 독립과 인류공영에 이바지한 단체와 사적지에 대한 집중연구를 진행하여
1) 독립유공단체 및 사적지 지정에 대한 법률의 제정
(예, 감신대, 장신대, 총신대, 한신대 등의 독립유공자 배출 신학대학과 배재, 이화, 배화, 연세, 경성의전, 숭실, 동국, YMCA, YWCA, 절제회, 감리회 청년회-여선교회-남선교회 등과 삼일학원, 매향학원, 영화학원, 의숭학원, 초당의숙, 공주영명학교 등의 학교와 단체)
(사적지는 어느 한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서울을 예로 동으로부터는 꽃재교회, 화양교회, 김상옥의사 생가 및 전투지, 동대문교회-탑골공원-중앙교회-대동서시,<통감부, 총독부, 종로서, 동양척식, 서울역 등의 왜의 통치기관 및 공기관>, 상동교회, 정동제일교회, 덕수궁, 감신대, 독립문, 서대문형무소, 공덕교회, 서강교회, 창천교회, 양화진 선교사 묘원이 이르는 곳을 광범위하게 사적지로 지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상 이 안에 수 백 곳 사적지 존재 하여, 전체를 포괄하여 지정 추진)
2) 독립유공자 예우에 대한 법률중 배우자와 외국인 조항에 대한 예우 부분의 개정입니다.
이에 간략히 내용을 보고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지면-시간관계상 생락하고 자료집을 통하여 발표될 것입니다. 모쪼록 교우 여러분들과 국민들의 관심과 선열들을 마음에 품고 대체 어떻게 하는 길이 과거 일본의 문제를 현재의 일본과 더불어 미래 일본과의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가 되어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것인가?를 교우-국민과 인류가 중지와 지혜를 모으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내용들은 의견수렴되어져 향후 일정 속에서 관철되어 갈 것입니다.
<위안부소녀 추도의 뜻과 선언서와의 공감과는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위의 내용은 학문적 소명을 요합니다.>
이상 끝-
위안부소녀기림 추도예식 공동추도사<대독-민관기목사, 역사보존위원회 부위원장>
<감독회장 이철, 전=현직 역사보존위원장 안정균-김영민, 현직 선교국위원징 이용원>
<전 선교국위원장 김정석 목사는 감독회장 선거 출마후보이므로 미포함>
*. 위의 분들이 대표자이시지만 모두의 추도사이기를 바랍니다.
<대정부 훈장 추서 청원에 동참하신 1,000여 명의 입법의원, 총회대표, 본부 임직원, 역사보존위 전현직 위원 명단 등은 지면관계상 따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무더위를 하나님의 은혜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날 그 시대 야만과 만행이 밤낮으로 있었던 때를 우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곳은 지금 여기의 우리보다 자연상태가 더 뜨거운 곳이겟죠! 우리 대한의 빛여성 소녀들 41만명이 정신대로 징발되었으며, 이중 145,000여 명의 빛소녀들 11~20여 세의 그들은 성폭행과 학대와 전쟁에 동원되어 결국 사망(일본 자민당 국회의원 아라후네 세이주로 발표)에 이르게 한 인류사에 없었던 비극으로 인류 멸망을 위해 기획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대 역사속 전쟁에서는 남자 군인들에 의해 침략-점령지의 여성들이 미처 피난을 못하여 아이들과 노인과 함께 학살과 약탈에 성폭행을 했다는 기록들은 다 알고 있는 바입니다.
또, 일부는 군인들 노리고 돈을 위해 성집합소를 만들기도 한 것도 다 압니다.
그러나, 일본 군국주의가 기획한 것은 이 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전쟁중의 군인만 위한 성위안부 즉 미국의 전 국무장관도 표현한 성노예제였던 것입니다. 인류 멸망의 기초를 놓았다. 라 그는 평가한 것이며, 실제로 남녀간의 수 많은 행위에도 정상적으로 낳아 길러진 생명은 전무하여, 그 여성들은 사망하거나 스스로 거의 독신의 삶을 살았고 극히, 일부가 그러했던 사실을 숨기고 혼인 생활을 하던 몇 인들은 사람의 양심으로 가족에게 고백하여 봤자. 더러운 사람 취급받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니, 성노예제는 인류 멸망 기획이 확실하다!!!입니다. 민망하지만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종-노예들도 가정은 꾸리고 살았습니다. 41만의 성위안부 여성이 과연 몇 명의 자녀를 낳아 길렀을까요? 당시 여성 평균 5명의 자녀이면 41만이 200여 만명에 이르는 자녀이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딸들을 낳고 기르는 입장의 여성-부모에겐 말로 할 수 없으나 성노예 여성들은 새끼줄로 청결을 유지했다는 소식은 차마 글로 옯기기가 어렵습니다.>
731부대나 무슨 대학살도 이런 종류의 인류멸망 기획은 결단코 아닙니다. 이는 그냥 지나친 만행이며 피해가 크다! 이나 성위안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당시의 여성사회는 지금과는 정말로 다릅니다. 심지어 수원종로교회 19세의 이선경 열사는 징역에서 지독한 고문으로 순국-소천 일보직전 출옥되었으나 여자가 밖에서 죽은 걸 어쩌냐?는 미명하에 매우 오랜 세월 죽음 자체가 묻혀왔다. 라는 것이 무얼 말할까요? 안타깝지만 장례조차도 제대로 치루지 않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추모의 마음을 모읍니다.
1945. 8. 15후 민족과 인류는 잠잠했습니다.
우리와 인류는 이 사실을 오랫동안 알고는 있었지만 그 누구도 실체로 증언이나 증거가 없다. 며 부인당하면 그런가? 그럴 수도? 하며 넘어왔던 광복/승전후 남이나 북이나 세계나 다 그러했습니다. 아직도 일본 당국과 극우나 대한민국의 일부 친일 매국 그룹은 자발적이었다. 매춘부였다. 하는 만행이 지속됩니다.
그러나, 1991. 8. 14에 인류는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그 위안부 출신이오” 이 목소리는 지금 흥인문언덕 위에 있던 140여 년의 동대문감리교회에서 였습니다. 그 곳은 스크랜턴과 그의 어머니 대부인이 교회와 학교를 세웠고, 로제타 홀이 의료 봉사를 하던 곳으로 녹두 전봉준 장군도 서양인들이 우리 민족의 민중중의 민중인 여성과 어린아이들의 질병을 무료로 돌보고 있다는 정보에 척양척왜의 기치를 들었다가 척양은 빼고 척왜의 기치만을 들고 왜적들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수 만의 우리 민족의 빛아비들을 잃게하는 원인을 제공한 그 곳 아니었습니까?
또한, 거기엔 미국인의 한국 사랑의 총아 헐버트와 크리스마스 씰을 만든 셔우드 홀과 그 그림을 준 영국인 판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유훈이 깃든 곳이며, 우리 민족의 자주 염원을 인류에 선언한 3.1 독립선언의 경축식을 알리는 벙커 종의 타종이 있었던 곳이며, 상하이 대한민국 임정의 의정원 의장 해석 손정도 목사의 담임지이고, 이들을 통해 양성된 민족지사가 수 천에 달하는 곳입니다. 한지 김상옥 의사는 종로서에 투탄후 1;1,000으로 적지인 서울 한 복판에서 혁명전쟁을 벌이다가 마지막 한 발로 자결하신 민족의 영웅 신앙지입니다. 그는 대한민국 임정의 지도자들인 김구, 이시영, 조소앙 등에게 “나는 적의 포로가 되지 않겠습니다!”를 실천한 사나이로 가족 독립유공자 가문이며, 그이 의형제 나석주 의사는 총각임에도 “나도 형님을 따라가리라!” 동양척식에 투탄하고 시가전을 벌이다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남은 한 발로 자결을 선택한 성지에서 말입니다.
김학순 집사는 담담히 자신의 삶의 여정을 고백했습니다. 그 옆에는 원폭 피해 할머니 이맹희 성도가 있었고, 위안부 사실을 알고 고백을 권면한 장기천 목사가 있었지요. 이 고백은 세상을 완전히 뒤짚어 놓아 여성계는 이를 계기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숨김없이 내더니 급기야는 가정의 일반주부들도 그러하게 되었고, 인류는 리더쉽이 여성으로의 전면적 교체의 시작이라는 서막을 올려 지금에 이르니 1991년으로 부터는 33년입니다. 일제 36년의 숨막히는 거의 그 세월만에 인류는 유사이래 없었던 세기를 맞이하니 이는 여성의 본디 성정 잃고 남존여비와 남아선호, 여성비하 등을 격어온지 수 천 수 만년 래인가? 인류는 이제서야 여성과 남성의 평등시대를 열어 조금 더 세월이 흐른후엔 어찌 또 세상이 변할지 하나님만 아시겠지요?
우리 감리교회는 일찍이 여성의 지도자 시대를 열었습니다.
미국 유학 최초의 문학사이자 유관순 열사의 스승인 김(하)란사와 여의사 세례명 박에스더(본명 김점동)를 배출했고, 콜롬비아대 교육학 석사인 황애덕(황에스더)을 배출하므로서 감리회 협성여자신학교에서 원산출신 최용신이라는 안산샘골교회 국제 반제 애국계몽운동가 민족의 스승을 낳게하여 민족과 인류는 봉사의 정신이 넘쳐나고 있는 줄 압니다. 거기다 우리 감리교회는 미국에선 북/남간 전쟁으로 북/남 감리교회로 분리되었고, 이에 대한에 전래는 그 시원이 가우처와 맥클레이에 의한 1884년 선교윤허, 1885년 합법 선교사가 북감리회의 선교사인 스트랜턴과 대부인, 아펜젤러, 북 장로회의 언더우드의 최초 입국과 남감리회가 1895년 입국 선교 시작하여, 그 동안엔 북/남 협성시대를 이루다가 35년만에 1930년 조직자체를 기독교조선감리회로 합동하고, 대한인 양주삼을 최고 지도자인 총리사로 세우니 이는 독립운동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다음 해엔 여성들에게 인류사 최초로 식민지 성직자가 선교사 파송국 선교사에게 목사 안수를 주어 공식 성직자로 세우니 민족은 더구나 강대국 미국으로부터의 독립교회가 되어 인사권을 가진 것이며, 미국 여선교사-목사를 파송할 권리를 가지게 되었고, 미국인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소속 교회가 미 북/남감리회 소속이 아닌 조선감리회 소속으로 우리의 지도를 받게 되었던 것이었으나, 이 문제에 미국 감리교회 남성 지도자들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적극 찬성하였습니다.
지금의 여성운동이 여성을 위한 운동이었다면 당시의 여성운동은 언제나 항상 민족과 인류의 대의가 우선이었으며, 그 속에서 여성들의 민족과 인류의 한 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를 우리는 언제나 상고하며, 여성계의 나아갈 길을 도모하여야 하리라 봅니다.
이러한 여성 성직자 출현의 예는 그때나 지금이나 전무하였고 앞으로도 없을 대사건 일 것입니다. 미국 북/남 감리교회 남/녀 지도자들의 선비적 품성을 이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며, 빛인 예수님 뜻에 맞다면 우리도 따른다! 이는 우리 민족의 빛성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그들의 겸양과 우리의 정신적 문화적 우수성이 만난 결과였다. 라고 봅니다.
하여, 우리 독립운동계는 격변을 격습니다. 한국내, 만주내, 상하이내, 미주내에는 이 합동과 우리 지도자 선출 소식과 강대국이자 선교국인 미국 여성 성직자 목사가 조선교회 소속이라는 어마어마한 소식에 분열 속의 독립운동계는 통합의 기운을 석오 이동녕과 남자현 지사의 영향도 받으며, 급속도로 사실적인 통합의 길로 분열의 세월을 딛고 나아갑니다.
그 마음이 미국 여성 선교사들이 우리 지도자로 부텨 목사 안수를 받고 파송-지도를 받으며 조선감리회로 교적을 바꾸었다? 는 것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었던 것입니다.
매국노나 밀정이 득세하거나 말거나 또는 다른 종교나 교파의 분열은 일제의 민족운동 파괴 공작에 민족의 정통 주류들은 속지도 굴복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굳건히 뭉쳐 특히, 미주 동포들은 노동 임금수익을 안익태 선생의 애국가부르며, 함양된 애국정신과 애국목사 안창호 등의 기도에 힘입어 미화 2,000불을 김구-이봉창-윤봉길의 한인애국단에 송금하니 인류사에 이 만큼 더 귀하게 쓰여진 헌금이 있을까요?
만주의 독립군들은 우리만의 통합이 아니라 중국측의 독립군사들과도 통합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그의 계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지금 몽골인들은 우리 민족지사인 이태준을 자신들의 국립묘지 전면에 부각시켜 국부처럼 추앙하는 것은 어디로부터 왔을까요?
독립운동계의 통합은 그 동안의 분열을 털어내고 국내, 미주, 상하이, 만주 등 전역에 걸쳐 일어난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주인공 목사들이 해외 기준 상하이의 이상만, 만주의 손정도, 미주의 현순 등이 대표적입니다. 현재 분단의 우리 민족도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됨을 길로 가야 합니다. 이것은 부인되거나 미뤄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됩니다.
마지막으로 1919. 3. 1 독립선언으로 우리 민족은 자주함의 빛을 선언한 것이며, 이로써 빛으로 살지 못하던 현 인류 기준 식민지 백성 60여 억은 빛을 깨닫고 알아 반제 반식민지 민족해방투쟁에 나서게 되었고, 스스로 사탄과 어둠의 삶을 즐기던 제국주의 나라 20여 억의 인류에게는 경종을 준 맨 몸으로 하는 인류 최초의 인권과 평화의 셰계선언이었음은 [세계평화와 인류복지]를 위한 선언이라는 3.1 독립선언서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로서 우리 민족도 본디 빛성을 하디의 회개로 부터 시작해 회복하여 나가기 시작했고, 전 인류 또한 각처에서 그 빛의 길 완수를 위해 지금도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편, 노블 감리사는 1919년 상하이로 자신이 파견한 이상만(면천감리교회 담임목사), 손정도(정동제일교회 담임목사), 현순(정동제일교회 부담임목사) 등에게 미화 1만불 송금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직토록 지원했습니다. 본국엔 물론 선교자금으로 썻다고 보고했고, 실제로도 선교자금으로 쓴 것입니다.
여기는 우리에게 만이 아닌 인류에게 드리는 글입니다.
하나, 어쩌겠습니까? 이 빛민족이 둘로 나뉘어 있으니 말입니다. 인류는 반성해야 합니다.
1919년, 인류 빛화의 정신적 문화적 원료를 우리 빛민족에게서 전수받아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과 반파쇼전쟁에서 승전을 일구고 나서도 그 공은 잊은채 마치 자신들만의 빛의 승리인양 이데올로기를 잣대로 민족을 나누어 전쟁의 참화를 겪게 하였으며, 이 전쟁에 UN 이름으로 참전하여 패전을 막아준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사하나 그 또한 당신들의 의무였음도 우리는 이미 압니다.
이는 우리가 1905년 세계인들로부터 완전히 고립될 때 당신들은 대한제국에 있는 미국 공사관을 필두로 모든 공사관이 100% 모조리 한 순간에 철수시켰고, 우리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워싱턴 특사, 헤이그 특사 등으로 민족문제를 돌파하려 했으나, 그 결과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요. 그로부터 우리는 각 본국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와 단체 등의 지원을 받는 외국인 선교사, 의사, 교사, 언론인, 문화인 등 약 6,000여 명의 지원만으로 강제 침략-점령 상태를 버티다가 그나마 1940년엔 그들마저 일제가 모조리 강제추방하므로 완벽한 고립상태의 우리가 셰계평화와 인류복지를 위해 1919. 3.1 7~8,000여명의 순국을 수반한 선언만으로도 덕을 입은 그대들의 국제정세에 따른 6.25의 참전과 수고는 당연한 것이었고, 우리는 고마운 것이었음을 밝힌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당한 강제침략과 점령 그리고 분단과 전쟁 그리고 지금의 이 상태에 그대들의 책임도 상당하다, 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그 1905년의 외면과 1945년의 무책임 곧, 침략국인 일본의 분단이 아니라 피해국인 우리의 분단을 결정하다니 이런 결정은 수긍이 잘 안간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침략을 받은 대동아공영권(중국, 동남아, 태평양 군도 등) 어느 나라도 우리와 같은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제 정리합니다.
김학순 우리 동대문교회 집사님의 고백을 깃점으로 탄생한 이 소중한 기념일인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에 여기에 함께 한 이들이나 모두에게 성 삼위 일체의 축복을 기도하며, 척왜의 동학농민군 전쟁이래 희생되신 민족의 영령들이신 명성황후와 광무황제 그리고 자진 순절하신 민영환, 황현 등의 20여 선열과 3.1 독립선언 때 순국하신 7~8,000여 영령, 제암리교회에서 방화 학살당한 선열들, 의병과 독립군과 광복군들, 관동대지진의 학살, 하와이, 미주, 멕시코, 쿠바에서 노동하여 민족을 도운 지사들 그리고 태평양전쟁에 강제 징집, 위안부, 학도병 등의 말로 다 못할 고생과 수모를 겪으시고 희생되어 하늘의 본향으로 돌아가신 모든 영령들이나, 특별히 사람이 하늘의 황제-천황이라는 신사에 참배하라 총칼로 강요하자! 그도 사람이라며, 절대 거부하시다. 가 인류사에 몇 명 안되는 인사중, 모든 일제의 강압을 단 하나도 응하지 않다가 옥중에서 직접 순교-순국하신 인류사의 유일한 인사 최인규 권사와 지독한 고문으로 출옥후 순교하신 강종근, 권원호, 양국주, 이영한, 전치규, 주기철 등의 목회자 그리고 이 나라와 백성의 생명의 맥을 이어온 모든 선진들과 후손들 앞으로의 후손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한량없는 축복이 임하시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참고사항)
1. 위 글은 총회 역사보존위원회(위원장 김영민 감독)와 감리회 역사전략재단 추진위(대표 안정균 목사) 그리고 위안부소녀기림회의 서철, 박영규 목사와 당당뉴스 심자득 목사와 공동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스웨덴 예테보리에 청년 대표 지명 파견했고, 그 전과 후에 감리회 게시판과 당당뉴스에 일부 게재-보고되었고, 예테보리엔 감독회장을 비롯 본부 임직원, 여선교회, 청년 대표단 등과 광림교회 예술단 등 50여 명이 참여했음을 간략히 보고드립니다.
2. 위안부소녀 기림예배와 추도식은 정부와 여당에도 참여를 권하였으나 이유 불명으로 미참했음도 알립니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국회의원(안양시 동안갑) 경기도 대일굴욕외교대책위원장만 권유에 적극 임하여 자당의 국회의원들을 참여케 했으며, 공동추도위원회를 조직하고 진행하였습니다. 민 의원은 기림예배 전 감독회장을 예방하였고 내용의 일부는 당당뉴스 게재됨.
3. 김정석 목사는 감독회장 후보이므로 위의 공동 역사지도부 공동추도사에서 제외됐으나, 전 선교국위원장으로서 일정 책임을 진 분이고, 윤보환 목사 감독회장 후보는 입법의회원 자격으로, 이광호 목사 감독회장 후보도 서울연회 감독 재임 시절 역사 서명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영역에서 책임을 다 했음을 알립니다. 또한, 이는 선거운동과는 무관함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하여. 이름의 기재는 항상 가나다순이나 각 연회 감독 후보는 연회록의 연회별 기재순을 따랐습니다.
4. 위 보고는 간략한 근자의 위안부소녀 기림과 스웨덴 예테보리중 일부이며, 감독회장 및 감독 선거후 새로운 지도부와 감리회에 지난 제34회, 35회 총회 역사보존위원회와 감리회 역사전략재단추진위(이 전 한국기독교 독립운동가 연구선양회)의 활동 보고서(총 약 600여 페이지)가 제출됩니다. 그 동안 모든 감리회인(약 2,000여 목회자 3회 발송)에게 자료들이 보급되었으면 좋았겠으나, 그 동안엔 비용, 시간상의 이유로 전체 보급은 어려웠다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감게나 당당뉴스에 일부 게재되었음도 참고하세요.
5. 위 내용은 감게나 당당뉴스 등에 게재되며, 일부의 감리회 목회자 및 평신도 제위들께 카톡, 문자, 메일로도 전송됩니다.
2024. 9월
경기연회 안산서지방 민관기 목사 작성 및 발송
문의 : 010 3082 7004
2024.8.14 오전 11:00 ~11:50
<사회 : 박영규 목사 공동추도위원장>
여는말씀 박영규 목사(위안부 기림교회)
묵상기도
찬송 620장/여기에 모인 우리 (1절)
기도 민바디 청년학생(위안부 기림회 청년대사)
말씀 서철 동대문교회 담임목사
추도식
<사회 : 민병덕 국회의원 공동추도위원장>
1. 공동 추도사1 감리회 역사지도부 : <이철>, <안정균>, <김영민>, <이용원>(감독회장, 전·현 역사보존위, 현 선교국위)
2. 공동 추도사2 : <김민석>, <남영희>, <이언주>, <김용만>, <이수진> 특별 추도위원 = 위는 직접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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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동 추도사3 : 장로교-성결교-침례교 : 곽부현, 김응기, 남윤국, 라용주 등
4. 공동 추도사4 : 감리회 목회자 = 감독회장 후보 김정석, 윤보환, 이광호 등이며, 각 연회 감독 후보 김성복, 서길원, 유병용, 조장철, 정복성, 황규진, 서인석, 김종필, 이영훈, 정인수, 공기현, 우광성, 백종준, 오금표, 이웅천, 이성수, 박인호, 박준선, 김영윤, 안효근 등입니다. [가나다순이며 연회는 연회록기록순]
*감리회 목회자와 평신도 : 곽일석, 김미숙, 김정수, 김필수, 김학중, 리은주, 문영배(사회평신도국 총무), 박동찬, 박명석, 박민용(전 협성대 총장, 상동교회 장로) 신현승, 신현주, 원성웅, 이명환, 이용윤, 임일우, 태동화, 한종우 등 [존칭 생략, 가나다순]
*광복회 이종찬 회장, 헌정회 정대철 회장, 곽상언-김동아-양문석 국회의원, 탁사최병헌사업회 송광호 상임고문 등도 추도의 뜻을 밝히셨습니다. 이 외에도 일반인들의 동참이 다수 있습니다.
*총회 역사보존위원회 위원은 이광섭, 최태수, 부경환, 황규진(서기), 최양섭. 이기록, 정무동, 백두진, 임춘희, 김현, 소요한, 홍민기, 민관기(부위원장)와 김영민(위원장) 등 14인 등 3과 4 이하는 간접 추도사입니다.
5. 역사선언서는 감리회 역사전략재단 추진위 산물임과 유네스코 인물과 기록물 추진 사항 등 간략한 보고를 민관기 목사가 합니다.
78명 명단 : 스웨덴 예테보리의 세계감리교대회에서 청년대표단의 일원 민오디 양<당당뉴스 특파원, 위안부소녀기림교회 청년대사, 중부연회 부평동지방 이웃사랑교회 파견> 발표
명단의 유족 등과는 협의를 한 바가 없으며, 감리교회의 역사보존위원회와 탁사최병헌사업회, 황기환사업회 등이 감리회 역사전략재단 추진위의 이름으로 결정한 미완의 명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국민과 그리고 세계인류의 뜻에 따라 추진함을 알려드립니다.
헌금 격려사 및 헌금기도 김성기 목사(예수제자교회)
축도 정혁 목사(동대문교회 원로)
기념촬영과 식사
장소 : 일본 대사관 소녀상 앞(안국역~경복궁역 사이)
일시 : 2024.8.14 오전 11:00 ~11:50
주최 : 위안부소녀기념교회
주관 : 감리회역사전략재단추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경기도 대일굴욕외교대책위원회 등의 공동추도위원회
후원 : 기독교대한감리회, 역사보존위원회, 감리회 역사전략재단 추진위, 동대문교회 스크랜턴역사문화원, 애국지사최용신기념사업회, (미스터션샤인)황기환지사기념사업회 한국측 위원회, 탁사최병헌목사기념사업회, 한-미주 기념사업회중 스크랜턴가 아펜젤러가 노블가, 존스가 하디, 홀가, 헐버트목사 기념사업이 중점, 여성지사총기념사업회, ㈜예술기획 파홀로 등
● 역사선언서는 감리회 역사전략재단 추진위 산물임과 유네스코 인물과 기록물 추진 사항 등 내용 생략
78명 명단 : 서울과 함께 스웨덴 예테보리의 세계감리교대회에서 청년대표 발표
아래 명단은 유족 등과 일체의 연락을 한 바가 없으며 감리교회의 역사보존위원회와 탁사최병헌사업회, 황기환사업회 등이 감리회 역사전략재단 추진위의 이름으로 결정한 미완의 명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국민과 그리고 세계인류의 뜻을 물어 일을 추진함을 알려드립니다.
[고종황제, 명성황후는 쇄국에서 개화로의 국가발전전략을 단행하다가 한 분은 시해을 당하셨고, 한 분은 광무개혁을 추진하다 국권을 피탈당하고 독살 순국의심을 받는 분이라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기존 건국훈장 추서자 또는 미추서자로서 감리교인만이 아닌 민족과 세계 속의 인물들로 감리교회가 정하고 유네스코 인물등재를 추진하며, 의사를 묻는 78명만 대표적으로 발표하며, 기록유산 등재는 약 11건입니다.
** 특별히 김학순 집사, 전태일 열사
*. 남성지사는 백범 김구, 일성 이준, 도마 안중근, 매헌 윤봉길, 백야 김좌진, 몽양 여운형, 남강 이승훈, 의암 손병희, 만해 한용운, 계정 민영환, 면암 최익현, 도산 안창호, 송재 서재필, 여천 홍범도, 한지 김상옥, 이재명, 은재 신석구, 전덕기, 해석 손정도, 한서 남궁억, 우당 이회영, 성재 이시영, 일송 김동삼, 석주 이상룡, 부재 이상설, 한흰생 주시경, 석오 이동녕, 이규갑, 나석주, 김익상, 금연 정일형, 김영학, 최인규(2023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등 [목회자와 평신도]
*. 여성지사는 유관순, 남자현, 안경신, 최용신, 리효덕, 하란사 등 [목회자와 평신도]
*. 초대 목사, 신학자이자 민족의 정신적 스승 탁사 최병헌이 있으며, 비슷한 반열의 다석 유영모
*. 타종교의 건국훈장 미추서자들인 녹두장군 전봉준과 김개남, 손화중 그리고 수운 최제우와 해월 최시형 그리고 건국훈장 추서자인 대종교의 나철 등
*. 국민들의 의견을 반드시 들어야 할 나라를 지킨 우남 이승만, 농지개혁을 성공시키고 조국도 수호했으나. 평화통일 주장하다가 우남에 의해 사법살인 당하고 대법원 무죄평결 받은 죽산 조봉암 또한, 애국가의 안익태, 3.1 독립선언서의 육당 최남선, 한국의 슈벨트이자 포스터인 난파 홍영후 등
이 분들의 공적을 없는 것으로 취급할 것이냐? 있다면 어떻게 예우할 것이냐?를 묻는 것이며 건국에 대한 공로만이 아니라 인류의 공영사적 관점에서 해석할 분들이다. 라고 우리는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 이어령 선생, 생존하는 분으론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와 빛민족문화연구원 박해조 선생이 있어 한국인은 55명이고
*. 스크랜턴가(2인), 아펜젤러가(3인), 홀가(3인), 노블, 무스, 무어, 벙커, 존스, 하디, 헐버트, 언더우드가(3인), 세브란스, 미드, 볼드윈, 파이퍼 등의 개인과 미국 북/남 감리회, 캐롤라이나 미국연회, 세계 YMCA, 세계 YWCA, 세계 절제회 등으로 23명(단체는 인물 미기명)으로 총 78명. 이중 외국인중에선 헐버트만 건국훈장과 문화훈장 동시 추서자임을 밝힙니다. 외국인이나 민족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에 대한 예우가 아직 없는 것을 어찌해야 할까요?
<위는 인명은 종교 구분없이 민족과 인류공영의 관점>
*. [11개 기록물 명부] :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는 1. 동학혁명 자료 2. 독립유공자 공훈록(18,000여 명) 3. 독립운동사 자료집 4. 일제측의 재판기록물과 총독부의 요시찰 보고서 5. 태평양전쟁의 희생자들인 위안부, 징용, 학도병과 야스쿠니 합사된 대한인들 6. 관동대지진 7. 우카시마호 피해자 8. 사할린동포 9. 만주, 연해주, 몽골, 중앙아시아 10, 미주, 하와이, 멕시코, 쿠바, 유럽과 서러시아 11. 원폭피해자 등의 총 자료를 엄선하여 제출할 것입니다. 중국측의 피해 자료들인 731부대, 난징대학살 등의 중일전쟁 자료와 태평양전쟁 자료는 당사국과 협의 필요
*, 부기 :
1. 강제신사참배 거부 투옥(약 200~2,000여명?)과 순교-순국자(6~50여명?)에 대한 건국훈장*포장*표창 예우 청원
2. 외국인 선교사, 의사, 교사, 문화인, 언론인 약 6,000여 명에 대한 수교-건국-국민-문화훈장*포장*표창 예우 청원
<종교 구분 없음>
3. 감리교회 내부 인사 건국/국민/문화/무공훈장*포장*표창 예우를 구분하여 공적에 맞는 청원
대표인사로는 홍현설, 이호운, 박설봉 목사/ 양주삼, 김유순, 류형기, 송정률, 김선도, 이호문, 변선환 목사/ 근자 소천하신 정판수 목사 등이고, 이 외에도 장로회, 남선교회, 여선교회, 청년회 등에서 활약하여 사회에 큰 공헌을 남긴 이들이 수다하여, 이 분들에 대한 전면 조사를 실시하여 정부에 청원 예정입니다.
<교우들의 자료 제공이 매우 중요합니다> <존칭 감독도 목사로 통일>
소천하신 초대 신앙인, 광복후 신앙인 그리고 현재 임직을 마친 분이나 앞으로 임직을 마칠 분이나 임직을 맡아 공적을 세울 모든 분들이 대상일 수 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과 성도들의 뜻만으로 이루어집니다.
4. 특별히, 나라의 독립과 인류공영에 이바지한 단체와 사적지에 대한 집중연구를 진행하여
1) 독립유공단체 및 사적지 지정에 대한 법률의 제정
(예, 감신대, 장신대, 총신대, 한신대 등의 독립유공자 배출 신학대학과 배재, 이화, 배화, 연세, 경성의전, 숭실, 동국, YMCA, YWCA, 절제회, 감리회 청년회-여선교회-남선교회 등과 삼일학원, 매향학원, 영화학원, 의숭학원, 초당의숙, 공주영명학교 등의 학교와 단체)
(사적지는 어느 한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서울을 예로 동으로부터는 꽃재교회, 화양교회, 김상옥의사 생가 및 전투지, 동대문교회-탑골공원-중앙교회-대동서시,<통감부, 총독부, 종로서, 동양척식, 서울역 등의 왜의 통치기관 및 공기관>, 상동교회, 정동제일교회, 덕수궁, 감신대, 독립문, 서대문형무소, 공덕교회, 서강교회, 창천교회, 양화진 선교사 묘원이 이르는 곳을 광범위하게 사적지로 지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상 이 안에 수 백 곳 사적지 존재 하여, 전체를 포괄하여 지정 추진)
2) 독립유공자 예우에 대한 법률중 배우자와 외국인 조항에 대한 예우 부분의 개정입니다.
이에 간략히 내용을 보고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지면-시간관계상 생락하고 자료집을 통하여 발표될 것입니다. 모쪼록 교우 여러분들과 국민들의 관심과 선열들을 마음에 품고 대체 어떻게 하는 길이 과거 일본의 문제를 현재의 일본과 더불어 미래 일본과의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가 되어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것인가?를 교우-국민과 인류가 중지와 지혜를 모으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내용들은 의견수렴되어져 향후 일정 속에서 관철되어 갈 것입니다.
<위안부소녀 추도의 뜻과 선언서와의 공감과는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위의 내용은 학문적 소명을 요합니다.>
이상 끝-
위안부소녀기림 추도예식 공동추도사<대독-민관기목사, 역사보존위원회 부위원장>
<감독회장 이철, 전=현직 역사보존위원장 안정균-김영민, 현직 선교국위원징 이용원>
<전 선교국위원장 김정석 목사는 감독회장 선거 출마후보이므로 미포함>
*. 위의 분들이 대표자이시지만 모두의 추도사이기를 바랍니다.
<대정부 훈장 추서 청원에 동참하신 1,000여 명의 입법의원, 총회대표, 본부 임직원, 역사보존위 전현직 위원 명단 등은 지면관계상 따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무더위를 하나님의 은혜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날 그 시대 야만과 만행이 밤낮으로 있었던 때를 우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곳은 지금 여기의 우리보다 자연상태가 더 뜨거운 곳이겟죠! 우리 대한의 빛여성 소녀들 41만명이 정신대로 징발되었으며, 이중 145,000여 명의 빛소녀들 11~20여 세의 그들은 성폭행과 학대와 전쟁에 동원되어 결국 사망(일본 자민당 국회의원 아라후네 세이주로 발표)에 이르게 한 인류사에 없었던 비극으로 인류 멸망을 위해 기획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대 역사속 전쟁에서는 남자 군인들에 의해 침략-점령지의 여성들이 미처 피난을 못하여 아이들과 노인과 함께 학살과 약탈에 성폭행을 했다는 기록들은 다 알고 있는 바입니다.
또, 일부는 군인들 노리고 돈을 위해 성집합소를 만들기도 한 것도 다 압니다.
그러나, 일본 군국주의가 기획한 것은 이 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전쟁중의 군인만 위한 성위안부 즉 미국의 전 국무장관도 표현한 성노예제였던 것입니다. 인류 멸망의 기초를 놓았다. 라 그는 평가한 것이며, 실제로 남녀간의 수 많은 행위에도 정상적으로 낳아 길러진 생명은 전무하여, 그 여성들은 사망하거나 스스로 거의 독신의 삶을 살았고 극히, 일부가 그러했던 사실을 숨기고 혼인 생활을 하던 몇 인들은 사람의 양심으로 가족에게 고백하여 봤자. 더러운 사람 취급받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니, 성노예제는 인류 멸망 기획이 확실하다!!!입니다. 민망하지만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종-노예들도 가정은 꾸리고 살았습니다. 41만의 성위안부 여성이 과연 몇 명의 자녀를 낳아 길렀을까요? 당시 여성 평균 5명의 자녀이면 41만이 200여 만명에 이르는 자녀이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딸들을 낳고 기르는 입장의 여성-부모에겐 말로 할 수 없으나 성노예 여성들은 새끼줄로 청결을 유지했다는 소식은 차마 글로 옯기기가 어렵습니다.>
731부대나 무슨 대학살도 이런 종류의 인류멸망 기획은 결단코 아닙니다. 이는 그냥 지나친 만행이며 피해가 크다! 이나 성위안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당시의 여성사회는 지금과는 정말로 다릅니다. 심지어 수원종로교회 19세의 이선경 열사는 징역에서 지독한 고문으로 순국-소천 일보직전 출옥되었으나 여자가 밖에서 죽은 걸 어쩌냐?는 미명하에 매우 오랜 세월 죽음 자체가 묻혀왔다. 라는 것이 무얼 말할까요? 안타깝지만 장례조차도 제대로 치루지 않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추모의 마음을 모읍니다.
1945. 8. 15후 민족과 인류는 잠잠했습니다.
우리와 인류는 이 사실을 오랫동안 알고는 있었지만 그 누구도 실체로 증언이나 증거가 없다. 며 부인당하면 그런가? 그럴 수도? 하며 넘어왔던 광복/승전후 남이나 북이나 세계나 다 그러했습니다. 아직도 일본 당국과 극우나 대한민국의 일부 친일 매국 그룹은 자발적이었다. 매춘부였다. 하는 만행이 지속됩니다.
그러나, 1991. 8. 14에 인류는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그 위안부 출신이오” 이 목소리는 지금 흥인문언덕 위에 있던 140여 년의 동대문감리교회에서 였습니다. 그 곳은 스크랜턴과 그의 어머니 대부인이 교회와 학교를 세웠고, 로제타 홀이 의료 봉사를 하던 곳으로 녹두 전봉준 장군도 서양인들이 우리 민족의 민중중의 민중인 여성과 어린아이들의 질병을 무료로 돌보고 있다는 정보에 척양척왜의 기치를 들었다가 척양은 빼고 척왜의 기치만을 들고 왜적들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수 만의 우리 민족의 빛아비들을 잃게하는 원인을 제공한 그 곳 아니었습니까?
또한, 거기엔 미국인의 한국 사랑의 총아 헐버트와 크리스마스 씰을 만든 셔우드 홀과 그 그림을 준 영국인 판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유훈이 깃든 곳이며, 우리 민족의 자주 염원을 인류에 선언한 3.1 독립선언의 경축식을 알리는 벙커 종의 타종이 있었던 곳이며, 상하이 대한민국 임정의 의정원 의장 해석 손정도 목사의 담임지이고, 이들을 통해 양성된 민족지사가 수 천에 달하는 곳입니다. 한지 김상옥 의사는 종로서에 투탄후 1;1,000으로 적지인 서울 한 복판에서 혁명전쟁을 벌이다가 마지막 한 발로 자결하신 민족의 영웅 신앙지입니다. 그는 대한민국 임정의 지도자들인 김구, 이시영, 조소앙 등에게 “나는 적의 포로가 되지 않겠습니다!”를 실천한 사나이로 가족 독립유공자 가문이며, 그이 의형제 나석주 의사는 총각임에도 “나도 형님을 따라가리라!” 동양척식에 투탄하고 시가전을 벌이다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남은 한 발로 자결을 선택한 성지에서 말입니다.
김학순 집사는 담담히 자신의 삶의 여정을 고백했습니다. 그 옆에는 원폭 피해 할머니 이맹희 성도가 있었고, 위안부 사실을 알고 고백을 권면한 장기천 목사가 있었지요. 이 고백은 세상을 완전히 뒤짚어 놓아 여성계는 이를 계기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숨김없이 내더니 급기야는 가정의 일반주부들도 그러하게 되었고, 인류는 리더쉽이 여성으로의 전면적 교체의 시작이라는 서막을 올려 지금에 이르니 1991년으로 부터는 33년입니다. 일제 36년의 숨막히는 거의 그 세월만에 인류는 유사이래 없었던 세기를 맞이하니 이는 여성의 본디 성정 잃고 남존여비와 남아선호, 여성비하 등을 격어온지 수 천 수 만년 래인가? 인류는 이제서야 여성과 남성의 평등시대를 열어 조금 더 세월이 흐른후엔 어찌 또 세상이 변할지 하나님만 아시겠지요?
우리 감리교회는 일찍이 여성의 지도자 시대를 열었습니다.
미국 유학 최초의 문학사이자 유관순 열사의 스승인 김(하)란사와 여의사 세례명 박에스더(본명 김점동)를 배출했고, 콜롬비아대 교육학 석사인 황애덕(황에스더)을 배출하므로서 감리회 협성여자신학교에서 원산출신 최용신이라는 안산샘골교회 국제 반제 애국계몽운동가 민족의 스승을 낳게하여 민족과 인류는 봉사의 정신이 넘쳐나고 있는 줄 압니다. 거기다 우리 감리교회는 미국에선 북/남간 전쟁으로 북/남 감리교회로 분리되었고, 이에 대한에 전래는 그 시원이 가우처와 맥클레이에 의한 1884년 선교윤허, 1885년 합법 선교사가 북감리회의 선교사인 스트랜턴과 대부인, 아펜젤러, 북 장로회의 언더우드의 최초 입국과 남감리회가 1895년 입국 선교 시작하여, 그 동안엔 북/남 협성시대를 이루다가 35년만에 1930년 조직자체를 기독교조선감리회로 합동하고, 대한인 양주삼을 최고 지도자인 총리사로 세우니 이는 독립운동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다음 해엔 여성들에게 인류사 최초로 식민지 성직자가 선교사 파송국 선교사에게 목사 안수를 주어 공식 성직자로 세우니 민족은 더구나 강대국 미국으로부터의 독립교회가 되어 인사권을 가진 것이며, 미국 여선교사-목사를 파송할 권리를 가지게 되었고, 미국인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소속 교회가 미 북/남감리회 소속이 아닌 조선감리회 소속으로 우리의 지도를 받게 되었던 것이었으나, 이 문제에 미국 감리교회 남성 지도자들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적극 찬성하였습니다.
지금의 여성운동이 여성을 위한 운동이었다면 당시의 여성운동은 언제나 항상 민족과 인류의 대의가 우선이었으며, 그 속에서 여성들의 민족과 인류의 한 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를 우리는 언제나 상고하며, 여성계의 나아갈 길을 도모하여야 하리라 봅니다.
이러한 여성 성직자 출현의 예는 그때나 지금이나 전무하였고 앞으로도 없을 대사건 일 것입니다. 미국 북/남 감리교회 남/녀 지도자들의 선비적 품성을 이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며, 빛인 예수님 뜻에 맞다면 우리도 따른다! 이는 우리 민족의 빛성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그들의 겸양과 우리의 정신적 문화적 우수성이 만난 결과였다. 라고 봅니다.
하여, 우리 독립운동계는 격변을 격습니다. 한국내, 만주내, 상하이내, 미주내에는 이 합동과 우리 지도자 선출 소식과 강대국이자 선교국인 미국 여성 성직자 목사가 조선교회 소속이라는 어마어마한 소식에 분열 속의 독립운동계는 통합의 기운을 석오 이동녕과 남자현 지사의 영향도 받으며, 급속도로 사실적인 통합의 길로 분열의 세월을 딛고 나아갑니다.
그 마음이 미국 여성 선교사들이 우리 지도자로 부텨 목사 안수를 받고 파송-지도를 받으며 조선감리회로 교적을 바꾸었다? 는 것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었던 것입니다.
매국노나 밀정이 득세하거나 말거나 또는 다른 종교나 교파의 분열은 일제의 민족운동 파괴 공작에 민족의 정통 주류들은 속지도 굴복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굳건히 뭉쳐 특히, 미주 동포들은 노동 임금수익을 안익태 선생의 애국가부르며, 함양된 애국정신과 애국목사 안창호 등의 기도에 힘입어 미화 2,000불을 김구-이봉창-윤봉길의 한인애국단에 송금하니 인류사에 이 만큼 더 귀하게 쓰여진 헌금이 있을까요?
만주의 독립군들은 우리만의 통합이 아니라 중국측의 독립군사들과도 통합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그의 계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지금 몽골인들은 우리 민족지사인 이태준을 자신들의 국립묘지 전면에 부각시켜 국부처럼 추앙하는 것은 어디로부터 왔을까요?
독립운동계의 통합은 그 동안의 분열을 털어내고 국내, 미주, 상하이, 만주 등 전역에 걸쳐 일어난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주인공 목사들이 해외 기준 상하이의 이상만, 만주의 손정도, 미주의 현순 등이 대표적입니다. 현재 분단의 우리 민족도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됨을 길로 가야 합니다. 이것은 부인되거나 미뤄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됩니다.
마지막으로 1919. 3. 1 독립선언으로 우리 민족은 자주함의 빛을 선언한 것이며, 이로써 빛으로 살지 못하던 현 인류 기준 식민지 백성 60여 억은 빛을 깨닫고 알아 반제 반식민지 민족해방투쟁에 나서게 되었고, 스스로 사탄과 어둠의 삶을 즐기던 제국주의 나라 20여 억의 인류에게는 경종을 준 맨 몸으로 하는 인류 최초의 인권과 평화의 셰계선언이었음은 [세계평화와 인류복지]를 위한 선언이라는 3.1 독립선언서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로서 우리 민족도 본디 빛성을 하디의 회개로 부터 시작해 회복하여 나가기 시작했고, 전 인류 또한 각처에서 그 빛의 길 완수를 위해 지금도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편, 노블 감리사는 1919년 상하이로 자신이 파견한 이상만(면천감리교회 담임목사), 손정도(정동제일교회 담임목사), 현순(정동제일교회 부담임목사) 등에게 미화 1만불 송금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직토록 지원했습니다. 본국엔 물론 선교자금으로 썻다고 보고했고, 실제로도 선교자금으로 쓴 것입니다.
여기는 우리에게 만이 아닌 인류에게 드리는 글입니다.
하나, 어쩌겠습니까? 이 빛민족이 둘로 나뉘어 있으니 말입니다. 인류는 반성해야 합니다.
1919년, 인류 빛화의 정신적 문화적 원료를 우리 빛민족에게서 전수받아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과 반파쇼전쟁에서 승전을 일구고 나서도 그 공은 잊은채 마치 자신들만의 빛의 승리인양 이데올로기를 잣대로 민족을 나누어 전쟁의 참화를 겪게 하였으며, 이 전쟁에 UN 이름으로 참전하여 패전을 막아준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사하나 그 또한 당신들의 의무였음도 우리는 이미 압니다.
이는 우리가 1905년 세계인들로부터 완전히 고립될 때 당신들은 대한제국에 있는 미국 공사관을 필두로 모든 공사관이 100% 모조리 한 순간에 철수시켰고, 우리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워싱턴 특사, 헤이그 특사 등으로 민족문제를 돌파하려 했으나, 그 결과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요. 그로부터 우리는 각 본국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와 단체 등의 지원을 받는 외국인 선교사, 의사, 교사, 언론인, 문화인 등 약 6,000여 명의 지원만으로 강제 침략-점령 상태를 버티다가 그나마 1940년엔 그들마저 일제가 모조리 강제추방하므로 완벽한 고립상태의 우리가 셰계평화와 인류복지를 위해 1919. 3.1 7~8,000여명의 순국을 수반한 선언만으로도 덕을 입은 그대들의 국제정세에 따른 6.25의 참전과 수고는 당연한 것이었고, 우리는 고마운 것이었음을 밝힌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당한 강제침략과 점령 그리고 분단과 전쟁 그리고 지금의 이 상태에 그대들의 책임도 상당하다, 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그 1905년의 외면과 1945년의 무책임 곧, 침략국인 일본의 분단이 아니라 피해국인 우리의 분단을 결정하다니 이런 결정은 수긍이 잘 안간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침략을 받은 대동아공영권(중국, 동남아, 태평양 군도 등) 어느 나라도 우리와 같은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제 정리합니다.
김학순 우리 동대문교회 집사님의 고백을 깃점으로 탄생한 이 소중한 기념일인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에 여기에 함께 한 이들이나 모두에게 성 삼위 일체의 축복을 기도하며, 척왜의 동학농민군 전쟁이래 희생되신 민족의 영령들이신 명성황후와 광무황제 그리고 자진 순절하신 민영환, 황현 등의 20여 선열과 3.1 독립선언 때 순국하신 7~8,000여 영령, 제암리교회에서 방화 학살당한 선열들, 의병과 독립군과 광복군들, 관동대지진의 학살, 하와이, 미주, 멕시코, 쿠바에서 노동하여 민족을 도운 지사들 그리고 태평양전쟁에 강제 징집, 위안부, 학도병 등의 말로 다 못할 고생과 수모를 겪으시고 희생되어 하늘의 본향으로 돌아가신 모든 영령들이나, 특별히 사람이 하늘의 황제-천황이라는 신사에 참배하라 총칼로 강요하자! 그도 사람이라며, 절대 거부하시다. 가 인류사에 몇 명 안되는 인사중, 모든 일제의 강압을 단 하나도 응하지 않다가 옥중에서 직접 순교-순국하신 인류사의 유일한 인사 최인규 권사와 지독한 고문으로 출옥후 순교하신 강종근, 권원호, 양국주, 이영한, 전치규, 주기철 등의 목회자 그리고 이 나라와 백성의 생명의 맥을 이어온 모든 선진들과 후손들 앞으로의 후손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한량없는 축복이 임하시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참고사항)
1. 위 글은 총회 역사보존위원회(위원장 김영민 감독)와 감리회 역사전략재단 추진위(대표 안정균 목사) 그리고 위안부소녀기림회의 서철, 박영규 목사와 당당뉴스 심자득 목사와 공동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스웨덴 예테보리에 청년 대표 지명 파견했고, 그 전과 후에 감리회 게시판과 당당뉴스에 일부 게재-보고되었고, 예테보리엔 감독회장을 비롯 본부 임직원, 여선교회, 청년 대표단 등과 광림교회 예술단 등 50여 명이 참여했음을 간략히 보고드립니다.
2. 위안부소녀 기림예배와 추도식은 정부와 여당에도 참여를 권하였으나 이유 불명으로 미참했음도 알립니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국회의원(안양시 동안갑) 경기도 대일굴욕외교대책위원장만 권유에 적극 임하여 자당의 국회의원들을 참여케 했으며, 공동추도위원회를 조직하고 진행하였습니다. 민 의원은 기림예배 전 감독회장을 예방하였고 내용의 일부는 당당뉴스 게재됨.
3. 김정석 목사는 감독회장 후보이므로 위의 공동 역사지도부 공동추도사에서 제외됐으나, 전 선교국위원장으로서 일정 책임을 진 분이고, 윤보환 목사 감독회장 후보는 입법의회원 자격으로, 이광호 목사 감독회장 후보도 서울연회 감독 재임 시절 역사 서명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영역에서 책임을 다 했음을 알립니다. 또한, 이는 선거운동과는 무관함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하여. 이름의 기재는 항상 가나다순이나 각 연회 감독 후보는 연회록의 연회별 기재순을 따랐습니다.
4. 위 보고는 간략한 근자의 위안부소녀 기림과 스웨덴 예테보리중 일부이며, 감독회장 및 감독 선거후 새로운 지도부와 감리회에 지난 제34회, 35회 총회 역사보존위원회와 감리회 역사전략재단추진위(이 전 한국기독교 독립운동가 연구선양회)의 활동 보고서(총 약 600여 페이지)가 제출됩니다. 그 동안 모든 감리회인(약 2,000여 목회자 3회 발송)에게 자료들이 보급되었으면 좋았겠으나, 그 동안엔 비용, 시간상의 이유로 전체 보급은 어려웠다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감게나 당당뉴스에 일부 게재되었음도 참고하세요.
5. 위 내용은 감게나 당당뉴스 등에 게재되며, 일부의 감리회 목회자 및 평신도 제위들께 카톡, 문자, 메일로도 전송됩니다.
2024. 9월
경기연회 안산서지방 민관기 목사 작성 및 발송
문의 : 010 3082 7004
필독은 아니고 읽어두면 갠잔음!
한국 기독교와 기독교 대한감리회 역사학자 민관기 목사님 수고가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