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쟁변
Author
최세창
Date
2024-09-1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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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6:1-8>
1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일어나서 산 앞에서 쟁변하여 작은 산으로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 2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쟁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쟁변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 3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엇에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거하라 4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종노릇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어 네 앞에 행하게 하였었느니라 5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의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추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추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의 의롭게 행한 것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6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1. 시작하는 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요 자연 법칙인데, 콩을 심고 팥이 안 난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도 않고, 열매가 없다고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불행의 씨를 뿌리고, 행복의 열매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그렇게 해 주신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안 됐을 때,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원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미가 예언자가 활동하던 때,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이스라엘이 그러했습니다. 주전 701년에 아시리아가 침략했을 때, 예루살렘을 제외한 전국이 짓밟히자 하나님을 탓하는 원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쟁변하시고 구하시는 것
이스라엘은 망한 원인이 우상 숭배와 죄악 때문이라는 것이 충분히 입증됐는데도, 뻔뻔스럽게 하나님께 대항하는 고집을 부렸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훈계를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일어나서 판사에게 하는 것처럼, 산 앞에서 작은 산이 듣게끔 얼마나 잘났고 무얼 잘했는지 쟁변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원망하며 투덜거리는데 할 말이 무엇이 있느냐는 겁니다. 망하고도 깨닫지 못하고, 고집만 내세우는 선민 이스라엘보다 산과 작은 산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미가 예언자는 산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쟁변을 들으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대해 쟁변하시고 변론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엇에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거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영도자로 내세워 애굽의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을 속량하신 사건을 상기시키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어 지도하게 하신 것을 상기시키셨습니다.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상 하나님의 최고 최대의 사랑과 권능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 즉 갖가지 종교의 우상 신들과 바로까지 신으로 믿으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부국강병의 애굽에는 속수무책의 엄청난 재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종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모세를 통해 경고의 말씀을 주시곤 하셨는데, 그 때마다 바로 곧 왕이 거역했기 때문에 애굽은 각종 재앙을 당했습니다. 바로는 도중에 거짓말까지 하면서 거역하기도 했습니다. 도중에 부국강병인 애굽의 술객이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밝혀 주었고, 신하들이 애굽이 망한 줄 모르시냐고 진언도 했지만 바로는 번번이 거역했습니다.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어 구원받을 그 모든 기회를 날려버린 것입니다. 거국적인 재앙들을 면할 모든 기회도 날려 버렸습니다. 아홉 번에 걸친 다양한 하나님의 경고대로 그때그때 재앙을 겪었으면서도, 번번이 거역한 강퍅한 바로는 자신과 애굽에 전무후무한 대재앙을 내릴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습니다. 출애굽기 11:5 이하를 보면,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지라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바로는 이 엄청난 재앙까지 당한 다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내보냈습니다. 본래 강퍅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며 거역할 때마다 하나님에 의해 더 강퍅해지곤 하던 바로는,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막강한 전차병과 기마병과 보병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추격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길을 내어 이스라엘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겁낼 줄 모르고, 감히 홍해의 갈라진 길로 추격해 들어간, 애굽의 막강한 전차병들과 기마병들과 보병은 모조리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겁낼 것을 겁낼 줄 모르는 만용과 탐욕은, 반드시 재앙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는 신축 아파트가 무너지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중남미의 어느 나라에서는 국민들에게 돈을 마구 퍼 주면서 어마어마한 부정축재를 했다가 자신과 가족을 망치고, 나라도 망친 권력자들도 있지 않습니까?
미가 예언자뿐만 아니라, 많은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사건을 가리켜, 마귀의 덫인 죄의 종이 되어 죽음과 영원한 멸망의 길을 가는 인류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구원 사건의 모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광야를 여행할 때에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지켜 동행하셨고, 만나를 먹게 하셨으며,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시내는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람 예언자의 사건이 터졌습니다. 민수기 22장 이하를 보면, 모압 왕 발락이 발람 예언자에게 많은 뇌물을 주면서 심히 존귀케 해 줄 테니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청탁을 했습니다. 나귀를 타고 불의한 재물에 대한 탐욕의 길을 가던 발람은, 그 나귀를 통해 하나님의 질책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민수기 24:10입니다.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발람에게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 함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민수기 25장에는, 싯딤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인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하고, 게다가 모압의 신전에서 먹고 마시며 우상들에게 절한 죄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사건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잘못 인도한 책임이 발람에게 있다고 믿었고, 그들이 그 땅을 소유하려고 들어갔을 때에 발람을 칼로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싯딤에서부터 약속의 땅인 가나안의 첫 지역인 길갈에 이르기까지의 일을 추억하면, 하나님의 의롭게 행한 것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언자가 된 발람의 배은망덕과 하나님의 뜻이 아닌 물욕을 좇는 행위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 위주와 자기 본위와 자기중심의 지도의 비참한 결과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상기시킨 두 번째 사건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또 계속 알게 모르게 임하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면서 배은망덕하며 자기 위주와 자기 본위와 자기중심의 언행을 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유다서 1:4에는,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의의 진노를 상기시킨 미가 예언자는,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번제물인 일 년 된 송아지도 아니고, 엄청나게 많은 제물들도 아닙니다. 물론, 많은 헌물도 아니고, 많은 헌금도 아닙니다. 자기 허물을 위하여 이교도들처럼, 맏아들이나 자식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는 끔찍한 짓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선한 것입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선과 악이 다르기도 하고, 상반되기도 하는 인간의 도덕적 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에게 보이신 선한 것은 하나님의 심정과 뜻과 기쁨인 공의를 행하며, 인간을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의 공의와 사랑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다르거나 상반되는 인간의 공의와 사랑이 아니라, 선악의 제재를 공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품성인 공의이고,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거짓말과 음해와 가짜 뉴스와 남의 인생을 송두리째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동성 간이나 이성 간의 음란한 합성 사진과 음란한 합성 동영상으로 돈벌이를 하거나, 권력을 쥐는 죄악을 범하지 않습니까? 어린 학생들까지 별 죄의식 없이 그런 끔찍한 죄악을 범하면서 돌려보거나,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에 포스팅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앞장서서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고,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나눠 주는 사랑을 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행해야 합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지만, 심은 것과 다른 결실을 거두려는 이들이 있고, 심지도 않고 거두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불행에 대해 남 탓을 하거나, 환경 탓을 하거나, 하나님을 탓합니다. 물론, 남 탓일 수도 있고, 내 탓과 남 탓일 수도 있고, 환경 탓일 수도 있습니다. 설사 남 탓이나 환경 탓이 내 탓보다 클지라도, 내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서나 전화위복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내 탓을 더 문제 삼는 것입니다. 이유는, 불행의 주인공은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내 탓을 해결하지 않으면, 또 불행을 겪게 됩니다. 나 자신부터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구하시는바 공의를 행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함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아멘.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해지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공유합니다.
§미6:1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는 일어나서 산을 향하여 변론하여 작은 산들이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 [사44:23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 ☞ 자연…. [겔 36:1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 산들이 듣는다. [마태복음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 돌들이 아브라함 자손이 된다. [눅19: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 복음은 사람뿐만 아니라 생물인 동물들과 나무 같은 식물들과 심지어 무생물인 돌과 산과 작은 산(언덕)들도 듣게 된다.
<들일지어다…. 일어나서> [렘18:2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시기로] ☞일어나 들어라 [옵1:1 오바댜의 묵시라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었나니 곧 사자가 나라들 가운데에 보내심을 받고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날지어다 우리가 일어나서 그와 싸우자 하는 것이니라]
§2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 ☞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이 있는데 하나님과 변론(논쟁)한다. 현대에 한 인간이 자기가 주장하는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성경(하나님의 말씀들)과 공박하는 논쟁은 흔하다. [욥38:1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 욥기서의 본문 이하에서 욥이 친구들과 논쟁 중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신다. 이를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며 동시에 난해 구절로 본다.
<변론하시며> [신19:17 그 논쟁하는 쌍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당시의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 논쟁 ⇒ 변론 [삼하15:2] [사34:8] [겔44:24] [ 호4: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 현대인도 다르지 않다. [호12:2] [딤전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 변론하여 부정할 수 없는 일.
§3 <내 백성아> ☞ 이는 유대인, 이스라엘 후손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한국인을 포함하는 어떤 이방인도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다. 반면에 많은 이단은 이 위치를 차지하려고 하고, 12지파 혹은 특정한 에브라임 지파 등으로 호칭하고 자신과 집단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처하는데 이는 성경에 대한 몰이해에 기인하며 거짓 기만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어떤 집단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정벌하고 성물을 빼앗아 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데, 이는 성경에 대한 몰이해가 빚어낸 코미디 같은 웃기는 일이다. [출3: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 후손이고 모세가 지도자로 애굽에서 구원된다. [시50:7] [시81:7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8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사3:12] [렘2:31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 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캄캄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이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아니하겠다 하느냐 32 처녀가 어찌 그의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의 예복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셀 수 없거늘] [겔13:21,23] [암7:15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호1:9,10] [슥8:7,8]
<괴롭게 하였느냐> [사43:23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 제사도 없고 죄를 짓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죄로 학대 중 [렘4:31] [렘12:5] [말2:17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 인간이 하나님을 괴롭힘; ❶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거짓 ❷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인간은 하나님을 말로 조롱하며 학대한다. [요4: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 인자로 오신 예수님 ⇒ 피곤 [히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 피곤 ⇒ 낙심
§4 <속량> [창48: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 이스라엘 자손은 속량 된다. [출15:13] [레25:30,31] [신7: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 종이 값을 치르면 속량하면 구원된다. [시31: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6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 나의 영 [사48:20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고 즐거운 소리로 이를 알게 하여 들려 주며 땅 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의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하라] ☞ 바벨론과 갈대아는 사탄의 세력을 예표 [사62:11,12] [사63:9] [렘31:11] [애3:58] [호7:13] [슥10:8] [눅1: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 그의 백성을 속량 [눅24: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 이스라엘 속량을 기대했으나 죽은지 사흘 째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 이방인을 속량 [벧전1:18] [계5: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 이방인 피로 사서 속량 [계14:3]
§5 <너는 모압 왕 발락이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기억하며> ☞ 민22:2~ 이후, 발람은 ❶탐욕에 의한(불의의 삯) 사역자, ❷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 편의적으로 선택해 전하는 종교인, ❸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불순종) 자기 맘대로 하는 점술가 ❹곁으로 축복 하나, 속으로 우상 숭배와 행음(이는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마리아 여신을 숭배하는 방식)을 가르쳐 퍼뜨리는 ⇒ 거짓 종교인을 예표 한다. [민24:14 이제 나는 내 백성에게로 돌아가거니와 들으소서 내가 이 백성이 후일에 당신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지를 당신에게 말하리이다 하고] [민25: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 발람이 발락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성적 타락을 유도하는 조언 했다. [신23:4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수13:22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살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점술가 발람도 칼날로 죽였더라] ☞ 발람에 대한 심판 [벧후2: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 음심 가득한 눈으로 범죄 ⇒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됨 ∈ 발람의 길 ⇒ 불의의 삯을 사랑 ⇒ 저주의 자식 [유1:11] [계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 ❶우상의 제물을 먹게 함…. ❷행음하게 함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❶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❷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❸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❹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 하나님은 재물과 돈이 필요한 분이 아니시다. 내 소유물 혹은 혹은 내 맏아들을 드리고, 내 몸을 드리는 제사 방식은 ⇒ 우상신 몰렉을 숭배하거나 혹은 원시 종교, 샤머니즘의 방식이다. 단, ‘일천번제’는 일천 마리 소를 가지고 단번에 드린 제사이며, 한 마리씩 일천 번 제사 횟수 채우는 방식이 아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 때, ❶제사장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고기를 나누어 먹으면서, ❷왕이 하나님께 속죄 제사를 드림을 백성들이 알게 된다. 일천 번 헌금은 인간이 창안해 시도한 새로운 하나님과 흥정법이며,
§7 <내 영혼의 죄> [시104:35 죄인들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들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리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 내 영혼아 하나님을 송축하라.. [사38:17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 내게 큰 고통 ⇒ 평안 ∈ 내 영혼을 사랑 ⇒ 구원; 고통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숨어 있다.
<...숫양... 기름> [레8:2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함께 그 의복과 관유와 속죄제의 수송아지와 숫양 두 마리와 무교병 한 광주리를 가지고] ☞ 숫양 두 마리와 관유..⇒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민29:14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수송아지 열세 마리에는 각기 십분의 삼이요 숫양 두 마리에는 각기 십분의 이요] ☞ 기름... 숫양 두마리 [스6:9 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곧 하늘의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또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예루살렘 제사장의 요구대로 어김없이 날마다 주어] ☞ 숫양과... 기름을
<내 허물을... 내 영혼의 죄로> [삼상24:11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욥13:23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시25: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시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시51: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59:3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들이 모여 나를 치려 하오니 여호와여 이는 나의 잘못으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나의 죄로 말미암음도 아니로소이다] [사58:1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겔37:23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8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 주께서 선한 것 ❶오직 정의를 행하며 ❷인자를 사랑하며 ❸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여기에 ‘오직 믿음’ 같은 교리 구호,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 같은 마법적 성경 축약, 감동적 설교 등 포함되지 않는다.
<정의> ☞ KJV에서 justly이고, 표현의 일관성과 참조 구절의 연계성에서 ‘옳게’가 적당하다. 【사전 ① 바르게, 공정하게, 정당하게 ② 당연하게, 타당하게】 이는 justice, judgment, 그리고 righteousness로 표현하는 ‘정의’와 표현에서 좀 다르다. [눅23: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 옳게 [살전2: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옳고
필자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해지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