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소녀기념교회 500차 감사예배 및 위안부소녀기림의 날 7주년추모행사/도움을주신 분들
Author
박영규
Date
2024-08-20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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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목사님들과 평신도 성도님들께 박영규 원로 목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문안을 드립니다. 부족한 제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지난 10년 간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옆에서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에 위안부 소녀 기림 예배를 드려왔는데
2024년 8월14 수요일에 위안부 소녀 기림 예배 500차 감사예배 겸 위안부 소녀 기림의 날 7주년을 맞이하여 1부 예배와 2부 추모식을 거행하였습니다. 동대문교회 서철 담임목사님과 목사님들, 국회의원 두 분과 성도님들과 대학생 등 25명이 예배와 행사에 참여를 하셨습니다.
위안부 소녀 기림 예배와 추모식을 위해 평택 합정교회 방민철 목사님과
기독교 대한 감리회 고문 변호사이신 송인규 장로님(정원 로펌 대표)께서 선교비를 후원해 주시고,
로고스 교회에서(담임 목사 전준구 감독님)위안부 소녀 기림 예배와 선교를 위해 운행하는 15년 된 차량을 거금을 들여 새차 같이 수리하여 주시고 위안부 소녀 기림예배 때 사용하는 엠프를 사주시고 남은 선교 헌금으로 이 번 500차 감사 예배와 7주년 위안부 기림의 날 행사에 요긴하게 쓰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이철 감독회장님을 면담하도록 주선해 주시고 행정적인 지원을 해 주신 이용윤 행정실장님, 물심양면으로 격려해 주신 사무국 총무 신현승 목사님, 예배와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하느라 수고하신 민관기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예배와 추념식을 상세하게 보도를 해 주신 심자득 당당뉴스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지난 10년 동안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옆과 동대문교회 터에서 위안부 소녀들의 아픔과 희생을 기리며 함께한 아내 김영분 전도사와 성도님들께 감사드리며
부족한 종을 동대문교회 협동 목사, 동대문교회 복원 추진 위원으로 추대해 주신 동대문교회 서철 담임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기도해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신 예수제자교회 김성기 담임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삼위일체 하나님께 돌립니다.
교회에서 매월 1회씩 주일 낮 예배에 설교할 기회를 주시는 서철 목사님과 김성기 목사님의 배려에 감사를 드립니다.
+위안부 소녀 기념교회와 예배와 활동은 face book에 박영규 또는 위안부 소녀 기념 교회를 검색하시면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존경하는 목사님들과 평신도 성도님들과 가족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임마누엘, 여호와 이레, 라파, 여호와 닛시축복이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래 당당 뉴스 기사입니다. 사진과 기사를 더 보시려면 당당 뉴스 아래 제목을 검색하시면 됩니다.
/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 맞아 추도식 가져/ “일본도 위안부 소녀와 함께 울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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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을 맞아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의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소녀기념교회(박영규 목사)가 주최한 공동종교예식이 치러졌다.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은 고 김학순(1922~1997) 할머니가 세상에 최초로 일본군'위안부' 피해 문제를 공개 증언한 날인 1991년 8월 14일을 기념하기 위해 대만에서 2012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지정됐고 국내에서는 문재인 정권이던 2017년에 8월 14일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로 공식 지정했다.
이날 예배를 주관한 위안부소녀기념교회는 매주 수요일 오전11시부터 서울 주재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소녀상 옆에서 위안부소녀기림예배를 드려왔다. 이날은 위안부소녀기념교회의 500번째 기림예배였다.
▲ 철제 가림막으로 가려진 소녀상/사진
종교예식은 박영규 목사(공동추도위원장. 위안부소녀기념교회)가 사회를 맡고 서철 목사(동대문교회)가 설교한 예배와 민병덕 국회의원(공동추도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경기도 대일굴욕외교대책위원장)이 사회를 맡아 진행한 추도식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추도식은 한국위안부소녀기념교회 설립추진위원 김민석 집사(국회의원)와 남영희(더불어민주당 원외지역위원장 협의회)위원장이 참석해서 추모사를 전한 뒤 정혁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참석하기로 했던 이언주 추도위원은 자당내 최고위원 선거 사무 관계로 불참했다.
예배에서 민바디 학생은 “오늘 우리는 젊었을 적 참담한 아픔을 겪어온 여인들을 위해 모였다. 그 아픔은 실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일이었고, 그 걸음들은 주님의 피로 물든 언덕을 오르는 일이었다.”며 “우리는 그날의 처절함을 기억하고 당신께서 살아내신 고통의 나날들을 우리가 온몸과 마음으로 이어 받는다”고 기도했다.
▲ 설교한 서철 목사(동대문교회)와 위안부소녀기념교회 박영규 목사(우측)/사진
서철 목사 “일본도 위안부 소녀와 함께 울어야”
이어 말씀을 전한 서철 목사(동대문교회)는 “동대문교회에 담임이었던 장기철 감독님께서 심방을 하다가 어느날 할머니 집사님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됐다. ‘저는 일본군의 위안부 소녀였습니다.’ 깜짝 놀란 목사님은 그 집사님에게 ‘감추지 마시고 고백하십시오.’했고 자신의 위안부 소녀의 경력을 부끄러움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불어넣어 주셨다. 김학순 집사님은 과감하게 ‘나는 위안부 소녀였다’고 고백했고, 그것이 바로 위안부 소녀를 기념하는 일의 시작이었다.”고 전했다.
서철 목사는 이어 “우리는 위안부 소녀였던 우리의 할머니들과 함께 울 것이고 소망 중에 반드시 즐거워할 날이 올 것”이라고 다짐하고는 일본 대사관을 향해 “대한민국과 함께 즐거워 하길 원하는가? 그러면 먼저 위안부 소녀들과 함께 울어달라”며 일본의 자각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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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도식 사회 / 민병덕 국회 의원
민병덕 국회의원의 사회로 추도식이 이어졌다.
추도사를 전한 김민석 의원은 “해방 79주년에 한국과 일본의 정부가 정상적인 국가라면 아마 지금쯤은 일본의 제국주의 만행의 역사, 그중에서도 위안부의 역사에 대해서 일본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한일 양국이 세계인과 함께 평화로 나아가는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비정상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면서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 최근 뉴라이트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인사를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한 한국정부를 “일제의 제국주의적 밀정 같은 사고”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또한 민의원은 추도식을 준비한 위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오늘을 계기로 저희가 더 노력할 것이며, 우리 사회를 바로잡고 국민의 마음과 결합하려는 종교가 되도록 노력하다가 먼저 가신 모든 이들에게 추도와 위로의 마음을 보내드린다”고 전했다.
▲ 추도사를 전하는 김민석 의원/사진
▲ 추도사를 전하는 남영희 민주당 지역 위원장/사진
남영희 위원장도 미리 준비한 추념사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반인륜적 폭력, 사회적 편견에 맞선 당신의 용기가 대한민국을 넘어 전세계 전쟁 위안부 피해자들의 국제적 연대를 이끌어 내었으며, 할머니들의 숭고한 희생이 인권존중 평화의 상징인 소녀상으로 다시 태어나 세계 곳곳에서 살아있다”고 기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이어 남위원장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능가하는 친일매국 윤석열 정권의 무차별적인 역사 파괴 현실을 목도하며 내 나라를 다시 찾아야겠다, 독립운동 정신의 결연한 의지로 다시 싸워야겠다 그것이 오늘 기림의 날이 제게 주는 교훈”이라면서 정부를 향해 ‘역사왜곡 매국노 색출하여 퇴출시킬 것’ ‘핵오염수 방류와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중지에 앞장설 것’, ‘굴종 외교 수장 윤석열 대통령은 사죄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기림의 날’을 맞아 시민단체들도 일본대사관 앞에서 미국, 일본, 호주 등 8국 145개 공동주관 단체와 함께 집회를 열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한국 정부에는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 회복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날인 15일 열린 79주년 광복절 행사에서 일제의 침탈에 대한 문제제기나 위안부피해자, 강제징용피해자, 독립투사들에 대한 위로, 그리고 일본의 사과를 언급하지 않아 일본 언론마저 이례적이라고 보도했다. 심지어 일본이라는 단어를 한차례도 사용하지 않아 야당은 “ “내재된 친일 DNA를 숨길 수 없는 것인가”, “이쯤 되면 윤석열 대통령은 뉴라이트, 친일파 숙주가 아니라 몸통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 추도식 사회 / 민병덕 국회의원
▲ 추도사를 전하는 김민석 국회의원
▲ 추도사를 전하는 남영희 위원장/사진
▲ 축도 /정혁 목사(동대문교회 원로 목사)
▲ 매주 수요일 위안부소녀 기림예배를 드리는 위안부소녀기념교회의 예배장면 사진
기도 / 민바디 학생(감신대)
“좋으신 하나님, 무더운 여름 우리는 당신의 선한 이끌림에 이끌려 이 자리에 왔습니다. 아버지의 은혜로 우리가 예배하오니 아버지로부터 난 감사와 찬양이 오직 아버지께로만 향하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생명들의 마음을 눈여겨 보시는 주님. 오늘 우리는 특별히 젊었을 적 참담한 아픔을 겪어온 여인들을 위해 모였습니다. 앓는 소리조차 마음대로 내지 못하던 소녀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이 이곳에 사무치도록 들려올 때 우리는 그저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음에도
살아내었던 선조들의 견딤을 목격할 때 우리는 그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아픔은 실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일이었고, 그 걸음들은 주님의 피로 물든 언덕을 오르는 일이었습니다.
하여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날의 처절함을 기억합니다. 당신께서 살아내신 고통의 나날들을 우리가 온몸과 마음으로 이어 받습니다.
그리고 나아갑니다. 끊어질 듯한 숨 속에서도 끝내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민족의 정신을 이제 우리가 가지고 나아갑니다. 당신의 고통이 이제 우리의 고통이 되었듯, 우리의 한걸음은 당신의 한걸음이 될 것이요, 우리의 부르짖음과 선포는 당신의 부르짖음과 선포가 될 것입니다.
그 모든 의지와 투쟁 속에서 주님께서 이루신 선을 따라 철저한 심판과 알 수 없는 평안이 깃들 때에, 모든 이들의 심령 가운데 꿈틀거리던 찬양소리가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터져 나올 것을 믿습니다. 그때를 소망하며 무너지는 세상 중에도 전진하기를 멈추지 않는 주님의 군사들과 더더욱 적극적으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우리를 보살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8.14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추념사
오늘은 전쟁의 상흔과 폭력의 어두운 터널에 갇혀 외롭고 힘든 세월을 보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기억과 증언이 세상의 빛과 만난 여성인권운동의 위대한 기림의 날입니다.
18년 전에 작고하신 저의 시어머니는 일제 강점기였던 1919년 태생이셨습니다. 맏딸이었던 자신을 대신해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가 되어야 했던 여동생 제겐 시이모님의 아픈 기억을 말씀하시며 눈물을 삼키셨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자식들에게조차 말하기 어려워 숨겨두었던 상처를 팔순이 다되시고서야 며느리인 제게 털어내셨던 것입니다.
33년 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는 최초의 공개 증언이 어떤 심경이었을지 얼마나 위대한 희생이었던 것인지 가늠이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할머니가 되어서야 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우리가 증거라고,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다고." 평화 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할머니의 외침도 여전합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반인륜적 폭력, 사회적 편견에 맞선 당신의 용기가 대한민국을 넘어 전세계 전쟁 위안부 피해자들의 국제적 연대를 이끌어 내었으며, 할머니들의 숭고한 희생이 인권존중 평화의 상징인 소녀상으로 다시 태어나 세계 곳곳에서 살아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에 경의를 표합니다.
지금 제 곁에 시어머니가 살아계시다면 도대체 뭐하고 있느냐 매우 크게 꾸짖으실 것 같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유일한 바람, 일본의 진정어린 사과와 반성, 배상! 그것 하나 해결 못하고 뭐하고 있느냐 호통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능가하는 친일매국 윤석열 정권의 무차별적인 역사 파괴 현실을 목도하며 내 나라를 다시 찾아야겠다, 독립운동 정신의 결연한 의지로 다시 싸워야겠다 그것이 오늘 기림의 날이 제게 주는 교훈입니다.
친일매국 밀정 윤석열 정권은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하셨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귀한 뜻을 받들어 일제 위안부와 강제징용을 부정하며 자발적 운운하는 역사왜곡 매국노들을 철저하게 색출하여, 지금 당장 퇴출시킬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핵오염수를 처리수로 명명하며 인류 재앙 공범을 자처한 세력을 규탄하며 즉각 방류 중지하도록 정부가 앞장서라.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일본 전쟁 미화 반역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100년 전 역사로 인해 일본이 사과하기 위해 무릎 꿇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망언을 한 굴종 외교 수장 윤석열 대통령은 사죄하라!
다시 한번 세계인권운동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평안한 영면을 기원하며, 생존해 계신 할머니와 가족 모든 분들의 건강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기억과 용기로 맞서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08.14.
더불어민주당 원외지역위원장 협의회장 남영희
위안부소녀 기림 추도예식 공동 추도사
대독 민관기 목사
*감독회장 이철, 전·현직 역사보존위원장 안정균·김영민, 현직 선교국위원장 이용원,(전 선교국위원장은 선거 출마후보이므로 미포함)
*. 위의 분들이 대표자이시지만 모두의 추도사임도 밝힙니다.
무더위를 하나님의 은혜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날 그 시대 야만과 만행이 밤낮으로 있었던 때를 우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지금 여기의 우리보다 자연상태가 더 뜨거운 곳이겠죠. 우리 대한의 빛여성 소녀들 41만 명이 정신대로 징발되었으며, 이중 145,000여 명의 빛소녀들 11~20여 세의 그들은 성폭행과 학대와 전쟁에 동원되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인류사에 없었던 비극으로 인류 멸망을 위해 기획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대 역사속에는 전쟁에서 군인 남자들에 의해 점령지의 여성들이 미처 피난을 못하여 아이들과 노인과 함께 학살과 약탈에 성폭행 했다는 기록들은 다 알고 있는 바입니다. 또, 군인들을 노리고 돈을 위해 성집합소를 만들기도 한 것도 다 압니다.
그러나, 일본 군국주의가 기획한 것은 이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전쟁 중의 군인만 위한 성위안부, 즉 미국의 전 국무장관도 표현한 성노예제였던 것입니다. ‘인류 멸망의 기초를 놓았다’고 그는 평가한 것이며, 실제로 남녀 간의 수많은 행위에도 정상적으로 낳아 길러진 생명은 전무하여 그 여성들은 사망하거나 스스로 거의 독신의 삶을 살았고, 위안부였던 사실을 숨기고 혼인 생활을 하던 몇 인들은 사람의 양심으로 가족에게 고백하여 봤자 더러운 사람 취급받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허니, 인류 멸망의 성노예제 기획 확실한 것 아닌가요?
1945. 8. 15후 민족과 인류는 잠잠했습니다. 우리와 인류는 이 사실을 오랫동안 알고는 있었지만 그 누구도 실체로 증언이나 증거가 없다하며 부인당하면 그런가? 그럴 수도? 하며 광복/승전후 남이나 북이나 세계나 다 그렇게 넘어왔습니다.
그러나, 1991. 8. 14에 인류는 경악을 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그 위안부 출신이오” 이 목소리가 나온 곳은 지금 흥인문 언덕 위에 있던 140여년 역사의 동대문감리교회에서였습니다. 그곳은 스크랜턴과 그의 어머니 대부인, 그리고 로제타 홀이 의료 봉사를 하던 곳으로 전봉준 장군도 서양인들이 우리 민족의 민중중에 민중인 여성과 어린아이들의 질병을 무료로 돌보고 있다는 정보에 척양척왜의 기치를 들었다가 척양은 빼고 척왜의 기치만을 들고 왜적들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수만의 우리 민족의 빛아비들을 잃게 되었던 그곳 아니었습니까?
또한, 거기엔 미국인의 한국 사랑의 총아 헐버트와 크리스마스 씰을 만든 셔우드 홀과 그 그림을 준 영국인 판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유훈이 깃든 곳이며, 우리 민족의 자주 염원을 인류사에 드러낸 3.1 독립선언의 경축식를 알리는 벙커 종의 타종이 있었던 곳이며, 상하이 임시정부의 의정원 의장이었던 해석 손정도 목사의 담임지이고, 이들을 통해 양성된 민족지사가 수천에 달하는 곳입니다. 한지 김상옥 의사는 종로서에 투탄 후 1대 1,000의 적지인 서울 한복판에서 혁명전쟁을 벌이다가 마지막 한 발로 자결하신 민족의 영웅이십니다. 임정의 지도자들인 김구, 이시영, 조소앙 등에게 “나는 적의 포로가 되지 않겠습니다!”를 실천한 사나이로 가족 독립유공자 가문이며, 그이 의형제 나석주 의사는 총각임에도 “나도 형님을 따라가리라!” 동양척식에 투탄하고 시가전을 벌이다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남은 한 발로 자결을 선택한 성지에서 말입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담담히 자신의 삶의 여정을 고백했습니다.
그 옆에는 원폭 피해 할머니 이맹희 성도가 있었고 위안부 사실을 알고 고백을 권면한 장기천 목사가 있었지요. 이 고백은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아 여성계는 이를 계기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숨김없이 내더니 급기야는 가정의 일반주부들도 그러하게 되었고, 인류는 리더쉽의 여성으로의 전면적 교체의 시작이라는 서막을 올려 지금에 이르니 1991년으로 부터는 23년만입니다. 일제 36년의 숨막히는 세월의 반 만에 인류는 유사이래 없었던 세기를 맞이하니 이는 여성의 본성 잃은 지 수천수만 년래 아닌가 합니다.
우리 감리교단은 여성의 지도자 시대를 일찍이 열었습니다.
미국 유학 최초의 문학사이자 유관순 열사의 스승인 김란사와 여의사 박에스더를 배출했고, 콜롬비아대 교육학 석사인 황애덕을 배출함으로써 최용신이라는 민족의 스승을 낳게 하여 민족과 인류는 봉사의 정신이 넘쳐나고 있는줄 압니다. 거기다 우리 감리교단은 미국에선 북/남간 전쟁으로 교단이 북/남 감리교단으로 분리되었고, 이에 대한에 전해된 것도 분리되어 전래되었으나, 그 동안엔 북/남 협성시대를 이루다가 35년만에 1930년 조직자체를 기독교조선감리회로 합동하고 대한인을 최고 지도자인 총리사로 세우니 이는 독립운동계에도 결정적인 영양을 끼쳤고, 다음 해엔 여성들에게 인류사 최초로 식민지 성직자가 선교사 파송국 선교사에게 목사 안수를 주어 공식 성직자로 세우니 민족은 더구나 강대국 미국으로부터의 독립 교단이 되어 인사권을 가진 것이며, 미국선교사를 여기저기로 파송할 권리를 가지게 되었고, 미국인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소속 교단이 미 북/남감리회 소속이 아닌 조선감리회 소속으로 우리의 지도를 받게 되었던 것이었으나, 이 문제에 미국인 남성 지도자들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예는 그때나 지금이나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없을 대사건일 것입니다. 미국 북/남감리교회 남/녀지도자들의 선비적 품성을 이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며, 빛인 예수님 뜻에 맞다면 우리도 따른다는 우리 민족의 빛성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그들의 겸양과 우리의 우수성이 만난 결과였다고 봅니다.
하여, 우리 독립운동계는 격변을 겪습니다. 한국 내, 만주 내, 상하이 내, 미주 내에는 이 합동과 우리 지도자 선출 소식과 여성 성직자가 조선교회 소속이라는 어마어마한 소식에 분열 속의 독립운동계는 통합의 기운을 석오 이동녕과 남자현 지사의 영향으로도 받으며 급속도로 통합의 길로 갑니다.
밀정의 득세나 다른 종교나 교단의 분열은 일제의 민족운동 파괴 공작에 민족의 정통 주류들은 속지도 굴복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굳건히 뭉쳤습니다. 특히 미주동포들은 안익태 선생의 애국가를 불러 함양된 애국정신과 애국 목사 안창호 등의 기도에 힘입어 노동 임금수익 미화 2,000불을 한인애국단에 송금하니 인류사에 이만큼 더 귀하게 쓰여진 헌금이 있을까요?
만주의 독립군들은 우리만의 통합이 아니라 중국측의 독립군사들과도 통합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그의 모티브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지금 몽골인들은 우리 민족지사인 이태준을 자신들의 국립묘지 전면에 부각시켜 국부처럼 추앙하는 것은 어디로부터 왔을까요?
독립운동계의 통합은 그동안의 분열을 털어내고 국내, 미주, 상하이, 만주 등 전역에 걸쳐 일어난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도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됨을 길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부인되거나 미뤄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됩니다.
마지막으로 1919. 3. 1 독립선언으로 우리 민족은 자주함의 빛을 선언한 것이며, 이로써 빛으로 살지 못하던 현 인류 기준 60억은 빛을 찾아 항전에 나서게 되었고, 스스로 어둠의 삶을 살던 20억의 인류에게는 경종을 준 최초의 인권과 평화의 세계선언이었음은 [세계평화와 인류복지]를 위한 선언이라는 선언서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 민족도 본디 빛성을 회복하여 나가기 시작했고, 전 인류 또한 각처에서 그 빛길의 완수를 위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는 우리에게, 아니 인류에게 드리는 글입니다.
하나, 어쩌겠습니까? 이 빛이 둘로 나뉘어 있으니 말입니다. 인류는 반성해야 합니다.
1919년, 빛화의 원료를 우리 빛민족에게서 전수받아 태평양전쟁과 반파쇼전쟁에서 승전을 일구고 나서도 그 공은 잊은 채 마치 자신들의 빛의 승리인 양 이데올로기를 잣대로 민족을 나누어 전쟁의 참화를 겪게 하였으며, 참전하여 패전을 막아준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사하나 그 또한 당신들의 의무였음도 우리는 이미 압니다.
우리가 1905년 세계인들로부터 완전히 고립될 때 당신들은 대한제국에 있는 미국 공사관을 필두로 100% 모조리 한순간에 철수시켰고, 우리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워싱턴 특사, 헤이그 특사 등으로 민족문제를 돌파하려 했으나, 그 결과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요. 그로부터 우리는 각 본국 교회 등의 지원을 받는 외국인 선교사, 의사, 교사, 언론인, 문화인 등 약 6,000여 명의 지원만으로 강제점령 상태를 버티다가 그나마 1940년엔 그들마저 모조리 강제추방당하므로 완벽한 고립상태의 우리가 세계평화와 인류복지를 위해 1919. 3.1. 7~8,000여명의 순국을 수반한 선언만으로도 덕을 입은 그대들의 국제정세에 따른 6.25의 참전과 수고는 당연한 것이었고, 우리는 고마운 것이었음을 밝혀 둡니다.
이는 우리의 분단과 전쟁 그리고 지금의 이 상태에 그대들의 책임도 상당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그 1905년의 외면과 1045년의 무책임, 곧 일본의 분단이 아니라 피해국인 우리의 분단을 결정하다니 이런 결정은 수긍이 잘 안가는 것입니다.
이제 정리합니다.
김학순 우리 동대문교회 집사님의 고백을 기점으로 탄생한 이 소중한 기념일인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에 여기에 함께 한 이들이나 모두에게 성 삼위일체의 축복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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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14 수요일에 위안부 소녀 기림 예배 500차 감사예배 겸 위안부 소녀 기림의 날 7주년을 맞이하여 1부 예배와 2부 추모식을 거행하였습니다. 동대문교회 서철 담임목사님과 목사님들, 국회의원 두 분과 성도님들과 대학생 등 25명이 예배와 행사에 참여를 하셨습니다.
위안부 소녀 기림 예배와 추모식을 위해 평택 합정교회 방민철 목사님과
기독교 대한 감리회 고문 변호사이신 송인규 장로님(정원 로펌 대표)께서 선교비를 후원해 주시고,
로고스 교회에서(담임 목사 전준구 감독님)위안부 소녀 기림 예배와 선교를 위해 운행하는 15년 된 차량을 거금을 들여 새차 같이 수리하여 주시고 위안부 소녀 기림예배 때 사용하는 엠프를 사주시고 남은 선교 헌금으로 이 번 500차 감사 예배와 7주년 위안부 기림의 날 행사에 요긴하게 쓰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이철 감독회장님을 면담하도록 주선해 주시고 행정적인 지원을 해 주신 이용윤 행정실장님, 물심양면으로 격려해 주신 사무국 총무 신현승 목사님, 예배와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하느라 수고하신 민관기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예배와 추념식을 상세하게 보도를 해 주신 심자득 당당뉴스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지난 10년 동안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옆과 동대문교회 터에서 위안부 소녀들의 아픔과 희생을 기리며 함께한 아내 김영분 전도사와 성도님들께 감사드리며
부족한 종을 동대문교회 협동 목사, 동대문교회 복원 추진 위원으로 추대해 주신 동대문교회 서철 담임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기도해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신 예수제자교회 김성기 담임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삼위일체 하나님께 돌립니다.
교회에서 매월 1회씩 주일 낮 예배에 설교할 기회를 주시는 서철 목사님과 김성기 목사님의 배려에 감사를 드립니다.
+위안부 소녀 기념교회와 예배와 활동은 face book에 박영규 또는 위안부 소녀 기념 교회를 검색하시면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존경하는 목사님들과 평신도 성도님들과 가족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임마누엘, 여호와 이레, 라파, 여호와 닛시축복이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래 당당 뉴스 기사입니다. 사진과 기사를 더 보시려면 당당 뉴스 아래 제목을 검색하시면 됩니다.
/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 맞아 추도식 가져/ “일본도 위안부 소녀와 함께 울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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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을 맞아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의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소녀기념교회(박영규 목사)가 주최한 공동종교예식이 치러졌다.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은 고 김학순(1922~1997) 할머니가 세상에 최초로 일본군'위안부' 피해 문제를 공개 증언한 날인 1991년 8월 14일을 기념하기 위해 대만에서 2012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지정됐고 국내에서는 문재인 정권이던 2017년에 8월 14일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로 공식 지정했다.
이날 예배를 주관한 위안부소녀기념교회는 매주 수요일 오전11시부터 서울 주재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소녀상 옆에서 위안부소녀기림예배를 드려왔다. 이날은 위안부소녀기념교회의 500번째 기림예배였다.
▲ 철제 가림막으로 가려진 소녀상/사진
종교예식은 박영규 목사(공동추도위원장. 위안부소녀기념교회)가 사회를 맡고 서철 목사(동대문교회)가 설교한 예배와 민병덕 국회의원(공동추도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경기도 대일굴욕외교대책위원장)이 사회를 맡아 진행한 추도식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추도식은 한국위안부소녀기념교회 설립추진위원 김민석 집사(국회의원)와 남영희(더불어민주당 원외지역위원장 협의회)위원장이 참석해서 추모사를 전한 뒤 정혁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참석하기로 했던 이언주 추도위원은 자당내 최고위원 선거 사무 관계로 불참했다.
예배에서 민바디 학생은 “오늘 우리는 젊었을 적 참담한 아픔을 겪어온 여인들을 위해 모였다. 그 아픔은 실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일이었고, 그 걸음들은 주님의 피로 물든 언덕을 오르는 일이었다.”며 “우리는 그날의 처절함을 기억하고 당신께서 살아내신 고통의 나날들을 우리가 온몸과 마음으로 이어 받는다”고 기도했다.
▲ 설교한 서철 목사(동대문교회)와 위안부소녀기념교회 박영규 목사(우측)/사진
서철 목사 “일본도 위안부 소녀와 함께 울어야”
이어 말씀을 전한 서철 목사(동대문교회)는 “동대문교회에 담임이었던 장기철 감독님께서 심방을 하다가 어느날 할머니 집사님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됐다. ‘저는 일본군의 위안부 소녀였습니다.’ 깜짝 놀란 목사님은 그 집사님에게 ‘감추지 마시고 고백하십시오.’했고 자신의 위안부 소녀의 경력을 부끄러움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불어넣어 주셨다. 김학순 집사님은 과감하게 ‘나는 위안부 소녀였다’고 고백했고, 그것이 바로 위안부 소녀를 기념하는 일의 시작이었다.”고 전했다.
서철 목사는 이어 “우리는 위안부 소녀였던 우리의 할머니들과 함께 울 것이고 소망 중에 반드시 즐거워할 날이 올 것”이라고 다짐하고는 일본 대사관을 향해 “대한민국과 함께 즐거워 하길 원하는가? 그러면 먼저 위안부 소녀들과 함께 울어달라”며 일본의 자각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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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도식 사회 / 민병덕 국회 의원
민병덕 국회의원의 사회로 추도식이 이어졌다.
추도사를 전한 김민석 의원은 “해방 79주년에 한국과 일본의 정부가 정상적인 국가라면 아마 지금쯤은 일본의 제국주의 만행의 역사, 그중에서도 위안부의 역사에 대해서 일본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한일 양국이 세계인과 함께 평화로 나아가는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비정상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면서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 최근 뉴라이트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인사를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한 한국정부를 “일제의 제국주의적 밀정 같은 사고”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또한 민의원은 추도식을 준비한 위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오늘을 계기로 저희가 더 노력할 것이며, 우리 사회를 바로잡고 국민의 마음과 결합하려는 종교가 되도록 노력하다가 먼저 가신 모든 이들에게 추도와 위로의 마음을 보내드린다”고 전했다.
▲ 추도사를 전하는 김민석 의원/사진
▲ 추도사를 전하는 남영희 민주당 지역 위원장/사진
남영희 위원장도 미리 준비한 추념사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반인륜적 폭력, 사회적 편견에 맞선 당신의 용기가 대한민국을 넘어 전세계 전쟁 위안부 피해자들의 국제적 연대를 이끌어 내었으며, 할머니들의 숭고한 희생이 인권존중 평화의 상징인 소녀상으로 다시 태어나 세계 곳곳에서 살아있다”고 기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이어 남위원장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능가하는 친일매국 윤석열 정권의 무차별적인 역사 파괴 현실을 목도하며 내 나라를 다시 찾아야겠다, 독립운동 정신의 결연한 의지로 다시 싸워야겠다 그것이 오늘 기림의 날이 제게 주는 교훈”이라면서 정부를 향해 ‘역사왜곡 매국노 색출하여 퇴출시킬 것’ ‘핵오염수 방류와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중지에 앞장설 것’, ‘굴종 외교 수장 윤석열 대통령은 사죄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기림의 날’을 맞아 시민단체들도 일본대사관 앞에서 미국, 일본, 호주 등 8국 145개 공동주관 단체와 함께 집회를 열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한국 정부에는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 회복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날인 15일 열린 79주년 광복절 행사에서 일제의 침탈에 대한 문제제기나 위안부피해자, 강제징용피해자, 독립투사들에 대한 위로, 그리고 일본의 사과를 언급하지 않아 일본 언론마저 이례적이라고 보도했다. 심지어 일본이라는 단어를 한차례도 사용하지 않아 야당은 “ “내재된 친일 DNA를 숨길 수 없는 것인가”, “이쯤 되면 윤석열 대통령은 뉴라이트, 친일파 숙주가 아니라 몸통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 추도식 사회 / 민병덕 국회의원
▲ 추도사를 전하는 김민석 국회의원
▲ 추도사를 전하는 남영희 위원장/사진
▲ 축도 /정혁 목사(동대문교회 원로 목사)
▲ 매주 수요일 위안부소녀 기림예배를 드리는 위안부소녀기념교회의 예배장면 사진
기도 / 민바디 학생(감신대)
“좋으신 하나님, 무더운 여름 우리는 당신의 선한 이끌림에 이끌려 이 자리에 왔습니다. 아버지의 은혜로 우리가 예배하오니 아버지로부터 난 감사와 찬양이 오직 아버지께로만 향하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생명들의 마음을 눈여겨 보시는 주님. 오늘 우리는 특별히 젊었을 적 참담한 아픔을 겪어온 여인들을 위해 모였습니다. 앓는 소리조차 마음대로 내지 못하던 소녀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이 이곳에 사무치도록 들려올 때 우리는 그저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음에도
살아내었던 선조들의 견딤을 목격할 때 우리는 그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아픔은 실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일이었고, 그 걸음들은 주님의 피로 물든 언덕을 오르는 일이었습니다.
하여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날의 처절함을 기억합니다. 당신께서 살아내신 고통의 나날들을 우리가 온몸과 마음으로 이어 받습니다.
그리고 나아갑니다. 끊어질 듯한 숨 속에서도 끝내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민족의 정신을 이제 우리가 가지고 나아갑니다. 당신의 고통이 이제 우리의 고통이 되었듯, 우리의 한걸음은 당신의 한걸음이 될 것이요, 우리의 부르짖음과 선포는 당신의 부르짖음과 선포가 될 것입니다.
그 모든 의지와 투쟁 속에서 주님께서 이루신 선을 따라 철저한 심판과 알 수 없는 평안이 깃들 때에, 모든 이들의 심령 가운데 꿈틀거리던 찬양소리가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터져 나올 것을 믿습니다. 그때를 소망하며 무너지는 세상 중에도 전진하기를 멈추지 않는 주님의 군사들과 더더욱 적극적으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우리를 보살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8.14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추념사
오늘은 전쟁의 상흔과 폭력의 어두운 터널에 갇혀 외롭고 힘든 세월을 보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기억과 증언이 세상의 빛과 만난 여성인권운동의 위대한 기림의 날입니다.
18년 전에 작고하신 저의 시어머니는 일제 강점기였던 1919년 태생이셨습니다. 맏딸이었던 자신을 대신해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가 되어야 했던 여동생 제겐 시이모님의 아픈 기억을 말씀하시며 눈물을 삼키셨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자식들에게조차 말하기 어려워 숨겨두었던 상처를 팔순이 다되시고서야 며느리인 제게 털어내셨던 것입니다.
33년 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는 최초의 공개 증언이 어떤 심경이었을지 얼마나 위대한 희생이었던 것인지 가늠이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할머니가 되어서야 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우리가 증거라고,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다고." 평화 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할머니의 외침도 여전합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반인륜적 폭력, 사회적 편견에 맞선 당신의 용기가 대한민국을 넘어 전세계 전쟁 위안부 피해자들의 국제적 연대를 이끌어 내었으며, 할머니들의 숭고한 희생이 인권존중 평화의 상징인 소녀상으로 다시 태어나 세계 곳곳에서 살아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에 경의를 표합니다.
지금 제 곁에 시어머니가 살아계시다면 도대체 뭐하고 있느냐 매우 크게 꾸짖으실 것 같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유일한 바람, 일본의 진정어린 사과와 반성, 배상! 그것 하나 해결 못하고 뭐하고 있느냐 호통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능가하는 친일매국 윤석열 정권의 무차별적인 역사 파괴 현실을 목도하며 내 나라를 다시 찾아야겠다, 독립운동 정신의 결연한 의지로 다시 싸워야겠다 그것이 오늘 기림의 날이 제게 주는 교훈입니다.
친일매국 밀정 윤석열 정권은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하셨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귀한 뜻을 받들어 일제 위안부와 강제징용을 부정하며 자발적 운운하는 역사왜곡 매국노들을 철저하게 색출하여, 지금 당장 퇴출시킬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핵오염수를 처리수로 명명하며 인류 재앙 공범을 자처한 세력을 규탄하며 즉각 방류 중지하도록 정부가 앞장서라.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일본 전쟁 미화 반역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100년 전 역사로 인해 일본이 사과하기 위해 무릎 꿇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망언을 한 굴종 외교 수장 윤석열 대통령은 사죄하라!
다시 한번 세계인권운동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평안한 영면을 기원하며, 생존해 계신 할머니와 가족 모든 분들의 건강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기억과 용기로 맞서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08.14.
더불어민주당 원외지역위원장 협의회장 남영희
위안부소녀 기림 추도예식 공동 추도사
대독 민관기 목사
*감독회장 이철, 전·현직 역사보존위원장 안정균·김영민, 현직 선교국위원장 이용원,(전 선교국위원장은 선거 출마후보이므로 미포함)
*. 위의 분들이 대표자이시지만 모두의 추도사임도 밝힙니다.
무더위를 하나님의 은혜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날 그 시대 야만과 만행이 밤낮으로 있었던 때를 우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지금 여기의 우리보다 자연상태가 더 뜨거운 곳이겠죠. 우리 대한의 빛여성 소녀들 41만 명이 정신대로 징발되었으며, 이중 145,000여 명의 빛소녀들 11~20여 세의 그들은 성폭행과 학대와 전쟁에 동원되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인류사에 없었던 비극으로 인류 멸망을 위해 기획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대 역사속에는 전쟁에서 군인 남자들에 의해 점령지의 여성들이 미처 피난을 못하여 아이들과 노인과 함께 학살과 약탈에 성폭행 했다는 기록들은 다 알고 있는 바입니다. 또, 군인들을 노리고 돈을 위해 성집합소를 만들기도 한 것도 다 압니다.
그러나, 일본 군국주의가 기획한 것은 이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전쟁 중의 군인만 위한 성위안부, 즉 미국의 전 국무장관도 표현한 성노예제였던 것입니다. ‘인류 멸망의 기초를 놓았다’고 그는 평가한 것이며, 실제로 남녀 간의 수많은 행위에도 정상적으로 낳아 길러진 생명은 전무하여 그 여성들은 사망하거나 스스로 거의 독신의 삶을 살았고, 위안부였던 사실을 숨기고 혼인 생활을 하던 몇 인들은 사람의 양심으로 가족에게 고백하여 봤자 더러운 사람 취급받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허니, 인류 멸망의 성노예제 기획 확실한 것 아닌가요?
1945. 8. 15후 민족과 인류는 잠잠했습니다. 우리와 인류는 이 사실을 오랫동안 알고는 있었지만 그 누구도 실체로 증언이나 증거가 없다하며 부인당하면 그런가? 그럴 수도? 하며 광복/승전후 남이나 북이나 세계나 다 그렇게 넘어왔습니다.
그러나, 1991. 8. 14에 인류는 경악을 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그 위안부 출신이오” 이 목소리가 나온 곳은 지금 흥인문 언덕 위에 있던 140여년 역사의 동대문감리교회에서였습니다. 그곳은 스크랜턴과 그의 어머니 대부인, 그리고 로제타 홀이 의료 봉사를 하던 곳으로 전봉준 장군도 서양인들이 우리 민족의 민중중에 민중인 여성과 어린아이들의 질병을 무료로 돌보고 있다는 정보에 척양척왜의 기치를 들었다가 척양은 빼고 척왜의 기치만을 들고 왜적들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수만의 우리 민족의 빛아비들을 잃게 되었던 그곳 아니었습니까?
또한, 거기엔 미국인의 한국 사랑의 총아 헐버트와 크리스마스 씰을 만든 셔우드 홀과 그 그림을 준 영국인 판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유훈이 깃든 곳이며, 우리 민족의 자주 염원을 인류사에 드러낸 3.1 독립선언의 경축식를 알리는 벙커 종의 타종이 있었던 곳이며, 상하이 임시정부의 의정원 의장이었던 해석 손정도 목사의 담임지이고, 이들을 통해 양성된 민족지사가 수천에 달하는 곳입니다. 한지 김상옥 의사는 종로서에 투탄 후 1대 1,000의 적지인 서울 한복판에서 혁명전쟁을 벌이다가 마지막 한 발로 자결하신 민족의 영웅이십니다. 임정의 지도자들인 김구, 이시영, 조소앙 등에게 “나는 적의 포로가 되지 않겠습니다!”를 실천한 사나이로 가족 독립유공자 가문이며, 그이 의형제 나석주 의사는 총각임에도 “나도 형님을 따라가리라!” 동양척식에 투탄하고 시가전을 벌이다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남은 한 발로 자결을 선택한 성지에서 말입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담담히 자신의 삶의 여정을 고백했습니다.
그 옆에는 원폭 피해 할머니 이맹희 성도가 있었고 위안부 사실을 알고 고백을 권면한 장기천 목사가 있었지요. 이 고백은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아 여성계는 이를 계기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숨김없이 내더니 급기야는 가정의 일반주부들도 그러하게 되었고, 인류는 리더쉽의 여성으로의 전면적 교체의 시작이라는 서막을 올려 지금에 이르니 1991년으로 부터는 23년만입니다. 일제 36년의 숨막히는 세월의 반 만에 인류는 유사이래 없었던 세기를 맞이하니 이는 여성의 본성 잃은 지 수천수만 년래 아닌가 합니다.
우리 감리교단은 여성의 지도자 시대를 일찍이 열었습니다.
미국 유학 최초의 문학사이자 유관순 열사의 스승인 김란사와 여의사 박에스더를 배출했고, 콜롬비아대 교육학 석사인 황애덕을 배출함으로써 최용신이라는 민족의 스승을 낳게 하여 민족과 인류는 봉사의 정신이 넘쳐나고 있는줄 압니다. 거기다 우리 감리교단은 미국에선 북/남간 전쟁으로 교단이 북/남 감리교단으로 분리되었고, 이에 대한에 전해된 것도 분리되어 전래되었으나, 그 동안엔 북/남 협성시대를 이루다가 35년만에 1930년 조직자체를 기독교조선감리회로 합동하고 대한인을 최고 지도자인 총리사로 세우니 이는 독립운동계에도 결정적인 영양을 끼쳤고, 다음 해엔 여성들에게 인류사 최초로 식민지 성직자가 선교사 파송국 선교사에게 목사 안수를 주어 공식 성직자로 세우니 민족은 더구나 강대국 미국으로부터의 독립 교단이 되어 인사권을 가진 것이며, 미국선교사를 여기저기로 파송할 권리를 가지게 되었고, 미국인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소속 교단이 미 북/남감리회 소속이 아닌 조선감리회 소속으로 우리의 지도를 받게 되었던 것이었으나, 이 문제에 미국인 남성 지도자들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예는 그때나 지금이나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없을 대사건일 것입니다. 미국 북/남감리교회 남/녀지도자들의 선비적 품성을 이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며, 빛인 예수님 뜻에 맞다면 우리도 따른다는 우리 민족의 빛성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그들의 겸양과 우리의 우수성이 만난 결과였다고 봅니다.
하여, 우리 독립운동계는 격변을 겪습니다. 한국 내, 만주 내, 상하이 내, 미주 내에는 이 합동과 우리 지도자 선출 소식과 여성 성직자가 조선교회 소속이라는 어마어마한 소식에 분열 속의 독립운동계는 통합의 기운을 석오 이동녕과 남자현 지사의 영향으로도 받으며 급속도로 통합의 길로 갑니다.
밀정의 득세나 다른 종교나 교단의 분열은 일제의 민족운동 파괴 공작에 민족의 정통 주류들은 속지도 굴복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굳건히 뭉쳤습니다. 특히 미주동포들은 안익태 선생의 애국가를 불러 함양된 애국정신과 애국 목사 안창호 등의 기도에 힘입어 노동 임금수익 미화 2,000불을 한인애국단에 송금하니 인류사에 이만큼 더 귀하게 쓰여진 헌금이 있을까요?
만주의 독립군들은 우리만의 통합이 아니라 중국측의 독립군사들과도 통합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그의 모티브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지금 몽골인들은 우리 민족지사인 이태준을 자신들의 국립묘지 전면에 부각시켜 국부처럼 추앙하는 것은 어디로부터 왔을까요?
독립운동계의 통합은 그동안의 분열을 털어내고 국내, 미주, 상하이, 만주 등 전역에 걸쳐 일어난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도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됨을 길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부인되거나 미뤄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됩니다.
마지막으로 1919. 3. 1 독립선언으로 우리 민족은 자주함의 빛을 선언한 것이며, 이로써 빛으로 살지 못하던 현 인류 기준 60억은 빛을 찾아 항전에 나서게 되었고, 스스로 어둠의 삶을 살던 20억의 인류에게는 경종을 준 최초의 인권과 평화의 세계선언이었음은 [세계평화와 인류복지]를 위한 선언이라는 선언서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 민족도 본디 빛성을 회복하여 나가기 시작했고, 전 인류 또한 각처에서 그 빛길의 완수를 위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는 우리에게, 아니 인류에게 드리는 글입니다.
하나, 어쩌겠습니까? 이 빛이 둘로 나뉘어 있으니 말입니다. 인류는 반성해야 합니다.
1919년, 빛화의 원료를 우리 빛민족에게서 전수받아 태평양전쟁과 반파쇼전쟁에서 승전을 일구고 나서도 그 공은 잊은 채 마치 자신들의 빛의 승리인 양 이데올로기를 잣대로 민족을 나누어 전쟁의 참화를 겪게 하였으며, 참전하여 패전을 막아준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사하나 그 또한 당신들의 의무였음도 우리는 이미 압니다.
우리가 1905년 세계인들로부터 완전히 고립될 때 당신들은 대한제국에 있는 미국 공사관을 필두로 100% 모조리 한순간에 철수시켰고, 우리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워싱턴 특사, 헤이그 특사 등으로 민족문제를 돌파하려 했으나, 그 결과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요. 그로부터 우리는 각 본국 교회 등의 지원을 받는 외국인 선교사, 의사, 교사, 언론인, 문화인 등 약 6,000여 명의 지원만으로 강제점령 상태를 버티다가 그나마 1940년엔 그들마저 모조리 강제추방당하므로 완벽한 고립상태의 우리가 세계평화와 인류복지를 위해 1919. 3.1. 7~8,000여명의 순국을 수반한 선언만으로도 덕을 입은 그대들의 국제정세에 따른 6.25의 참전과 수고는 당연한 것이었고, 우리는 고마운 것이었음을 밝혀 둡니다.
이는 우리의 분단과 전쟁 그리고 지금의 이 상태에 그대들의 책임도 상당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그 1905년의 외면과 1045년의 무책임, 곧 일본의 분단이 아니라 피해국인 우리의 분단을 결정하다니 이런 결정은 수긍이 잘 안가는 것입니다.
이제 정리합니다.
김학순 우리 동대문교회 집사님의 고백을 기점으로 탄생한 이 소중한 기념일인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에 여기에 함께 한 이들이나 모두에게 성 삼위일체의 축복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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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 오타 1945.
오늘 8월 21일 위안부 소녀 기림예배에 CBS에서 취재하러 왔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