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대로 전하라
Author
함창석
Date
2024-07-3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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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대로 전하라
함창석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5-10)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 말을 함이나 그런 말이다. 주로 ‘거짓말처럼, 거짓말같이’ 꼴로 쓰여 전과는 아주 딴 판이다. 구라는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이야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거짓이나 가짜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거짓말은 성경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비난을 받는다. 그것은 모세 오경에서 직접적으로 금지되며(레 19:11; 참조. 6:2-7), 악함의 한 측면으로 살펴진다(시 58:3).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자를 미워하시며(잠 6:16-19; 12:19, 22),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시 5:6; 잠 19:5, 9). 십계명에서 거짓 증거의 금지(출 20:16; 신 5:20)는 합법적인 증거를 염두에 두고 있다. 거짓 고소와 거짓 증거를 경계하고 거짓 증인들을 다루는 규정이 모세 오경에 들어 있다(19:15-21; 참조. 출 23:1-8). 마찬가지로, 구어(口語)에 돌려지는 지속력 때문에, 맹세를 지지하였을 것이지만 거짓말은 되도록 허용치 않았을 것이다(레 19:12; 민 30:2; 참조. 출 20:7; 신 5:11).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이 말하려고 하는 진실성을 보증할 수 없다 하여 맹세를 금지하셨다(마 5:33-37; 참조. 23:16-22; 약 5:12). 거짓말은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전적으로 거들떠보지도 말라고 전한 행습에 속하는 것이다(엡 4:25; 골 3:9)거짓말과 속임은 최초부터 인간 본성을 나타내는 속성이다(예. 창 3:10; 4:9). 아브람은 바로에게 사래를 그의 누이라 속이고(12: 10-20; 참조. 20:2, 5;26: 7-11), 야곱은 형의 상속권을 속임을 통하여 획득한다(27:19, 24). 계략을 써서 기브온 거민들이 여호수아와 동맹을 맺는다(수 9:3-13). 삼손은 그의 힘의 근원에 관해 들릴라에게 거짓말을 한다(삿 16:7, 11, 13). 거짓말의 확산은 구약 애가들에 나오는 한 주제이다(시 12:2; 렘 9:3, 5; 참조. 시 62:4).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 또는 생존이 거짓말을 통하여 일어나게 되었다(예∙출 1:19-21; 수 2:4-5〔참조. 히 11:31〕; 삿 4: 18-21; 5:24-27). 다윗이 사울(삼상 21:2, 8, 13)과 압살롬을 도피하는 어떤 사건들도 그렇게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거짓말에 대한 비난은, 의식적이든지 또는 무의식적이든지, 정부의 목적에 야합하여 진리를 말하지 않는 그런 선지자들에 대한 참선지자의 고발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예. 왕상 22:19-23; 렘 5:31; 14:14; 23:14, 25-27, 32; 27:10, 14-16; 겔 13:3, 6, 8-12). 신약에서 거짓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요 8:44; 참조. 창 3:4)인 마귀와 관련이 있고 예수님을 좇는 자들에게 예상되는 핍박에 속하는 것이다(마 5:11). 거짓 선지자가 마지막 때에 일어날 것이며(24:11, 24; 막 13:22; 계 16:13; 19:20), 많은 사람들이 진리보다 오히려 거짓을 믿게 될 것이다(살후 2:9-12; 계 20:7-8).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런 분이신 것처럼(벧전 2:22) 진리에 맡기게 될 것이다(계 14:5; 21:27; 참조. 요일 2:21-27). 속이는 자 사단이 멸망 받게 되듯이(계 20:10) 거짓말쟁이도 멸망 받게 될 것이다(21:8; 22:15).
거짓말은 사실과 다르게 꾸며서 하는 말이다(왕상 22:22; 시 5:6; 렘 7:4; 골 3:9). 진리에서 나오지 않은 말이다. 거짓말하는 것은 마귀의 특징 중에 하나로(요일 2:22; 계 3:9) 진리이신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민 23:19; 히 6:18).(가스펠서브, 거짓말, 교회용어사전 : 교회 일상, 2013. 9.)
거짓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상대방에게 이것을 믿게 하려고 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하는 말이다. 말하는 본인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린이의 경우와 병적인 경우에는 그런 의식이 없다. 이런 점에서 거짓말을 '무의식적인 거짓말'과 '의식적인 거짓말'로 구분할 수 있다. 어린이의 경우에는 그 지능의 발달상태에 따라 거짓말의 내용이 달라진다. 유아는 상상과 현실의 구별을 분명히 할 수 없기 때문에 상상에 의한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어린이의 의식세계에서는 거짓말이 아니다. 아동의 거짓말은 ① 재미가 있어서 장난 삼아 하는 거짓말, ② 남의 이목을 끌어 자기의 존재를 돋보이게 하려는 거짓말, ③ 꾸중이나 벌을 받기가 두려워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거짓말, ④ 타인에게 뭔가 불쾌한 일을 당하여 보복적으로 하는 거짓말, ⑤ 뭔가 탐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한 거짓말, ⑥ 친구나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돕기 위한 거짓말 등으로 분류된다. 청년이나 성인의 거짓말은 그 동기가 복잡하지만, 때로는 거짓말도 하나의 방편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도덕적인 평가는 반드시 똑같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 원인은 명예심이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유아의 상상에 의한 거짓말에 대하여는 거짓말로서 취급하지 않는 태도, 즉 못 들은 체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아동의 거짓말에 대하여는 앞서 말한 ① ②에 해당되는 것은 상대하지 말고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고, ③에 대해서는 어린이를 그러한 입장으로 몰아넣는 일이 없도록 하며, ④ ⑤ ⑥에 대하여는 그러한 수단이 아닌 좀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지도해 주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병적인 거짓말로는 병적 히스테리 기질이 있는 사람이나 비행자(非行者)에게서 들을 수 있는 거짓말, 병적인 기억에 의하여 제멋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화증(作話症)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거짓말,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거짓 선지자는 자기 이익과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거짓을 예언하면서도 자칭 하나님의 계시를 전파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마 7:15; 24:11, 24; 행 13:6; 계 16:13). 구약 당시 거짓 선지자들을 예로 들면, 아람과의 전투에서 아합 왕이 승리할 것을 거짓으로 예언한 400명의 선지자들(왕상 22:6, 하지만 실제로는 미가야 선지자의 말대로 아합은 이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유다 왕국의 멸망을 선포하고 바벨론에게 항복을 종용한 예레미야 선지자를 오히려 거짓 선지자로 몰아붙여 체포한 바스훌(렘 20:1-6), 호세아, 아모스, 미가 선지자 때 하나님의 선지자와 대적한 거짓 선지자들(호 4:5; 암 7:10; 미 3:5-8), 구브로 섬의 바보(Paphos)에서 바나바와 바울의 복음 사역을 훼방했던 마술사 엘루마(행 13:6) 등이 있다. 이들 거짓 선지자들은 사악한 왕과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의 귀에 솔깃하며 구미에 당기는 예언을 하면서 왕과 백성들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보다 항상 우위에 있었다(렘 5:31).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을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나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마 7:15)라 하였고, 열매(삶의 행실)로 이들을 판단하여 미혹되지 말도록 경고하셨다(마 7:16-20; 12:33-37). 한편 거짓 선지자들은 거짓 교사, 거짓 사도, 거짓 그리스도와 함께 사탄의 하수인으로 규정되는데(계 13:12-14; 19:20) 따라서 이들은 말세에 사탄과 함께 영원한 형벌, 곧 지옥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가스펠서브, 거짓 선지자,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거짓 증거는 법정에서 거짓으로 증언하여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고 손해를 끼치는 일이다. 위증(僞證). 거짓 증거는 율법에서 엄히 금지되어 있다(출 20:16; 23:1; 신 5:20). 이들 위증자들은 거짓을 말할 뿐만 아니라(잠 6:19; 12:17), 무고한 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잔인무도하기 때문에(잠 25:19), 그 결과는 처참한 멸망뿐이다(잠 21:28). 따라서 피고인을 해치려고 위증하다 진실이 밝혀지면 위증자는 피고가 받을 형벌을 자신이 감수해야 했다(신 19:16-21). 이세벨의 사주로 나봇을 죽음에 이르게 한 아합 왕 때의 비류들(왕상 21:13), 아모스 선지자 때 벧엘 제사장 아마샤(암 7:10-17), 종교 지도자들의 사주를 받고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대적하여 거짓 증거한 유대인들(마 26:59-61), 법정에서 스데반을 모함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거짓 증인들(행 6:11, 13), 바울을 모함하여 기소한 유대인들의 변호사 더둘로(행 24:1-9)는 성경에 언급된 대표적인 거짓 증인들이다.(가스펠서브, 거짓 증거,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이단은 정통 학파나 종파에서 벗어나 다른 학설을 주장하는 일이나 교파이다. 헬라어 원어 '하이레시스'의 기본 의미는 '선택, 의견'으로, 단순히 ① '분파', '파' 등을 일컫는 경우(행 22:22)와 ② '교회 내에서의 편당'(고전 11:19)을 뜻하는 경우, ③ '다른 교리를 주장하는 이단'(벧후 2:1) 등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초기교회 때 기독교는 당시의 정통 종교라 할 수 있는 유대교에 의해 '이단'으로 불렸다(행 24:14; 28:22). 또한, 그릇된 교훈을 가르치는 '이단'을 의미하는 또 다른 원어 '하이레티코스'는 '하이레오'(선택하다)와 '헤테로스'(다른)의 합성어로, '다른 것을 선택하다'는 뜻인데, 이는 복음 이외의 다른 가르침을 가르치거나 좇는 행위를 일컫는다(딛 3:10). 오늘날 '이단'이란 표현은 거의 대부분 성경의 근본 진리 곧 복음에서 떠나 다른 복음을 좇거나 교회 내에서 당파심을 불러 일으켜 교회의 분란을 조성하는 경우에 국한해서 사용된다. 성경은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이단'을 '거짓 선지자'(마 7:15), '사나운 이리'(행20:29),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갈 2:4),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빌 3:18), '발람의 길을 따름'(벧후 2:15; 유 1:11), '가만히 들어온 사람'(유 1:4), '가인의 길에 행함'(유 1:11), '고라의 패역을 따름'(유 1:11), '적그리스도'(요일 2:18), '거짓 선생'(벧후 2:1), '자칭 사도'(계 2:2), '자칭 유대인'(계 2:9), '자칭 선지자'(계 2:20), '사탄의 회당'(계 3:9) 등이라 했다.(가스펠서브, 이단, 교회용어사전 : 교리 및 신앙, 2013. 9.)
설교는 교리·종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거나 신도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경전 등을 풀어 이야기하는 행위이다. 가톨릭교에서는 '강론', 불교에서는 '설법·설계·설경'이라고 한다. 설교란, 주로 프로테스탄트 쪽에서 쓰는 말이며 각 종교마다 용어가 다른데, 설교는 구약시대의 예언자의 전통과 회당 예배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증언한 초기교회에서는, 성찬과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예배의 요소가 되었다. 가톨릭에서는 예배(미사)가 제의(祭儀) 중심이어서 설교에 중점을 두지 않는 데 반하여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설교를 가장 중요시한다. 설교가 예배에서 가지는 의미는 설교자의 사상을 전개하거나 도덕적인 어떤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성서가 증언한 진리를 나타냄에 있다. 설교는 신도들로 하여금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험하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여 사죄의 은총을 덧입게 하여 새로운 자세로, 새사람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하려는 데 있다. 설교에는 권위가 있어야 하며, 설교자는 모름지기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만 한다. 설교 방법에는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설교하는 강해설교, 어떤 제목을 중심으로 하여 설교하는 주제설교를 비롯하여, 윤리적인 설교, 변증적인 설교, 교리적인 설교, 간증 설교 등으로 나눌 수 있다.(설교,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간혹 주일예배 시간에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 설교를 간증으로 대신하는 교회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설교'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법을 선포하는 예배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이에 비해, '간증'은 지은 죄를 자백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신앙 행위이다. 따라서 간증은 개인의 주관적 체험이 지나치게 강조될 수 있고, 성경적 근거가 미약할 수 있다. 또한 신학적 검증이 부실하며 자칫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감을 강조하여 영적 권위를 과시하는 실수를 범할 우려가 크다. 결국, 공예배의 설교 시간에 유명 연예인이나 저명한 인사들을 초청하여 간증으로 대신하는 것은 예배를 그르칠 위험이 있다. 예배 시간에는 계시의 표준인 설교를 대신하는 어떤 간증도 삼가야 한다. 다만, 개인의 신앙 체험인 간증이 하나님의 능력과 존재를 확인시켜 주어 믿음 생활에 활력을 주는 긍정적 면도 있기 때문에, 굳이 필요하다면 특별 집회 등을 통해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바른 처사일 것이다.
설교는 종교의 교리를 설명함이나 그런 설명이다. 어떤 일의 견해나 관점을 다른 사람이 수긍하도록 단단히 타일러서 가르침이나 그런 가르침이다. 說자는 뜻을 나타내는 말씀언(言 말씀)部와 음을 나타내는 글자 兌(열)로 이루어ㄷ진다. 말(≒言)로 나타낸다는 뜻이 합하여 「말씀」을 뜻한다. 八(팔)은 분산하는 일, 兄(형)은 입의 움직임을 일컬음이다. 음을 나타내는 글자 兌(탈ㆍ열)은 큰소리를 질러 화락함이다, 나중에 기뻐함에는 悅(열)이라고 쓰고, 말로 그것은 무엇, 이것은 무엇이라고 구별함을 說(설)이라고 쓴다. 兌자는 입을 벌려 웃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기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입을 벌린 모습을 그린 兌자에 言자가 결합한 說자는 누군가에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說자는 주로 ‘이야기하다’나 ‘서술하다’, ‘유세하다’와 같이 입을 벌려 크게 말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敎자는 爻(효 배움)와 부수 글자 攵(=회초리)의 합자이다. 회초리로 쳐서 가르쳐 배우게 함의 뜻이다. 한자에서 爻자는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하나는 ‘배우다’이다. 學(배울 학)자가 그러하다. 다른 하나는 단순한 모양자로 쓰이는 경우이다. 希(바랄 희)자가 그러하다. 여기에 쓰인 爻자는 ‘배움’이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敎자는 이렇게 ‘배우다’라는 뜻을 가진 爻자에 子자와 攵자를 결합한 것으로 ‘아이가(子) 공부를(爻) 하도록 하다(攵)’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敎자는 회초리를 들어 아이를 가르친다는 뜻이다. 고대에는 이것을 ‘가르침’이라 했다. 그래서 글자의 구성으로만 본다면 改(고칠 개)자와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敎자에는 爻자가 있으니 이것은 공부와 관련된 글자이다.
강해설교는 성경 본문의 문맥에 맞는 역사적, 문법적, 문학적 연구를 통하여 얻어지고 전달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설교이다. 설교의 준비단계는 설교할 본문을 확정하고 설교의 길이에 유의해야 한다. 설교는 인간의 노력과 함께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이 도움은 강단에 섰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본문을 정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의미를 찾고 전달하는 전과정에서도 대단히 필요하다.
함창석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5-10)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 말을 함이나 그런 말이다. 주로 ‘거짓말처럼, 거짓말같이’ 꼴로 쓰여 전과는 아주 딴 판이다. 구라는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이야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거짓이나 가짜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거짓말은 성경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비난을 받는다. 그것은 모세 오경에서 직접적으로 금지되며(레 19:11; 참조. 6:2-7), 악함의 한 측면으로 살펴진다(시 58:3).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자를 미워하시며(잠 6:16-19; 12:19, 22),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시 5:6; 잠 19:5, 9). 십계명에서 거짓 증거의 금지(출 20:16; 신 5:20)는 합법적인 증거를 염두에 두고 있다. 거짓 고소와 거짓 증거를 경계하고 거짓 증인들을 다루는 규정이 모세 오경에 들어 있다(19:15-21; 참조. 출 23:1-8). 마찬가지로, 구어(口語)에 돌려지는 지속력 때문에, 맹세를 지지하였을 것이지만 거짓말은 되도록 허용치 않았을 것이다(레 19:12; 민 30:2; 참조. 출 20:7; 신 5:11).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이 말하려고 하는 진실성을 보증할 수 없다 하여 맹세를 금지하셨다(마 5:33-37; 참조. 23:16-22; 약 5:12). 거짓말은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전적으로 거들떠보지도 말라고 전한 행습에 속하는 것이다(엡 4:25; 골 3:9)거짓말과 속임은 최초부터 인간 본성을 나타내는 속성이다(예. 창 3:10; 4:9). 아브람은 바로에게 사래를 그의 누이라 속이고(12: 10-20; 참조. 20:2, 5;26: 7-11), 야곱은 형의 상속권을 속임을 통하여 획득한다(27:19, 24). 계략을 써서 기브온 거민들이 여호수아와 동맹을 맺는다(수 9:3-13). 삼손은 그의 힘의 근원에 관해 들릴라에게 거짓말을 한다(삿 16:7, 11, 13). 거짓말의 확산은 구약 애가들에 나오는 한 주제이다(시 12:2; 렘 9:3, 5; 참조. 시 62:4).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 또는 생존이 거짓말을 통하여 일어나게 되었다(예∙출 1:19-21; 수 2:4-5〔참조. 히 11:31〕; 삿 4: 18-21; 5:24-27). 다윗이 사울(삼상 21:2, 8, 13)과 압살롬을 도피하는 어떤 사건들도 그렇게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거짓말에 대한 비난은, 의식적이든지 또는 무의식적이든지, 정부의 목적에 야합하여 진리를 말하지 않는 그런 선지자들에 대한 참선지자의 고발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예. 왕상 22:19-23; 렘 5:31; 14:14; 23:14, 25-27, 32; 27:10, 14-16; 겔 13:3, 6, 8-12). 신약에서 거짓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요 8:44; 참조. 창 3:4)인 마귀와 관련이 있고 예수님을 좇는 자들에게 예상되는 핍박에 속하는 것이다(마 5:11). 거짓 선지자가 마지막 때에 일어날 것이며(24:11, 24; 막 13:22; 계 16:13; 19:20), 많은 사람들이 진리보다 오히려 거짓을 믿게 될 것이다(살후 2:9-12; 계 20:7-8).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런 분이신 것처럼(벧전 2:22) 진리에 맡기게 될 것이다(계 14:5; 21:27; 참조. 요일 2:21-27). 속이는 자 사단이 멸망 받게 되듯이(계 20:10) 거짓말쟁이도 멸망 받게 될 것이다(21:8; 22:15).
거짓말은 사실과 다르게 꾸며서 하는 말이다(왕상 22:22; 시 5:6; 렘 7:4; 골 3:9). 진리에서 나오지 않은 말이다. 거짓말하는 것은 마귀의 특징 중에 하나로(요일 2:22; 계 3:9) 진리이신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민 23:19; 히 6:18).(가스펠서브, 거짓말, 교회용어사전 : 교회 일상, 2013. 9.)
거짓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상대방에게 이것을 믿게 하려고 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하는 말이다. 말하는 본인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린이의 경우와 병적인 경우에는 그런 의식이 없다. 이런 점에서 거짓말을 '무의식적인 거짓말'과 '의식적인 거짓말'로 구분할 수 있다. 어린이의 경우에는 그 지능의 발달상태에 따라 거짓말의 내용이 달라진다. 유아는 상상과 현실의 구별을 분명히 할 수 없기 때문에 상상에 의한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어린이의 의식세계에서는 거짓말이 아니다. 아동의 거짓말은 ① 재미가 있어서 장난 삼아 하는 거짓말, ② 남의 이목을 끌어 자기의 존재를 돋보이게 하려는 거짓말, ③ 꾸중이나 벌을 받기가 두려워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거짓말, ④ 타인에게 뭔가 불쾌한 일을 당하여 보복적으로 하는 거짓말, ⑤ 뭔가 탐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한 거짓말, ⑥ 친구나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돕기 위한 거짓말 등으로 분류된다. 청년이나 성인의 거짓말은 그 동기가 복잡하지만, 때로는 거짓말도 하나의 방편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도덕적인 평가는 반드시 똑같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 원인은 명예심이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유아의 상상에 의한 거짓말에 대하여는 거짓말로서 취급하지 않는 태도, 즉 못 들은 체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아동의 거짓말에 대하여는 앞서 말한 ① ②에 해당되는 것은 상대하지 말고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고, ③에 대해서는 어린이를 그러한 입장으로 몰아넣는 일이 없도록 하며, ④ ⑤ ⑥에 대하여는 그러한 수단이 아닌 좀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지도해 주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병적인 거짓말로는 병적 히스테리 기질이 있는 사람이나 비행자(非行者)에게서 들을 수 있는 거짓말, 병적인 기억에 의하여 제멋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화증(作話症)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거짓말,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거짓 선지자는 자기 이익과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거짓을 예언하면서도 자칭 하나님의 계시를 전파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마 7:15; 24:11, 24; 행 13:6; 계 16:13). 구약 당시 거짓 선지자들을 예로 들면, 아람과의 전투에서 아합 왕이 승리할 것을 거짓으로 예언한 400명의 선지자들(왕상 22:6, 하지만 실제로는 미가야 선지자의 말대로 아합은 이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유다 왕국의 멸망을 선포하고 바벨론에게 항복을 종용한 예레미야 선지자를 오히려 거짓 선지자로 몰아붙여 체포한 바스훌(렘 20:1-6), 호세아, 아모스, 미가 선지자 때 하나님의 선지자와 대적한 거짓 선지자들(호 4:5; 암 7:10; 미 3:5-8), 구브로 섬의 바보(Paphos)에서 바나바와 바울의 복음 사역을 훼방했던 마술사 엘루마(행 13:6) 등이 있다. 이들 거짓 선지자들은 사악한 왕과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의 귀에 솔깃하며 구미에 당기는 예언을 하면서 왕과 백성들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보다 항상 우위에 있었다(렘 5:31).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을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나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마 7:15)라 하였고, 열매(삶의 행실)로 이들을 판단하여 미혹되지 말도록 경고하셨다(마 7:16-20; 12:33-37). 한편 거짓 선지자들은 거짓 교사, 거짓 사도, 거짓 그리스도와 함께 사탄의 하수인으로 규정되는데(계 13:12-14; 19:20) 따라서 이들은 말세에 사탄과 함께 영원한 형벌, 곧 지옥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가스펠서브, 거짓 선지자,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거짓 증거는 법정에서 거짓으로 증언하여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고 손해를 끼치는 일이다. 위증(僞證). 거짓 증거는 율법에서 엄히 금지되어 있다(출 20:16; 23:1; 신 5:20). 이들 위증자들은 거짓을 말할 뿐만 아니라(잠 6:19; 12:17), 무고한 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잔인무도하기 때문에(잠 25:19), 그 결과는 처참한 멸망뿐이다(잠 21:28). 따라서 피고인을 해치려고 위증하다 진실이 밝혀지면 위증자는 피고가 받을 형벌을 자신이 감수해야 했다(신 19:16-21). 이세벨의 사주로 나봇을 죽음에 이르게 한 아합 왕 때의 비류들(왕상 21:13), 아모스 선지자 때 벧엘 제사장 아마샤(암 7:10-17), 종교 지도자들의 사주를 받고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대적하여 거짓 증거한 유대인들(마 26:59-61), 법정에서 스데반을 모함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거짓 증인들(행 6:11, 13), 바울을 모함하여 기소한 유대인들의 변호사 더둘로(행 24:1-9)는 성경에 언급된 대표적인 거짓 증인들이다.(가스펠서브, 거짓 증거,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이단은 정통 학파나 종파에서 벗어나 다른 학설을 주장하는 일이나 교파이다. 헬라어 원어 '하이레시스'의 기본 의미는 '선택, 의견'으로, 단순히 ① '분파', '파' 등을 일컫는 경우(행 22:22)와 ② '교회 내에서의 편당'(고전 11:19)을 뜻하는 경우, ③ '다른 교리를 주장하는 이단'(벧후 2:1) 등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초기교회 때 기독교는 당시의 정통 종교라 할 수 있는 유대교에 의해 '이단'으로 불렸다(행 24:14; 28:22). 또한, 그릇된 교훈을 가르치는 '이단'을 의미하는 또 다른 원어 '하이레티코스'는 '하이레오'(선택하다)와 '헤테로스'(다른)의 합성어로, '다른 것을 선택하다'는 뜻인데, 이는 복음 이외의 다른 가르침을 가르치거나 좇는 행위를 일컫는다(딛 3:10). 오늘날 '이단'이란 표현은 거의 대부분 성경의 근본 진리 곧 복음에서 떠나 다른 복음을 좇거나 교회 내에서 당파심을 불러 일으켜 교회의 분란을 조성하는 경우에 국한해서 사용된다. 성경은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이단'을 '거짓 선지자'(마 7:15), '사나운 이리'(행20:29),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갈 2:4),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빌 3:18), '발람의 길을 따름'(벧후 2:15; 유 1:11), '가만히 들어온 사람'(유 1:4), '가인의 길에 행함'(유 1:11), '고라의 패역을 따름'(유 1:11), '적그리스도'(요일 2:18), '거짓 선생'(벧후 2:1), '자칭 사도'(계 2:2), '자칭 유대인'(계 2:9), '자칭 선지자'(계 2:20), '사탄의 회당'(계 3:9) 등이라 했다.(가스펠서브, 이단, 교회용어사전 : 교리 및 신앙, 2013. 9.)
설교는 교리·종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거나 신도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경전 등을 풀어 이야기하는 행위이다. 가톨릭교에서는 '강론', 불교에서는 '설법·설계·설경'이라고 한다. 설교란, 주로 프로테스탄트 쪽에서 쓰는 말이며 각 종교마다 용어가 다른데, 설교는 구약시대의 예언자의 전통과 회당 예배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증언한 초기교회에서는, 성찬과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예배의 요소가 되었다. 가톨릭에서는 예배(미사)가 제의(祭儀) 중심이어서 설교에 중점을 두지 않는 데 반하여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설교를 가장 중요시한다. 설교가 예배에서 가지는 의미는 설교자의 사상을 전개하거나 도덕적인 어떤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성서가 증언한 진리를 나타냄에 있다. 설교는 신도들로 하여금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험하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여 사죄의 은총을 덧입게 하여 새로운 자세로, 새사람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하려는 데 있다. 설교에는 권위가 있어야 하며, 설교자는 모름지기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만 한다. 설교 방법에는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설교하는 강해설교, 어떤 제목을 중심으로 하여 설교하는 주제설교를 비롯하여, 윤리적인 설교, 변증적인 설교, 교리적인 설교, 간증 설교 등으로 나눌 수 있다.(설교,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간혹 주일예배 시간에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 설교를 간증으로 대신하는 교회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설교'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법을 선포하는 예배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이에 비해, '간증'은 지은 죄를 자백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신앙 행위이다. 따라서 간증은 개인의 주관적 체험이 지나치게 강조될 수 있고, 성경적 근거가 미약할 수 있다. 또한 신학적 검증이 부실하며 자칫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감을 강조하여 영적 권위를 과시하는 실수를 범할 우려가 크다. 결국, 공예배의 설교 시간에 유명 연예인이나 저명한 인사들을 초청하여 간증으로 대신하는 것은 예배를 그르칠 위험이 있다. 예배 시간에는 계시의 표준인 설교를 대신하는 어떤 간증도 삼가야 한다. 다만, 개인의 신앙 체험인 간증이 하나님의 능력과 존재를 확인시켜 주어 믿음 생활에 활력을 주는 긍정적 면도 있기 때문에, 굳이 필요하다면 특별 집회 등을 통해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바른 처사일 것이다.
설교는 종교의 교리를 설명함이나 그런 설명이다. 어떤 일의 견해나 관점을 다른 사람이 수긍하도록 단단히 타일러서 가르침이나 그런 가르침이다. 說자는 뜻을 나타내는 말씀언(言 말씀)部와 음을 나타내는 글자 兌(열)로 이루어ㄷ진다. 말(≒言)로 나타낸다는 뜻이 합하여 「말씀」을 뜻한다. 八(팔)은 분산하는 일, 兄(형)은 입의 움직임을 일컬음이다. 음을 나타내는 글자 兌(탈ㆍ열)은 큰소리를 질러 화락함이다, 나중에 기뻐함에는 悅(열)이라고 쓰고, 말로 그것은 무엇, 이것은 무엇이라고 구별함을 說(설)이라고 쓴다. 兌자는 입을 벌려 웃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기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입을 벌린 모습을 그린 兌자에 言자가 결합한 說자는 누군가에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說자는 주로 ‘이야기하다’나 ‘서술하다’, ‘유세하다’와 같이 입을 벌려 크게 말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敎자는 爻(효 배움)와 부수 글자 攵(=회초리)의 합자이다. 회초리로 쳐서 가르쳐 배우게 함의 뜻이다. 한자에서 爻자는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하나는 ‘배우다’이다. 學(배울 학)자가 그러하다. 다른 하나는 단순한 모양자로 쓰이는 경우이다. 希(바랄 희)자가 그러하다. 여기에 쓰인 爻자는 ‘배움’이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敎자는 이렇게 ‘배우다’라는 뜻을 가진 爻자에 子자와 攵자를 결합한 것으로 ‘아이가(子) 공부를(爻) 하도록 하다(攵)’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敎자는 회초리를 들어 아이를 가르친다는 뜻이다. 고대에는 이것을 ‘가르침’이라 했다. 그래서 글자의 구성으로만 본다면 改(고칠 개)자와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敎자에는 爻자가 있으니 이것은 공부와 관련된 글자이다.
강해설교는 성경 본문의 문맥에 맞는 역사적, 문법적, 문학적 연구를 통하여 얻어지고 전달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설교이다. 설교의 준비단계는 설교할 본문을 확정하고 설교의 길이에 유의해야 한다. 설교는 인간의 노력과 함께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이 도움은 강단에 섰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본문을 정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의미를 찾고 전달하는 전과정에서도 대단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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