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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독교대한감리회 영적 기상도를 본다.

Author
오재영
Date
2024-07-27 13:26
Views
1763
위의 제목으로 6년 전(2018년 12월 13일 자 당당뉴스와 감게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18C, 미국 교회를 구한 사람으로 교회사에 인정받는 ‘조나단 에드워즈’는 자신이 사는 시대를 그리 평했다. “이 시대의 가장 커다란 죄악(罪惡)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것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배우에게는 외운 대사까지 책임을 묻지 않는다. 자신이 그 대사대로 살아야 할 의무는 더더욱 없다. 그가 말한 대사(臺詞)는 무대의 막(幕)이 내리는 것과 동시에 끝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도자(求道者)요 성직자(聖職者)를 비롯한 크리스천은 배우가 아니다. 이교도들에게 성도(聖徒)라 일컬어지는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기만 하는 이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으로 증언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염려케 하는 사람들...

지금 우리와 공존하는 현장에는 각자의 신앙을 따라 믿고 따르는 수많은 여러 종교들이 있다. 학자들에 의하면 종교학에서는 수많은 종교를 고등 종교와 하등 종교로 구분한다. 그리고 구분하는 기준을 그들은 자기부인(自己否認)에 둔다. 즉 해당 종교에 자기 부인이 있으면 고등 종교로, 없으면 그 어떠한 희생과 열정에 상관없이 미신에 불과한 하등 종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정리한다. 이들이 기준으로 제시하는 자기부인(自己否認)이란, 자신이 추구하는 영원한 가치를 위하여 자기 욕망을 내려놓음을 말한다. 즉 자기가 믿는 종교가 표방하는 영원한 가치를 위하여 자신의 욕망이 부인 되고 있다면, 그는 고등 종교를, 자기 부인처럼 보이지만 그 모두가 자기 욕망의 성취를 위하여 따르고 있다면 그 어떠한 형태와 관계없이 아무리 거대한 건물에 金색과 銀색을 칠하여도 그 종교는 하등 종교에 속하는 미신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

문제는 이처럼 영원한 가치를 위하여 존재하며 세대를 이어 영향을 끼치는 고등 종교에도 겪게 되는 위기가 있는데, 그 위기의 때에 예외 없이 나타나게 되는 공통적인 현상이 있다. 그 현상 중 하나가 어느 순간 갑자기 그 종교에 성직자가 급증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고려 말 불교가 타락했을 때 온 고려 땅이 중(僧) 천지였음은 역사가 기록하고 있으며, 지금도 종종 등장하는 티베트의 라마 불교의 타락 시에는 티베트 남자의 70%가 승려였으며, 가톨릭의 부패가 극심했을 때인 1830년대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륙에 신부들이 넘쳐 남으로 그 당시의 똑똑한 유럽 청년들은 적(赤)과 흑(黑)을 놓고 고민을 했다. 즉 적(赤)은 가톨릭 사제의 붉은 성의를, 흑(黑)은 판사의 법복을 의미하므로 당시 유럽청년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성취함에 가톨릭 사제와 판사 중 어느 쪽이 자신에게 더 이익이 되는지 저울질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제가 되어도 얼마든지 축첩(蓄妾)을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성직자가 갑자기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 종교에 책임 있는 지도자들로부터 자기부인(自己否認)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인정을 받으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누리려는 욕망이 있다. 이처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자신의 욕망을 자기가 따르는 영원한 가치를 위하여 모든 것 내려놓고 희생하고 섬기는 자리에서 구도자(求道者)의 본을 보이며 산다는 것은 이론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그처럼 자기부인이 정당하게 요구되고, 바르게 행해지고 있다면 그 종교에 그러한 성직을 지망하는 이가 갑자기 급증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교단도 같은 위기인데, 우리의 미래의 희망이어야 할 신학교가 불편한 진실이지만, 자신들의 소명과는 상관없이 일반 대학 진학의 좁고도 좁은 과정을 피하여 좀 더 쉬운 상대로 신학대학을 지망한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재철 , 비전의 사람, 참조)

시대의 풍랑에 방향 잃고 난파선(難破船)된 우리감리교회

역사는 반복되는가? 좋은 일 뿐 아니라 불행도 반복된다. 우리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처한 오늘의 위기는 교조 존 웨슬리가 하나님께 부름 받았던 과거 18세기 영국 사회와 너무나 흡사하다. 무능한 국가의 지도자들, 삶에 절망한 서민들의 알 콜 중독, 아프리카의 흑인들에 대한 노예 사냥과 매매. 노예로 팔기 위한 인신납치. 빈민가 어린이들의 높은 유아사망률. 유흥을 위한 심한 동물 학대, 보편화된 놀음. 감옥의 잔혹한 규칙과 피비린내 나는 형법과 풍기 문란. 극장의 퇴폐적인 영업. 무법한 무정부상태. 외설적인 사회분위기. 정치의 부패와 공직자의 뇌물수수. 성직자의 오만과 횡포. 이신론(理神論)의 유행. 위선과 타락 등등이 그 당시의 영국사회에 대한 모습들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무려160여 가지의 죄목으로 범죄자들을 길거리에서 수시로 공개교수형에 처형하는 공포정치, 이처럼 공개적으로 교수형에 처형하는 죄목들 중에는 오늘날 경범죄에 해당하는 죄목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엄격한 법들이 그 당시의 잃어버린 사회 질서와 도덕을 회복시키지 못했다. 더욱이 극심한 타락의 배경에는 그 당시 기독교가 국교이면서도 사회에 본을 보여야 할 고위 성직자들의 일탈된 행동들이 한몫을 하였다. 이처럼 사람들이 육적肉的, 명목상의 형식적인 교회 생활로 영적인 기류가 급랭하고 있을 때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여우 사냥을 다니며 부유한 이들의 파티에 참석 하는 등, 사교 생활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성찬과 예배에 대한 거룩한 경외심은 사라지고 예배 시간에 조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가정 예배와 교리교육. 성경 읽기 등의 경건한 삶이 자취를 감추고, 야비하고 조잡한 언행이 교인들 가운데서도 일상적이 되어버렸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참담한 현실들

영성이 희박하고 거룩함이 소멸되니 별 희한한 이들이 등장을 한다.
이제는 벌거벗고 춤추는 이들을 목사의 신분으로 축복한 것이 무슨 잘못이냐며 거대한 프랑카드 앞세우고 사진과 방송에 나타남을 자랑스러워하는 모습들이다. 이들을 제재하고 바로잡아야 할 각 연회의 감독과 감독회장으로 선택을 기대하는 이들의 모습은 더 황당하다. 옛말에 뭐( 犬)눈에는 뭐만 보인다 더니 이들은 교단의 성직이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길로 보이는 모양이다.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성직(聖職)에, 고위직(高位職), 하위직(下位職)이 있는가? 명심하라, 성직은 함부로 욕심 부려 쟁취하는 자리가 아니다. 맡겨주시면 섬기고, 거부되면, 각자 부름 받은 위치에서 분수에 따라 섬기는 것이다.

지금, 당당의 뉴스대로 고발장 접수한 이들은 즉시 취하하고 기도하며 진행하라. 나의 생각은 벌거벗고 춤추는 이들을 축복권 이라도 있는 듯, 축복한 이들이나 같은 부류의 동급으로 본다. 그리고, 또 감독 회장이 되면 무얼 하려고? 당나라 황제처럼, 곤룡포 휘날리며 한껏 위세 부리려고? 지난 날 이어온 주변을 돌아보라. 그 자리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함부로 추구하다 교단에 폐를 끼치고, 자신과 가정이 얼마나 비참한 패가망신으로 끝났는지를... 모두가 엄위 앞에 ‘경거망동’ 함으로 사탄의 덫에 걸려 비명 횡사한 이들이다.

절망의 시대에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사람.

중세시대 교황을 비롯하여 성직자들과 추종자들의 온갖 부패와 타락으로 가톨릭이 허물어지고, 한편으로는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이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소수의 예수회 신부인 이그나시우스 로욜라를 비롯한 일곱 명의 수사들이 주님 앞에 자신들의 생명을 걸고 서약을 했다. 언제나 소명 있는 구도자라면 가슴 떨리는 서약으로 “하나님의 뜻이라면, 세계 어느 곳으로나 시체처럼 운반이 되고, 맹인의 지팡이가 되겠습니다...” 이들의 발자취가 암흑의 땅 조선에도 양화진의 새남터에 수 많은 피(血)를 뿌리고, 서강대학교를 세웠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목회자의 길은 자기 스스로의 죽음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죽는 곳에서는 신자들이 살고, 목회자가 사는 곳에서는 신자들이 죽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기 죽음의 길을 가야 하는 그 이유도 목회자의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롤 모델인 사도바울의 고백이다.(고후4:12절).누구나 진리를 입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지만 그가 말한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일은 매 순간, 피를 흘려야 하는 일이기에 쉽지 않다. 반면에 진리에서 이탈 된 이들의 잘못된 생각은 오로지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진리를 선택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그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어야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글을 마치며...

우리가 두려워할 일이 있다. 같은 동포로 우리의 70여년전, 굶주림처럼 기아에서 허덕이는 북녘 땅 2 천만 동포들, 그중 일부 그리스도인들 의 눈물의 호소가 지금도 하늘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의 사명을 고민하는가? 교회는 신자들의 어머니라 한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양육 된다. 책임을 맞고자 하는 이들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 주님께 받은 응답 확실하지 않으면 함부로 추태(醜態)들 부리지 말라. 성서를 인용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마음이나,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鬱憤)한자와 동행하지말지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질까 두려움이니라.(잠22:24-25)”는 말씀이 있다.

스티브 옥포드의 말처럼, “그리스도인의 리더십이란, 꿇은 무릎, 젖은 눈, 깨어진 심장에 있다.”고 했다. 그 외의 정도를 벗어난 행태는 본인을 비롯한 관계된 모두의 불행이다.



Total Reply 6

  • 2024-07-28 16:19

    오 목사님
    게시하신 내용을 통해 현황에 대한 고민과 이를 극복하고 대안을 찾으시려는 노력에 저는 박수를 보냅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는 ‘종교’와 ‘영성’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흔히 ‘세계 4대 종교’ 혹은 ‘종교학과’ 혹은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이런 단어가 매개로 되어 기독교와 다른 종교, 이단, 그리고 심지어 잡신 샤머니즘 무당들이 한 묶음이나 동류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창조주이신 하늘의 하나님과 이방 잡신을 동류로 어깨동무시키는 인간의 타락입니다. 또한 로마카톨릭과 개혁교회가 일치한다고 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은 현재 이를 넘어서서 “모든 종교에 다 구원이 있다.”라는 식으로 자신도 결코 뭐가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허황한 다른 종교들의 교리까지 헛소리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무식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입을 다무는게 좋으련만, TV에서 채널을 돌리면 기독교-불교-원불교-로마카톨릭-샤머니즘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세상은 이를 동류로 분류하고 혹은 골라 먹는 요리 중 하나로 취급합니다.

    ㈏ 성직자란? 적어도 신과 그들이 믿는 종교 교리에 귀의해 종교적 직분을 맡은 자들입니다. 하나 종교와 성직자 본연의 임무를 저버리고 탐욕에 빠져 있다면, 이미 그들이 숭배해 따르는 음욕, 물욕, 그리고 권력욕을 지배하는 마귀가 그들의 주인이고 이들은 그 종입니다. 불행하게도 어떤 자는 곁으로 성물 성의와 성사라고 내세우는지만, 내면의 영과 혼이 타락한, “성직자로 위장한 거짓 종교인”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이 거짓 교리로 만든 신을 인형처럼 하나씩 손에 들었지만, 신도들과 창조주이신 하늘의 하나님을 함께 등치고 조롱하는 거짓 종교에 불과합니다.

    ㈐ 감리회 안에 동성애자를 지지하는 시위대 구호가 “살인자를 위해서도 기도하는데, 동성애자 축복은 왜 안 되나 ?”인데, 이것이 정녕 그들의 신학과 철학 사상이 맞습니까? 만일 어떤 이가 <❶성의, 성직 신분을 내세우며 공개적으로 살인자를 축복하고 ❷살인 교리를 연구해 세미나로 공유하거나 집회하고 ❸다른 교인과 교회를 살인 의식에 끌어들이고자 전도하고 ❹더 나은 더 잦은 더 많은 살인을 권고하고 ❺“살인은 더 이상 죄가 아니다.”>라고 설교한다면, 나는 이를 <사탄교>로 보아 즉시 손절하겠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 성도가 살인을 혐오하면 안 되나? 만일 성도가 이를 혐오하면 그에게 사랑이 없는 것인가? 성도가 이를 선과 악으로 나누어 차별하면 안 되나?

    ㈑ 과거 한반도에 기독교 교회를 씨뿌리던 선교사들의 유업과 믿음의 선진들의 서울 대부흥, 평양 대부흥, 원산 대부흥의 영화는 이미 곳곳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느8: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9:1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2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3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 감리회의 회복은 오로지 말씀으로 되돌아가 회개를 하는 겁니다. 참담하게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을 앞에 둔 느헤미야와 에스라처럼, 성경 말씀에 기초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수단과 방식은 다 가짜입니다. 이는 성직자뿐만 아니라 모든 감리회원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 2024-07-28 17:57

    엄장로님은 안끼시는 게 좋아요.

    은퇴한 원로목사님은 훌륭한 목사고..
    요즘 목사들은 너무 많고 훌륭하지 안다고 하니까.. 사단이 나는 것이죠..
    한쪽이 과하면, 다른 한쪽도 과하게 되고, 그렇게 몇 싸이클 돌면.. 망합니다.

    오목사님이 연일 비판하는 여러 목사님들 중에,
    저는 다른 분은 잘 모르고..
    남목사님, 박목사님이.. 과연 맞고만 있을까요?

    교회법을 거치지 않고, 사회법으로 직행하는.. 요건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이 분들은 사회법으로 직행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투는 당사자들이, 법률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입니다.
    본인은 직무 관련성을 주장하겠지만, 그것은 교회 재판을 할 때나 가능한 이야기죠..
    결정적으로, '총특재 판결'과 '11민사부 판결' - 쉽지 않을 겁니다.
    입증은 본인 책임이고, 입증하지 못하면 배임인데, 누가 총대를 메줄까요?

    당사자마다, 재판 2-3건에 2-3년 걸리면..??

    제가 평생 경멸하는 자들이..
    남의 자식은 데모에 앞장 세우고, 자기 자식은 유학 보내는 자들입니다.
    싸우려면, 자기가 먼저 싸워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은퇴까지 한 원로목사님이, 쓸데없이 싸움을 왜 부추기고, 왜 선동을 합니까?
    본인이 ‘변호사 비용’과 ‘합의 비용’을 대줄 것인가요?


    • 2024-07-29 07:06

      언젠가 산마루교회 이주연목사의 산마루서신에...
      “준비되지 않은 어둔 영혼에게 진정한 충고는 뱀을 밟는 일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라는 글을 묵상한 적이 있다. 나름의 관심을 가지고 상대가 하는 행동과 언어를 보면 어떠한 성장과정과, 현재상태에 있는지를 생각한다. 나를 보시는 분을 인정할 때 두려운 것은 “심은 대로 거둔다.” 진리가 아닐까? 주변에 보이는 이들은 모두가 자신을 비춰볼 거울로 반면교사(反面敎師)로, 패악질 일삼는 망나니나 고결한 인격자나 나를 성장케 하는 대상들이다. 희귀하기에 하는 말이겠지만, "원판 불변의 법칙" 만만치 않은 구도자의 길이다.


    • 2024-07-29 09:16

      조언은 감사하지만,

      이 쟁점의 본질은 원로와 현직 목사 간에 갈등이나 대립이라기보다는, 성경에 기준으로 하는 기독교 교리와 진리를 대하는 서로 간의 견해찹니다. 또 나와 감리회원은 당연히 이런 일에 대한 찬반 자기 의견을 얘기할 수 있으며 개입 여부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나는 이도 성도들은 누구나 이땅을 살면서 치러야 하는 영적 전쟁으로 봅니다.

      대립으로 논쟁할 때, 상대를 재판 고소로 위협하고, 또한 재판비용이라는 진입장벽, 즉 허들을 세워 상대방 입을 막는 게 옳지 않습니다. 만일 어떤 이가 기독교 교리와 사회 윤리에도 맞지 않는 사안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데, 상대가 돈 없거나, 고소당하기 싫으면 입을 닫아라. 강요하는 게 맞는 태도라고 생각하시나요? 돈이 얼마나 많기에?? 재벌가 출신인가?? 목회가 돈 버는 일인가?? 정작 그자는 개인 소송에 교회 재정을 공금 횡령해 불법으로 충당하지 않나요?

      재판 비용이 관련하여; 전에 나를 포함하는 4인의 교인들은 소속 교회 재정과 부동산 재산 건의 적폐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교회법 재판과 사회법 민/형사재판을 수년에 걸쳐 여러 재판을 치른 경험이 있습니다. 前 담임자가 트집 잡아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 고발해 시작된 이 과정에서 상대방은 돈으로 변호사를 샀지만 반면에 우리는 변호사 없이 재판에 직접 출석해 소명하고 대부분 의견서와 답변서를 직접 작성해 큰돈이 들지 않았고, 법은 제대로 모르지만 적어도 상대방 거짓과 엉뚱한 억지 주장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말할 성령님이 주신 지혜와 능력은 있기에, 물론 나와 교인들은 정당히 소명하고 애당초 잘못이 없기에 처벌받지 않았으며, 단 교회 소송은 교권주의 병폐가 작동해 부당하게 판결되면 재판비용을 뒤집어쓰기 십상이고,

      또 옳고 그름을 가리는 측면에서; 나는 이단 사상을 전파한 적이 없고, 이를 설교 출판한 적이 없는데도, 前 담임자가 나를 트집 잡아 총회 이단 대책위원회의 절차에도 맞지 않게 신소하여 이 위원회에 소환되어 그 전체 위원들 앞에서 곤욕을 치렀으며, 이런 자리는 한정된 시간과 절차로 엉뚱한 질문이 반복되고 성경에 의한 내 주장을 말하기에 적당하지 않고, 주장을 한들 위원들 간에 성경 지식과 이해가 고르지도 않기에, 이를 소명을 한 바 있습니다.

      살다 보면 이같이, 불행하고 불쾌하고 원하지 않는 사안을 만나기도 합니다. 길을 가다가 한 미친개가 물려고 덤비면 도망가든지? 발로 걷어차든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를 무서워서 입을 닫는다면 대장부도 아니고 신앙인도 아니죠.


      • 2024-07-29 11:01

        1. 교리 - 감리교회는 교리적 논쟁을 즐겨하지 않지면, 광의로 살피겠습니다.
        중세 유명론 실재론 논쟁을 살피시고, 이중진리론을 살피면, 개신교회는 진리와 결론을 구별합니다.
        여기서 진리는 교회에 관한 진술이고, 결론은 과학에 관한 진술입니다.
        이 지점에서, 카톨릭과 달라집니다.

        2. 교리가 이해되면, 과학과 제도도 구분할수 있습니다.
        과학이 인정하는 동성애의 생물학적 원인을 존중하는 것과
        제도로써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문제가 다르면, 진술도 달라지지요.

        3. 제 주장이 일반입니다.
        교리를 중심으로 한다는 것은, 교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오목사님 주장은, 편들어 싸우는 것에 지나지 않고, 현학에 치우칠뿐, 그 수준이 조악하기 형편없습니다.
        그러니까, 성장배경- 남의 부모까지 들먹거리는 것입니다.

        엄장로님은, 우파 특히 극우를 지지하셔도 됩니다.
        저는 그런 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지는 마세요.


        • 2024-07-29 12:56

          나는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핵심을 정리한 것을 교리로 봅니다. 흔히 신학에서 말하는 “중세의 철학자와 신학자가 정립한 어떤 주장을” 제대로 된 기독교 교리로 보지 않습니다. 사실 중세의 교부들로 불리는 자들이나 철학자에게 별로 배울 것이 없는데 거기에 성경과 동떨어진 엉뚱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에 나는 안셀무스와 어거스틴에에 대해 여기에 비판적으로 게시한 바 있고, 소개하신 중세의 유명론, 실제론, 이중진리론은 별도로 시간을 내어서 찾아 연구하고 답을 할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영적인 일은 일정한 규칙이 있기에, 자세히 살펴본다고 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성경을 한 줄 더 보는 게 낫습니다. 하나 만일 개별적으로 어떤 그들의 논문이나 어떤 주장을 누가 게시한다면, 한번 검토해 보겠습니다.

          나로선 과학도 비슷하게 봅니다. 예를 들어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라, 일부 과학에다 얼토당토않은 수많은 주장(가설)을 한데 섞어서 곤죽을 만든 건데 사람들이 눈치를 못 채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서를 두고서는 깐깐하게 따지지만, 과학이라는 이름을 달면 그냥 머리를 숙입니다. 창조론은 이미 종교 교리처럼 받아들입니다. 동성애에 대한 목사님의 과학적 소견을 전에 본 적이 있으며, 또 나는 ‘동성애의 죄’에 대한 게시글을 여러 차례 올린 바 있습니다.

          나는 극우가 아닙니다. 나를 이렇게 매도하는 걸 좌파의 수법 ‘프레임 뒤집어씌우기’라고 합니다. 나는 애국 시민이고 그냥 중도 혹은 중도에 가까운 보수이고,
          한편, 대통령 탄핵이나 국가 기관을 공격하는 노조나 좌파 정치인은 모두 극좌파 선동가로 봅니다. 극좌란? ❶1948년 수립한 대한민국 정부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❷헌법에 따른 국가 질서를 파괴하려고 국가 기관과 국가수반을 트집 잡아 공격하고, ❸정통성을 가진 정권을 함부로 타도 대상으로 여기는 세력입니다. 나는 이에 해당하면 극좌파로 판정합니다.
          요즘 반복되는 이런 억지 탄핵 시도와 김건희 대통령 부인에 대한 무례한 공격을 일삼는 자는 국가의 힘(국력)을 좀먹는 ‘악성 극좌파 선동가’라는 확증된 증거입니다. 조선조가 당파싸움에 망한 것과 같이 이런 개수작은 망국을 부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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