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나
Author
최세창
Date
2024-07-1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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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1:3-7>
3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6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1. 시작하는 말
특별히 감사할 일이 생겨도, 감사나 감격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특별한 감사 예물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농업과 생업과 사업의 결실이나, 인생 자체의 결실을 얻기까지 역사해 주신, 하나님의 모든 은혜에 대해 특별히 감사할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괴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감사하기는커녕, 불평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불평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에서도 감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감사 혹은 불평이란 상황이나 조건의 문제만이 아니라, 마음가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2. 산 소망이 있게 하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베드로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교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강하게 할 목적으로 베드로전서를 썼습니다. 그 교인들은 주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었고, 해당 지역의 유대교의 지도층과 유대인들 그리고 이교도들과 이방인들의 박해와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박해와 핍박을 받는 교인들에게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찬송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기본적인 은혜와 은사에 대해 진지한 감사를 표시하는 노래이므로, 영원불변하신 사랑의 하나님만이 영원토록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거듭남,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었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구원의 은혜를 입은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고 한결같이 가장 진지하게 감사의 노래를 불러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산 소망이란, 하나님께서 그 많으신 긍휼대로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써 믿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특히,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제물이 되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난 새사람이 된 것에 대한 감사에서 우러나오는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모든 소망은 죄와 죽음 때문에 하나같이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모든 소망은 영원한 멸망을 막을 수 없는 죽은 소망에 불과한 것입니다. 죄악의 소망과 죄악 수단으로 성취한 소망은, 당사자를 썩고 더럽고 쇠하다가 멸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소망을 비롯한 하나님을 떠난 모든 소망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 영생의 주 하나님을 떠난 세상적인 소망이 영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인간이 갖는 소망이 영생을 얻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주전 496년에 태어난 그리스의 3대 비극시인 중 한 사람으로 123편의 작품을 썼고, 비극 경연대회에 18회나 우승하였고, 탁월한 식견을 지닌 정치가로서도 국가에 공헌한 소포클레스가 한 말입니다. “태어나지 않은 것, 바로 이것이 최고의 행운이다. 둘째 행운은, 태어났으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원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에게 영생을 누릴 산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영원토록 감사의 찬송을 드린다 해도 부족하기만 할 것입니다. 로마서 8:24을 보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라고 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성령을 내주케 하심으로써 거듭난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늘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까지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인 우리는 천국의 영원한 기업을 얻을 것을 확신하고, 현실적인 모든 어려움과 억울함과 핍박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이, 훌륭한 의사였던 윌리암 박사에 대해 쓴 글을 읽었습니다. 훌륭한 의학박사인 윌리암이 덴버리에 있는 병원에서 죽어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목사님은, 자기 아내와 함께 문병을 갔습니다. 의사인 윌리암은 환자들을 치료하던 침대에 누워 있었고, 곁에는 그의 아내가 앉아 있었습니다.
임종을 앞둔 윌리암 의사는 친구인 목사님을 보더니 말했습니다. “나는 딴 세상으로 가고 있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고 있어. 그러나 두렵지 않아. 나는 준비가 되어 있네.” 그러자 사모님이 그 의사를 다정하게 부르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되면 거기서 절 기다리세요. 우리 거기서 만나요.” 그 의사는 미소를 지으면서 마지막 힘을 내어 말했습니다. “거기에 있겠소. 거기서 기다리겠소.” 목사님 내외가 병실을 나설 때에, 그 의사는 전에 하던 것처럼, 손을 가만히 들어 보이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 친구여. 다음에 만날 걸세.”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시민이 아닙니까? 비록 현실이 고생스럽다 할지라도, 모든 소망을 삼켜 버리는 죽음을 압도하는 영원한 천국 기업을 확신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는 교인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 기업을 얻기까지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론,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 마귀의 궤계로 인한 시험과 환난과 핍박이 우리를 엄습해 옵니다. 우리의 실수나 잘못, 혹은 다른 사람들의 실수나 잘못, 혹은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으로 인한 환난과 고난이 우리를 믿음의 길에서 떠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는 우리가 영원한 천국 기업을 얻기까지,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해 주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성취될 완전한 구원인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누릴 영생을 얻기까지,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보호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절대자 하나님보다 더 큰 시험이나, 환난이나, 고난이란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확고히 하나님의 능력 안에 거하는 한,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시험이나 환난이나 고난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의 교인들은 여러 가지 시험 때문에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오히려 크게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줄기찬 유혹과 핍박과 환난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복음 선교의 열매를 풍성하게 거둔 바울 사도가 뭐라고 고백한지 압니까? 고린도후서 2:14에 보면,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실상, 믿는 우리를 보호하시고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시험이나 환난이나 고난 중에 매우 확실하게 체험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답게 온갖 시험이나 환난이나 고난을 원망 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시고 이기게 하시는 능력을 체험하고 감사 찬송할 거리로 삼기 바랍니다.
미국 췌서펙만에서 수영하던 죠니 이렉슨은, 수심이 얕은 것을 모르고 다이빙을 하다가 목이 부러져서, 8년 동안이나 어깨 아래를 전혀 쓰지 못하는 불행 속에 살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영 라이프 그룹 친구들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되기는 했지만, 불구의 몸으로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삶에 대한 애착심이 사라지면서 더욱 비참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자기를 돌보시고 계신다는 확신을 얻게 되자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되었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새사람이 된 그 여인은 입으로 펜을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그린 그림은 250장이 넘었고, 카드를 그리는 그녀에게 원작을 구하려는 주문이 쇄도해 왔습니다.
특이한 인물이 된 그녀가 텔레비전의 ‘오늘의 쇼’ 프로그램에 나가서, “휠체어 신세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므로,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신앙 간증을 했습니다.
그 여인은 자기의 그림에 반드시 P. T. L.이라는 사인을 했는데, 그것은 “Praise The Lord”(주님을 찬송하라)의 약자입니다. 그 여인은 주님을 찬송할 결정적인 이유에 대해, “주님은 내 생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합니다. 열심히 전도하며 사는 그 여인은 1982년에 결혼도 했습니다.
4.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전에 죄와 죽음의 종이 되어 멸망의 길로 끌려가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믿음으로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거듭남,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깨서는 또한 죽음을 압도하는 천국 기업이라는 영원한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신령한 몸의 부활과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천국 기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영원한 소망이 성취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시험과 핍박과 환난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해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해서 주님의 재림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설교 동영상: 유튜브)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_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아멘.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이참에 찾아본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공유합니다.
§벧전1:3 <하나님의 긍휼 ⇒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 ❶우리를 거듭나게 ❷산 소망이 있게 ⇒ ❸ (이하 4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 ❹하늘에 간직> ☞ 하늘의 유업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직결되어 있다. 부활 ⇒거듭남 ⇒산 소망 ⇒하늘의 유업은 선형적으로 연결된다.
<‘산 lively’ (소망)> [마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 산자의 하나님 [행7: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 살아 있는 말씀 [벧전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 산 돌 ⇒ 예수 그리스도
§4 <유업> [레20:24 내가 전에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내가 그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너희에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리라 하였노라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 유업은 가나안 땅이다. [고전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 유업은 하나님의 나라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5 <❺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 ⇒ ❻믿음으로 말미암아 ⇐ ❼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 ☞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것이다.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은 ‘예정설’이나 이 뒷배가 아니다. 한 인간도 태어나기 전부터 구원이 예정되어 있다는, 하나님의 전지전능 속성에 따라, 로마 카톨릭 계열의 교부들이 쓴 창작소설과 장 칼뱅의 “예정론”이라는 황당한 교리를 따라가면 안 된다. 어떤 사람의 구원도 태어나기 전에 결정된 바가 없으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무효로 만드는 이단 교리이며, 사람은 이런 거짓에 쉽게 미혹되는데, 성경의 하나님 말씀들보다 인간의 혼적인 철학을 신봉하기 때문이다.
<말세> ☞ 이 땅의 인류에게는 다가올 말세가 있으며 무한정 계속되지 않는다. 신약 교리이며, ‘말세’는 시대적으로 구분되어야 하므로 이를 이해하려면 세대주의 해석이 필요하다. [행2: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 말세에 예언과 환상 있다. [약5: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 말세에 불의로 재물을 쌓는 것은 화가 된다. [딤후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 말세에 고통받는 때가 있다. [벧후3: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 말세에 조롱자와 정욕을 따라가는 행하는 자가 있다.
<예비하신> ☞ 준비된 것은 죽음 심판 소멸 구원 등 다양하다. 만일 이를 구원 예정으로 몰아간다면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신념 철학 신학에 꿰맞추어 성경의 말씀들을 선별적으로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사38:20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 ☞ 구원을 준비 [사51:13] [히8: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 없어져 가는 것이 준비 [벧전4: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 심판이 예비 [계3: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 죽음이 예비됨
§6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 (이하 7절)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 재림 때, 시험이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연결되니, 참으로 놀라운 반전이다. ⇐ 너희 믿음의 시련
<잠깐> ☞ 시간 길이가 모호한데, KJV는 “though now for a season”이고 시간의 길이는 대체로 “지금 한 계절 동안”이다. [단7:12 그 남은 짐승들은 그의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 정한 시기 [눅4: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 얼마 동안 [요5:35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 한 때 [고후7: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 잠시만 [히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 잠시 [빌1: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 잠시
§7 <믿음의 확실함> ☞ 이는 개역 개정 번역의 오류 혹은 ‘확실함’ 추가로 보인다. KJV는 “That the trial of your faith”이며, 이는 관계사 That 이하로 앞 절과 연결되어 “네 믿음의 시련”으로 해석하는 게 맞고, 믿음에는 시련이 따른다. 또한 ‘믿음’은 혼에 속하는 ‘사람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 믿음의 정의, 성격, 완성, 대상, 내용, 관련 성경 등 사람 간에 다르기에 ❶서로 간에 이를 놓고 ❷혹은 개인이 ‘믿음의 확신’은 곤란하다. cf. ‘구원의 확신’ 같은 표현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 이는 5절의 <말세>와 합하여 “예수님의 재림”이다. [딤전6: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 재림 [딤후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 초림 [딛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 영광은 재림에서, 초림에 해당하지 않음.
필자의 설교에 "아멘.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이참에 찾아본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