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넬료의 집의 베드로의 설교
Author
최세창
Date
2024-06-10 21:46
Views
1860
<사도행전 10:34-43>
34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35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36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43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1. 시작하는 말
초대 교회에 비해 현대 교회는 교인들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교회 건물의 수와 규모도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현대 교인들의 믿음은 박해를 당하던 초대 교인들의 믿음보다 못하고, 현대 교회의 사회에 대한 감화력도 핍박을 받던 초대 교회의 사회에 대한 감화력보다 못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3 이하를 보면.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보다 더 큰 이유는, 어떤 성경 말씀의 속뜻을 깨닫고, 선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순종하거나 복종하게 하는 설교의 퇴보와 성경 강해의 낙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사람과 복음의 증인들
수제자인 베드로는 고넬료 백부장을 비롯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사람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대할 때에 영혼이나 인격 자체로 판단하시고, 인간의 외적 조건들인 종족, 성, 재산의 다소, 지위의 높고 낮음, 지식의 유무 등으로 차별하시지 않습니다.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죄 중 하나는, 인간을 그 자신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의 외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데 있습니다. 어느 공장의 통근 버스를 탄 비정규직 사원이, 정규직 사원들의 눈총과 야기죽거리는 소리를 경험하고는 다시는 통근 버스를 타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대하는 세상적 판단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영적 문제에 소홀하거나 무관심하게 되고, 또한 자신의 성장보다는 자신의 것들을 갖추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부수적인 것들 때문에 근본적인 것들을 상실해 버린 인간의 비극은, 매우 크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인간의 속 중심에 있습니다. 사무엘상 16:7 후반을 보면,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시편 51:6에는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라고 하였고, 빌립보서 2:5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사실상, 주님께서는 죄인인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종의 형체로 오셨고, 세리와 창기들 그리고 가난한 자들과 병약한 자들의 벗이 되셨습니다. 그들의 죄악 생활을 옹호하거나 지지하거나 장려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악을 깨달음으로써 회개하고 믿어 구원받아야 할 죄인임을 자각하도록 사랑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또, 재물의 복을 받거나, 치유의 은혜를 받게끔 주님을 믿도록 사랑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그들과 차이가 있는 자칭 의인들이나, 부자들이나, 강자들을 차별하시지 않고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온 인류가 회개하고 믿음으로써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도록 하시기 위해 극도의 고난과 극도의 치욕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주님의 구원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3:16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주 예수님은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신데, 그 이유는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관점으로 인간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언젠가의 뉴스입니다. 대형 산불들로 산이 잿더미가 되고, 문화재가 타 버리고, 집들과 함께 전 재산이 다 잿더미가 되는 판에 모든 국민을 충성스레 섬겨야 하는 대통령을 보필하는 총리가 공직자들과 골프를 치고 있었고, 정의의 화신인 양 설치던 시민 연대 대표는 사기를 쳐 왔습니다.
아시아를 대학살장으로 만든 잘난 사람들인 전범자들을 참배하는 통치자와 각료들이 있습니다. 기나긴 세월을 우리 민족을 침략하여 대량 살상을 벌이는 등의 만행을 저지른 중국의 잘난 인물들도 있습니다. 세계 대전을 일으킨 잘난 전범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우리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사람을, 그 내면을 보아야 합니다. 또한, 외모를 보는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속 중심을 보시는 주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에 대해 유의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중심은 진실합니까? 우리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그리스도의 마음이 자리잡고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2:20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그 바울 사도에게는, 모든 사람이 종족과 남녀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회개하고 주님을 믿어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는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받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는 나라나 종족, 신분과 계급, 재산 또는 지식의 다소, 남녀나 주종 등의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차별 없이 인간을 받아들이시는 유일한 방도를 정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은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화평, 그리고 모든 인간들 사이의 화평의 복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또한, 주님 자신이 화평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 화평의 복음은 세례 요한이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고, 또 함께하셨으므로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와 축귀의 행적은 복음서들 곳곳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일서 3:8에는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화목케 하는 직책을 받은 자로서, 주님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화평케 하셨습니까? 죄나 질병이나 고민 등의 고통과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어 주시는 주님을 선물하신 적이 있습니까?
베드로는 복음의 증인인 삶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첫째, 주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포함한 열두 제자 및 교인들은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제 자랑이 아니라, 주님께서 복음을 가르치시거나 전하시고, 약한 자나 환자를 고치시고, 마귀의 일을 멸하신 사실을 말과 행동으로 알리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볼 수 있겠습니까?
둘째, 복음의 핵심인 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여 나타나신 사실에 대해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목격하였고, 부활하신 주 예수님과 함께 지내기도 했으므로, 그 모든 일을 목숨을 걸고 증언했습니다. 우리 또한 모든 사람들의 영생의 소망이 되시는 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생활로 알리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주 예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로 정해진 것에 대해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로 정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4:1 이하를 보면,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라고 했습니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무이한 대속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에 대해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주 예수님의 이름을 믿기만 하면 다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의 복음은 구약성경의 모든 선지자도 증언한 바입니다. 사도행전 4:12을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3. 맺음말
베드로의 설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이었습니다. 기복 설교도 아니고, 수필 설교도 아니고, 윤리‧도덕 강론도 아니고, 인격 훈화도 아니고, 만담도 아니고, 교양 강좌도 아니고, 생활 철학도 아니었습니다. 긍정적․적극적 사고를 권장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복음 설교를 효과적으로 깨우치기 위한 보조 자료에 국한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인간들과 달리,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길은,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어 구원받은 우리는 주님의 행적과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심판자로 재림하실 것을 말과 행동으로 알리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설교 동영상: 유튜브)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34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35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36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43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1. 시작하는 말
초대 교회에 비해 현대 교회는 교인들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교회 건물의 수와 규모도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현대 교인들의 믿음은 박해를 당하던 초대 교인들의 믿음보다 못하고, 현대 교회의 사회에 대한 감화력도 핍박을 받던 초대 교회의 사회에 대한 감화력보다 못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3 이하를 보면.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보다 더 큰 이유는, 어떤 성경 말씀의 속뜻을 깨닫고, 선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순종하거나 복종하게 하는 설교의 퇴보와 성경 강해의 낙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사람과 복음의 증인들
수제자인 베드로는 고넬료 백부장을 비롯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사람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대할 때에 영혼이나 인격 자체로 판단하시고, 인간의 외적 조건들인 종족, 성, 재산의 다소, 지위의 높고 낮음, 지식의 유무 등으로 차별하시지 않습니다.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죄 중 하나는, 인간을 그 자신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의 외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데 있습니다. 어느 공장의 통근 버스를 탄 비정규직 사원이, 정규직 사원들의 눈총과 야기죽거리는 소리를 경험하고는 다시는 통근 버스를 타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대하는 세상적 판단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영적 문제에 소홀하거나 무관심하게 되고, 또한 자신의 성장보다는 자신의 것들을 갖추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부수적인 것들 때문에 근본적인 것들을 상실해 버린 인간의 비극은, 매우 크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인간의 속 중심에 있습니다. 사무엘상 16:7 후반을 보면,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시편 51:6에는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라고 하였고, 빌립보서 2:5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사실상, 주님께서는 죄인인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종의 형체로 오셨고, 세리와 창기들 그리고 가난한 자들과 병약한 자들의 벗이 되셨습니다. 그들의 죄악 생활을 옹호하거나 지지하거나 장려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악을 깨달음으로써 회개하고 믿어 구원받아야 할 죄인임을 자각하도록 사랑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또, 재물의 복을 받거나, 치유의 은혜를 받게끔 주님을 믿도록 사랑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그들과 차이가 있는 자칭 의인들이나, 부자들이나, 강자들을 차별하시지 않고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온 인류가 회개하고 믿음으로써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도록 하시기 위해 극도의 고난과 극도의 치욕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주님의 구원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3:16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주 예수님은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신데, 그 이유는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관점으로 인간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언젠가의 뉴스입니다. 대형 산불들로 산이 잿더미가 되고, 문화재가 타 버리고, 집들과 함께 전 재산이 다 잿더미가 되는 판에 모든 국민을 충성스레 섬겨야 하는 대통령을 보필하는 총리가 공직자들과 골프를 치고 있었고, 정의의 화신인 양 설치던 시민 연대 대표는 사기를 쳐 왔습니다.
아시아를 대학살장으로 만든 잘난 사람들인 전범자들을 참배하는 통치자와 각료들이 있습니다. 기나긴 세월을 우리 민족을 침략하여 대량 살상을 벌이는 등의 만행을 저지른 중국의 잘난 인물들도 있습니다. 세계 대전을 일으킨 잘난 전범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우리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사람을, 그 내면을 보아야 합니다. 또한, 외모를 보는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속 중심을 보시는 주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에 대해 유의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중심은 진실합니까? 우리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그리스도의 마음이 자리잡고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2:20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그 바울 사도에게는, 모든 사람이 종족과 남녀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회개하고 주님을 믿어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는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받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는 나라나 종족, 신분과 계급, 재산 또는 지식의 다소, 남녀나 주종 등의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차별 없이 인간을 받아들이시는 유일한 방도를 정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은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화평, 그리고 모든 인간들 사이의 화평의 복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또한, 주님 자신이 화평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 화평의 복음은 세례 요한이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고, 또 함께하셨으므로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와 축귀의 행적은 복음서들 곳곳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일서 3:8에는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화목케 하는 직책을 받은 자로서, 주님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화평케 하셨습니까? 죄나 질병이나 고민 등의 고통과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어 주시는 주님을 선물하신 적이 있습니까?
베드로는 복음의 증인인 삶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첫째, 주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포함한 열두 제자 및 교인들은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제 자랑이 아니라, 주님께서 복음을 가르치시거나 전하시고, 약한 자나 환자를 고치시고, 마귀의 일을 멸하신 사실을 말과 행동으로 알리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볼 수 있겠습니까?
둘째, 복음의 핵심인 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여 나타나신 사실에 대해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목격하였고, 부활하신 주 예수님과 함께 지내기도 했으므로, 그 모든 일을 목숨을 걸고 증언했습니다. 우리 또한 모든 사람들의 영생의 소망이 되시는 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생활로 알리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주 예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로 정해진 것에 대해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로 정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4:1 이하를 보면,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라고 했습니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무이한 대속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에 대해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주 예수님의 이름을 믿기만 하면 다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의 복음은 구약성경의 모든 선지자도 증언한 바입니다. 사도행전 4:12을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3. 맺음말
베드로의 설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이었습니다. 기복 설교도 아니고, 수필 설교도 아니고, 윤리‧도덕 강론도 아니고, 인격 훈화도 아니고, 만담도 아니고, 교양 강좌도 아니고, 생활 철학도 아니었습니다. 긍정적․적극적 사고를 권장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복음 설교를 효과적으로 깨우치기 위한 보조 자료에 국한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인간들과 달리,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길은,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어 구원받은 우리는 주님의 행적과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심판자로 재림하실 것을 말과 행동으로 알리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설교 동영상: 유튜브)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아멘.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이참의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아래로 공유합니다.
§행10:34 <입을 열어 말하되> [창4: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 땅도 입을 벌린다. [사5:14 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 ☞ 스올(지옥)이 입을 연다. [마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 입을 열어 가르치심 [행8: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 입을 열어 예수의 복음을 전함 [계12: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 땅이 입을 연다. [계13: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 짐승도 입을 연다. 하나님을 비방.
<참으로 Of a truth> ☞ KJV에서 “Of a truth”이고, 즉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이라는 진리다. 개역 개정 성경에는 정녕히, 참으로, 진실로 등 번역된다. [사5: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단2: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마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요7: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 진리는 보편적이고 불변적이며 현실과 사실에 분명하게 맞는 것이다.
<하나님은 ∈ ❷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 ❸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 ❶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 진리 ☞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해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사람의 외모> [신1: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 ☞ 사람의 외모, 외형, 신분 등은 재판에서 ⇨ 차별금지, 이는 성경 전체에서 반복되는 교리다. [삼상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여호와는 ‘중심 the heart’을 보심.. ⇨ 마음 ⇨ 혼 [갈2: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 권력의 유무는 세상에 속한 인간의 일이며, 복음의 본질과 관련이 없다. [벧전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 ☞ 심판은 행위대로, 직업 지위 빈부 권력 같은 외모로 인한 차별이 아니다. 이를 분별해야 하는 죄와 악, 진리와 거짓에 대한 차별금지로 해석하는 게 오류의 출발.
§35 <각 나라> [왕하17:29 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이 지은 여러 산당들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들이 거주한 성읍에서 그렇게 하여] ☞ 각 민족, ≡ 각 나라 [단3: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 이 조서는 여러 언어로 작성되며, 각 나라와 민족에게 신속하게 통지된다. [계14: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 모든 민족≡ 모든 나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feared God> [출1: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신25: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89:7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모임 가운데에서 매우 무서워할 이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이시니이다] ☞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눅18: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 많은 종교인은 자기 철학(or 신학)으로 “사랑의 하나님”의 꼭두각시를 하나 만들어 자기 손에 들고,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한다.
<의를 행하는 사람> [출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 신앙인은 예외 없이 모두 의(義, righteousness)를 행한다. [시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잠11:18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겔18:5 사람이 만일 의로워서 정의와 공의를 따라 행하며] [롬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 하나님의 의는 신약에서 교리가 변한다.
<깨달았도다> [신29: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 같은 말씀을 보고 듣는다 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사6: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잠9: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 인생의 우둔함 [마13: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 사6:9 [막8: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 떡이 없음..
§36 <화평의 복음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만유의 주 되신 ∈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 여기서 화평이란 어떤 종교인이 종교적 지팡이 들고, 모자 쓰고, 겉옷 입고 거룩한 시늉 하면서 웅변술로 말한 세상에서 인간의 ‘화평 (or 평화)’는 아니다. 이 화평의 본질은 하나님과 사람 간의 화평이고, 대신에 사람 간에서 화평히 아니다. 또한 인간은 단 한 조각의 화평도 스스로 만들 수 없다. 한편 성경에는 여러 복음이 있으며, 그 가운데 하나다. <화평의 복음> ☞ 43절 참조.
<이스라엘 자손들> [창50: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 이는 야곱의 아들들이며, 나아가 이스라엘 12지파에 속하는 자손들이다. [신31: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 성경 [마27: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 은 삼십에 팔린 자는 예수 [계7: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 ☞ 이스라엘 자손은 세상의 종말까지 이어진다. 각 지파 중에서 144,000명, 이는 이방인의 숫자가 아니다.
<만유의 주> [고전15: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 만유에는 사람, 자연, 우주, 천국과 지옥이 다 포함된다. [엡4: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히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에 관여
§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 이게 세대주의다. 성경의 예언은 성취되는 정해진 그 때가 있다. [마3: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 이스라엘 요단강 서부 지역의 지명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어지는 화평의 복음 [마19: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 이스라엘 중부 [행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 예수님의 주된 사력지였고,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 성경 안에 삼위일체는 곳곳에 명시되어 있다. 평화의 복음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 가짜 그리스도는 그의 이름을 도용하거나 사칭하긴 해도 결코 나사렛 예수가 되지 못한다. 2000년 전의 나사렛에 날 수가 없으니…. 한 그분은 초자연적 능력이 있기에 바람과 바다 같은 자연도 그에게 복종한다.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 치유에는 육적인 치유도 있지만, ‘영적인 치유’도 있다. 이는 인간이 흉내 내기 어려운 영역이다. 예수님의 능력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마귀도 그에게 복종한다. [눅5: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 예수님과 주의 능력이 함께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임마누엘
§39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 유대인들이 한일 ⇨ 예수를 나무에 달아 죽임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 당연히 신약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 ⇨ 예수를 살리사 나타내심 [행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 예수는 죽음 가운데 있었고, 이를 살리신 이는 하나님 [고전15: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 예수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의 예표….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 모든 백성 ≡모든 유대인, 선택된 증인 ≡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 단 개역개정의 “미리 택하신”은 KJV의 ‘선택된 chosen’과 서로 다른 표현이며, 이는 번역 과정에서 특정 집단의 교리가 추가된 것으로 보이며, 이를 기준으로 예정설 해석하는 건 거짓 기만이다.
§42, 43 <❶백성에게 전도 ⇨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 ⇨ ❷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 구약의 선지자들은 기본적으로 유대인을 대상으로 예언했고 교회 시대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예언 내용은 확장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다 죄 사함을 받게 된다.
§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 인간의 죄로 인해 불화된 하나님과 인간 간의 화평. 이게 화평의 복음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십자가에서 죄로 인해 심판받아 죽고, 부활하여 죽을 사람을 구속한다.
필자의 설교에 "아멘. 목사님께서 주 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이참의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아래로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