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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8강 2:1-10 예루살렘 회의(2:1-2a)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1-03 10:32
조회
1487

※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이 부분에서 바울은 자신의 독자성이 결코 무정부적이거나 분열 혹은 분파를 만드는 것이 아니며, 교회의 전통적인 신앙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W. Barclay). 즉, 앞에서(1:18-24) 자기의 사도직과 복음이 다른 사도들 내지 교회와 무관한 것임을 설명한 바울은, 이제 자신의 복음과 사도직의 참됨이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바울은 예루살렘 회의(행 15장)에 참석한 것에 대해, 【1】[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라고 한다.
[십사년 후에]에 대해서는 바울의 회심 이후라는 견해❶와 베드로를 방문한 후(1:8)라는 견해❷가 있는데, 전후 문맥으로 미루어 보아 후자가 적합하다. 따라서 이번 예루살렘 방문은 회심 후 약 십칠 년이 되는 것이다. 이번 방문 이전에도 바울과 바나바는 기근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던 예루살렘 형제들에게, 구제금을 전하기 위해 잠시 예루살렘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행 11:29-30, 12:25).
[예루살렘] 회의에 바울과 동행한 이는 [바나바]와 [디도]이었다.
[바나바](Βαρναβά)는 구브로에서 태어난 레위인으로서 원 이름은 요셉이었지만, 사도들이 그를 권위자란 뜻인 [바나바]라고 불렀다. 그는 초대 교회가 공동생활을 할 때, 밭을 판 돈을 사도들 앞에 바칠 정도로 헌신적인 믿음의 소유자였다(행 4:36-37). 그의 성품은 착했으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여 전도의 능력이 있었다(행 11:24). 또한, 그는 선지자와 교사(행 13:1), 그리고 사도(행 14:14)라 불린 바울의 친구였다.
[바나바]는 바울이 사도들과 사귀고자 할 때(고전 1:18, 행 9:26), 그를 두려워하는 사도들에게 호의를 가지고 그를 소개하였으며(행 9:27), 한때 바울을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함께 복음을 가르쳤고(행 11:26), 또한 바울과 함께 구제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형제들을 방문하기도 하였다(행 11:30).
바울과 바나바는 첫 번째 선교 여행에 같이 구브로로 다녀 남쪽 소아시아까지 선교하였다. 이 여행 중에 바울의 이름이 늘 먼저 쓰였다(행 13:43-50). 안디옥에서 얼마 동안 쉰 뒤에, 바울과 바나바는 할례 및 율법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하는 복음의 문제로 예루살렘 총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복음의 진리가 공인되었다(행 15:1-29).
그러나 얼마 뒤에, 바나바는 잠시나마 복음의 진리와 관련하여 위선된 행동을 한 베드로를 면책한 바울과는 달리, 베드로의 위선을 좇는 나약한 면을 드러내기도 하였다(갈 2:13).
두 번째 선교 여행을 떠나려 할 때는 바나바가 자기 조카인 마가를 데리고 갈 것을 고집하고(골 4:10), 바울은 마가가 첫 번째 선교 여행 중에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서 돌아가 버렸던 사실을 들어 반대함으로써 서로 심히 다투고 갈라섰다. 결국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수리아와 길리기아 등으로 갔다(행 15:36-41).
바나바의 마가에 대한 신념은 뒤에 마가로 하여금 복음서를 저술하는 등의 큰 활약을 하게 했으며, 또한 바울의 신임을 회복하게 하였다(딤후 4:11).
두 번째 선교 여행 이후의 바나바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 만한 근거가 없다. 다만 {“여기(고전 9:7)에 바울이 바나바의 이름을 같이 적은 것을 보면, 바나바도 고린도 교회에 널리 알려질 만큼 선교 사업에 종사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김용옥)}(고전 9:7의 주석). 또한, 두 사람 사이에 충분한 화해가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함께 일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디도](Τίτον)는 헬라인(2:3)으로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여 바울의 훌륭한 동역자가 되었다(고후2:13, 7:6, 13, 14, 8:6, 16). 바울은 디도를 가리켜,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고후 8:23. 참조: 고후 12:18)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딛 1:4)이라고 부를 정도로 디도를 아끼고 사랑하였다.
스탐(R. T. Stamm)도 “디도는 바울의 동반자요 동역자이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어려운 일을 맡길 만한 판단과 재치가 있는 사람이었다.”라고 하였다. 실상, 디도는 문제가 많은 고린도 교회를 수습하는 임무를 비교적 잘 감당하여 그 교회의 상황을 상당히 호전시켰다. 특히, 가짜 사도들 및 가짜 교사들에 미혹되어 바울과 그의 사도직에 대해 오해하고 비난하던 일부 고린도 교인들을 잘 설득하여, 다시금 바울에 대한 바른 이해 와 호감을 갖도록 하였다(참조: 고후 2:13).
바울이 “예루살렘 회의에 [디도]를 동반한 것은 특별히 의미깊은 일이다. 디도는 이방인이었다. 그는 유대 율례를 도무지 복종하지 않고, 모세 율법을 지킬 필요 없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가 바울을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갔다는 사실은, 이방인 신자들과 모세 율법과의 관계에 대한 것을 강조하며 분명한 초점을 보여줄 것이다”(C. R. Erdman).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위대한 용기를 보게 된다. 즉, “결정적인 본보기로서 무할례자이며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디도를 동반함으로써, 유대주의적인 신자들의 교훈이나 관습이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나타내고자 하였다”(M. Henry). 바울이 예루살렘 회의에 디도를 동반했다는 것은 할례를 받아야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며, 또한 사도들이 디도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3절)과 “그를 형제로서 인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J. Calvin)는 점은 거짓 교사들에 대한 공적인 승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된 동기에 대해, 【2】[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인하여]는 카타(κατά)로서 ‘좇아’, ‘따라’, ‘······에 근거하여’ 등의 뜻이다. 따라서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계시](아포칼룹신, ἀποκάλυψιν: 1:12의 주석을 보라.)에 근거한 것이지, 자기 자신이나 예루살렘 교회의 소환을 따른 것이 아니었다.
이 문제에 대해 누가는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즉. 유대로부터 내려온 형제들이,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와 그 거짓 교사들 사이에 변론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안디옥의 형제들이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그 외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파송했다는 것이다(행 15:1-5).
그러나 바울과 누가의 진술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누가는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것이며, 바울은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주관적 체험을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예루살렘에 갔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의의가 있다. 이 점에 대해 칼빈(J. Calvin)은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자신의 사도직과 복음을 확증한다.······하나님께서 여행을 지시함으로써 그의 교훈이 참된 것임을 확증하신다. 따라서 그의 교훈이 확증됐다는 것은 인간의 동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 의한 것이다. 실상, 사도들은 논쟁이나, 이의 없이 그가 행한 일을 인정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생의 중대한 문제에 국면할 때마다 환상을 통해서나(행 16:9-10, 18:9, 27:23. cf. 22:17-18: 기도시 비몽사몽간에 본 환상) 예언을 통해서나(행 13:2, 21:11) 또는 자신의 마음속에 임하는 성령의 강한 충동에 의해서(행 16:6, 7)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처리하곤 하였다. “바울이 자신의 행동이나 사업을 착수함에 있어서, 특별한 신적인 지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특권이었다.”(M. Henry).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시작하려고 하는 모든 중대한 일에 있어서,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우리의 갈 길이 명백해지도록 애를 써야 하며, 또 하나님의 인도에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M. Henry).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살필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한 일과 그 까닭에 대해,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라고 설명하였다.
여기서는 [저희]와 [유명한 자들]이 같은 대상을 지시하는 것인지,❸ 다른 대상을 지시하는 것인지❹가 문제된다. 전자를 따르면 바울이 처음부터 [유명한 자들에게] 자신의 복음에 대해 사사로이 설명한 것이 되고, 후자를 따르면 먼저 [저희] 곧 예루살렘 교회에, 그 다음에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자신의 복음에 대해 설명한 것이 된다. 사도행전 15:1-35의 내용과 6절의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저 유명한 이들”이란 말을 보아 후자가 타당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울은 예루살렘 전 회중 앞에서 공공연하게, 그리고 유명한 자들인 “야고보, 베드로, 요한”(2:9)❺ 등에게 “그 자신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내내 전하여 왔고, 또 전하려고 다짐하고 있는 교훈에 대하여, 또한 유대주의의 온갖 혼합 요소를 벗어난 순수한 그리스도교에 대해 자유롭고도 조리 있게 설명하였다”(M. Henry). 그와 동시에, 그는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서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함으로써”(행 15:4), 자기 일행이 전한 복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참된 것으로 인정받았음을 암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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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J. Calvin, H. Alford, E. H. Perowne, W. M. Ramsay, F. Rendall, W. Sanday, E. Huxtable.
2) J. Wesley, R. C. H. Lenski, R. T. Stamm, J. B. Lightfoot, E. D. Burton, J. A. Bengel, “Zahn, Bousset, Beet”(in 이상근), 黑崎幸吉.
3) M. Henry, J. Wesley, H. Alford, R. C. H. Lenski, C. R. Erdman, “Zeller, Beet, Moffatt”(in 이상근), R. T. Stamm, E. Huxtable, 윤성범, 박윤선.
4) J. B. Lightfoot, E. D. Burton, O. F. Blackwelder, E. H. Perowne, W. Sanday, J. Dow, “Meyer, Vincent”(in 이상근), 黑崎幸吉, 이상근.
5) 비교: M. Henry는 사도들과 유대주의적 그리스도인들 중의 지도적 인물들이라고 하고, C. R. Erdman은 사도와 장로들이라고 하고, 박윤선 님은 원 사도들과 장로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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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91-96.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5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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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갈-엡.JPG
전체 6

  • 2023-01-03 10:34

    필자의 주석책에는 각주로 되었고, 주석되는 성경의 구절과 용어는 고딕으로 구분했는데, 이 인텨넷 화면에는
    그대로 표시되지 않으므로 각주를 미주로 바꿨고, 고딕을 부호 [ ]로 바꿨습니다.


  • 2023-01-03 11:52

    최목사님~ 존경합니다. 새해 항상 영육 간에 강건하시고, 주 안에서 언제나 행복하세요.


    • 2023-01-03 14:19

      김교석 목사님, 부족한 필자에게 존경을 표하시고, 축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망찬 새해에
      김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온 가족이 더욱 건강과 형통의 나날을 보내시기를 기도합니다.


  • 2023-01-03 21:21

    최 목사님, 새해에 주 안에서 영육 간에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위 목사님께서 게시하신 내용을 통해 여러 가지 다양한 입장과 해석에 대해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또 본문에 대한 저의 소견을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갈2:1 <십사 년> ☞ 갈1:18 이래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감. [창31: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사36:1 히스기야 왕 십사 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 [고후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에 있었고 이는 특별한 체험이다.

    <바나바> [행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행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행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이 부른 사역자다. 기독교는 특별히 개개인의 이름을 중시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 이름을 걸고 살고, 최종적으로 심판 받는다. 십사년은 봉사, 혹은 사역을 예표한다.

    <디도> [고후8: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 만일 누가 나의 동료, 동역자, 교회의 사자들,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불린다면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다.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딛1: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 디도는 바울에게 아들과 같다.

    <예루살렘> ㈎ 언약과 계시 측면; [수15:63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 이스라엘이 여부스족을 내쫓지 못한 게, 팔레스타인 문제로 두고두고 화근이 된다. [왕상11:36 그의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거기에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읍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이 항상 내 앞에 등불을 가지고 있게 하리라] ☞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고자 특별히 선택한 도시다. [시122: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슥8:3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 과거와 현재의 예루살렘이 아니다. 재림 때 시온에 돌아오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❶거하시고 ❷진리의 성읍 ❸성산이 된다. [말3: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눅13: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에서 이는 재림의 때이다. [계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 이스라엘, 예루살렘, 유대인의 지위는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요한계시록의 재림과 영원까지, 영원하다.
    ㈏ 역사적 측면; <예루살렘 ∋ 솔로몬 성전 ∈ 모리아 산 ∋ 아리우나의 타작마당 ∋ 골고다> [창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대하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 성경의 확증: 모리아 산 = 오르난의 타작마당 = 다윗이 정한 솔로몬 성전의 터 [삼하24: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는지라 24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 [막15: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 골고다는 모리아 산이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던 곳인데, 이삭을 대신하여 예수가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한 ‘번제할 어린 양’이 되어 산제물이 된다.

    §2 <계시를 따라> ☞ 갈1:12 해설 참조. [롬16: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엡3: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고, 이를 기록했다. [벧전1: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 계시와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일로써 하늘로부터 오신 성령께서 이를 깨닫게 하신다.

    <이방 가운데 전파하는 복음> [렘31:10 이방들이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 떼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 [롬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딤전2: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딤후4: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엡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 이방인들이 ❶상속자가 되고 ❷지체가 되고 ❸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이는 신약적인 선포이며, 모든 이방인에게는 가장 멋진 언어이다. [골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갈3: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 이방인에게 복음이 선포는 창세기 전반부인 아브라함 때 예언되었다. 성경은 예언과 성취로 가득한 책이고, 이는 다른 종교가 흉내 낼 수 없다.

    <그들에게 제시하되 communicated> ☞ 사전에서 의미는 전달하다, 통보하다, (의견을) 서로 나누다, 통한다. 교통한다. [빌4: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 이는 물질의 후원이 아니라, 대화하라는 의미다. [갈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 대화하라는 권유로, 물질적 후원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히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딤전6: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 개역 개정에서 물질적 나눔으로 번역했으나, KJV는 ‘communicated’에서, 이는 커므니케이션(대화하라)이다. 이 둘 사이에 차이가 크기에 헬라어 원문이 궁금하다.

    <유력한 자들 reputation> [삼상10:26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과 함께 갔느니라] [단8:24 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장차 놀랍게 파괴 행위를 하고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행13: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 KJV는 ‘reputation’은 명망가들을 말하며, 이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자들이다. 사도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았기에 명망가들이 아니다.

    <사사로이 privately> [막9: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 조용히는 공개적이 아니라는 의미 [눅10: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베드로후서 1: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 성경은 예언으로 가득 찬 책인데, 이를 사사로이 풀면 안 된다.

    <달음질 run>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 바울은 기독교 신앙을 달음질에 비교했고, ❶ 달음질과 같이 방향이 있고, ❷ 목표를 가져야 하고, ❸ 하늘의 상급을 바라야 한다. 비교하여, 교회 재산에 대한 도적질은 하늘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방향을 없거나 잘못되었고, 이 땅에서 상급을 스스로 훔치기에 죄이고 곧 배교다. [빌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 ‘그리스도의 날’은 재림이고, 생명에 말씀에 대한 사역은 자랑이 된다. [벧전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4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이가 있다. 인간에게 방탕은 지나간 때에 족하다.

    <헛되게 in vain> ☞ 헛되게, 망령되게, 무위로, 무익하게, [레20:7, 신5: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 망령되게 부르는 죄, 의미 없이, 종교의 외양으로, [사49: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렘8:8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the pen of the scribes is in vain.” 9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두려워 떨다가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 ❶지혜 있다고 하는 자들과 ❷(하나님의 말씀들을 버린) 거짓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헛되다. 예를 들면, 지혜와 철학을 기초로 자유주의 신학과 종교다원주의 같은 xx 주의를 신봉하거나 이를 추종하는 행동인데, 성경은 펜을 잡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하는 그들이 어리석다고 확증한다.


    • 2023-01-04 09:47

      엄 장로님, 안녕하시지요? 희망찬 새해에 건강과 형통의 나날을 보내시기를 기도합니다.
      새해에도 필자의 갈라디아서 주석책 연재에 관심을 보이시고, "위 목사님께서 게시하신
      내용을 통해 여러 가지 다양한 입장과 해석에 대해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또 본문에 대한
      저의 소견을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 2023-01-04 09:50

    ※ 본 글의 “[바나바](Βαρναβά)는 구브로에서 태어난 레위인으로서 원 이름은 요셉이었지만, 사도들이
    그를 권위자란 뜻인 [바나바]라고 불렀다.”의 권위자는 권위자(權威者)가 아니라 권위자(勸慰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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