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신학과 그들의 행동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공교회의 공인을 받아야 한다.
작성자
현종서
작성일
2022-12-18 19:18
조회
1478
장윤재 목사(이대 조직신학교수, 이화대학교회 목사)는 에큐메니칼 신학에 대한 이해라는 제목으로 기독교신문에 연재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절반 가량은 WCC가 최근 보인 행보까닭에 부산 WCC 총회도 크게 반대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 행사가 있기전 WCC 신학에 대한 견해차로 갈라졌던 보수 장로교회(합동측)도 한 장로교회 운동에 동의하였고, 보수 침례교회 세계총회장까지 지낸 김장환 목사까지 협조하여 WCC 한국대회를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 세계개신교회의 최대의 연합모임으로써 한국부산에서의 총회도 잘 치루도록 협조해 주었다.
물론 한국의 많은 개교회들과 개개인 성도들은 WCC의 비성서적인 활동(종교다원주의적 경향,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듯한 KNCC의 주장)에 반대하여 탈퇴를 주장하는 움직임에 대해 그런 활동들은 차후 계속하여 개선할 지라도 그 회의 존속 자체는 동조함으로 국가적으로 전교회적으로 지원하며,WCC를 탈퇴하자는 의견을, 일단 억눌렀다.
금년 한국 감리교회의 WCC 탈퇴에 대한 평신도들 주도의 전국적인 건의안에 대에 감독들의 어설픈 해명과 직권으로 그 건의안을 물렸지만, 평신도들과 많은 성서적 신앙을 보수하는 목회자들은 불만스러운 WCC 와 NCC의 행보를 지켜보며, 달라지는 바 없으면 더 큰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은 자명해 보인다. WCC 중요직에 한국교회대표들이 들어가 있으므로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WCC와 KNCC의 비성서적인 활동들을 견제해야 할 것이다.
장윤제 목사는 2022.12.18. 기독신보 15면에 에큐메니칼 신학에 대한 이해의 글(10)을 실리고 있는데, 한국 에큐메니즘의 미래는 한국교회와 신학이 기독교 근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며 기독교 근본주의는 본래 미국현상이며, 그것이 미국문화의 중심을 잡고 있고, 또 한국교회를 다스리는 막강한 지배 이데올로기라 평하고 있다. 그리고 근본주의란 성경의 무오류성,예수의 처녀탄생, 예수의 신성과 기적의 사실성,인간의 죄로 인한 예수의 대속적 죽음, 그리고 예수의 육체적 부활과 재림을 믿는 종교운동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가 말한 근본주의는 원시 기독교의 신앙고백이며, 종교개혁을 통해 재 발견한 것으로, 죤 웨슬리를 통해 완성한 종교개혁의 중심교리이다. 오늘 우리 개신교도들의 신앙고백과 교리의 내용의 중심이다. 그런데, 이것을 극복한다는 에큐메니즘이란 무엇일까? 기독교는 계시 종교인고로 시대의 사조에 따라 문화의 옷은 바꿔입을지 몰라도 그 내용은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의 작품으로서의 구원의 방식인 것이다. 그것은 성서적인 기독교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상운동, 종교운동의 하나가 일명 기독교근본주의 자들의 주장이므로 그것을 넘어서는 종교운동, 사상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리고 타종교에 대한 전도방법을 “겸손한 대화”의 방법으로 예수의 선교방법을 따르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과연 그러할까? 겸손히 대화하라하기 보다는 “ 너희는 온 천하를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 전파하라(막16:15),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 하시었다. 물론 선교현장에서 때론 대화의 방법을 취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리스도의 명령은 “ 복음을 전하라” 는 것이다. 그런데 이일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라고 하시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시니라(행1:8) 복음전파의 수단으로 사랑으로 대화하라는 말은 없다. 예수의 가르침은 대화보다 복음 선포 였다. 복음전도는 내가 이해한 이론, 내 사상을 대화의 방법을 통해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함인 것이다. 오히려 소크라테스야 말로 대화의 방법으로 상대를 설득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WCC 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들의 한 기관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여 이상적으로 보이는 인본주의적 철학을 만들어 내어 그것을 가지고 상대(타 종교인)와 대화하려 하는 것인지 즉 성서적 계시를 넘어 인본주의적 철학( 예를 들며, 평화이념하에 타협을 통한 종교간의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자 것)운동을 하자는 단체인지 자기의 정체성을 재확인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절반 가량은 WCC가 최근 보인 행보까닭에 부산 WCC 총회도 크게 반대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 행사가 있기전 WCC 신학에 대한 견해차로 갈라졌던 보수 장로교회(합동측)도 한 장로교회 운동에 동의하였고, 보수 침례교회 세계총회장까지 지낸 김장환 목사까지 협조하여 WCC 한국대회를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 세계개신교회의 최대의 연합모임으로써 한국부산에서의 총회도 잘 치루도록 협조해 주었다.
물론 한국의 많은 개교회들과 개개인 성도들은 WCC의 비성서적인 활동(종교다원주의적 경향,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듯한 KNCC의 주장)에 반대하여 탈퇴를 주장하는 움직임에 대해 그런 활동들은 차후 계속하여 개선할 지라도 그 회의 존속 자체는 동조함으로 국가적으로 전교회적으로 지원하며,WCC를 탈퇴하자는 의견을, 일단 억눌렀다.
금년 한국 감리교회의 WCC 탈퇴에 대한 평신도들 주도의 전국적인 건의안에 대에 감독들의 어설픈 해명과 직권으로 그 건의안을 물렸지만, 평신도들과 많은 성서적 신앙을 보수하는 목회자들은 불만스러운 WCC 와 NCC의 행보를 지켜보며, 달라지는 바 없으면 더 큰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은 자명해 보인다. WCC 중요직에 한국교회대표들이 들어가 있으므로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WCC와 KNCC의 비성서적인 활동들을 견제해야 할 것이다.
장윤제 목사는 2022.12.18. 기독신보 15면에 에큐메니칼 신학에 대한 이해의 글(10)을 실리고 있는데, 한국 에큐메니즘의 미래는 한국교회와 신학이 기독교 근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며 기독교 근본주의는 본래 미국현상이며, 그것이 미국문화의 중심을 잡고 있고, 또 한국교회를 다스리는 막강한 지배 이데올로기라 평하고 있다. 그리고 근본주의란 성경의 무오류성,예수의 처녀탄생, 예수의 신성과 기적의 사실성,인간의 죄로 인한 예수의 대속적 죽음, 그리고 예수의 육체적 부활과 재림을 믿는 종교운동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가 말한 근본주의는 원시 기독교의 신앙고백이며, 종교개혁을 통해 재 발견한 것으로, 죤 웨슬리를 통해 완성한 종교개혁의 중심교리이다. 오늘 우리 개신교도들의 신앙고백과 교리의 내용의 중심이다. 그런데, 이것을 극복한다는 에큐메니즘이란 무엇일까? 기독교는 계시 종교인고로 시대의 사조에 따라 문화의 옷은 바꿔입을지 몰라도 그 내용은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의 작품으로서의 구원의 방식인 것이다. 그것은 성서적인 기독교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상운동, 종교운동의 하나가 일명 기독교근본주의 자들의 주장이므로 그것을 넘어서는 종교운동, 사상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리고 타종교에 대한 전도방법을 “겸손한 대화”의 방법으로 예수의 선교방법을 따르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과연 그러할까? 겸손히 대화하라하기 보다는 “ 너희는 온 천하를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 전파하라(막16:15),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 하시었다. 물론 선교현장에서 때론 대화의 방법을 취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리스도의 명령은 “ 복음을 전하라” 는 것이다. 그런데 이일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라고 하시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시니라(행1:8) 복음전파의 수단으로 사랑으로 대화하라는 말은 없다. 예수의 가르침은 대화보다 복음 선포 였다. 복음전도는 내가 이해한 이론, 내 사상을 대화의 방법을 통해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함인 것이다. 오히려 소크라테스야 말로 대화의 방법으로 상대를 설득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WCC 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들의 한 기관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여 이상적으로 보이는 인본주의적 철학을 만들어 내어 그것을 가지고 상대(타 종교인)와 대화하려 하는 것인지 즉 성서적 계시를 넘어 인본주의적 철학( 예를 들며, 평화이념하에 타협을 통한 종교간의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자 것)운동을 하자는 단체인지 자기의 정체성을 재확인해야 할 것이다.
감독들의 어설픈 해명이라...
원로목사님께서 글의 정도를 넘어서시는군요..
지금 원로목사님이 하시는 일이, 강단을 공격하고 신학을 공격하는 마귀짓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어설픈 훈계를 가장한, 이 무의미한 일은, 그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근본이란 말은 좋은 말이죠.
그러면 이슬람 근본주의도 좋은 말입니까?
정통이란 말은 어떤가요?
자유라는 말은 좋은 말 아닌가요?
3류 소설 쓰듯이 신학하지 마시고,
신학 논쟁을 하고 싶으시면, 기본 베이스인 개념부터, 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도무지 공부를 하지 않고, 사고가 멈추어 버린 돌 머리 들이 문제
웨슬리가 옥스퍼드 대에 가서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외친 설교는 "성서적인 기독교" 였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철학적 진리가 아니라 계시와 체험적 진리이고 이것을 해명하느라고 때로 철학적 개념이나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를 여러 사상중에 하나의 사상으로 보고 그 사상은 시대화 문화에 따라 발전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의 진리도 옛 사상의 하나로 취급하여 많은 세월이 흐르고 과학의 진보로 새로운 철학을 말해야 하니, 옛 기독교의 교리나 사상을 그대로 말하지 말고. 그것을 새로운 이해와 언어로 이 시대의 문화인들이 이해할 수있게 말하라고 하며, 동어 반복을 하지 말라 하지요. 그러나 성경의 진리는 2000년 전이나 6000년전이나 20세기에나 변할 수 없는 계시진리이고, 천사나 마귀의 존재는 옛 신화적인 이해가 아니라, 오늘날도 현실이지요. 성경을 보되 이성을 최고의 재판정으로 아는 사고를 통해 볼 것인가 아니면 성령의 감동으로 씌여진 글로써 성령의 감동을 통해 읽고자하는 자세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질 것입니다. 또 감독이 되면 학문도 저절로 완성이 되는 것 아닙니다. 2-4 세기 교부들 감독들은 대 학자들이기도 했지만 현 감독들은 그렇지 못함을 굳이 설명해야 합니까? 오히려 선거운동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이 목사는 그런 말 할 자격이 아직 없다고 보내만---, 그리고 장 목사는 거듭남이 무엇인가 부터 체험해야 할 것입니다.
와쳤다고 생각하시는구나.
누구는 누구 감독보고 싸웠디고 하던데.
딤전 1: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목사 자격이 없다??
그참! 서울에서 대학교 나오셨다고 ㅎㅎ
근본주의가 미국꺼는 아닙니다. 제가 쉽게 설명해드리죠.
1. 종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할 때는, 종교에 대한 정의부터 들어갑니다.
서울대 종교학과에서 이 연구가 제법 되어있습니다.
교계에서는 이원규 교수님이 연구하셨죠. 복잡하니 넘어갑니다.
2. 전통종교의 기본요소 안에는, text(문서, 정확히 문자무오주의)와 전통(역사)이 존재합니다.
그 중에 문서 곧, 글자를 절대시하는 사조가 “근본주의”입니다.
+ 역사하면, 교리가 나옵니다. 여기는 “정통주의”라고 부릅니다.
3. 역사적으로 수많은 근본주의와 정통주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근본주의는 미국에만 있는게 아닙니다. 어디에도 있지요..
다만, 미국 근본주의가 한국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죠. 특히, 장로교에게는요.
그러니까, 원로목사님은, 은급비는 은급재단에서 받으면서, 열심히 ‘딴 운동’ 하시는 중입니다.
4. 본인이 아무리 폼 잡으셔도, 실력 따지고 들어가면, 소용이 없습니다.
존 웨슬리가 근본주의를 완성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세요.
종교개혁의 기반은 모국어로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카톨릭은 문자-라틴어를 고집했죠.. 성경번역은 당대의 근본주의에 반하는 운동입니다.
오히려 웨슬리는 근본주의, 정통주의의 한계 안에 있기보다, 순수한 복음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요?
원로목사님이, 극우적 사고, 철학에 빠져 있으면서도,
“감독들의 어슬픈 해명” 운운하시니, 제가 이렇게 글을 쎄게 쓰는 것입니다.
장윤재 목사가 말한 "근본주의란 성경의 무오류성,예수의 처녀탄생, 예수의 신성과 기적의 사실성,인간의 죄로 인한 예수의 대속적 죽음, 그리고 예수의 육체적 부활과 재림을 믿는 종교운동"인데, 그 내용은 성경의 무오류성은 더 세분화되긴 하나, 예수의 처녀탄생--- 재림을 믿는 종교 (운동)이라했는데, 이것은 원시기독교가 믿던 내용이며, 개혁자들이 재발견한 것이고 죤 웨슬리까지 믿던 내용이 아닙니까? 소위 미국 근본주의자들이 우리 한국에 선교사로와서 복음 전해 준 내용도 그 복음 아니었습니까? 장목사는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 늘 사용하고 부르고 있는 찬송가 내용도 다 거기에 맞추어져 있지 않습니까? 복음성가도 그렇고요. 그래서 그것을 극복한다는게 무얼까요?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다시 구성한 기독교일까요? 나는 성서적이고 전통적이며, 이성적이고 체험적인 기독교, 거룩한 사랑의 영이신 성령과 함께 가는 기독교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이 목사는 한 단어뒤에는 많은 함축적인 뜻의 배경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너무 단순화하여 오해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 창조적 섭리관과 유물론적 진화론은 지금도 계속 충돌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원로목사님께서 공부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목사님께 지적 받고 끝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어느 정도 여지를 두시고, 살살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WCC는 어떤 사람들의 철학에 기반하며,
하여 이는 성경이 제시하는 구원과는 전혀 무관한 노력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