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군선교자들 보시고. 감리교회 여성 이래도 되는 겁니까?
작성자
민관기
작성일
2022-12-02 13:05
조회
1788
됩니다. 그대들은 빛민족의 후예이며 그들의 딸이며 어머니이니.
광복군총영 총사령관 오동진.
광복군총영 폭탄대 조직>
서울 방면 : 김영철(金榮哲), 김성택(金聖澤), 김최명(金最明)
평양 방면 : 문일민(文逸民), 장덕진(張德震), 박태열(朴泰烈), 우덕선(禹德善), 안경신(安敬信)
선천 방면 : 이학필(李學弼), 임용일(林龍日), 김응식(金應植)
신의주 방면: 이진무(李振武), 정인복(鄭仁福)
============================
1~4대중 문일민, 안경신의 평양방면 제3대만 투탄에 성공하였다.
= 아래에 기록된 인사들은 오진우와 부토 제외하고 99%? 감리교인들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오동진과 문일민 그리고 안경신을 주목한다.
다른 인물들은 종교성이 아직 확인 안되었으나. 이 셋은 감리교회와의 연관성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 오동진은 한 때 이북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의 부친이라는 오류를 가진 인물이기도 했으나, 이는 사실은 아니다. 그는 해석 손정도 목사로부터 신앙적 감화를 크게 받은 인물로 거사후 피체되어 공주 형무소 투옥시 날마다 성경을 읽었고, 왜적들이 주는 음식으로 연명할 수 없다며 거부하다 순절/순국하셨다. 대한민국 정부는 오동진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1등급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 문일민은 평남 강서출신으로 감리교인들인 해석 손정도 목사, 도산 안창호, 우강 양기탁의 동향 후배이며 같은 기독자로 상하이 임정 의원을 역임하다가 오동진 총사령관의 휘하에서 평양 폭탄대를 이끌었다. 문일민은 투탄후 다시 본진으로 퇴각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문일민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3등급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안경신은 감리교회 역사상 특기할 인물로, 우리 교회 출신 여성으론 유일하게 직접 왜경 1명 권총 사실과 폭탄의거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안경신은 더욱이 임신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평양경찰서와 평양도청에 폭탄 투척에 성공한 후 도피하다 피체되어 형무소안에서 아이를 출산하기도 한 거룩한 빛아기의 빛엄마인 빛여성이다.
한편, 평양 대한애국부인회시절 해석 손정도 목사의 모친 오신도 여사와 활동을 하다 상하이 임정 참여한 진정한 감리교회 여걸중 하나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안경신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3등급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감리교회에서 유일하다는 말은 2,000만 대한인중 유일하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 물론, 의열투쟁을 수행한 남자현(건국훈장 대통령장) 의사+(만주지역 독립군과 교회의 어머니로 만주전권공사 부토의 만주 방문 소식에 저격/처단하려다 피체되어 왜적들이 주는 음식을 거부하다 순절/순국)와 무장투쟁을 수행한 여성 광북군 지복영(배재출신 지청천(건국훈장 대통령장) 광북군 총사령관의 여식으로 최일선 전방 전투요원, 건국훈장 애족장)과 민영주(건국훈장 애족장) 등이 있으나 이들은 총을 들었지 폭탄을 던진건 아니다.
+ 남자현은 경상북도 영양/안동 출신으로 우리의 삼남연회 선교구역 출신이다. 그는 청산리대첩 부상자의 치료 그리고 독립운동 진영의 분열을 비판하고 단결을 촉구하며 손가락을 3번 자르는 단지를 하였다. '여성 안중근'(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라 칭하며 안의사보다는 7살 위이고, 유해가 하얼빈에 모셔졌다가 묘역이 없어져 존재하지 않으며, 서울현충원에 허묘가 있다.
= 한편, 3.1혁명 참전 후 무력투쟁으로 민족운동 노선을 정리한 조신성 전도사(건국훈장 애족장)는 '호굴독립단'에 참여하여 폭탄과 총을 무기로 투쟁하였으나 조전도사 본인이 직접 투탄을 하진 않았다.
상하이 임정 휘하 광복군총영은 1920년 미국의원단의 방한에 맞추어 프랑스 혁명식의 도시폭동을 일으며 세계에 여론을 환기하고자하는 기획을 하였고, 임정은 이 전략을 승인하엿다. 이 전략은 약산 김원봉(친북 무훈)과 한지 김상옥 의사(건국훈장 대통령장)의 의열단 또한 마찬가지의 계획이었다.
감리교회의 쌍두마차 의열전문 무장단체 곧, 광복군총영(의열투쟁은 단독없었고 의열투쟁이더라도 대규모 전투급의 의열전 수행과 국내진공전투 100여 회 수행) 과 의열단은 항일무장투쟁과 의열단체인 두 단체는 이 거사의 주인공으로서 이를 성공시켰다.
총영의 문일민과 안경신은 평양 투탄에 성공하였고, 동대문교회 교인 김한지 의사는 서울 효제동에서 1 : 1,000의 전투를 벌여 왜적 20여 명을 사살하고, 적에게 생포되지 않겠다 한 임정에서의 백범 김구, 성제 이시영, 조소앙(셋 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등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함인지 마지막 남은 한 발로 자진 순절/순국하셨다. 김의사는 사실상의 한국혁명 사령관으로서 서울시내에서의 전쟁을 홀로 이끌었던 것이다. 혁명 전쟁 혼자도 한다.
종로경찰서 투탄, 남산통과 삼판통 전투, 후암동 전투, 효제동 전투의 주인공이 바로 그 이다.
= 한편, 김의사의 의형제인 나석주 의사(건국훈장 대통령장)(황해 보강학교 김구, 도마 안중근의 지도)도 1926년 동양척식과 식산은행에 투탄한 후 왜적에게 쫒기다 6명을 사살하고 자신의 의형제와 같은 방법인 한 발 남은 총알로 자진 순절/순국하셨다. 그는 혼인하지 않은 총각이었다. 참으로 아름답고 처절한 거사였으나 후사를 남기자 못함이 너무 안타깝다.
이 두 의형제는 강우규(서울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장로), 김익상 의사(조선총독부, 건국훈장 대통령장)와 함께 서울
한 복판에서 의거한 4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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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선교 관계자들 어찌보라고 했느냐?
대한민국 국군의 정신적 방면의 전투력 강화를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기에 참고가 될까?해서 이다.
어찌 위의 몇 분뿐 이겠는가?
이 외에도 이름을 아는 수 백명과 이름도 알 수가 없는 수 천명이 있다.
광복군총영 총사령관 오동진.
광복군총영 폭탄대 조직>
서울 방면 : 김영철(金榮哲), 김성택(金聖澤), 김최명(金最明)
평양 방면 : 문일민(文逸民), 장덕진(張德震), 박태열(朴泰烈), 우덕선(禹德善), 안경신(安敬信)
선천 방면 : 이학필(李學弼), 임용일(林龍日), 김응식(金應植)
신의주 방면: 이진무(李振武), 정인복(鄭仁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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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중 문일민, 안경신의 평양방면 제3대만 투탄에 성공하였다.
= 아래에 기록된 인사들은 오진우와 부토 제외하고 99%? 감리교인들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오동진과 문일민 그리고 안경신을 주목한다.
다른 인물들은 종교성이 아직 확인 안되었으나. 이 셋은 감리교회와의 연관성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 오동진은 한 때 이북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의 부친이라는 오류를 가진 인물이기도 했으나, 이는 사실은 아니다. 그는 해석 손정도 목사로부터 신앙적 감화를 크게 받은 인물로 거사후 피체되어 공주 형무소 투옥시 날마다 성경을 읽었고, 왜적들이 주는 음식으로 연명할 수 없다며 거부하다 순절/순국하셨다. 대한민국 정부는 오동진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1등급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 문일민은 평남 강서출신으로 감리교인들인 해석 손정도 목사, 도산 안창호, 우강 양기탁의 동향 후배이며 같은 기독자로 상하이 임정 의원을 역임하다가 오동진 총사령관의 휘하에서 평양 폭탄대를 이끌었다. 문일민은 투탄후 다시 본진으로 퇴각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문일민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3등급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안경신은 감리교회 역사상 특기할 인물로, 우리 교회 출신 여성으론 유일하게 직접 왜경 1명 권총 사실과 폭탄의거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안경신은 더욱이 임신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평양경찰서와 평양도청에 폭탄 투척에 성공한 후 도피하다 피체되어 형무소안에서 아이를 출산하기도 한 거룩한 빛아기의 빛엄마인 빛여성이다.
한편, 평양 대한애국부인회시절 해석 손정도 목사의 모친 오신도 여사와 활동을 하다 상하이 임정 참여한 진정한 감리교회 여걸중 하나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안경신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3등급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감리교회에서 유일하다는 말은 2,000만 대한인중 유일하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 물론, 의열투쟁을 수행한 남자현(건국훈장 대통령장) 의사+(만주지역 독립군과 교회의 어머니로 만주전권공사 부토의 만주 방문 소식에 저격/처단하려다 피체되어 왜적들이 주는 음식을 거부하다 순절/순국)와 무장투쟁을 수행한 여성 광북군 지복영(배재출신 지청천(건국훈장 대통령장) 광북군 총사령관의 여식으로 최일선 전방 전투요원, 건국훈장 애족장)과 민영주(건국훈장 애족장) 등이 있으나 이들은 총을 들었지 폭탄을 던진건 아니다.
+ 남자현은 경상북도 영양/안동 출신으로 우리의 삼남연회 선교구역 출신이다. 그는 청산리대첩 부상자의 치료 그리고 독립운동 진영의 분열을 비판하고 단결을 촉구하며 손가락을 3번 자르는 단지를 하였다. '여성 안중근'(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라 칭하며 안의사보다는 7살 위이고, 유해가 하얼빈에 모셔졌다가 묘역이 없어져 존재하지 않으며, 서울현충원에 허묘가 있다.
= 한편, 3.1혁명 참전 후 무력투쟁으로 민족운동 노선을 정리한 조신성 전도사(건국훈장 애족장)는 '호굴독립단'에 참여하여 폭탄과 총을 무기로 투쟁하였으나 조전도사 본인이 직접 투탄을 하진 않았다.
상하이 임정 휘하 광복군총영은 1920년 미국의원단의 방한에 맞추어 프랑스 혁명식의 도시폭동을 일으며 세계에 여론을 환기하고자하는 기획을 하였고, 임정은 이 전략을 승인하엿다. 이 전략은 약산 김원봉(친북 무훈)과 한지 김상옥 의사(건국훈장 대통령장)의 의열단 또한 마찬가지의 계획이었다.
감리교회의 쌍두마차 의열전문 무장단체 곧, 광복군총영(의열투쟁은 단독없었고 의열투쟁이더라도 대규모 전투급의 의열전 수행과 국내진공전투 100여 회 수행) 과 의열단은 항일무장투쟁과 의열단체인 두 단체는 이 거사의 주인공으로서 이를 성공시켰다.
총영의 문일민과 안경신은 평양 투탄에 성공하였고, 동대문교회 교인 김한지 의사는 서울 효제동에서 1 : 1,000의 전투를 벌여 왜적 20여 명을 사살하고, 적에게 생포되지 않겠다 한 임정에서의 백범 김구, 성제 이시영, 조소앙(셋 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등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함인지 마지막 남은 한 발로 자진 순절/순국하셨다. 김의사는 사실상의 한국혁명 사령관으로서 서울시내에서의 전쟁을 홀로 이끌었던 것이다. 혁명 전쟁 혼자도 한다.
종로경찰서 투탄, 남산통과 삼판통 전투, 후암동 전투, 효제동 전투의 주인공이 바로 그 이다.
= 한편, 김의사의 의형제인 나석주 의사(건국훈장 대통령장)(황해 보강학교 김구, 도마 안중근의 지도)도 1926년 동양척식과 식산은행에 투탄한 후 왜적에게 쫒기다 6명을 사살하고 자신의 의형제와 같은 방법인 한 발 남은 총알로 자진 순절/순국하셨다. 그는 혼인하지 않은 총각이었다. 참으로 아름답고 처절한 거사였으나 후사를 남기자 못함이 너무 안타깝다.
이 두 의형제는 강우규(서울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장로), 김익상 의사(조선총독부, 건국훈장 대통령장)와 함께 서울
한 복판에서 의거한 4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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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선교 관계자들 어찌보라고 했느냐?
대한민국 국군의 정신적 방면의 전투력 강화를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기에 참고가 될까?해서 이다.
어찌 위의 몇 분뿐 이겠는가?
이 외에도 이름을 아는 수 백명과 이름도 알 수가 없는 수 천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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