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회는 종교다원주의와 자유주의신학을 버리고 회개해야 산다.
작성자
엄재규
작성일
2022-11-25 10:42
조회
1662
㈎ 요즘은 많은 기독교 종교인들이 제 멋대로 <구원의 문턱을 땅의 낮은 곳에다 걸어 놓고 이를 넘으면 구원된다> 하고, <이산과 저산에 구원이 있으며, 어느 산이나 꼭대기에 오르면 구원이 된다>는 거짓말을 예사로 한다. 하나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들과 전혀 관계가 없는 (종교)다원주의자들과 (신학)자유주의자들의 개똥철학이 만든 열매로 보인다.
㈏ 영원한 지옥의 형벌인 저주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이를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밀실에서 혼자 하는 감정적 후회나 자기 반성이 아니다.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이를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즉 공개적으로 설교, 강의, 문서, 인쇄물로 무엇을 회개하는지? 자신이 죄인인 것을 밝혀야 한다.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 회개하지 않으면 거기에는 촛대가 옮겨지고, 이리하면 그가 ‘종교 무당’은 될지는 모르겠으나 ‘하나님의 종’은 턱도 없는 소리다.
㈐ 신자들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아야 한다. [막1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요이1:7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 자유주의와 종교 다원주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초림 사건부터 부인한다. 아래 글을 참조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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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 글 “김홍도는 죽고 변선환이 부활했다” (글번호 12663, 게시자 장병선)을 보면서, 거기의 많은 주장들이 거짓이 포함되었고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으며, 이러한 행태가 적절한 토론이나 분석 없이 그대로 정치적 힘을 얻게 된다면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고 보아, 이에 대한 반론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❶ (서론) 이 시점에서 학술대회 형식으로 혹은 출판의 형식으로, 단체나 집단을 형성하여 이를 다시 재론하면서, “당시 종교재판에서 종교권력이 부당하게 힘을 형성하여 올바른 종교철학을 공격했다.”는 도발은 적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군중의 모양새로 이에 반대한다고 해서 결코 다시 진리가 될 수 없다. 이는 어떠한 외형을 갖추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본질은 “변선환의 주장이 진리의 진영에 속하는가? 아니면 거짓의 진영에 속하는가?”에 대한 다툼이고, 이는 하나님의 편과 사탄의 편에서 벌이는 영적 전쟁일 뿐이다. [엡1: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 나는 이를 기도한다.
◆ 변선환의 사상과 업적 및 그의 종교재판에서 진술을 살펴보자.
(인용) 사상 및 업적; ㉮ 그는 타 종교를 포용해야 한다는 다원주의적 입장을 취했으며, 이론적 차원이 아닌 실천적 차원에서 신학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그의 신학은 근본주의가 만연하던 당시 기독교계의 반발을 불러 많은 논쟁을 낳았다. 그의 입장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종교적 다원주의 : 1977년 《월간목회》를 통해 “교회 밖에도 구원 있는가?”라는 주제로 신학적 논쟁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1982년 《기독교사상》에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1984년 《기독교사상》에 <타종교와 신학>, 1990년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심포지엄에서 <불타와 그리스도>를 발표하면서 종교적 다원주의를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는 개종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적극적으로 타 종교와 교류하여 기독교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는 한국 종교계의 가장 큰 문제점을 종교 간의 갈등과 반목으로 파악하였는데, 그 원인으로 개신교의 배타성과 공격성을 언급하며 기독교 반성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② 종교 해방신학 : 그가 주장한 종교적 해방신학은 기독교를 서구 기독교의 교의학적 틀에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아시아 종교계의 실천적인 과제와 관련해서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그에 따르면 아시아 신학자들은 지역의 토착 종교와 관련지어 그리스도의 상징적 의미를 해석해왔다. 따라서 기독교의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을 기독교의 규범적 상징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의 해방신학의 목표는 서구의 신(新)식민주의적 패권주의와 문화적 우월주의로부터 한국 종교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그는 종교재판의 진술에서 “기독교는 더 이상 정복자의 종교가 아니며 전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종교간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종교적 다원주의는 감리교의 세계적 추세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변선환[邊鮮煥] (두산백과 두피디아) (인용 끝)
❷ 인용에서 변선환의 ‘종교적 다원주의’는 기독교의 교리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부정한 위험한 길이다. 뉴에이지는 “우리는 ‘만유’ 안에서 하나다.” 혹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 안에 있다.” 혹은 “우리 모두는 하나”라는 구호로 영적 미혹을 한다. 통상적으로 보아, 종교 간의 통합 또는 연대는 ‘구원의 방법’ 혹은 ‘종교’ 혹은 ‘영성’이라는 단어를 공통분모로 매개로 하고, 이는 하나님을 샤머니즘 신과 불교의 인간 석가모니들과 동급으로 여기고, 또한 인간의 혼의 산물인 철학 사상에 기초한 새로운 구원 방식을 띄운다, 다른 종교들은 모두 인간의 철학이나 여러 사람들이 만든 가변적 교리를 기본으로 깔고 가서 무너질 절대 교리도 없으나, 기독교는 이와 다르다. 종교 간에 장벽을 헐자고 하면서 기독교 다원주의들이 앞장서서 하나님의 계시와 비밀과 예언을 절대 기준으로 하는 기독교 울타리를 가장 먼저 스스로 허물어뜨리고 있다. 이런 접근 방식은 성경에 따르는 기독교의 주요한 교리인 창조, 구속, 대속, 심판, 초림과 재림 예수에 대한 예언과 역사적 성취를 전부 부정하기에 이는 기독교의 골간을 무너뜨리는 배교 행위이고 하나님께 대한 반란이다. [사21:11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 밤에 적이 오는지?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는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정의하신 말씀은 종교 다원주의를 부정한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 다원주의자들은 독생자 사역, 영생, 심판에서 구원을 각각 부정한다. 다원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자기들이 이성보다 하위에 둔다.
❸ 인용에서 변선환의 “종교적 해방신학”와 토착 종교와 “서구의 신(新)식민주의적 패권주의와 문화적 우월주의로부터 한국 종교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는 것”에서 그의 사고방식은 큰 오류를 바탕에 깔고 간다. 그의 주장은 종교철학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나 성경과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 즉 서구의 기독교는 패권주의 적이고 동양의 문화적 정체성이 열등하다는 단정은 잘못이다. 문명은 우열이 있지만 문화는 우열이 없고, 토착화는 중립적인 일이기는 하나, [민33:52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 55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 토착화 할 때, 우상 신을 몰아내지 않으면 위험하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서구가 아니다. 지리적으로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가 가운데 3중의 교차점에 위치한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선택한 이유는 그들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상16:19 그 때에 너희 사람 수가 적어서 보잘것없으며 그 땅에 객이 되어 20 이 민족에게서 저 민족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백성에게로 유랑하였도다] ☞ 오히려 인구가 적고 약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북방과 남방의 세력이 강할 때 마다 수없는 침략을 당해서 나라는 식민지가 되고 민족들은 종으로 잡혀갔었다. 토착화는 문화적으로 우상의 유입을 말한다. [삼상15: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했을 때,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들은 현지에서 토착화 하지 말하는 명령에 해당한다. 사울이 이 명령을 위반했을 때, 그의 후손들까지 영적전쟁에서 위험에 처해진다.
❹ 자유주의가 신학인가? 자유주의는 하나님의 말씀들에 대항하고 혼적 영역에서 인간의 오감과 이성을 성령님의 해석보다 우위에 둔다. 이는 신학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학‘이며, 앞으로 각 신학교마다 인간학과 개설하여 여기에서 젠더, 동성애, 퀴오, 혐오, 사실여부의 문제를 다루는 게 어울릴 것 같다. 신학자라는 분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영적 소경이고, 문자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아예 듣지를 못하기에, 대신에 인간의 혼으로 이를 자유롭게 freely 해석하여 자신뿐 아니라 타인들까지 자유롭게 freely 지옥행 단체 열차를 타게 했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 주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인간의 혼에서 출발한 자유주의라는 개똥철학이나 다원주의 같은 사상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게 아니다. [요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 자유주의 개똥철학이 주는게 아니다. [벧전2: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갈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 다른 복음은 없다. 자유주의라는 기만극을 멈추어야 한다. 거기에는 저주가 따른다.
❺ (결어) 성경은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 진리에서 돌이킨 허탄한 이야기와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두는 게 문제다. 이 시대는 이러하다.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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❻ (덧붙이는 글) 이 집회에서 있던 각각의 발언에서 보면 여러 군데서 진리를 왜곡하여 거짓 주장을 하였고, 이를 공개적으로 게시했기에, 이러한 정치적 결사는 일반 교인들에게 마치 진리인양 사실을 호도할 위험이 있기에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시86:14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 이들은 집단화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들을 대적한다. [엡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라고 권면 하신다. [고전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영적인 일을 분별해야 한다.
ⓐ 인사의 말씀 김정숙(감신대 교수, 변선환아카이브 소장): 학술대회를 여는 인사말에서 “충분한 신학적 토론이나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신학적 논리도 없이 마녀사냥처럼 몰아친 당시 교권의 종교재판은 그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덮고 지나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고 주장하나,
⇒ 어떤 사람의 신학사상으로 포장해 이단적 주장을 할 때 이를 장정 【재판법】에 따라 종교재판으로 다루는 게 부당한 일인가? 이게 부끄러운 일인가? [신25:1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 격려사 /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예수께서는 전혀 이단을 만들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이단 집단으로 몰리는 혐오와 폭력의 한 가운데에 서 계시기도 했다”는 말로 이단으로 몰린 변교수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교회를, 혹은 성도를 이단에게서 보호한다는 구실로 교회가 종교재판을 열고 이단 감별사들이 이단을 솎아낸다는 것은 밀과 가라지 비유가 가르치는 교훈과도 배치된다.”고 주장하나,
⇒ [딤전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변선환이 그리스도인가? 그의 다원주의신학이 인류를 구원하였나? 오히려 그의 발언이 성경 가르침을 왜곡한다. [겔44:23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고, 더러운 일과 깨끗한 일을 분별해야 한다.
민영진은 “혐오를 선동하는 것이 믿음 아니다. 폭력을 경쟁하는 것이 거룩함 아니다.”라고 주장하나,
⇒ 그에게 되묻고자 한다. 자유주의자들이 거짓을 선동하는 게 믿음인가? 무지를 경쟁하는 게 거룩함인가? [딤전1:6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 자유주의자들과 다원주의자들은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영적으로 분별하면, 이들은 좀 모지란 부류에 해당한다.
민영진은 “서로 다른 점 부풀려 갈라지지 말고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도 서로 소중히 여겨 그 씨 새들 깃들이는 나무로 자라게 할 일이다 하늘나라가 그렇게 오니까 가라지 갈라내는 건 추수 때까지 기다렸다가 할 일이라니까”라고 주장하나,
⇒ 각각의 다른 상황을 설명하는 성경 구절을 무리하게 찾아 한 꾸러미로 엮어서 서로 간에 논리적 연결고리가 없고, 어울리지 않는 헝겊으로 만든 짜깁기 걸레에 해당한다. 마치 한꾸러미에다 굴비 배추 전어 시금치 오징어 상치를 엮은 형태이다. 믿음은 거짓을 분별해야 한다. [고후11: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 다원주의와 자유주의를 분별해야 한다. [갈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 다른 복음은 없다. [눅13: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고전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 나쁜 누룩을 그냥두면 전체 빵이 상해 버리게 된다.
ⓒ 윤병상(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은 “변선환 교수는 예언자였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한 대언자였다. 한국 감리교회에 신학과 신앙은 있는가? 신학 없는 신앙은 무속 신앙이다. 무속은 창시자도, 신학도, 교리도 없다.”라고 주장하나,
⇒ 이 얼마나 황당한 괴변이고 언어유희이고 기만인가? [고전14: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변선환이 무슨 예언을 했나? 하나님에 대한 대언자가 아니라, 신학을 내세우면서 자기 철학을 관철하고,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들을 거역한 배교자이다. 이들이 말하는 자유주의 신학과 다원주의 신학이야 말로 무속이고, 개똥철학에 속하고, 신학도 아니고 교리가 되지 못한다.
ⓓ 격려사 / 도올 김용옥(한신대 석좌교수): 당시 도올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변교수의 주장이 “이미 다원화된 한국 종교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는 정확한 메시지”이고 “1951년 위팅겐회의가 교회중심주의, 배타주의, 개종주의 선교를 표방하는 제국주의, 즉 서구 식민지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선언한 이래 꾸준히 진행되어온 국제 기독교 사회의 상식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말로 변교수의 다원주의적 입장을 옹호하나,
⇒ [호1: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도올은 학위 수집가이고 학문을 서고에 높이 쌓아 이를 자랑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보기엔 하나님의 말씀들이 기록된 성경과 거기에 있는 구원에 대한 정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논리들은 각각 전제조건, 계 System, 논리의 전개, 및 결론에서 짜임새가 없고 정돈되어있지 않다, 이런 부류가 학문에서 명성을 얻었다는 게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기에 학계라는 게 그 수준이 의심된다. 그는 신학을 공부했다고는 하나, 성경도 모르고 기독교 주요 교리도 모르는 좀 무식한 자이다. 이런 방식의 혼적 접근으로 영적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시다. [삼하22:3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 폭력에서 구원하시는 이는 하나님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독생자가 세상을 구원함. 종교 다원주의 개똥철학이 아니라, [요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올은 “모든 창조와 완전은 과정일 뿐이며 완결된 것일 수 없다. 기독교의 역사도 완결된 것일 수 없다. 보수 진영이든 진보 진영이든 그 존속 이유가 있는 것이라면, 그 양자의 과정은 오로지 공존과 대화의 변증법 속에서 하나님의 평화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라고 주장하나,
⇒ 도울이 새로운 창조, 새로운 세상, 새로운 세계는 모두 뉴에이지 사상의 표현방식이다.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 천지창조가 완결된 것이고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만족하셨다. [전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기독교역사도 완결된 것이고, 변증법적 정반합을 통한 발전은 없다.
도올은 배타성을 향해 “배타는 하나님의 적이요 선교의 거부다.”라고는 해괴망측한 언어유희를 하나,
⇒ [시81:9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 하나님의 말씀과 정당한 교리는 타문화 타사상 타종교의 혼합을 배제한다. [신22:11 양 털과 베 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이방신과 교제는 배교이다. 선교하기 위해 이방신을 섬기랴?
도올은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서 “이분에게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천하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4장 12절의 말씀이다. 과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주체가 예수 하나뿐일까?” 라고 하면서 논리를 전개했고, 또한 “변선환 선생이 주장하는 바, 기독교(교회) 밖에도 하나님의 사람이 있고 구원이 있다는 것은, 지금 새삼스럽게 거론된 바도 아니요, 또 이설을 세우기 좋아해서 외쳐대는 말도 아니다. 그것은 이미 다원화된 한국 종교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는 정확한 메시지이며, 1951년 위팅겐회의가 교회중심주의, 배타주의, 개종주의 선교를 표방하는 제국주의, 즉 서구 식민지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선언한 이래 꾸준히 진행되어온 국제 기독교 사회의 상식을 반영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나,
⇒ [딤후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그는 성경도 모르고 교회사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뉴에이지 사상에다가 이상한 신학을 꿰맞추기 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도 듣지 않는 교만한 품성으로 보인다.
도올은 “성령이란 본시 조직이나 형식, 이론이 고착되었을 때 그를 파괴하는 신선한 래디컬리즘으로 등장한다.”라고 주장하나,
⇒ 도올이 이를 새로운 영성으로 해석하는 것은 뉴에이지 수법과 양자영성 등과 상통한다. 이는 성령을 아예 모르는 무식한 거짓말인데, 성경의 그 어디에도 이런 말과 유사한 표현조차도 없다. [마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도올은 “이제 인류의 종교사는 교회 중심 선교에서 하나님 중심 선교로 그 패러다임을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한다면 이 세계 또한 하나님을 창조한다. 하나님이 완전하고 이 세계가 불완전하다면, 이 세계 또한 완전하고 하나님이 불완전하다. 모든 창조와 완전은 과정일 뿐이며 완결된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역사도 완결된 것일 수 없다. 보수 진영이든 진보 진영이든 그 존속 이유가 있는 것이라면, 그 양자의 과정은 오로지 공존과 대화의 변증법 속에서 하나님의 평화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라고 주장하나,
⇒ 이러한 표현 방식들은 정확히 뉴에이지 사상이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세계관 같은 것들이다. 하나님은 만물 안에 있다는 식의 ‘릭 웨렌’의 사상과 상통한다. [딤전6:20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도올은 <변선환의 신학 세계를 대표적으로 이름지우는 “토착화”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변선환은 신학대학을 다닐 때 즈음, 토착화 문제에 봉착했을 때, 나는 신학을 토착화하는 수고 속에 내 인생을 바치지 않겠다 하고, 토착화할 것이 아니라 내가 “토착”이 되어버리겠다 하고 신학대학을 나와 버렸다.” 그러나 나의 시대와 변선환의 시대는 패러다임이 다르다. 이것이 바로 변선환의 신학이 토착화와 종교다원주의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지니게 되는 핵심적 이유이다.>라고 주장하나,
⇒ 다른 종교들과 달리 기독교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는 집단이다. [약4: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토착화 한다고 해서, 이상한 신념에다 자기 인생을 걸고서, 우상 신과 하나님이 혼합되는 게 말이 되는가?
ⓔ 정희수 감독도 변교수를 향해 ”얇은 지성으로 신학을 서구 전통 기독교 식민주의를 앵무새 식으로 전하는 일을 거부하고, 신학적인 진리를 한국의 토양과 종교적 심성을 통해 고백하신 한국교회 예언자“라고 평가하나,
⇒ [렘23:3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기독교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이 중심이다. [미2:6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도다] 변선환이 무슨 예언을 했기에 예언자라고 불리는가? 마호멧이나 이스람이나 힌두교의 많은 이단/마귀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예언자로 불리길 좋아하나, 예언은 못한다.
정희수는 “부끄러운 역사를 회자하는 일은 우리들 마음에 무거운 짐이 됩니다. 진리와 부정이 전도된 공적인 사건은 시간이 갈수록 원죄처럼 부끄러운 민낯으로 기억되고 비판적인 자성을 하게 합니다. 바로 교권과 진리 수호라는 이름으로 감리교회에서 진행된 종교재판은 부끄러운 역사였고, 아름다운 양심과 신학적인 열정을 사대문 밖에 세운 십자가 위에 치켜세우고 공교회의 도리를 잃어버린 안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라고 주장하나,
⇒ 그는 단정하여 표현하기를 ‘부끄러운 역사’, ‘진리와 부정이 전도된 사건’, ‘공교회의 도리를 잃어버린 사건으로’ 거짓을 전제로 바탕에 깔면서, 거기다 보태서 거짓 논리를 펼친다. 변선환이 진리라도 되는가? [출22:28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지니라] [신1: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 ☞ 재판장을 모독하지 마라. 재판은 하나님의 일이다.
정희수는 “복음 수호의 근본주의는 우주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광대한 빛에 허물어져야 하고, 이제 화해와 평화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만방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나,
⇒ [렘9:8 그들의 혀는 죽이는 화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마음으로는 해를 꾸미는도다] 성경의 예언자는 본시 심판을 말하고 평화를 말하지 않고, 자유주의 같은 허무맹랑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우주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광대한 빛”과 “화해와 평화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는”라는 표현은 뉴에이지 방식이다. [마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 이는 예수님 말씀과 배치한다.
㈏ 영원한 지옥의 형벌인 저주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이를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밀실에서 혼자 하는 감정적 후회나 자기 반성이 아니다.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이를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즉 공개적으로 설교, 강의, 문서, 인쇄물로 무엇을 회개하는지? 자신이 죄인인 것을 밝혀야 한다.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 회개하지 않으면 거기에는 촛대가 옮겨지고, 이리하면 그가 ‘종교 무당’은 될지는 모르겠으나 ‘하나님의 종’은 턱도 없는 소리다.
㈐ 신자들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아야 한다. [막1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요이1:7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 자유주의와 종교 다원주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초림 사건부터 부인한다. 아래 글을 참조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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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 글 “김홍도는 죽고 변선환이 부활했다” (글번호 12663, 게시자 장병선)을 보면서, 거기의 많은 주장들이 거짓이 포함되었고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으며, 이러한 행태가 적절한 토론이나 분석 없이 그대로 정치적 힘을 얻게 된다면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고 보아, 이에 대한 반론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❶ (서론) 이 시점에서 학술대회 형식으로 혹은 출판의 형식으로, 단체나 집단을 형성하여 이를 다시 재론하면서, “당시 종교재판에서 종교권력이 부당하게 힘을 형성하여 올바른 종교철학을 공격했다.”는 도발은 적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군중의 모양새로 이에 반대한다고 해서 결코 다시 진리가 될 수 없다. 이는 어떠한 외형을 갖추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본질은 “변선환의 주장이 진리의 진영에 속하는가? 아니면 거짓의 진영에 속하는가?”에 대한 다툼이고, 이는 하나님의 편과 사탄의 편에서 벌이는 영적 전쟁일 뿐이다. [엡1: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 나는 이를 기도한다.
◆ 변선환의 사상과 업적 및 그의 종교재판에서 진술을 살펴보자.
(인용) 사상 및 업적; ㉮ 그는 타 종교를 포용해야 한다는 다원주의적 입장을 취했으며, 이론적 차원이 아닌 실천적 차원에서 신학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그의 신학은 근본주의가 만연하던 당시 기독교계의 반발을 불러 많은 논쟁을 낳았다. 그의 입장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종교적 다원주의 : 1977년 《월간목회》를 통해 “교회 밖에도 구원 있는가?”라는 주제로 신학적 논쟁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1982년 《기독교사상》에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1984년 《기독교사상》에 <타종교와 신학>, 1990년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심포지엄에서 <불타와 그리스도>를 발표하면서 종교적 다원주의를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는 개종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적극적으로 타 종교와 교류하여 기독교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는 한국 종교계의 가장 큰 문제점을 종교 간의 갈등과 반목으로 파악하였는데, 그 원인으로 개신교의 배타성과 공격성을 언급하며 기독교 반성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② 종교 해방신학 : 그가 주장한 종교적 해방신학은 기독교를 서구 기독교의 교의학적 틀에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아시아 종교계의 실천적인 과제와 관련해서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그에 따르면 아시아 신학자들은 지역의 토착 종교와 관련지어 그리스도의 상징적 의미를 해석해왔다. 따라서 기독교의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을 기독교의 규범적 상징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의 해방신학의 목표는 서구의 신(新)식민주의적 패권주의와 문화적 우월주의로부터 한국 종교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그는 종교재판의 진술에서 “기독교는 더 이상 정복자의 종교가 아니며 전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종교간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종교적 다원주의는 감리교의 세계적 추세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변선환[邊鮮煥] (두산백과 두피디아) (인용 끝)
❷ 인용에서 변선환의 ‘종교적 다원주의’는 기독교의 교리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부정한 위험한 길이다. 뉴에이지는 “우리는 ‘만유’ 안에서 하나다.” 혹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 안에 있다.” 혹은 “우리 모두는 하나”라는 구호로 영적 미혹을 한다. 통상적으로 보아, 종교 간의 통합 또는 연대는 ‘구원의 방법’ 혹은 ‘종교’ 혹은 ‘영성’이라는 단어를 공통분모로 매개로 하고, 이는 하나님을 샤머니즘 신과 불교의 인간 석가모니들과 동급으로 여기고, 또한 인간의 혼의 산물인 철학 사상에 기초한 새로운 구원 방식을 띄운다, 다른 종교들은 모두 인간의 철학이나 여러 사람들이 만든 가변적 교리를 기본으로 깔고 가서 무너질 절대 교리도 없으나, 기독교는 이와 다르다. 종교 간에 장벽을 헐자고 하면서 기독교 다원주의들이 앞장서서 하나님의 계시와 비밀과 예언을 절대 기준으로 하는 기독교 울타리를 가장 먼저 스스로 허물어뜨리고 있다. 이런 접근 방식은 성경에 따르는 기독교의 주요한 교리인 창조, 구속, 대속, 심판, 초림과 재림 예수에 대한 예언과 역사적 성취를 전부 부정하기에 이는 기독교의 골간을 무너뜨리는 배교 행위이고 하나님께 대한 반란이다. [사21:11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 밤에 적이 오는지?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는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정의하신 말씀은 종교 다원주의를 부정한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 다원주의자들은 독생자 사역, 영생, 심판에서 구원을 각각 부정한다. 다원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자기들이 이성보다 하위에 둔다.
❸ 인용에서 변선환의 “종교적 해방신학”와 토착 종교와 “서구의 신(新)식민주의적 패권주의와 문화적 우월주의로부터 한국 종교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는 것”에서 그의 사고방식은 큰 오류를 바탕에 깔고 간다. 그의 주장은 종교철학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나 성경과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 즉 서구의 기독교는 패권주의 적이고 동양의 문화적 정체성이 열등하다는 단정은 잘못이다. 문명은 우열이 있지만 문화는 우열이 없고, 토착화는 중립적인 일이기는 하나, [민33:52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 55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 토착화 할 때, 우상 신을 몰아내지 않으면 위험하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서구가 아니다. 지리적으로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가 가운데 3중의 교차점에 위치한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선택한 이유는 그들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상16:19 그 때에 너희 사람 수가 적어서 보잘것없으며 그 땅에 객이 되어 20 이 민족에게서 저 민족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백성에게로 유랑하였도다] ☞ 오히려 인구가 적고 약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북방과 남방의 세력이 강할 때 마다 수없는 침략을 당해서 나라는 식민지가 되고 민족들은 종으로 잡혀갔었다. 토착화는 문화적으로 우상의 유입을 말한다. [삼상15: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했을 때,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들은 현지에서 토착화 하지 말하는 명령에 해당한다. 사울이 이 명령을 위반했을 때, 그의 후손들까지 영적전쟁에서 위험에 처해진다.
❹ 자유주의가 신학인가? 자유주의는 하나님의 말씀들에 대항하고 혼적 영역에서 인간의 오감과 이성을 성령님의 해석보다 우위에 둔다. 이는 신학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학‘이며, 앞으로 각 신학교마다 인간학과 개설하여 여기에서 젠더, 동성애, 퀴오, 혐오, 사실여부의 문제를 다루는 게 어울릴 것 같다. 신학자라는 분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영적 소경이고, 문자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아예 듣지를 못하기에, 대신에 인간의 혼으로 이를 자유롭게 freely 해석하여 자신뿐 아니라 타인들까지 자유롭게 freely 지옥행 단체 열차를 타게 했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 주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인간의 혼에서 출발한 자유주의라는 개똥철학이나 다원주의 같은 사상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게 아니다. [요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 자유주의 개똥철학이 주는게 아니다. [벧전2: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갈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 다른 복음은 없다. 자유주의라는 기만극을 멈추어야 한다. 거기에는 저주가 따른다.
❺ (결어) 성경은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 진리에서 돌이킨 허탄한 이야기와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두는 게 문제다. 이 시대는 이러하다.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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❻ (덧붙이는 글) 이 집회에서 있던 각각의 발언에서 보면 여러 군데서 진리를 왜곡하여 거짓 주장을 하였고, 이를 공개적으로 게시했기에, 이러한 정치적 결사는 일반 교인들에게 마치 진리인양 사실을 호도할 위험이 있기에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시86:14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 이들은 집단화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들을 대적한다. [엡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라고 권면 하신다. [고전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영적인 일을 분별해야 한다.
ⓐ 인사의 말씀 김정숙(감신대 교수, 변선환아카이브 소장): 학술대회를 여는 인사말에서 “충분한 신학적 토론이나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신학적 논리도 없이 마녀사냥처럼 몰아친 당시 교권의 종교재판은 그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덮고 지나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고 주장하나,
⇒ 어떤 사람의 신학사상으로 포장해 이단적 주장을 할 때 이를 장정 【재판법】에 따라 종교재판으로 다루는 게 부당한 일인가? 이게 부끄러운 일인가? [신25:1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 격려사 /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예수께서는 전혀 이단을 만들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이단 집단으로 몰리는 혐오와 폭력의 한 가운데에 서 계시기도 했다”는 말로 이단으로 몰린 변교수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교회를, 혹은 성도를 이단에게서 보호한다는 구실로 교회가 종교재판을 열고 이단 감별사들이 이단을 솎아낸다는 것은 밀과 가라지 비유가 가르치는 교훈과도 배치된다.”고 주장하나,
⇒ [딤전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변선환이 그리스도인가? 그의 다원주의신학이 인류를 구원하였나? 오히려 그의 발언이 성경 가르침을 왜곡한다. [겔44:23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고, 더러운 일과 깨끗한 일을 분별해야 한다.
민영진은 “혐오를 선동하는 것이 믿음 아니다. 폭력을 경쟁하는 것이 거룩함 아니다.”라고 주장하나,
⇒ 그에게 되묻고자 한다. 자유주의자들이 거짓을 선동하는 게 믿음인가? 무지를 경쟁하는 게 거룩함인가? [딤전1:6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 자유주의자들과 다원주의자들은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영적으로 분별하면, 이들은 좀 모지란 부류에 해당한다.
민영진은 “서로 다른 점 부풀려 갈라지지 말고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도 서로 소중히 여겨 그 씨 새들 깃들이는 나무로 자라게 할 일이다 하늘나라가 그렇게 오니까 가라지 갈라내는 건 추수 때까지 기다렸다가 할 일이라니까”라고 주장하나,
⇒ 각각의 다른 상황을 설명하는 성경 구절을 무리하게 찾아 한 꾸러미로 엮어서 서로 간에 논리적 연결고리가 없고, 어울리지 않는 헝겊으로 만든 짜깁기 걸레에 해당한다. 마치 한꾸러미에다 굴비 배추 전어 시금치 오징어 상치를 엮은 형태이다. 믿음은 거짓을 분별해야 한다. [고후11: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 다원주의와 자유주의를 분별해야 한다. [갈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 다른 복음은 없다. [눅13: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고전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 나쁜 누룩을 그냥두면 전체 빵이 상해 버리게 된다.
ⓒ 윤병상(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은 “변선환 교수는 예언자였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한 대언자였다. 한국 감리교회에 신학과 신앙은 있는가? 신학 없는 신앙은 무속 신앙이다. 무속은 창시자도, 신학도, 교리도 없다.”라고 주장하나,
⇒ 이 얼마나 황당한 괴변이고 언어유희이고 기만인가? [고전14: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변선환이 무슨 예언을 했나? 하나님에 대한 대언자가 아니라, 신학을 내세우면서 자기 철학을 관철하고,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들을 거역한 배교자이다. 이들이 말하는 자유주의 신학과 다원주의 신학이야 말로 무속이고, 개똥철학에 속하고, 신학도 아니고 교리가 되지 못한다.
ⓓ 격려사 / 도올 김용옥(한신대 석좌교수): 당시 도올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변교수의 주장이 “이미 다원화된 한국 종교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는 정확한 메시지”이고 “1951년 위팅겐회의가 교회중심주의, 배타주의, 개종주의 선교를 표방하는 제국주의, 즉 서구 식민지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선언한 이래 꾸준히 진행되어온 국제 기독교 사회의 상식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말로 변교수의 다원주의적 입장을 옹호하나,
⇒ [호1: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도올은 학위 수집가이고 학문을 서고에 높이 쌓아 이를 자랑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보기엔 하나님의 말씀들이 기록된 성경과 거기에 있는 구원에 대한 정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논리들은 각각 전제조건, 계 System, 논리의 전개, 및 결론에서 짜임새가 없고 정돈되어있지 않다, 이런 부류가 학문에서 명성을 얻었다는 게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기에 학계라는 게 그 수준이 의심된다. 그는 신학을 공부했다고는 하나, 성경도 모르고 기독교 주요 교리도 모르는 좀 무식한 자이다. 이런 방식의 혼적 접근으로 영적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시다. [삼하22:3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 폭력에서 구원하시는 이는 하나님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독생자가 세상을 구원함. 종교 다원주의 개똥철학이 아니라, [요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올은 “모든 창조와 완전은 과정일 뿐이며 완결된 것일 수 없다. 기독교의 역사도 완결된 것일 수 없다. 보수 진영이든 진보 진영이든 그 존속 이유가 있는 것이라면, 그 양자의 과정은 오로지 공존과 대화의 변증법 속에서 하나님의 평화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라고 주장하나,
⇒ 도울이 새로운 창조, 새로운 세상, 새로운 세계는 모두 뉴에이지 사상의 표현방식이다.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 천지창조가 완결된 것이고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만족하셨다. [전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기독교역사도 완결된 것이고, 변증법적 정반합을 통한 발전은 없다.
도올은 배타성을 향해 “배타는 하나님의 적이요 선교의 거부다.”라고는 해괴망측한 언어유희를 하나,
⇒ [시81:9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 하나님의 말씀과 정당한 교리는 타문화 타사상 타종교의 혼합을 배제한다. [신22:11 양 털과 베 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이방신과 교제는 배교이다. 선교하기 위해 이방신을 섬기랴?
도올은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서 “이분에게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천하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4장 12절의 말씀이다. 과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주체가 예수 하나뿐일까?” 라고 하면서 논리를 전개했고, 또한 “변선환 선생이 주장하는 바, 기독교(교회) 밖에도 하나님의 사람이 있고 구원이 있다는 것은, 지금 새삼스럽게 거론된 바도 아니요, 또 이설을 세우기 좋아해서 외쳐대는 말도 아니다. 그것은 이미 다원화된 한국 종교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는 정확한 메시지이며, 1951년 위팅겐회의가 교회중심주의, 배타주의, 개종주의 선교를 표방하는 제국주의, 즉 서구 식민지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선언한 이래 꾸준히 진행되어온 국제 기독교 사회의 상식을 반영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나,
⇒ [딤후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그는 성경도 모르고 교회사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뉴에이지 사상에다가 이상한 신학을 꿰맞추기 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도 듣지 않는 교만한 품성으로 보인다.
도올은 “성령이란 본시 조직이나 형식, 이론이 고착되었을 때 그를 파괴하는 신선한 래디컬리즘으로 등장한다.”라고 주장하나,
⇒ 도올이 이를 새로운 영성으로 해석하는 것은 뉴에이지 수법과 양자영성 등과 상통한다. 이는 성령을 아예 모르는 무식한 거짓말인데, 성경의 그 어디에도 이런 말과 유사한 표현조차도 없다. [마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도올은 “이제 인류의 종교사는 교회 중심 선교에서 하나님 중심 선교로 그 패러다임을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한다면 이 세계 또한 하나님을 창조한다. 하나님이 완전하고 이 세계가 불완전하다면, 이 세계 또한 완전하고 하나님이 불완전하다. 모든 창조와 완전은 과정일 뿐이며 완결된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역사도 완결된 것일 수 없다. 보수 진영이든 진보 진영이든 그 존속 이유가 있는 것이라면, 그 양자의 과정은 오로지 공존과 대화의 변증법 속에서 하나님의 평화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라고 주장하나,
⇒ 이러한 표현 방식들은 정확히 뉴에이지 사상이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세계관 같은 것들이다. 하나님은 만물 안에 있다는 식의 ‘릭 웨렌’의 사상과 상통한다. [딤전6:20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도올은 <변선환의 신학 세계를 대표적으로 이름지우는 “토착화”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변선환은 신학대학을 다닐 때 즈음, 토착화 문제에 봉착했을 때, 나는 신학을 토착화하는 수고 속에 내 인생을 바치지 않겠다 하고, 토착화할 것이 아니라 내가 “토착”이 되어버리겠다 하고 신학대학을 나와 버렸다.” 그러나 나의 시대와 변선환의 시대는 패러다임이 다르다. 이것이 바로 변선환의 신학이 토착화와 종교다원주의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지니게 되는 핵심적 이유이다.>라고 주장하나,
⇒ 다른 종교들과 달리 기독교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는 집단이다. [약4: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토착화 한다고 해서, 이상한 신념에다 자기 인생을 걸고서, 우상 신과 하나님이 혼합되는 게 말이 되는가?
ⓔ 정희수 감독도 변교수를 향해 ”얇은 지성으로 신학을 서구 전통 기독교 식민주의를 앵무새 식으로 전하는 일을 거부하고, 신학적인 진리를 한국의 토양과 종교적 심성을 통해 고백하신 한국교회 예언자“라고 평가하나,
⇒ [렘23:3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기독교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이 중심이다. [미2:6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도다] 변선환이 무슨 예언을 했기에 예언자라고 불리는가? 마호멧이나 이스람이나 힌두교의 많은 이단/마귀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예언자로 불리길 좋아하나, 예언은 못한다.
정희수는 “부끄러운 역사를 회자하는 일은 우리들 마음에 무거운 짐이 됩니다. 진리와 부정이 전도된 공적인 사건은 시간이 갈수록 원죄처럼 부끄러운 민낯으로 기억되고 비판적인 자성을 하게 합니다. 바로 교권과 진리 수호라는 이름으로 감리교회에서 진행된 종교재판은 부끄러운 역사였고, 아름다운 양심과 신학적인 열정을 사대문 밖에 세운 십자가 위에 치켜세우고 공교회의 도리를 잃어버린 안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라고 주장하나,
⇒ 그는 단정하여 표현하기를 ‘부끄러운 역사’, ‘진리와 부정이 전도된 사건’, ‘공교회의 도리를 잃어버린 사건으로’ 거짓을 전제로 바탕에 깔면서, 거기다 보태서 거짓 논리를 펼친다. 변선환이 진리라도 되는가? [출22:28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지니라] [신1: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 ☞ 재판장을 모독하지 마라. 재판은 하나님의 일이다.
정희수는 “복음 수호의 근본주의는 우주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광대한 빛에 허물어져야 하고, 이제 화해와 평화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만방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나,
⇒ [렘9:8 그들의 혀는 죽이는 화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마음으로는 해를 꾸미는도다] 성경의 예언자는 본시 심판을 말하고 평화를 말하지 않고, 자유주의 같은 허무맹랑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우주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광대한 빛”과 “화해와 평화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는”라는 표현은 뉴에이지 방식이다. [마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 이는 예수님 말씀과 배치한다.
온 우주를 품으시는 하나님을 작은 종지에 가두려는 어리석음
묻습니다.
귀하의 표현에 나타나 있는 “온 우주를 품으시는 하나님”은 성경말씀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과 출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에 기록되어 있는 그 “하나님”과 꼭 같습니까? 혹은 다릅니까?
장병선님 윗 질문에 답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의견을 나눌때 용어정의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묻읍시다
아멘!
졸고인데도,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버리고 버리면 잘 벼려저서 날카롭고 강한 것이 되지요.
벼려지면 유용하고 위험하기도 하지요.
님이 오판하면 더 당하게 되고 위험하게 될 수 있어요.
허니, 버릴것은 님의 것을 버리고 또 버리세요.
잘 벼려지게하여 유용하게 쓰세요.
그러니까.
아무 생각없이 말하지 마시라고요.
성경을 찾아 보았습니다.
❶ 날카로운 칼 [삿3:16 에훗이 길이가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그의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 날선 칼, 예리한 칼
❷ 분별하라. [레10:10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 분별하라. [말3: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마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 분별할수 없느냐? [요일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히5: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 지각을 사용하여 선악을 분별
❸ 생각 [사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마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롬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 지혜롭게 생각하라 [골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육신의 생각은 사망..
⇒ 하여튼 사람들은 무디고 오판하거나 꿈뜨고 혼자 생각으로 상상하고......
1. 성경에 벼리다는 없나봅니다.
뭉둑한 쇠뭉치의 끝을 버리고 버리면 벼려진다.
만일, 뭉둑하여 뭔가에 사용하기가 불편하다면 버리고 버려야 쓸만해질 수도 있을 것.
= 잘 버리시기 바랍니다.
2. 생각은 몸의 어디에서 있나요?
발가락? 머리? 몸의 어디에서 사람은 생각이라는 것을 하며, 생각과 느낌과 마음 그리고 뜻은 어떻게 다른가요?
아님, 다르긴 한건가요?
내게 어려운 질문 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자꾸 이러시는거죠? 이 바닥이 생각보다 좁아서요..
❹ 벼리다. [잠27: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 철이 철을 벼리다. 또, 날카로운 칼과 예리한 칼은 벼리지 않으면 결코 나오지 않습니다.
❺ 생각은 마음에 있음 [창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사10:7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의 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고 다만 그의 마음은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는도다] ☞ 마음의 생각 [마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 마음에 악한 생각 [마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생각 [롬8: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마음과 성령의 생각 관계 [딤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 마음이 부패하면, ㉠ 진리를 잃어버림 ㉡ 교회 일을 돈벌이로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