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부전(非人不傳)...
작성자
오재영
작성일
2022-11-17 11:59
조회
1336
구도자답지 못한 이들...
1700여 년 전 중국 동진시대의 서성(書聖)이라 불리운 왕희지(王羲之)가 제자들에게 경계의 말로 남겨준 비인부전(非人不傳) 이란 고사성어가 시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다. 스승의 안목으로 보아 인격과 품성 면에서 그에 따르는 합당한 인물이 아니면 함부로 예(藝)나 도(道)를 전해주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의 말이다.
수일 전 글의 내용으로 보아 어느 원로목사께서 은급에 대한 글을 올렸다. “12721, 결국 감리교회는 은급비를 삭감할 것인가?” 라는 글이다. 그에 대한 몇몇의 댓글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개인적인 생각이나 공간에 올리는 것 자체가 책임 있는 이들이나 후배들에게 초라할 뿐 별 의미 없는 것으로 스스로 본인들이 겪어봐야 할 일이다.
말꼬리 잡는 것 같으나 어느 원로목사가 한 달 총수입이 1천만 원이 넘고 고급 아파트와 철원에 0천 평의 땅을 사 놓았다고 떠벌이며 다니겠는가? 백보를 양보하여 지금 전체 1700여명에 가까운 원로 중에 그 숫자가 얼마나 되리라고 생각을 하는가? 은급부에 전화 한통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제일 상위에 있는 이들은 80만원이고, 5만원에서 10만원 15만원으로 시작되고 있다. 모두가 원로들을 모욕하는 표현임을 명심할 일이다.
어떤 이는 신경하 감독회장 때의 과정을 말하는 이도 있으나 모두가 지난일로 교훈을 삼을 뿐, 그 당시에 책임으로 거론된 이들에 관하여는 솔직히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우리 사회의 병폐 중 하나가 목소리 큰 자가 정의가 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지나고 보면 앞서간 이들의 잘잘못 모두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나 자신에게는 살아보지 않고도 미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反面敎師”의 장(場)이 될 수가 있다. 공연히 허명(虛名)에 매여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과 기회를 낭비하다 가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존중히 여김을 받는 자리와는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다. 주변을 둘러보라 지난 날 감게 게시판에서 남의 약점 들춰내며 험한 말 하든 이들의 모습들이 어떠 한가를...
죄의 본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으로 召命에서 소홀해지는 순간 그동안 지난한 세월의40-50여년을 쌓아온 노력이 허물어지는 데는 불과 4-5초가 걸리더라는 말도 있다. 주변에 초라하게 허물어지는 이들의 모습이 어쩌면 미래의 자신의 모습이기에 보여주신 일일수도 있다.
성경의 지시대로 모두가 살아온 삶은 아니나 조심할 일이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근본적인 교리가 줄거리인 갈라디아서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움을 얻은 사람이 마땅히 갖출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10).
지금도 여전히 직(職)에 미달된 품격으로 자신의 능력을 모른 채, 목전의 이익을 따라 교단과 주변에 온갖 추태를 부리며 위기에 접어들고 있으나 본인만 모르고 있을 뿐, 중심이 바로 된 이들은 모두가 안다. 저의 현재 영적인 상태가 어떠 한지를...
1700여 년 전 중국 동진시대의 서성(書聖)이라 불리운 왕희지(王羲之)가 제자들에게 경계의 말로 남겨준 비인부전(非人不傳) 이란 고사성어가 시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다. 스승의 안목으로 보아 인격과 품성 면에서 그에 따르는 합당한 인물이 아니면 함부로 예(藝)나 도(道)를 전해주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의 말이다.
수일 전 글의 내용으로 보아 어느 원로목사께서 은급에 대한 글을 올렸다. “12721, 결국 감리교회는 은급비를 삭감할 것인가?” 라는 글이다. 그에 대한 몇몇의 댓글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개인적인 생각이나 공간에 올리는 것 자체가 책임 있는 이들이나 후배들에게 초라할 뿐 별 의미 없는 것으로 스스로 본인들이 겪어봐야 할 일이다.
말꼬리 잡는 것 같으나 어느 원로목사가 한 달 총수입이 1천만 원이 넘고 고급 아파트와 철원에 0천 평의 땅을 사 놓았다고 떠벌이며 다니겠는가? 백보를 양보하여 지금 전체 1700여명에 가까운 원로 중에 그 숫자가 얼마나 되리라고 생각을 하는가? 은급부에 전화 한통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제일 상위에 있는 이들은 80만원이고, 5만원에서 10만원 15만원으로 시작되고 있다. 모두가 원로들을 모욕하는 표현임을 명심할 일이다.
어떤 이는 신경하 감독회장 때의 과정을 말하는 이도 있으나 모두가 지난일로 교훈을 삼을 뿐, 그 당시에 책임으로 거론된 이들에 관하여는 솔직히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우리 사회의 병폐 중 하나가 목소리 큰 자가 정의가 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지나고 보면 앞서간 이들의 잘잘못 모두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나 자신에게는 살아보지 않고도 미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反面敎師”의 장(場)이 될 수가 있다. 공연히 허명(虛名)에 매여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과 기회를 낭비하다 가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존중히 여김을 받는 자리와는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다. 주변을 둘러보라 지난 날 감게 게시판에서 남의 약점 들춰내며 험한 말 하든 이들의 모습들이 어떠 한가를...
죄의 본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으로 召命에서 소홀해지는 순간 그동안 지난한 세월의40-50여년을 쌓아온 노력이 허물어지는 데는 불과 4-5초가 걸리더라는 말도 있다. 주변에 초라하게 허물어지는 이들의 모습이 어쩌면 미래의 자신의 모습이기에 보여주신 일일수도 있다.
성경의 지시대로 모두가 살아온 삶은 아니나 조심할 일이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근본적인 교리가 줄거리인 갈라디아서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움을 얻은 사람이 마땅히 갖출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10).
지금도 여전히 직(職)에 미달된 품격으로 자신의 능력을 모른 채, 목전의 이익을 따라 교단과 주변에 온갖 추태를 부리며 위기에 접어들고 있으나 본인만 모르고 있을 뿐, 중심이 바로 된 이들은 모두가 안다. 저의 현재 영적인 상태가 어떠 한지를...
구도자답지 못하다??
산수 계산을 못하셔서, 이득인지 손해인지도 구분못하시고..
예금이 뭔지도 몰라서, 은대위 농간에 놀아나시고..
그때도, 그 편을 들지 않으셨나요?
지금이라고 달라질 것은 없겠죠.. 이런 것을 탐욕이라고 해요..
목사들이 매우 탐욕스럽죠. 받는 것에 익숙해서요.
산수못하고, 예금이 뭔지도 모르고, 시류에 붙어서, “목사입네” 하는 시대가 언제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보세요?
그러니까.. 본인들이 겪어보라..는 말은, 글쎄요.. 훌륭하신 선배님들에요.
추태는 목사님이 부리시는 거에요.. 선배목사님으로서 부끄럽지 않으세요?
목소리 크다?! 오목사님 글에 제가 너무 기분이 나빠요..
제가 은대위원들을 매우 고소하고 싶어지네요. 아직, 공소시효 남은 건들도 있을거에요.
부동산 투자 수익률 6% 잡죠..
16억 내외 건물 하나 가지고 있으면, 임대소득 월천만원에요.
은급비 백만원에, 연금및 기타 소득이 백만원이면, 13억 건물해서, 월천만원이 나오죠.
철원은 땅깞이 상대적으로 싸겠죠.. 남북이 화해한다면, 부동산 가격이 오르겠죠.. 장기적인 투자이죠.
이런 원로목사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당연히 있겠죠..
'구도자' 인지
'구돈자' 인지
왜 자꾸 깎냐고 하기 전에
왜 못 주는 지 부터 아셔야죠
철없고 배부른 후배가 몇이나 될까요
누구때문에 목회하면서 알바까지 해야
노후에 구걸하지 않고 사는지
당신들의 무관심과 안일함이 낳은 결과 아닌가요
일할 수 있으면 일하세요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저는 은퇴 목사님들을 모욕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