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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7강 1:1b (하나님 아버지, 양자, 목사)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2-11-02 12:41
조회
1201

# 연재되는 주석서 「갈라디아서」


[하나님 아버지]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테우 파트로스, θεού πατρὸς)라는 바울의 사상은 베드로(1:17)나 예수님과 다를 바 없다. 그 사상은 구약 성경에도 나타나나(출 4:22, 시 68:5, 89:26, 사 9:6, 63:16, 64:8, 렘 3:4, 9, 말 2:10) 미미한 것이었는데, 예수님에게서 본격적으로 개인화 내지 신령화되었다. 따라서 아버지로서의 신관은 신약 성경의 주류가 되었다.

메이첸(J. G. Machen)은, “하나님의 부성의 교리는 예수와 바울이 똑같다”❶라고 하며, 케네디(H. A. A. Kennedy)는 더욱 구체적으로, “예수의 교훈의 근본적 취지인 하나님의 부성의 계시는, 바울의 종교적 개념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지배했다.”❷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사실은, 바울이 자신의 모든 서신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롬 1:7, 고전 1:3, 고후 1:2, 갈 1:3, 살전 1:1, 살후 1:2, 골 1:2, 몬 3 등).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의 의미에 대해 바르트(K. Barth)가 자신의 「교의학 개요」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아버지란 인간관계에서 하나님께 적용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서 인간관계에 적용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 안에서, 또 자신의 본성에서도 영원히 아버지이시다.······당신의 피조물인 우리를 위한 아버지이시다.······참되고 정당한 부성은 하나님 안에 있고, 바로 이 하나님의 부성으로부터 우리 자신의 부성이 생기는 것이다. 신적 부성은 모든 자연적 부성의 근원이다.”❸

하나님 아버지의 주도적이며 자유로운 은혜에 의해서만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 즉 하나님의 양자(빌 2:15)가 될 수 있다. 양자란,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을 표현하는 하나의 개념이다.

고대 세계에서 가족이 양자를 삼는 것은 매우 평범한 일이다.바클레이(W. Barclay)는 양자 결연 의식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양자 결연 의식은 매우 인상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동전과 저울을 사용한 상징적인 매매 행위에 의해 진행되었다. 아들의 친아버지가 자기의 아들을 한 번 팔았다가 다시 사고, 두 번째 팔았다가 또다시 산다. 그리고 세 번째 팔고는 다시 되사지 않는다. 그런 다음에 양아버지가 로마의 행정 장관인 집정관에게 가서 양자 결연의 건을 신청함으로써 성립되었다.

일단 양자가 되면, 그의 과거의 모든 빚과 계약은 무효가 된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사는 새사람으로 간주된다. 미래의 모든 면에서도 그는 다른 아들과 똑같은 근거를 갖는다.”❹

바울은 양자의 개념을 구속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롬 8:23). 하나님은 우리를 예정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셨는데, 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 안에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것이다(엡 1:4). 이 아들은 무서워하는 종의 영 대신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양자의 영을 받았다 (롬 8:15, 갈 4:6). 이 영은 곧 하나님의 영이며, 양자의 모든 삶을 지배한다(롬 8:14). 따라서 케네디(H. A. A. Kennedy)는 “양자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모든 환경들, 즉 세상과 생명과 죽음과 현재적인 것들과 다가올 것들의 주인이다. 바울은 항상 이 승리적 조건들을 성령의 선물과 결합시킨다.”❺라고 하였다. 이러한 양자의 삶은 모든 피조물이 고대하는 자유로 특징지어진다(롬 8:21, 고후 3:17).

양자란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로서, 그분과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롬 8:17). 이 고난은 죄악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는 고난이요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다(고전 4:10-13, 9:19, 고후 1:5, 4:8-10, 11:23-32, 빌 1:29, 3:10, 골 1:24, 살후 1:5, 딤전 4:10, 딤후 1:8).

한 마디로 말해, 양자란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당신의 영광의 상속자로 삼으신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죄로 마귀에게 끌려가던 우리가, 창조주요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양자가 되었다는 것보다 더한 사랑의 신비가 있을 수 없으며, 이보다 더 놀라운 은혜가 있을 수 없다.

또, 바울은 양자의 개념을 구속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하는데, 이 점에서도 베드로와 별로 다를 게 없다.

1절 후반의 [말미암아](전치사: 디아, δι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께 똑같이 적용된다. 따라서 바울이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아버지]의 직접적인 부르심 때문이었다.❻ 이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별개의 두 실체로 분리시켜서 한 말이 아니라, 다만 성부와 성자를 구분하여 설명한 것일 따름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도로 세우셨다는 사상은, 바울이 자주 언급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전 1:1, 고후 1:1, 엡 1:1, 골 1:1, 딤후 1:1. 참조: 딤전 1:1)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라고 하여, 특이하게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짓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黑崎幸吉은 “그의 소명이 그의 공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부활하신 주님께로부터 받은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 오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다가, 길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회심 사건이기도 하다.❼

바울의 회심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홀스텐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는 바울의 표현 형식이 구약 성경의 모세의 가시덤불 환상과 족장들이 특별한 지시를 받을 때에 들은 음성 그리고 예언자들의 환상이 기술되던 모양으로 기술되었고, 바울 자신도 황홀경에서의 경험을 여러 번 말했기 때문에(고후 12:2-4, 14:6 등) 그런 해석도 상당한 근거를 가졌다고 한다(H. J. Schoeps).❽ 그러나 이 주장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근거는 없다.

바울의 회심 기사들은 공통적으로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점을 강조하고 있다(행 9:1-9, 22:6-16, 26:12-18, 고전 9:1, 15:8). 바울의 회심 사건에 있어서, 매우 특징 있는 의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들어간 것이다(H. A. A. Kennedy)❾. 이 말은 그리스도의 원수였던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사도)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계는 바울에게 나타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가능하였다. 케네디(H. A. A. Kennedy)는 “바울이 그리스도로서 그에게 나타나셨던 부활하신 주님을 묘사할 때, 그는 메시아에 관하여 공허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의 사실로서 끊임없이 지상 예수님께 대하여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사용한다.”❿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말은, 바울이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부활하신 구체적인 인격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는 바울의 모든 것을 새롭게 변화시켰다. 바울 자신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옛 세대를 특징짓는 죄(롬 6:2), 율법(롬 7:6, 갈 2:19), 초등학문(골 2:20), 자기(고후 5:14), 육체(갈 5:24), 세상(갈 6:14) 등에 대하여 죽었으며, 따라서 이제 사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며,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사시는 것이다 (갈2:20). 한 마디로 말해, 옛 바울이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바울이란 사람이 새롭게 창조된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알고 있던 이전의 모든 것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해석되었고”(Machen, Stewart),⓫ 또한 독특하게 그의 사상을 형성하게 되었다. 사도로서의 바울, 그의 복음, 그리고 그의 선교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란 곧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바로 그 그리스도를 살리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사도직을 주셨으므로, 자기의 사도권은 절대적인 권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헨리(Henry)는 “바울의 사도권은 다른 사도들과 동등하다. 오히려 다른 사도들은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 부름 받았음에 비해, 바울은 예수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에 부름 받았다는 점에서 볼 때는 그들보다 더 권위가 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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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J. G. Machen, The Origin of Paul's Religion(Michigan: Eerdmans, 1973), p. 161.
2) H. A. A. Kennedy, The Theology of The Epistles(London: Duckworth, 1959), p. 105.
3) K. Barth, Dogmatics in Outline. trans. by G. T. Thomson.(SCM Press Ltd, 1966), p. 43.
4) W. Barclay, Ambassador for Christ(The Saint Andrew Press, 1973.), p. 170.
5) H. A. A. Kennedy, op. cit., p. 138.
6) M. Luther, M. Henry, O. F. Blackwelder, E. H. Perowne, R. T. Stamm, 黑崎幸吉, 內村鑑三, 이상근.
7) W. H. G. Thomas, Ministerial Life and Work(Michigan: Baker Book House, 1974), pp. 12-14. 하나님의 예언자,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되는 일반적인 과정을 네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⑴ 하나님께 대한 인식은 죄의 자각을 초래한다. ⑵ 죄의 고백은 죄 사함을 받는다. ⑶ 하나님의 소명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요구한다. ⑷ 하나님의 위임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능케 한다.
8) H. J. Schoeps, Paul, trans. by H. Knight(Philadelphia : The Westminster Press, 1961), pp. 54-55.
9) H. A. A. Kennedy, The Theology of the Epistles(London: Duckworth, 1959), p. 55.
10) Ibid. p. 53. 롬 5:6, 고후 1:5 등.
11) J. G. Machen, The Origin of Paul’s Religion(Michigan: Eerdmans, 1973), p. 145. J. S. Stewart, A Man in Christ(London: Hodder and Stoughton), p.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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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42-47.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5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전체 7

  • 2022-11-02 12:44

    필자의 주석책에는 각주로 되었고, 주석되는 성경의 구절과 용어는 고딕으로 구분했는데, 이 인텨넷 화면에는
    그대로 표시되지 않으므로 각주를 미주로 바꿨고, 고딕을 부호 [ ]로 바꿨습니다. 예: 고딕으로 된 '인자'는 [인자]로 표기


  • 2022-11-02 15:51

    목사님. 이런 글은 얼마나 좋습니까?
    한번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영의 양식이 되지 않겠습니까?


  • 2022-11-02 21:33

    최 목사님, 안녕하세요?
    게시하신 내용을 통해 여러 가지 다양한 입장과 해석에 대해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또 본문에 대한 저의 소견을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God the Father> [시89:26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 시편은 수많은 예언을 포함하고 있고 이는 신약적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 신약에서 기도해야 한다. [마6: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 예수께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되신다고 가르치시는데, 이런 점은 여타의 종교들과 퍽 차이가 있다. [요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칭하는 것은 신약적인 표현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늘에 아버지가 있다.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 ⇒ 하나님의 아들 ∋ 양자의 영 ⇒ 아빠 아버지, 바울은 로마법에서 양자의 개념을 설명했는데, 양자의 상속권 같은 권리가 친자와 동일하거나 오히려 더 우월하다. [고전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살전3:13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어떤 종교는 사람을 두고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이는 성경과 무관하다. 신적 부성, 자연적 부성은 이와 전혀 다르다. [갈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 성령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신다.

    <사도 apostles> [마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 사도들은 ❶ 귀신을 쫓아냄, ❷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가짐 [눅6: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 예수께서 직접 제자들을 불러 그들을 사도라 칭하셨다. [행1: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 성경에서 예수님으로 부터 직접 사도로 칭함을 받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예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선택을 받았다.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엡4: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 사도는 목사pastors나 교사teachers나 선지자와 그 위치가 다르며, 현대의 목사들은 당연히 사도가 아니고 사도권도 없다. 베드로의 유골에서 정통성을 찾지 마시라. 또한 누가 구약의 대제사장이 되고 싶다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나 레위 지파에 속해야 한다. -문서의 끝-


    • 2022-11-03 11:08

      엄 장로님, 안녕하시지요?
      필자의 주석에 관심을 보이시고, "게시하신 내용을 통해 여러 가지 다양한 입장과 해석에 대해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또 본문에 대한 저의 소견을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글 맨 끝에 있는 '-문서의 끝-'은 인용하신 어떤 문서의 끝인지, 장로님이 쓰신 문서의 끝인지 궁금합니다.


      • 2022-11-03 11:21

        제가 작성한 이번 게시한 내용의 마침이라는 표식인데, 혼선이 있으니 앞으로는 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어떤 내용을 게시를 할 때, 표식이 없이 직접 인용을 삼가하고 있고, 성경 본문에 대한 짧은 댓글은 제가 이해한 내용이니 이런 점은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 2022-11-03 11:48

          답변 감사합니다.


  • 2022-11-03 11:52

    필자의 주석 연재에 계속 관심을 가지시는 장로님과 독자분들께 감사하며,
    이해에 혹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한마디합니다.

    제 은사님이셨던 김용옥 박사님께서, "가장 쓰기 어렵고 힘드나 가장 권위 있는 글쓰기
    가 다자 대조 연구 방법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심비에 새기고 집필한 신약 전체 주석은 단순히
    다른 학자들의 다양한 입장과 해석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각 학자들의 입장과 해석에 대해
    비평하며 취사선택하거나, 종합적인 견해를 도출하거나, 제삼의 독창적인 견해를 정립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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