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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인물 서기훈목사님을 좀 더 알아보다가 아들 서기택 목사님에 대한 글을 읽고 옮겨왔습니다.

작성자
정용인
작성일
2022-10-14 09:59
조회
1729
잊을 수 없는 스승 서기택 목사님과 함께 했던 학창시절
원성웅 목사(배재 88회 졸업, 서울연회 옥토교회 담임)


*** 이 글은 인천일보사에서 출간된 책 <순교자 우리 아버지>
147~155p.에 실린 서기택 목사님에 대한 회고의 글입니다.
서기택 목사님은 우리가 배재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2학년 초기까지 가르쳐 주신 목사님이셨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71년 봄에 인천의 영화여자 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영전해 가셔서 몇 년 전인 98년에 은퇴하시고 2001년 까지 일본에 선교사로 가셨다가, 지금은 몸이 불편하신 관계로 돌아오셔서 쉬고 계십니다. 서기택 목사님의 아버님은 6.25때 피난가지 않으시고 교회와 성도들을 지키시다가 철원에서 인민군의 손에 죽으신 순교자 고 서기훈 목사님입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며 옛 스승을 기리는 마음으로 이글을 올립니다. ***


서기택 목사님을 생각하면 내가 목사님을 처음 뵙던 중학교 1학년 때를 떠올리게 된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배재중학교에 시험을 쳐서 입학하였었는데, 들어와서 보니 배재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생긴 신교육의 발상지였고 아펜셀라 선교사에 의해 뿌리내려진 기독교 정신으로 가르치는 학교였다.
중학교 1학년의 첫 번째 성경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종이 울리자 한 인자하게 생긴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그분이 바로 서기택 목사님이셨다. 서 목사님은 얼굴에서부터 인자함이 풍겨왔고 말씀하시는 것도 조용조용하셔서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셨다. 나는 그 때 그 첫 성경시간을 기억하고 있는데, 목사님은 기독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 사랑에는 친구간의 사랑인 ‘필리아’가 있고 연인간의 사랑인 ‘에로스’가 있고 형제간의 사랑인 ‘스토르게’가 있는데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이다. 앞서 말한 친구간의 사랑이나 연인간의 사랑은 서로 주고받는 사랑이고 상대적인 사랑이지만 아가페의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이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랑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이며 성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기독교에 대하여 강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절대적 희생과 헌신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르치고 실현하신 예수님과 그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 그래서 나는 기독교의 아가페의 사랑에 대해 배우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진리를 찾아보기로 결심하였다. “기독교의 가르침에는 뭔가 놀라운 것이 있음에 틀림없다. 이제부터는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서 설교를 듣고 성경말씀을 배워야겠다.” 이렇게 결심을 한 후 나는 정말로 주일을 잘 지키며 설교말씀에 귀를 기울였는데, 가끔씩은 이해하기 곤란하고 믿기 어려운 기적이야기나 나의 작은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초이성적인 내용의 설교나 중학생인 나와는 관계가 먼 듯한 이야기가 나와도 그런 말씀들까지라도 나의 장래에 유익한 지혜의 교훈이 될 것으로 여기고 설교말씀들을 잘 듣는 습관을 들였다.
학교생활에서는 성경시간이 기다려졌고 성경시험은 거의 언제나 내가 일등이었다. 그리고 채플시간에는 절대로 졸거나 영어단어 같은 것을 암기하지 않고 설교하시는 교목님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하여 배재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6년간을 이렇게 보내면서 나는 당시 배재에서 모범적인 기독학생이 되어갔고 교목실에서 가장 사랑받는 학생 중 하나가 되었다.
어느 채플시간에는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마음속 깊이 새겨들며 감동이 되어 팔에는 소름이 끼치고 그 말씀이 하나님께서 바로 나를 향해 하시는 말씀으로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하였다. “지금 설교 말씀을 전하시는 분은 분명히 사람인데 어떻게 나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오고 있는 것일까?”

나는 당시의 배재 교목실의 여러 목사님들을 기억하고 있다.
김수철 목사님은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 목사님으로 내가 입학한지 얼마 안 되어서 은퇴하셨다. 박내철 목사님은 인자하신 성품으로 늘 웃으시는 목사님이셨는데, 나는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정동교회에서 드린 졸업예배 시에 박 목사님으로부터 그동안 미루어오던 세례를 받았다. 이경희 목사님은 음악과 성경 두 분야를 다 가르치시며 합창부 지도와 응원단 지도까지 해주신 태권도 공인 4단의 인기 좋은 목사님이셨다. 또한 주로 고3 학생들에게 사회 문제를 제시해주시고 토론을 유도하셨던 이상주 목사님과,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새로 오셔서 성경과목 교사로서 하나님 말씀으로 실천적 교훈과 신선한 도전을 받게 해 주신 전영배 선생님이 계셨다. 전 선생님은 가나안 농군학교와 농촌봉사대를 접목시키며 배재의 기독학생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주셨다.
당시 배재의 교목실은 이렇게 훌륭한 인격과 실력을 갖추신 목사님들과 선생님들이 계셨는데, 배재 교목실에서 근무하시다가 배재 대학이나 사립학교 교장선생님으로 발탁되어 가시는 경우도 있었다.

서기택 목사님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던 3월에 돌연히 인천의 영화여자 고등학교의 교장선생님으로 영전해서 배재를 떠나셨다.
나는 서 목사님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웠으나 내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다른 학교의 교장님으로 나가시는 일에 대해 제자로서의 긍지를 갖기도 하였다.

내가 기억하고 감사해하는 서 목사님에 대한 추억은 여러 가지이다.

목사님은 채플시간마다 학생들이 모일 때 아직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새로운 찬송가를 한두 곡씩 가르쳐주셨다.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양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 가로 나를 늘 인도하여주신다...”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에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 나라 여명이 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빛 속에 새롭다...”

“너 시험에 들어 죄 짓지 말라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 우리구주의 힘과 그의 위로를 빌라 주는 네 편에 서서 항상 도우시리...!”

지금도 이런 찬송들을 부를 때면 옛날 배재시절 채플시간의 즐거움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당시에 배재는 경직된 일반 다른 학교의 분위기와는 달리 학생들이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기르게 허용해주었고 여름교복과 교모도 시원하고 밝은 색깔의 멋있는 디자인으로 바꿔주었으며, 교내외에서 클럽활동과 건전한 취미와 특기를 살리도록 권장해 주는 등 앞서가는 교육을 펼쳐나가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당시 감리교 신학대학의 기독교교육학과 교수이셨던 은준관 박사님과 차풍로 목사님과 연대 교목이셨던 이계준 목사님과 배재의 서기택 목사님등이 중심이 되셔서 서울시내의 기독교계통 고등학생들을 모아 토요일 오후에 특별활동으로 감신대에서 실시했던 ‘Student Chapel’이라는 모임이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여러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함께 유익한 프로그램을 경험하였는데, 특히 장미반이란 소그룹은 서 목사님께서 직접 지도해 주셨다. 그 그룹에는 남학생들은 주로 배재학생들이었고 소수의 광성고 경성고 학생들도 있었고, 여학생들은 이화여고 학생들과 진명여고 학생들이 주를 이루었다. 우리는 그 기독학생 클럽활동을 통하여 일반 교회의 토요집회에서 배울 수 없었던 훌륭한 프로그램들을 제공받았다. ‘Student Chapel’의 활동을 통해서는 연합 예배 외에도 연극과 영화와 새로 보급되는 복음송과 미국에서 유행되던 건전한 ‘폭송(folk song)’들을 배울 수 있었고, 신앙적 대화와 토론과 친교의 유익한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한번은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대화와 토론의 시간에 목사님은 우리들에게 “여러분이 제일 존경하는 인물에 대해 말해보라” 하셨다. 그 때 그 반의 친구들 중에서는 어떤 친구는 유럽을 정복한 나폴레옹을 존경한다고 말하기도 했고, 어떤 친구는 징기스칸이라 말하고, 또 다른 친구는 ‘나의 투쟁’이라는 전기를 읽고 나서였는지 히틀러를 존경한다는 말까지도 했는데, 나는 대원군을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가 우리 모두가 서 목사님의 책망을 들은 일이 있었다. 사실 그때 나는 목사님의 책망을 들으며 속으로 얼마나 민망했었는지... 사실 그때 나는 김동인의 장편소설 ‘운형궁의 봄’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김동인의 관점에서 미화된 애국자요 부패한 조선의 개혁자로서의 대원군에 대해서 아주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목사님은 우리들 중에서 아무도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에 감화된 슈바이쳐나 리빙스턴같이 남을 위해 사랑으로 섬긴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고 피를 흘린 폭군과 전쟁을 일으켜 남의 나라를 짓밟은 정복자들을 존경한다고 해서 실망하셨던 것이었다. 사실 좀더 지나서 알게 된 일이었지만 대원군은 우리나라 기독교를 극렬하게 박해한 대표적인 인물이고 그의 좁은 시야의 쇄국정책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의 발전이 이웃 일본에 비해 수십 년이나 뒤쳐지게 되었다고 볼수 있다.

서기택 목사님의 성경 시간에는 때때로 한국 교회에 대한 깊은 염려와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비판의 말씀들을 들을 수 있었고, 배재학교의 분위기에 대한 신앙적 염려의 말씀도 많이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펜셀러 목사님이 세우신 배재가 비 신앙적으로 변질되어가서 운동장에서 외치는 소리만 가득하고 진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는 못하고 있다하시며 걱정하시는 말씀도 하셨다.
그때 중학생의 나이로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를 때도 있었지만 목사님이 한국교회를 위하여 염려하시는 진실한 예언자적 고뇌를 가지고 계셨다고 생각된다.

한번은 중 1때 서 목사님이 우리 반에 들어오셔서 ‘한 평 돕기 운동’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이 운동은 당시 강원도 오지였던 춘성군 사북면에 중학교가 없어서 그 지역의 청소년들이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그 지역의 선각자 김용겸 장로란 분이 재건학교를 시작하였는데 우리 배재가 그 지역으로 농촌봉사를 가면서 자매결연을 맺고 돕기 시작한 일을 말한다. 목사님의 설명은 우리가 그 재건 학교에 땅을 사주어서 학교가 제 모습을 갖추게 도와주자는 말씀이었다. 당시 그곳의 땅 한 평 값은 서울의 중국집 짜장면 한 그릇 값인 50원 정도였으므로 배재 중고등학교 전교생 3,000명이 짜장면 한 그릇 값만 모금에 동참하면 그 재건학교에 3,000평의 땅을 사줄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목사님으로부터 이 말씀을 들은 나는 당시에 우리학급의 반장이었으므로 그 모금의 책임자가 되었다. 의무적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율적으로 모금하는 운동이었기 때문에 안내어도 강제로 내게 할 수는 없도록 되어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일에 일종의 사명감을 느끼면서 학급의 친구들에게 설득을 하였다. “시골 가난한 마을의 학교를 도와주는 일이니 우리학급에서 힘껏 참여하자! 한 사람당 한 평만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하자!” 내가 이렇게 설득한 효과가 있어서 그때 중학교 1학년 6반인 우리 반에서는 60명의 반원들이 160평 정도의 값-짜장면 160그릇 값을 모금해서 교목실로 보내드렸다. 그 때 다른 학년과 반에서도 이 모금운동이 자발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는데 대체로 한사람이 한평정도씩 참여했고 많이 모금한 어떤 반은 120여평을 모은 반도 있다고 하는데... 중학교에서는 우리 반이 제일 많이 참여했다는 뒷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실제로 사북재건학교는 배재의 한 평 돕기 운동의 지원을 받아서 수 천 평의 땅을 매입하여 학교 발전의 기틀을 만들었다.

때때로 나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과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는데 그러다보면, 그들 중의 대부분은 학창시절을 고통스럽고 지루하게 보냈던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와 배재를 졸업한 친구들은 거의 모두가 중 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나에게 그 이유에 대하여 간단히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않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배재에는 교목실이 있어서 그렇다.”
교목실도 요즈음같이 힘이 약화된 교목실이 아니라 신앙 인격과 실력을 갖춘 교목님들이 교장선생님과 한 마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가르치고 청소년들에게 미래의 꿈을 심어주고, 풍성한 인성 교육으로 양육하는 앞서가는 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의 배재 교장님은 전종옥 목사님이셨는데 배재의 교목실이 이처럼 활기차고 창조적인 신앙교육을 할수 있도록 밀어주신 훌륭하고 멋진 교육자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목사님이 영화여고의 교장이 되셔서 배재를 떠나신 후, 나도 배재를 졸업하고 감리교 신학대학과 대학원을 거쳐 시골 전도사를 마치고 공군 군목으로 복무하였는데, 그후에 30대 초반의 나이로 다시 서울의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봉직하고 있을 때, 인천 영화여중고의 학생 부흥회에 강사로 초청을 받아 가게 되었다. 창녕교회 본당을 가득 채운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루에 두 차례씩 사흘간 계속된 학생부흥회에 강사로 선 나는 우선 나의 스승이신 서기택 교장님이 나를 불러주신데 감사를 하였으며, 학생부흥강사로서 기독교 정신으로 잘 교육되고 있는 영화여중고의 은혜로운 분위기에 내가 도리어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된다.

서 목사님이 교장으로 재직하셨던 영화여중고도 역시 초기 선교사에 의해 기독교정신으로 세워진 학교였는데, 목사님께서 교장이 되신 후에 정부로부터 기독교 학교들의 종교교육의 자율권을 빼앗는 평준화의 거센 역풍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영화학교의 신앙적 분위기는 과거 내가 배재에서 느꼈던 것 못지않은 감동과 기쁨을 주는 채플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먼저 전교생이 학기 초에 부활절을 앞둔 한 주간에는 일반 수업을 중지하고 학생부흥회에 참여케 하고 그 부흥회 시작 전에는 음악 선생님이 즐거운 복음성가를 가르치고 감동적인 찬양을 함께 불렀다. 부흥회가 끝난 후에는 각 반별로 담임선생님의 지도를 따라 반별 성경공부 시간을 가지고 그 주간의 다른 날은 학생들을 방문하여 심방과 상담도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서 목사님은 영화의 교장직을 은퇴하시고 나서 당신의 목사로서 남은여생을 일본선교를 위해 바치시려고 떠나셨다. 은퇴 후 한번 찾아뵌 자리에서 당신이 영화학교에서 은퇴하시기 전에 못 이루신 일에 대해 아쉬워하며 말씀하신 것이 생각난다. 영화 학교가 컴퓨터와 정보화의 첨단 기기를 갖춘 학교가 되어야 할 텐데... 당신이 재력 있는 독지가를 끌어들여 그 일을 마저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지금 서목사님은 남은여생 마저도 교육선교에 바치시려고 일본의 북구주(北九州) 지역의 오리오 대학에 선교사로 자원하여 가셨다. 이제는 좀 쉬시고 세계일주 여행도 다니시고 제자들의 대접을 받으시며 사셔도 될텐데...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지키시다 순교하신 부친 고 서기훈 목사님의 아름답고 거룩한 희생정신을 이어받으신 탓인지 요나도 가기를 거절했던 니느웨 같은 지역 일본선교에 당신의 마지막 여생을 투신하고 계신다.

나는 서기택 목사님이야말로 우리시대에 대표적인 스승이시며 모범적인 교육자시라고 생각한다.
서기택 목사님은 배재중학교 시절 나로 하여금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도록 이끌어주시고 긍지 있는 기독학생이 되도록 가르쳐주셔서 이윽고는 감리교회의 목사가 되도록 길을 열어주신 은사이시다. 아마도 배재 시절에 서 목사님에게 배운 학생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에 크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그분이 가르치신 복음적 교육의 영향은 한국의 기독교계통 학교 전체에 귀감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40대 후반의 목사로서 설교하며 가르치는 일로 분주하지만 서기택 목사님은 지금도 내 마음에 잊을 수 없는 참스승의 모습으로 자주 떠올려지는 분이시다.
나는 지금 어떻게 하면 나의 은사님에게 진 빚을 갚아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서기택 목사님의 노후가 나를 비롯한 그분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로 말미암아서 더욱 영예롭고 아름다워 지시기를 기도하며 이글을 마친다.

2000년 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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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1

  • 2022-10-14 12:50

    서기택 목사님께서도 훌률하시지만, 회고하신 원성웅 목사님의 글도 매우 훌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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