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물어오신 다섯번째 질문

2025-10-11 12:35 원형수 25997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열왕기상 19:9-18

[본문 소개]

열왕기상 19장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줍니다. 18장에서 갈멜산 꼭대기에 우뚝 섰던 엘리야가, 19장에서는 동굴 속에 움츠려 있습니다.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맞섰던 그가 한 여인 이세벨이 “네가 예언자들을 죽였으니 이번에는 내가 너를 내일 이맘때까지 반드시 죽이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천벌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받겠다"(왕상 19:2-3)고 하자 엘리야는 두려움에 떨며 죽을힘을 다해 도망칩니다.
남왕국 유다의 국경 지대인 브엘세바를 거쳐 사막의 한 로뎀나무 아래 주저앉은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여호와여, 이제 다 끝났습니다.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선조들보다 나을 것 없는 못난 놈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음식을 먹이자 엘리야는 힘을 얻어 40주 40야를 걸어 호렙산에 이른 것입니다. 그가 동굴 속에 숨어 있을 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묻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 불의 사자 엘리야

엘리야는 바람처럼 나타나 불꽃같은 말씀을 선포한 인물입니다. 그의 이름 자체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입니다. 그는 절대 권력자인 아합 왕 앞에서,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다!"고 선언하자, 그의 말대로 이스라엘 땅에는 3년간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들게 한 인물입니다. 그때 아합 왕은 엘리야라를 만나, "이스라엘을 망치는 자라!"고 하자, 엘리야는 굴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과 당신 아비의 집입니다!“고 한 인물입니다.

엘리야의 사적을 보면 놀랍습니다. 죽은 아이를 살리고, 갈멜산에서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승리를 거두고, 그가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 왕의 군사들을 심판한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야고보는 그를 가리켜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소개할 만큼, 누구나 그를 특별한 존재로 여겼든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강했던 엘리야가 이세벨 앞에서는 겁에 질려 도망칩니다. 하늘에서 비가오게 하고, 불을 내리게도 했든 그가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겁에 질려 도망치는 자가 된 것입니다.

2. 동굴 속의 엘리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엘리야의 탄식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오직 나만 남았는데, 저희가 내 생명마저 찾아 취하려 합니다!“

엘리야는 이 말을 19장에서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 이 말 속에는 ”죽고 싶다“는 간청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절규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담긴 불평인 것입니다. "누가 나만큼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까? 모든 선지자가 죽었는데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나마저 죽게 내버려 두십니까?"라고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변화를 발견합니다. 17장과 18장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가라" 하면 가고, "하라" 하면 하는 순종하는 인물이였습니다. 그런데 19장에서는 "나"가 중심입니다. "내가 열심히 특심했다", "나만 남았다", "내 생명을 취하려 한다"라고 모두 자기 변명과 자기 과신으로 가득합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하게 한 것일까요? 단적으로 말하면 갈멜산의 승리가 엘리야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그가 부르짖은 대로 불이내려오자 백성들은 그 앞에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때 엘리야는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그가 450명의 바알 선지자를 기손 시내로 끌고 가 죽일 때, 그는 온 세상이 자기 것처럼 여겼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의 그 승리감과 자기 도취가 그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아합이 이세벨에게 알릴 때 뭐라고 했습니까?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아니라, "엘리야가 행한 일"이라고 한 것입니다. 백성들도, 아합도, 심지어 엘리야 자신 까지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엘리야는 ‘하나님의 일’을 ‘자신의 일’로 착각했다는 뜻입니다. 그가 기도하면 비가 오지 않고, 그가 기도하면 비가 내리고, 그가 기도하면 죽은 아이가 살아나고, 그가 명령하면 하늘에서 불이 내린 것이 엘리야의 능력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그의 힘의 근원은 그의 근육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이었습니다. 언약을 지킬 때 그는 강했지만, 언약을 파기했을 때 그는 원수의 종이 되어 연자맷돌을 돌린 것입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의 능력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갈멜산의 승리 이후부터 엘리야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신이 모든 것을 판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세벨의 위협을 들었을 때, 그는 하나님께 여쭙지 않았습니다. 겁부터 먹고 도망친 것입니다. 이처럼 엘리야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었다는 것은 엘리야가 힘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삼손도 그랬듯이 말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엘리야와 같은 사람을 가리켜 "동굴 속의 사람" '동굴 속의 사람'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진리를 알지 못하는 채 익숙한 허상(그림자)에만 집착하는 인간의 한계와 변화의 가능성을 상징합니다.
이라고 부릅니다. 큰 충격을 받아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고 고립된 사람을 뜻합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의 싸움에는 이겼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패배한 것입니다. 그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고, 배신감에 빠져 동굴 속으로 숨어버린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질문

바로 그때 하나님은 동굴 속에 숨어 있는 엘리야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9절). 그때 엘리야가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고 하자,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 산에 서라!"고 하신 것입니다.

엘리야가 밖으로 나갔을 때,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고, 지진이 땅을 흔들며, 불이 타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 아주 조용해 졌을 때, 세미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세미한 소리”(19:12)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콜 데마마 다카(kol demama daka)입니다. ’데마마‘란 ‘침묵’. ‘콜’은 ‘목소리’, ‘다카’의 뜻은 ‘작은’이란 뜻이기에, 이를 묶어 번역하면 ‘세미한 침묵의 소리’란 뜻입니다. NRSV 성경은 “the sound of sheer silence”, 즉 “순전한 침묵의 소리”로 번역했습니다. 어떠한 번역이든 하나님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거의 침묵에 가까운 소리였다는 뜻입니다.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이 지나간 자리,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야 들을 수 있는 "데마마 다카" 곧 요한 침묵 속의 음성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침묵 속에서 하나님이 물으셨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께서 정말 몰라서 물으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무 그늘에 숨은 아담을 몰라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으신 것도 몰라서가 아니고,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신 것도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하신 것은, "네가 있어야 할 자리는 여기가 아니다. 네가 살아가야 할 삶의 자리는 동굴 속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 네가 도망쳐 온 바로 그곳이다. 왜 여기 숨어 있느냐?"는 뜻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여전히 변명하기를, "이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제단을 헐었습니다. 예언자들을 칼로 죽였습니다. 나만 혼자 남았는데 나마저 죽이려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불타는지 하나님이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강변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돌아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시리아 왕으로 세우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할 선지자로 세우라. 그리고 엘리야야, 너만 남은 것이 아니다.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 칠천 명을 남겨두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째,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왕들을 세우고 폐하시는 것도, 선지자를 부르시고 세우시는 것도 하나님의 일입니다. ”엘리야의 일“이 아니란 뜻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일은 엘리야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칠천 명의 신실한 자들이 있습니다. ”엘리야 네가 없을 지라도 하나님의 일은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셋째, “네가 있어야 할 곳은 동굴이 아니라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며 숨어 있을 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신 내가 네게 맡긴 그 일을 해야 할 때”라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곧 바로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그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오늘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엘리야에게 물어오신 그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물어 오신다고 봅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혹시 과거의 성공에 도취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저 일을 해냈다", "내가 이만큼 이루었다"며 자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실망과 좌절 속에서 동굴에 숨어 있지는 않습니까?
"나만 열심히 했는데 왜 이런 일이?"라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울은 수많은 기적을 행했지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립보서 3:12).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고린도후서 12:5).
왜입니까?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9:27).

예수님도 경고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않았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2-23).
기적을 행하는 것과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다릅니다. 기적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 일에 쓰임 받았을 뿐입니다.

결 론

침묵 속에 들려오는 음성, 하나님의 음성은 광풍 속에도, 지진 속에도, 불 속에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세미한 침묵 속에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아주 작은 소리입니다.
침묵 속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절대 들을 수 없는 세미한 음성이였습니다.
바쁘고 분주한 사람, 잘나가는 사람, 자기 일에 도취된 사람에게는 결코 들을 수 없고, 들리지도 않는 침묵의 언어입니다.
성장과 부흥과 성공과 확장에만 몰두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들리지 않습니다.
잘 된다는 것, 무엇을 성취했다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올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여러분이 지금 큰 절망과 낙심 가운데 빠져 있다면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오히려 은혜이고 축복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면, 여러분이하고 있는 그 일을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이 쥐고 있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버려야 들을 수 있습니다. 내려놓아야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동굴 속에 숨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넓은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과거의 영광에 갇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새로운 사명의 현장으로 부르십니다.
"나만 남았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이 보지 못한 칠천 명의 동역자들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회복합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회복할 때만이 우리는 힘을 얻게 됩니다. 거기에 저와 여러분의 능력이 있습니다. 거기가 바로 저와 여러분이 서야 할 자리인 것입니다.
바로 거기서 침묵 속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소그룹(또는 속회) 나눔 자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열왕기상 19:9-18)

1. 나눔을 위한 질문
1) 나의 '갈멜산'은 언제였나요? -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았던 순간
2) 지금 어떤 '동굴'에 숨어 있나요? - 회피하고 있는 것
3) "나만 남았다"고 느낀 적은? - 신앙의 외로움을 경험한 때
4) "내가"가 "하나님"을 대신한 때는? - 하나님께 묻지 않고 결정한 순간
5) 침묵 속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적은? - 조용히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

2. 적용 과제
1) 침묵 기도 10분 - 매일, 스마트폰 끄고 하나님께 귀 기울이기
2) 감사 vs 자랑 점검 - 내 대화가 하나님 영광인지, 자기 자랑인지 체크
3) 동역자 한 명 격려하기 - 함께 신앙생활 하는 이에게 격려 메시지 보내기
4) 한 가지 내려놓기 - 꽉 쥔 것(성공, 인정, 상처) 하나를 하나님께 맡기기
5) 동굴에서 한 걸음 나오기 - 회피했던 일에 작은 행동 하나 하기

3. 묵상 주제
1) 하나님의 일 vs 나의 일 (요 15:5)
나는 도구인가, 주인공인가?
2) 침묵 속의 하나님 (시 46:10)
왜 하나님은 조용히 말씀하시는가?
3) 혼자가 아닌 우리 (롬 11:4)
나는 동역자들을 어떻게 보는가?
4) 있어야 할 자리 (에 4:14)
지금 내 자리는 회피의 장소인가, 사명의 현장인가?

이전 2025-10-11 그가 원해서인가 그를 원해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