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서드】화요일기(火曜日記)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20-12-14 10:12
조회
242
화요일기
火曜日記
시인/ 함창석 장로
아침부터 아내는 하루가 지루하다며 푸념이었다. 월, 토요일은 하루 종일 손자손녀를 돌보기에 칠순 나이가 다 되어가니 힘에 겹기도 하다고 한다. 오늘은 그런 아내를 위로도 해줄 겸 동네 한 바퀴 돌아볼까 궁리를 하던 차에 부론 법천사지를 중심으로 하여 나들이를 약속하고 준비를 하였다.
점심을 들고 오후 1시에 여섯 살 손자 녀석이 사과를 너무나 잘 먹는다고 하기에 우선 가까운 사과농원이 있는 제천시 백운면을 들려 사과를 구입하려고 출발을 하여 19번 국도를 달려 백운면시장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사과 3봉지를 3만원을 주고 샀다. 사과 맛을 본 아내는 괜찮다고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더 좋은 사과가 없는가 살폈다. 도로변 직판장 홍보판은 있으나 썰렁하여 차를 몰아 앙성을 지났다. 코로나 이전에는 탄산온천에 와 즐기곤 하였는데 요즘은 온천을 할 상황이 아니라 지나치며 부론으로 가는 길 지방도에 들어 충청북도와 강원도의 경계 남한강을 건너고 있다.
우선 남한강변 흥원창에 차를 세우고 멀리 영월, 단양, 충주에서 흘러오고 원주에서 흘러오는 섬강과 만나 여주 이천 팔당 서울 강화도 서해로 흐르는 한강을 이야기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곳은 충청북도, 강원도, 경기도가 만나는 삼합지역이다. 경치가 남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고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조창이 있었으니 그 이름을 흥원창이라고 하였다. 한양에서 올라오는 배들이 원주, 충주, 여주지역에 집산한 물품들을 실어 나르는 집산지였다. 당시에는 부론지역이 인구가 많아 번창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철도가 놓이고 도로가 개통되며 수운은 쇠퇴하게 되었다.
잠시 후에 손곡리 법천사지로 향하여 도착하니 다른 사적지에 비해 복원이 거의 안 된 상태였다. 1000년 된 느티나무, 무너진 집터의 돌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차를 주차하고 한참 걸어서 지광국사의 탑비가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탑비 좌대는 과연 예술적인 면모를 갖추었고 특이하였다.
지광국사는 원주 출신으로 8살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고려 6개 불교 학파 중에 법상종으로 국사에 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조선을 거치며 숭유배불정책에 영향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7년 전쟁인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법천사는 그 후 복원의 길을 찾지 못하고 이제까지 내려오고 있어 안타깝다.
9km 떨어진 곳에는 거돈사지가 있다. 거돈사지는 원광국사를 기리고 있다. 법천사지보다 앞 선 시기에 번창을 하였다. 그리고 12km 떨어진 곳에는 흥법사지도 있다. 흥법사지는 왕건과 관련이 있는 사찰이 있었다. 왕건은 건등산을 중심으로 견훤과 남한강 섬강 싸움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한다.
많이 떨어진 여주 주암에는 고달사지가 있다. 고달사지는 신라 중기 이후 남한강유역을 차지한 신라가 정책적으로 세운 사찰이다. 원종대사비가 세워져 있다. 지금 복원을 많이 한 상태다. 이런 흐름으로 흥법사지, 거돈사지, 법천사지가 이루어지며 남북조시대 신라, 고려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남한강이 흐르는 한반도의 중심부에 삼국시대의 정치, 종교의 역사가 살아 숨을 쉬는 곳을 한 바퀴 돌고 나니 감회가 새롭다. 신라 말기로부터 고려초기의 전쟁터였던 이곳에서 또 하나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그 시대에 백성을 위해 수고했던 지도자들이 한편 고맙게 느껴졌다.
고려시대에 국교였기에 왕성하던 불교가 조선시대로 들어오며 정치이념을 자리 잡은 유교에 밀리며 1차로 쇠퇴하게 되고 왜구의 침략으로 소실되어 폐허가 되고 조선말기 일제강점으로 인하여 철도, 도로 확충으로 수운의 쇠퇴가 가져온 현장, 복원을 위하여 모아둔 돌들이 씁쓸하기만 하였다.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편하였다. 아내는 힐링이 되었다며 밝은 표정이다. 시청 옆 아들네 집에 들려 사과봉지를 며느리와 손자에게 2개나 전하고 집으로 돌아와 마트에서 구입한 초밥 꾸러미를 열고 저녁식사를 하니 참 맛이 있다. 오늘은 보람이 있던 날이었다. 쉬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火曜日記
시인/ 함창석 장로
아침부터 아내는 하루가 지루하다며 푸념이었다. 월, 토요일은 하루 종일 손자손녀를 돌보기에 칠순 나이가 다 되어가니 힘에 겹기도 하다고 한다. 오늘은 그런 아내를 위로도 해줄 겸 동네 한 바퀴 돌아볼까 궁리를 하던 차에 부론 법천사지를 중심으로 하여 나들이를 약속하고 준비를 하였다.
점심을 들고 오후 1시에 여섯 살 손자 녀석이 사과를 너무나 잘 먹는다고 하기에 우선 가까운 사과농원이 있는 제천시 백운면을 들려 사과를 구입하려고 출발을 하여 19번 국도를 달려 백운면시장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사과 3봉지를 3만원을 주고 샀다. 사과 맛을 본 아내는 괜찮다고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더 좋은 사과가 없는가 살폈다. 도로변 직판장 홍보판은 있으나 썰렁하여 차를 몰아 앙성을 지났다. 코로나 이전에는 탄산온천에 와 즐기곤 하였는데 요즘은 온천을 할 상황이 아니라 지나치며 부론으로 가는 길 지방도에 들어 충청북도와 강원도의 경계 남한강을 건너고 있다.
우선 남한강변 흥원창에 차를 세우고 멀리 영월, 단양, 충주에서 흘러오고 원주에서 흘러오는 섬강과 만나 여주 이천 팔당 서울 강화도 서해로 흐르는 한강을 이야기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곳은 충청북도, 강원도, 경기도가 만나는 삼합지역이다. 경치가 남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고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조창이 있었으니 그 이름을 흥원창이라고 하였다. 한양에서 올라오는 배들이 원주, 충주, 여주지역에 집산한 물품들을 실어 나르는 집산지였다. 당시에는 부론지역이 인구가 많아 번창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철도가 놓이고 도로가 개통되며 수운은 쇠퇴하게 되었다.
잠시 후에 손곡리 법천사지로 향하여 도착하니 다른 사적지에 비해 복원이 거의 안 된 상태였다. 1000년 된 느티나무, 무너진 집터의 돌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차를 주차하고 한참 걸어서 지광국사의 탑비가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탑비 좌대는 과연 예술적인 면모를 갖추었고 특이하였다.
지광국사는 원주 출신으로 8살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고려 6개 불교 학파 중에 법상종으로 국사에 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조선을 거치며 숭유배불정책에 영향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7년 전쟁인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법천사는 그 후 복원의 길을 찾지 못하고 이제까지 내려오고 있어 안타깝다.
9km 떨어진 곳에는 거돈사지가 있다. 거돈사지는 원광국사를 기리고 있다. 법천사지보다 앞 선 시기에 번창을 하였다. 그리고 12km 떨어진 곳에는 흥법사지도 있다. 흥법사지는 왕건과 관련이 있는 사찰이 있었다. 왕건은 건등산을 중심으로 견훤과 남한강 섬강 싸움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한다.
많이 떨어진 여주 주암에는 고달사지가 있다. 고달사지는 신라 중기 이후 남한강유역을 차지한 신라가 정책적으로 세운 사찰이다. 원종대사비가 세워져 있다. 지금 복원을 많이 한 상태다. 이런 흐름으로 흥법사지, 거돈사지, 법천사지가 이루어지며 남북조시대 신라, 고려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남한강이 흐르는 한반도의 중심부에 삼국시대의 정치, 종교의 역사가 살아 숨을 쉬는 곳을 한 바퀴 돌고 나니 감회가 새롭다. 신라 말기로부터 고려초기의 전쟁터였던 이곳에서 또 하나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그 시대에 백성을 위해 수고했던 지도자들이 한편 고맙게 느껴졌다.
고려시대에 국교였기에 왕성하던 불교가 조선시대로 들어오며 정치이념을 자리 잡은 유교에 밀리며 1차로 쇠퇴하게 되고 왜구의 침략으로 소실되어 폐허가 되고 조선말기 일제강점으로 인하여 철도, 도로 확충으로 수운의 쇠퇴가 가져온 현장, 복원을 위하여 모아둔 돌들이 씁쓸하기만 하였다.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편하였다. 아내는 힐링이 되었다며 밝은 표정이다. 시청 옆 아들네 집에 들려 사과봉지를 며느리와 손자에게 2개나 전하고 집으로 돌아와 마트에서 구입한 초밥 꾸러미를 열고 저녁식사를 하니 참 맛이 있다. 오늘은 보람이 있던 날이었다. 쉬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12월 21일 동지가 다가오고 있다.
12월 25일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신년 1월 1일이 다가오고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구성원들 모두가
어두움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장로님, 오늘은 시가 아니라 기행문입니다.
웅장했던 사찰들이 무너지고 절터만 남아 있듯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잃어버린 한국교회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밤이 가장 길고 깊은 후에(동지)
빛되신 주님이 오시듯이(성탄),
어둠이 결코 빛을 이길수 없음을 믿고
빛되신 주님을, 진리의 맘씀을 바라봅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