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21-01-12 18:25
조회
40
복음
福音

함창석

福자는 음식과 술을 잘 차리고(豊) 제사(示) 지내 하늘로부터 복을 받는다 하여 복을 뜻한다. 畐자는 술이 가득 담긴 항아리를 그린 것으로 ‘가득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갑골문을 보면 제단 쪽으로 무언가가 쏟아지는 듯한 모습이 이미지다. 이것은 제단에 있는 술잔에 술을 따르고 있는 모습이다. 신에게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는 것은 복을 기원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복’이나 ‘행복’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音자는 言(언)의 口(구)속에 또는 一(일)을 더한 모양, 노래 부르거나 외거나 할 때에 곡조를 붙인 말, 또는 목구멍 속에서 나는 소리, 뚜렷한 말이 되지 않는 음성, 音(음)을 글자의 성분으로 하는 글자에는 어둡다는 뜻이 있다. 부수로서는 일반적으로 음이나 음성ㆍ음악의 뜻을 나타낸다. 音자에 ‘말’이라는 뜻이 있는 것은 音자가 言(말씀 언)자와 같은 문자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갑골문에는 ‘소리’와 ‘말’을 따로 구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금문에서는 ‘음악’과 ‘말’을 구별하기 위해 기존의 言자에 획을 하나 더 긋는 방식으로 音자를 만들어냈다. 사실 갑골문에서의 言자는 마치 나팔을 부는 것과도 같은 모습이다. 생황이라고 하는 악기의 일종을 그린 것이라는 설도 있고 나팔을 부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단순히 입에서 소리가 퍼져나가는 모습을 표현하려던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音자는 입에서 소리가 퍼져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소리’와 관련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복음은 ‘좋은 소식’, ‘기쁜 소식’(good news)이란 의미다. 헬라 시대에는 전쟁의 승전보, 자유와 해방, 자녀 탄생 소식 및 일반적으로 매우 기쁜 소식 등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 구원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기쁨의 소식, 곧 복된 소식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복음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죄인이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소식이요, 또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이는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성경의 핵심 주제이고 핵심 메시지이다. 그래서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구원의 복음', '천국 복음', '영광의 복음', '평안의 복음' 등으로 표현된다.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이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이며 새 언약으로서, 복음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은 죄 사함의 은총과 부활로 말미암은 영생의 복락이다. 이는 인간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다. 이것이야말로 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요, 핵심 메시지다.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오직 이 복음을 받아들여야 하고, 복음에 순종해야 하며, 복음을 확고히 기억해야 하고, 또 복음을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께서 명하셨듯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복음에 대한 바른 자세다.

(유앙겔리온) - ‘유’(좋은, 선한, 잘, 행복하게)와 ‘앙겔로스’(사절, 파송된 자)의 합성어로 ‘좋은 소식’, ‘기쁘고 복된 소식’, 혹은 ‘좋은 소식에 대한 보상’을 뜻한다. 이 단어는 원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 또는 그 같은 ‘승전보(勝戰譜)를 전하는 자에게 주어지던 보상’을 가리켰다. 이 단어가 성경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쁜 소식 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말씀과 그 행하신 일(구속 역사의 완성)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이게 되었다. 사실 속죄와 구원의 메시지보다 인생에게 더 복되고 기쁜 소식은 없을 것이다.

복음은 앵글로색슨어의 '갓스펠(godspell)'에서 생겨난 말로, '좋은 소식'이라는 뜻이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그리스어 '에우안겔리온(euangelion)'과 같다. 초기 그리스도교도에게 좋은 소식이란 신의 아들인 예수가 가르침을 전하고, 기적을 행하고, 십자가에 처형되었다가 부활했다는 것, 또 이 사건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복음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이야기다. 신약성서의 4대 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똑같은 이야기지만 목격자가 네 명이므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달리 말하면 마태복음은 "마태가 말하는 복음"이다. 네 복음서 저자들은 '에우안겔리온', 즉 좋은 소식을 전한 사람들이었다.

신약성서의 4대 복음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고대에는 수십 가지의 복음서가 나돌았고, 그 대부분은 예수의 사도가 지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도마복음, 베드로복음 같은 것들이다. 고고학자들이 그 옛 문헌들의 일부를 찾아낸 덕분에 우리는 그 형태를 알게 되었다. 내용은 대개 신약성서의 4대 복음서와 비슷하지만, 그밖에 예수가 부활한 뒤 전한 '비밀' 가르침도 포함하고 있다. 수백 년 전에 교회가 그 복음서들을 '위서' 혹은 '이단'이라고 낙인찍은 탓에 그 문헌들은 성서에 포함되지 못했다. 신약성서에 실린 4대 복음서는 그 사건들을 실제로 목격했거나 목격자와 이야기한 사람들이 쓴 '진짜 복음서'다.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도들은 4대 복음서가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중요한 진실이라고 믿었다. 영어에서 '복음서의 진리(gospel truth)'라는 문구는 논박의 여지가 없이 올바른 '절대적 진리'를 의미한다.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에서 모든 예배는 4대 복음서 중 하나, 서신(혹은 사도행전), 구약성서, 시편의 하나를 낭독하는 절차를 따른다. 복음 성가란 신앙의 개인적인 여러 측면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노래를 가리킨다. 주로 예수를 믿고, 친구이자 안내자로 간주하고, 다른 신도들과 어울리고, 다른 사람의 죄를 슬퍼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또는 정죄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6-18)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시하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기독교 개혁(부흥)운동을 대표하는 신학 용어. 성경의 계시·영감·무오·권위·표준·최종성·하나님의 삼위일체·예수 그리스도의 1위 2성(신성과 인성)·처녀 탄생·대리적 속죄의 죽음·육체적 부활·승천·재림·최후심판·이신득구·이신칭의·내세의 영생 등을 믿는 신학 사상을 말한다.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가톨릭교회의 교황주의와 성례주의에 대항하여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믿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지금도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이런 명칭을 사용하는 교단들이 있다. 독일 개신교 연합인 〈독일 복음주의 교회〉(Evangelische Kirche in Deutchland)나 프랑스 〈복음주의 교회〉(Églises évanǵeliques)가 좋은 실례다.

그 후 20세기에 와서는 미국 등지에서 진보적 기독교 사상(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는 보수적 기독교 사상을 '복음주의'라 부르는 신복음주의 사상이 나타나 용어에 혼란을 가져왔다. 이런 혼란은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 복음주의라는 말이 철저하게 성경의 권위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와 구분 없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신복음주의자들이 말하는 복음주의란 온전한 복음주의 사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좁은 의미의 복음주의에 국한되어 있다. 또한 신복음주의 신학 가운데는 혼합주의적 요소들도 많이 섞여 있다. 그럼에도 신복음주의자들은 '복음주의'란 말을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철저한(건전한) 보수주의에서는 이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에 '개혁주의'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복음주의'란 말이 원래 종교개혁에서 시작되었음을 감안한다면 이는 오히려 원래 취지를 잘 살린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세계관(Christian, Biblical worldview)이란 기독교적 관점에서 세계를 인식하는 체계로 성경적 신학적 개념이나 신념에 근거한 인식론을 이론화 하는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은 기독교 문화의 형성을 인도한다.

바울은 철저하게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희망하는 종말론적 세계관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였다. 어거스틴은 하늘의 도성인 하나님이 나라에 대한 종말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루터는 율법과 복음의 철저한 구분에 따른 신학적 구조 속에서 율법으로 통치되는 세속나라와 복음으로 다스려지는 교회의 변증법적 구조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칼뱅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한 세상이 다스려지는 하나님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고 국가, 교육, 교회 그리고 사회 등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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