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다시희망" - 개신교 죄책 고백과 희망 선포의 날 선언서

작성자
추용남
작성일
2020-10-27 11:43
조회
384

"2020 다시희망" - 개신교 죄책 고백과 희망 선포의 날 선언서




오늘 우리는 교회의 위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가 예수를 금관에 가두고 복음의 진정성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작금을 살아가는 깨어있는 기독인들의 짙은 고민이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개신교의 현 상황 점검과 문제제기 및 개혁실천방안을 마련하고 향후 기독교 회복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선언서를 준비하고 이후 계획을 알리오니 여러분들의 동참과 서명을 부탁합니다.


2020년 “다시 희망!”
-절망의 끝에서 다시 ‘신뢰의 그루터기’가 되리라-

3.1 선언을 주도한 지난 100년 역사의 주역, 한국 개신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크게 기념했으나 오늘의 험한 모습으로 2020년을 맞을 줄 전혀 상상치 못했다. 인류 역사를 앞뒤로 가른다는 코로나 사태로 이 땅 개신교의 숨겨진 민낯이 온전히 드러난 까닭이다. 자연 파괴의 징조로서 창궐한 바이러스에 책임 질 생각 않고 고작 피해자로 인식하며 정부와 시민, 성도들과 각 세우며 제 살길 찾는 개신교 성직자들 모습이 구차했고 가련했다. 더더욱 전광훈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교회세습을 허용했으며 여성 안수를 거부한 몇몇 개신교단의 총회를 지켜보며 개신교도인 우리는 한국교회에서 미래를 기대할 수 없어 절망하였다.
지금껏 개신교는 2-3백만의 가나안 교인들을 양산했고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의 온상이 되었음에도 죄책고백 전혀 없이 성장과 축복을 강조해왔다. 기후붕괴에 무심한 채 천국신앙만을 전했고 차별과 혐오를 조장했으며 가짜 뉴스의 진원지가 되었고 돈으로 교권을 장악하여 교회 세습까지 성사시켰다. 그렇기에 예배가 목숨보다 중하다 강변하며 ‘교회 밖에 구원 없다’는 교회의 배타적 주장이 참으로 허망하고 공허할 수밖에 없다. 누가 과연 이런 교회가 주는 물에 목말라 하겠는가?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목사를 동체로 여긴 이단(異端)적 구조가 교회의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붕괴시켰다. 교파 막론 교회의 70-80%에 이르는 뭇 미자립 ‘작은교회’와 수백, 수천억을 휘두르는 대형교회가 공존하는 현실은 단연코 반성서적이다. 복음이 아니라 자본이 지배하는 교회 현실, 곧 공교회성을 망각한 결과라 할 것이다. 따라서 기업화되었으며 정치세력화를 꾀하는 대형교회는 이제 주저앉을 바벨탑이자 허물어 질 성전이 되고 말았다
.
이렇듯 개신교의 온갖 병폐로 중증에 처한 교회는 신학 부재, 그 오남용의 썩은 열매를 맺었다. 로마서는 ‘칭의’를 강조했으나 본래 ‘화해’의 책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의(義)로 유대인/이방인, 유대인/기독교인, 이방적 기독교인/유대적 기독교인들 모두가 하나로 엮어지길 꿈꿨던 책이었다. 이를 위해 ‘칭의’도 필요했던 바, ‘그리스도 안의 존재’(Sein in Christo)는 제국 안에 살지만 그와 다른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하지만 자본과 짝한 개신교는 세 개의 오직(only) 교리를 크게 오용했다. ‘오직 믿음’이 용서를 빌미로 자본주의 병폐를 묵인했으며 ‘오직 은총’이 욕망 확대와 뜻을 같이 했고 ‘오직 성서’가 이런 행위를 합리화하는 절대적 근거로 사용된 까닭이다. 대면예배 강행 속에서 드러난 성전 절대주의, 성직자 중심주의는 성서 절대주의와 더불어 이런 오남용의 산물이다.
미국 의존적인 정신적 사대주의 역시 오늘날 이런 개신교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라 하겠다. 자칭 보수라 칭하되 극우 기독교를 편들며 인종, 문화 차별을 부추기고 스스로 가짜뉴스 신봉자가 된 트럼프, 그에게 이 땅의 개신교와 보수 정치세력이 편승하고 있다. 자신의 정치입지를 위해 미국을 분열시켰고 세계를 신 냉전체제로 몰아가는 트럼프의 광기를 학습하여 맹종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관이다. 한국개신교가 키운 정신적 사대주의자들의 실상을 우리는 성조기 휘날리는 광화문 광장에서 여실히 경험했다. 독립을 위해 좌우가 함께 했던 지난한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있으니 통탄스럽다. 교회라는 게토, 한국전쟁으로 야기된 트라우마에 갇혀 북쪽 이념을 악마시한 결과였다. 70년 분단선을 남북 정상이 손잡고 넘나들었던 4.27 사건조차 거부하는 개신교에게 반공주의가 신앙의 다른 이름이 된 것이다. 이렇듯 화해 대신 혐오의 종교가 된 개신교에게 ‘영적 파산’이 선고 되었으니 미래세대에게 개신교는 역사책에서나 발견 될 이름이 될까 두렵다.

교회 밖 세상은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탄식소리(롬8:18-25)로 가득 차 있다. 진실을 밝히려는 세월호 유족들의 외침, 얼굴 달리한 뭇 김용균의 절규, 죽음을 담보한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의 한숨, 몇 만원 더 벌고자 질주하는 오토바이 인생들의 고통이 우리들 일상이 되었다.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청년 세대의 좌절, 값싼 노동력으로 내몰리는 여성들의 눈물, 환경을 살려내라 소리치는 차세대 주역들인 청소년의 외침도 우리가 들어야 할 탄식이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안식일 (예배)지켜 천국가라는 소리 내 뱉는 것이 결코 답일 수 없다. 일(노동)이 없으면 안식도 없는 법이다. 안식일을 지키라 하기 전에 교회는 일(노동)이 있는가를 묻고 염려해야 옳다. 그것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는 성서말씀의 본뜻일 것이다.

이제 이런 절망 속에서도 ‘다시 희망’을 찾고자 한다. 소금 맛을 잃었고 빛 됨을 저버렸으나 그래도 우리는 진솔한 죄책고백과 함께 폐허 속에서 새 길을 찾아 걷고 싶다. 2020년 코로나는 문명의 교정자로서 우리 삶을 결코 과거로 되돌리지 않을 것이다. 1990년 JPIC 서울대회가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전을 이룰 수 없는 경우 기독교 구원(정신)은 결코 실현된 것이 아니라’ 했던 말도 소환한다. 남북 간 평화체제를 이룰 수 없다면 바울처럼 그렇게 기독교적 구원마저 포기할 생각도 해본다. 개혁을 부정하는 교회, 교단과의 단절내지 결별 역시 우리가 감수해야 될 고통일 것이다. 이제 ‘다른 기독교’를 위해 내쳐졌던 300만 명 가나안 신자들 그리고 수동적 존재였던 평신도- 특히 여성들이 개혁의 동반자이자 주체로 나설 것을 소망한다. 개신교가 다시 ‘신뢰의 그루터기’가 되는 그날까지 이들과 함께 다음 20개 항목으로 개신교 개혁을 제안하고 선포 한다.


1. 교회 건물 줄여 사회적 약자를 구제한다.
2. 세습 불허와 함께 전광훈 류의 개신교와 단절한다.
3. 거짓을 증언하는 일체 행위를 중단한다.
4. 반공주의, 맘몬주의, 성직주의로부터 복음을 해방한다.
5. 목회자들의 영적, 도덕적 불감증에 단호히 대처한다.
6. 포용과 사랑의 힘으로 모든 차별에 저항한다.

7. 분단신학 사죄하고 남북 평화체제를 주도한다.
8. 신학 사대주의 해체하고 주체적 신학교육을 실시한다.
9. 폐쇄적 배타성 허물고 역사, 문화 및 사회와 공존한다.
10. 생활신앙을 위해 ‘흩어지는 교회’ 상을 정립한다.
11. ‘공교회성’을 위해 초교파적으로 연대한다.

12. 기후붕괴 시대를 대비해 범 개신교적 비상체제를 가동한다.
13. 성직절대주의 철폐하고 평신도 주체성(지도력)을 인정한다.
14. 남녀동수로 교회와 교단을 민주적으로 운영한다.
15. 교역자 간 임금격차 줄여 계급 차별 해소한다.
16. 미래 세대, 청년들을 위한 교육에 적극 투자한다.

17. 교회 예산의 십일조를 사회에 환원한다.
18. 상속유산의 십일조를 공유경제 위해 기부한다.
19. K-방역에 협조하되 코로나 이후시대를 대비한다.

20. 교회가 개혁을 거부할 시 교회 불복종운동을 시작한다.


이상과 같이 2020년 ‘다시 희망’을 위해 뜻 모아 하나가 된 개신교인들,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이름으로 다시 ‘신뢰의 그루터기’가 되고자 개혁의지를 다지며 변화의 능동적 주체가 될 것을 교회와 사회에 천명한다.

2020년 10월 29일


* 주요 사업 일정
-심포지움 : 10월 12일(월) 오후 4시~6시, 온라인(유튜브, 페이스북)
-기자회견 : 10월 22일(목) 오전 11시, 장소: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
-종교개혁의 날 퍼포먼스 : 10월 29일(목), 온오프

- 제안자 명단 -
홍주민(한국디아코니아연구소) 홍선경(나무교회) 현혜원(시카고 템플) 현순호(만남의교회) 허영숙(광명교회) 한현실(예수살기) 한인철(연세대명예교수) 한상익(가톨릭대학교의과대학명예교수) 한경호(농촌과목회편집장) 하중조(기독동신회) 하은규(시냇가에심은나무교회) 추용남(일보교회) 최은영(여신학자협의회) 최원경(경희한의원) 최성수(기독교 영화평론가) 최미향(시냇가에심은나무교회) 최동빈(장신대명예교수) 최경희(평화영성교육센터품) 채수일(경동교회) 진광수(고난함께) 주대범(한국루터란아워) 조헌정(예수살기) 조병수(인천평화교회) 조미경(무화과나무아래) 조경철(감신대) 정희성(여신협) 정혜민(성교육상담센터숨) 정태효(성수삼일교회) 정종훈(연세대) 정인조(지평교회) 정세일(생명평화기독연대) 정상시(안민교회) 정미정(에덴의교회) 정금교(대구누가교회) 전상일(미션숲네트워크) 전기호(한일반핵평화연대) 장현영(씨앗스토리) 장병기(지금여기교회) 임희국(장신대명예교수) 임종수(한예종) 임승철(민들레교회) 임석규(성림역사문화문제연구소) 임동숙(건교의 숲) 이훈하(상곡교회) 이회식(러브월드자원봉사단) 이헌(생명나무교회) 이충형(가정의학과전문의) 이춘섭(부안금암교회) 이찬수(레페스포럼) 이진오(세나무교회) 이진권(새봄교회) 이주우(도예공방 아기자기) 이종건(옥바라지) 이정훈(에큐메니안) 이정배(현장아카데미) 이정구(전성공회대) 이은선(한국신연구소) 이승열(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 이상대(강북제일교회) 이병일(무등교회) 이규원(씨앗교회) 이경숙(주부) 이경(녹색당) 이강희(인천평화교회) 윤인중(인천평화교회) 윤용(말씀의빛교회) 윤병희(에큐메니안) 윤병민(예동교회) 윤동현(한의사) 유태엽(전감신대) 유춘자(여신협) 유시경(성공회오사카카와구치교회) 유미호(기독교환경센터 살림) 오준규(낮은마음교회) 오제홍(영국성마가교회) 오영미 오세욱(가온시온성교회) 양지철(예림출판사) 양재성(가재울교회) 안중덕(부산샘터감리교회) 안미숙(버몬감리교회) 심은록(재불큐레이터) 신선(여신협) 송순재(전감신대) 송숙자(인천평화교회) 송나(희섬정) 송광석(워싱톤감리교회) 손홍석(정신과전문의) 손원영(서울기독대) 손연국(그십자가교회) 변정미(골대교회) 백영민(기독교환경연대) 방인성(교회개혁실천연대) 방영식(한사랑교회) 박철(탈핵부산시민연대) 박찬희(서울신대) 박종운(변호사) 박종선(생명평화마당) 박종렬(남북평화재단경인본부) 박수현(한의사) 박성률(작은촛불교회) 박병종(기장경북노회) 박득훈(성서한국) 민혁기(세나무교회) 류장현(한신대) 류순권(타원형교회) 노경신(기독교반성폭력센타) 남미연(영남교회) 김혜원(여신협) 김혜령(이화여대) 김현수(사)들꽃청소년세상) 김종명(안동교회) 김종길(덕성교회) 김정숙(감신대) 김장생(연세대) 김인정(나눔과섬김교회) 김은규(성공회대) 김유미(감신대) 김영호(동연출판사) 김영선(해인교회) 김영래(시냇가에심은나무교회) 김수진(한의사) 김병균(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김디모데(예하운선교회) 김대옥(한동대) 김난영(주부) 김기원(예수살기) 권혁률(NCC언론위원회) 고은경(디자인 명작) 구미정(숭실대) 고밤석(온양영은교회은퇴) 강은숙(대전아동복지상담소) 강영미(대학강사) - 홍주민외 134명 -

전체 9

  • 2020-10-24 22:49
    Epistocracy(지식인에 의한 통치체계)가 민주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진정한 민주주의는 자기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민주적 정치 제도하에선 정해진 답은 없는 것이다.

  • 2020-10-25 07:22
    그대로 지나치려다...

    신앙이 다수결로 결정이 되는가?
    외눈박이들의 주장에 어이가 없다. 현 정부의 함량미달의 인사들로 인하여
    국가 존립자체가 어려움을 겪고있어 대다수 국민들의 원성이 하늘에 사무치고 있건만
    그에 대한 지적 한마디 없이, 고작 한다는 소리들이 제 몸 상해하는 자학에 불과한 소견들을 神託인 듯
    떠벌이는 자칭 성직자인양 하는 모습들이 가련할 뿐이다.

    남들 앞에 나서기 전 더욱 자기성찰에 힘써 신앙의 眼目과 矜恤의 폭을 넓히라.
    세상 그리 만만하지 않음을 깨닫고 嚴威 앞에서 자중들 하시라...

  • 2020-10-25 08:06
    공감하며 적극 지지합니다.
    개소리를 해도 기차는 달리고 달려야 합니다.
    개소리들에 개의치 마십시오.

  • 2020-10-25 10:24
    위 내용 중에서 "교회 밖에 구원 없다는 교회의 배타적 주장이 참으로 허망하고 공허할 수밖에 없다."라고 한다면 만신들, 잡신들에게 예배하고 자기수양으로 구원이 있다는 말인가? 위 주장들 가운데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게 거의 없고 인간의 철학적/정치적 구호들이 만개했다. '개신교 죄책 고백과 희망 선포의 날 선언서' 표제에서 또 작당하는 몇몇이 모여서 개신교를 대표한다고 사칭하면 곤란하다. 또 철학/종교다원주의/사회운동 모임이라고 해야한다.

    정의를 입으로 말한다고 그 사람이 반드시 정의롭지는 않다. 많은 경우 개차반으로 사는 사람도 입은 정의를 말한다. 다만, 정의를 실천하지 않을 뿐.....

  • 2020-10-25 13:32
    허참

  • 2020-10-25 15:44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바벨탑’을 보는 것 같다.
    이들의 주장을 보며, ‘2020 다시 희망’이 아니라, ‘2020 다시절망’을 느끼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마치 북한에서 뿌리는 삐라 같은 느낌?

  • 2020-10-25 18:50
    개소리를해도 기차는 달려야 한다?
    Accelerationism?
    20세기의 사상이 아직도 한국에서 유효하다고 생각하는가?

  • 2020-10-25 19:41
    정말 누가 개소린지, 누가 기차인지 알고 싶다.
    혹 기차 옆에서 개가 달린다고 하는 소리 아닌지?

  • 2020-10-25 22:19
    희망을 제시해도 절망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니 절망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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