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편의 시

2025-05-09 00:41 이경남 3035
다섯 편의 시

모친

모친의 연세는 97
아직 정신은 맑으시지만
이제는 마음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
지난 겨울 낙상으로
대퇴 골절상을 입으시더니
이번에는 척추에 금이 갔단다
반년 가까이 누워계신 모친을
말없이 수발 드는
형제들의 마음이 참 귀하다
그러나 이제는 준비를 해야 한다
영원한 이별의 순간이
우리들에게도 찾아 오고 있다

은퇴

은퇴 후
무엇을 하며 살 거냐고 묻는다
글쎄
산속에 들어가
아궁이에 군불 지피며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이
내 로망이라오

탈진

요즘들어 부친 묘지 숲을 찾는 일이
부쩍 잦아 졌다
새벽에도 가고
아침 먹고 가고
한 밤중에도 가고
하루 세 번을 가는 날도 있다
내 마음이 무척 지쳐 있는 모양이다

과수원

부친 묘지 숲에
사과 나무 여섯 주를 심었다
2-3년 후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면
우리 형제 여섯 가정에
하나 씩
돌릴 생각이다
부친의 묘지 숲이 내게는
꽃이 있고
잔디밭이 있고
산새들의 노래 소리가 있는
정원이었는데
이제는 과수원도 된 셈이다

쿠우쿠우

쿠우쿠우에서 밥을 먹는다
음식도 맛이 있고
인테리어도 멋이 있고
줄을 서서 기다릴 만큼
손님들도 북적인다
지인의 초대로
황제처럼 호사스런 식사를 하며
나는 묻는다
아니 일식삼찬이면 족한 식사를
우리들은 왜
수백 가지 반찬을 펼쳐 놓고 먹고 있는가?
나는 8000원 짜리
안성 국밥을 먹을 때
맘도 편하고
속도 편하더라

2025.5.8.어버이날에 부친 묘지 숲에서 쉬며 쓴 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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