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죽음을 먹고 산다
작성자
안영수
작성일
2025-02-10 17:34
조회
85
누군가의 죽음을 먹고 산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2011년 4월 1부
00000
목사 까불 때부터 내 알아봐서 재운 사람이 깨워
사랑은 소비입니다. 내가 소비하는 곳에 웃음과 행복이 만들어 집니다
행복 주머니입니다. 정태선 장로
에덴동산 ->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풍요로운 곳 -> 죄악으로 인해 -> 쫒겨나다
죽음이 있고 싸움이 있는 곳에서 살게 됩니다.
약육강식의 시대 -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먹힌다는 뜻으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희생시켜서 번영하거나,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끝내는 멸망됨을 이르는 말.
이사야 11장
이라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어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RP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아기 독사의 구명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즉 이런 세상이 될수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가득한 곳에서 즉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한 곳에서 즉 하나님의 통치가 가득한 곳에서 이렇게 해함도 상함도 없는 세상이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죄악으로 물들었고 욕심과 욕망의 싸움속에서 살아가는 총성 없는 전쟁터와 같은 곳입니다.
동물의 세계를 봅니다
이곳에서는 누군가는 죽고 그리고 누군가는 그 죽음을 기뻐하며 먹습니다
그리고 이 동물 또한 어디 가서 죽고 그리고 그 죽음을 보고 기뻐하며 먹는 또 다른 동물이 있다는 겁니다.
어찌보면 동물들의 세계는 누군가의 죽음을 먹고 산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동물세계를 유지하는 원천이 된다고 말씀을 들여도 과언은 아닐듯 싶습니다.
풀을 먹고사는 토끼 그리고 그 토끼를 먹고사는 늑대, 늑대를 잡아먹는 독수리 그리고 그 독수리는 다시 죽어 썪어 풀의 양분을 공급하여 줍니다
생명은 죽음을 전제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의 생명이 있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죽음이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생명은 죽음을 먹고
자랍니다. "언제 죽음을 먹었는가?" 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먹고 있는 밥만 보아도 그것은 명확합니다. 밥은 쌀의 죽음이 있지 않으면
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먹고 있는 모든 음식은 쌀이든,풀이든,물고기이든,
과일이든 간에 그 무엇인가의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그리고 이 죽음은 사실 죽음이
아니라 희생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 누가 먹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신 '생명의 빵' 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빵에는 예수님의 희생이라는 죽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의 죽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 누군가의 희생으로 생명을 얻고
있다면,우리 자신의 희생으로 그 누군가가 생명을 얻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빵' 은 단순히 예수님에게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면에서 우리 모두는 '생명의 빵' 이자. '생명의 빵' 의 재료입니다
가을단풍
살기 위해 살아 있는 것을 죽여 먹는 것이 바로 밥이니,
밥벌이가 치열할 수 밖에 없다.
죽음을 먹고 삶이 이어지는 것이니 대충 살 수는 없다.
그래서 힘껏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구본형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우린 예수님의 죽음을 먹고 구원 받았다
예수님은 우리의 밥이되어 주셨다 예쑤님은 우리이 음료가 되어 주셨다
자신의 살과 피를 죽음으로 우리에게 먹이셨고 우린 그 죽음을 먹고 보혈을 지나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갈 수 있는 영광을 얻은 것이다.
본문이 씨앗도 몸이 죽지 않으면 눈에 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하기 때무에 살지 못한다
즉 씨앗은 몸의 죽음을 먹고 살아간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인것 같다
내가 죽으며 내 죽음을 복 기뻐하며 은혜 받으며 신앙의 성을 이끌어 낸다
내가 죽어 낮아지는 모습을 볼 때 내가 죽어 남을 섬기는 모습을 볼 때
내가 죽어 말없이 십자가 지는 모습을 볼 때 내가 죽어 기쁨으로 고난을 감당하는 모습을 볼 때 내 죽음을 보고 은혜를 받아 신앙이 성숙해 지는 축복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죽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다 내가 죽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은혜의 양식을 얻지 못한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
우린 누군가의 죽음을 먹고 살아간다
먹이 감이 많은 곳에 물고기 떼들이 몰려들고 , 토끼들이 번성하고 독수리 들이 몰려든다 먹이감이 없는 곳엔 생명체가 살 수 없고 그 수가 점점 줄어든다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로 살아 가는 우리들이 은혜가 줄어들면 그 교회는 점점 사람이 줄어들지만
은혜가 넘쳐나면 하니님의 찬양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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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까불 때부터 내 알아봐서 재운 사람이 깨워
사랑은 소비입니다. 내가 소비하는 곳에 웃음과 행복이 만들어 집니다
행복 주머니입니다. 정태선 장로
에덴동산 ->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풍요로운 곳 -> 죄악으로 인해 -> 쫒겨나다
죽음이 있고 싸움이 있는 곳에서 살게 됩니다.
약육강식의 시대 -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먹힌다는 뜻으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희생시켜서 번영하거나,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끝내는 멸망됨을 이르는 말.
이사야 11장
이라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어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RP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아기 독사의 구명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즉 이런 세상이 될수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가득한 곳에서 즉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한 곳에서 즉 하나님의 통치가 가득한 곳에서 이렇게 해함도 상함도 없는 세상이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죄악으로 물들었고 욕심과 욕망의 싸움속에서 살아가는 총성 없는 전쟁터와 같은 곳입니다.
동물의 세계를 봅니다
이곳에서는 누군가는 죽고 그리고 누군가는 그 죽음을 기뻐하며 먹습니다
그리고 이 동물 또한 어디 가서 죽고 그리고 그 죽음을 보고 기뻐하며 먹는 또 다른 동물이 있다는 겁니다.
어찌보면 동물들의 세계는 누군가의 죽음을 먹고 산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동물세계를 유지하는 원천이 된다고 말씀을 들여도 과언은 아닐듯 싶습니다.
풀을 먹고사는 토끼 그리고 그 토끼를 먹고사는 늑대, 늑대를 잡아먹는 독수리 그리고 그 독수리는 다시 죽어 썪어 풀의 양분을 공급하여 줍니다
생명은 죽음을 전제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의 생명이 있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죽음이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생명은 죽음을 먹고
자랍니다. "언제 죽음을 먹었는가?" 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먹고 있는 밥만 보아도 그것은 명확합니다. 밥은 쌀의 죽음이 있지 않으면
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먹고 있는 모든 음식은 쌀이든,풀이든,물고기이든,
과일이든 간에 그 무엇인가의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그리고 이 죽음은 사실 죽음이
아니라 희생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 누가 먹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신 '생명의 빵' 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빵에는 예수님의 희생이라는 죽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의 죽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 누군가의 희생으로 생명을 얻고
있다면,우리 자신의 희생으로 그 누군가가 생명을 얻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빵' 은 단순히 예수님에게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면에서 우리 모두는 '생명의 빵' 이자. '생명의 빵' 의 재료입니다
가을단풍
살기 위해 살아 있는 것을 죽여 먹는 것이 바로 밥이니,
밥벌이가 치열할 수 밖에 없다.
죽음을 먹고 삶이 이어지는 것이니 대충 살 수는 없다.
그래서 힘껏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구본형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우린 예수님의 죽음을 먹고 구원 받았다
예수님은 우리의 밥이되어 주셨다 예쑤님은 우리이 음료가 되어 주셨다
자신의 살과 피를 죽음으로 우리에게 먹이셨고 우린 그 죽음을 먹고 보혈을 지나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갈 수 있는 영광을 얻은 것이다.
본문이 씨앗도 몸이 죽지 않으면 눈에 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하기 때무에 살지 못한다
즉 씨앗은 몸의 죽음을 먹고 살아간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인것 같다
내가 죽으며 내 죽음을 복 기뻐하며 은혜 받으며 신앙의 성을 이끌어 낸다
내가 죽어 낮아지는 모습을 볼 때 내가 죽어 남을 섬기는 모습을 볼 때
내가 죽어 말없이 십자가 지는 모습을 볼 때 내가 죽어 기쁨으로 고난을 감당하는 모습을 볼 때 내 죽음을 보고 은혜를 받아 신앙이 성숙해 지는 축복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죽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다 내가 죽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은혜의 양식을 얻지 못한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
우린 누군가의 죽음을 먹고 살아간다
먹이 감이 많은 곳에 물고기 떼들이 몰려들고 , 토끼들이 번성하고 독수리 들이 몰려든다 먹이감이 없는 곳엔 생명체가 살 수 없고 그 수가 점점 줄어든다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로 살아 가는 우리들이 은혜가 줄어들면 그 교회는 점점 사람이 줄어들지만
은혜가 넘쳐나면 하니님의 찬양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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