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

작성자
안영수
작성일
2025-02-03 17:38
조회
129
관중 2011년 6월 3주 마 27: 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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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 -> 뭔가를 보여 주겠습니다. 많은 국민들을 울고 웃기고 하여서
사랑을 많이 받은 것을 기억합니다.
백향교회 목사님 호주 오케스트라 공연 티켓을 주셔서 관람 -> 웅장-> 많은 박수
반짝 가수 -> 자기를 향하여 환호는 많은 군중들의 함성,열광을 잊지 못한다.
연극을 합니다 무대 . 배우 .관중이 있으면 연극을 할 수 있습니다.
연극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무대에 선다는 것은 어쩌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군중들에게 관중들에게 인정을 받고 박수를 받기 위한 몸부림 일 것입니다
많은 군중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박수를 받기 못하면 그 연극은 오래 가지 못하고
금방 막을 내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군중들은 -> 무섭다 : 냉철한 판단 돌을 던진다 판단자 이다
열 광 : 박수를 보낸다 사랑을 준다
예) 전경생활 - 사직운동장에서 야구경기 출동 ->롯데가 지면 관중들이 야단범석
그래서 무대에 선다는 것은 이 군중을 어떻게 감동시키느냐에 따라서 성공하기도 하고 성공을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인생은 무대에서 연극하는 것과 마찬가지 인것 같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인정을 받고 그들을 감동을 시키면
내 삶에 큰 유익이 오고 감동이 오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도 그렇고 장사를 하는 사람도 그렇고 연애인도 그렇고 직장인도 그렇고
모든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고 인정을 받기 위하여 몸부림 치는 있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중을 의식하면서 관중에 박수 받기 위하여 무대에 서 있는 배우처럼 긴장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에게 박수 받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관중은 바로 사람입니다. 나를 바라보고 나를 평가하는 자들이 바로 관중,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물로 받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 것을 바로보는 사람도 없었고 박수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함은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신앙은 사람들에게 박수 받기 위한 노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박수를 받기 위한 우리의 열망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중이 사람이라면 믿음의 사람들의 관중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관중 즉 사람에게 박수 받기 위하여 일하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우리의 관중이 하나님께 박수 받기 위하여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사울왕을 바라봅니다
사울왕은 사람에게 박수 받는데 욕망이 있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ㅛ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오자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다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요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다 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즉 사울왕은 이스랑엘 백성들이 다윗을 더 칭찬하고 다윗에게 더 박수를 보내기에
화가 나고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죽이기 위하여 혈안이 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오순절 뜨거운 성령을 체험하고서 거리로 나아가 말씀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종교지도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협박을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그 때에 베드로와 요한이 이런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즉 베드로와 요한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람에게 박수 받기위하여 사람의 비유을 맞추고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께 사랑받기 위한 것이 그들의 목적임을 기억합니다.

사도바울도 갈라디아1장에서 이런 말씀을 합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라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사도바울은 많은 사람들을 관중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박수를 보내주는 그런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함이 아니였습니다
사도바울의 관중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이십니다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하나님에게 잘 했다고 박수를 받기 위함이 사도바울의 신앙의 목표였던 것입니다.

인터넷 강이를 하던 목사님의 경험담입니다
청중도 한 명 없는 상황에서 너무 더웠지만 소음 문제로 에어컨도 틀지 않고 녹화했습니다
너무 더워서 나중에는 카메라 기사도 가메라만 작동시켜 놓은 채 슬그머니 나가 버렸습니다
카레라 앞에 혼자 가의를 하면서 마음속으로 갈등을 느꼈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혼자 강의를 하면서마음 속으로 갈들을 느겼습니다. 이번 회만 녹화하고 그만 두자 듣는 사람도 아무도 없이 이 더운 공간에서 내가 무슨 꼴인가?
그런데 마음 속에 음성이 들렸왔습니다. “정말 청중이 없느냐” 없는데요 “나는 네게 보이는데 네 눈에는 내가 안보이느냐”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 음성을 들은 뒤 제가 나머지 강의를 열과 성을 다해 녹화에 임하였다고 합니다ㅛ
언제나 비중있는 청중이신 하나님이 우리 앞에 계씹니다. 지금 우리는 그 분 앞에서 살고 있습니다. 칼빈은 이것을 코람데오라고 표현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님을 바라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바보처럼 한마디 저항도 못하고 변명도 못하고 십자가에 쓰러진 주님,, 아무도 이런 주님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주님에게 환호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관중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이셨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그 분께 박수 받기 위해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 사람들을 향하여 나에게 박수를 보내달라고 하지 않습니다ㅛ
나에게 함성을 치러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관중은 주님을 보고 있면서 박수쳐주고 함성을 질러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관중은 하나님 이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사람을 관중 삼아서 사람에게 박수 받고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고 사람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믿음은 바로 하나님을 관중으로 모셔 놓고 그 하나님께 인정 받고 박수를 받고 사람 받기 위함입니다.

저나 성도님들이나 사람을 관중삼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관중으로 모시고 그 하나님께 인정받는 신앙의 여정이 되시고 우리의 관중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하나님의 주시는 최고의 인생을 살아가는 축복이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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