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의 면모.
작성자
김길용
작성일
2025-01-22 16:42
조회
206
열왕기상 1장 1절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 한지라
즉 이 말씀은 다윗왕의 시대가 곧 끝나간다 란 뜻이 되기도 하는 것 이겠지요.
다윗은 총 19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헤브론에서 7년 여 동안 6명 의 아들을 두었고 후에 예루살렘으로 옮겨서 13명을 더 낳았으니 참 많은 자식을 거느렸지요
다윗왕 40년 통치 시대가 끝나고 후임 왕이 들어서야 할 절대적 중요한 시기에 장자 승계의 명분이 불분명한 상태가 되었고 더더 군다나 적통승계가 무너지다 보니 혼란이 있었던 것 아닌가란 추론을 해봅니다.
다윗의 첫째 아들 암논은 다말 사건을 이르켜 압살롬 에게 살해 되고 둘째인 길르압 은 다윗의 족보 외에는 성경 어느 곳에도 기록되지 않아서 어떤 이유인지 는 필자가 모르니 그냥 넘어가고.
셋째 압살롬 은 아버지 다윗을 향해 반란을 일으키고 도망 가다가 그가 자랑하는 아름다운 머릿칼이 나뭇 가지에 걸리는 바람에 요압장군 에게 잡혀 죽임을 당했고 순서 대로라면 아도니아 그 다음은 솔로몬 인데 아도니아 와 이복 동생인 솔로몬이 함께 나서다 보니 그래서 많은 혼란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 집니다.
아도니아 와 솔로몬이 경쟁적 왕위 계승 경쟁에 아도니아 곁에는 군대장관 요압과 대 제사장 아비아달이 함께하였고.
솔로몬 곁에는 군 사령관 브나야 와 대 제사장 사독이 함께하여 나름대로 즉위식 을 할때에 솔로몬에게는 하나님 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 즉 왕을 세우는 일에 기름 부음 사역 을 담당할 나단이 함께 하므로 하나님 께서는 솔로몬 을 왕으로 세우실 결정을 이미 하셨기에 솔로몬이 다윗왕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일국 의 왕도 교회의 leader 들도 영적 질서를 바로 세우시기 위하여 친히 하나님 께서 세우신다 라고 보는 것입니다.
다윗은 왕상 2장 1~9절 말씀으 로 솔로몬 에게 유언을 합니다 특히 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던지 어디로 가던지 형통할 지라 이렇게 유언적 말을 남깁니다.
이 말씀은 국가나 교회든 간에 leader 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뜻이 깊이 담긴 말씀 이기에 leader 로 세움을 받은 사역자들 은 목회자나 교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leader 들은 하나님이 세워주신 그 뜻을 절대적 으로 잊어서는 안되며 솔로몬 이 갔던길을 가서는 안된다는 말씀도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필자가 피력하고자 하는 말의 서론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각 부서별로 leader 들을 세워서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명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특별히 목사라는 직함을 가진 분을 영적 leader 로 세우셔서 교인된 지체들을 성도로 바꿔가는 과정을 거쳐 가면서 서로 통용과 교제함으로 교회를 이 세상의 천국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세워진 교회들이 과연 천국일까요 그렇지가 않지요.
왜? 그럴까요.
솔로몬 이 하나님 께 일천번제 를 드리던 겸손함을 저버리고 아버지 유언대로 살지 않고 교만한생활을 하다보니 그의 말로의 결국은 헛되고 헛 되었다는 탄식을 하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필자와 대부분 의 성도들은 한 교회에서 은퇴하실 때까지 목회 여정을 마치시는 목사님을 존경하고 성자라 칭하기도 합니다.
한 교회에서 목회 여정을 마치실 때까지 별 문제들이 없었을까요 아니지요 많은 문제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그때 지혜롭고 슬기롭게 대처하며 서로 상처를 감싸주고 또 감싸준 결과 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대부분 평신도 들은 새로 부임해 오시는 목사님은 3년을 넘겨봐야 알 수 있다는 불문이 아닌 수식어를 곧장 쓰곤 하지요.
이 모두가 세우신 분의 뜻이 무엇이었던 가를 잊어버리고 솔로몬 처럼 교만해져서 내가 복음이되고 네가 복음이 되다 보니까 분쟁도 생기고 뜻하지 않는 분열이 생겨 서로 아픈 상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인격의 보고체요 공동체인데 leader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해서 설교를 빙자하여 자기 마음을 성도들 에게 심으려 하는 것은 고통의 시작이요 분열의 시한 폭탄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거룩성을 잊어 버리면 무엇이 될까요 교회 자체가 괴물로 변하는 것입니다.
특히 강단 에서는 언행 심사도 조심 해야 하고 성례는 정말로 신중에 신중을 기울여 성례 예식을 치뤄야 함은 물론 이거니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고 생각한다면 경솔하게 집례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설교 시간에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과 경청하는 성도들간에 무언의 약속처럼 되어있는 서로 간의 교감은 소히 은혜가 넘치면 자동으로 성도들 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 아멘 일 것입니다. 즉 아멘이 교회당 에서 우렁차게 나온다는 것은 바로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서로 소통이 되고 교감이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 겠지요.
억지로 아멘을 강조 한다면 결국은 서로가 기분 상하는 오점만 남을 뿐입니다.
이제 한국 교회가 갈수록 오점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교회가 비대해져서 발생하는 문제점 들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편안함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추세가 바로 교회를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시절에 왜 출애굽 일세대가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 못했을까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획하심 에 따라 모세라는 leader 를 앞세우시고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며 바로의 완악한 마음을 돌이키게 하사 백성들을 출애굽 시킨 사실을 목도하였고 다 경험한 1세대들 인데 왜 그들은 다 한결 같이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한 슬픈 역사를 만들고 말았을까요 그것도 하나님께서 직접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는 모습을 체험한 출애굽 1세대들 이 말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까지는 하나님 은혜 감사해서 방방 뛰던 자들도 오늘은 모든 걸 잊어버리고 언제 은혜 받았던가? 라는 ? 표를 남긴 채 방황하는 이들이 우리들 곁엔 늘 있어왔습니다.
그래서 수없이 강조하는 것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라고 살전 5장 16~18절에서 강조한 바울의 절규가 아니었던가 싶으며 그래서 성도들은 끊임없이 leader 가 귀가 따갑도 록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말도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 처럼 살면 굳이 전도를 안해도 예수 닮아가는 삶을 살다 보면 주변 사람들이 교회에 따라 나올 것이란 생각은 망상에 불과 합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해주니까 달다 쓰다란 평가를 할지언정 ‘그래 맛있는 음식을 해주셨으니 난 당신을 따라 가겠습니다’ 라고 나서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말도 되지요.
그래서 전도는 끊임없이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수십년 예수 믿었으니 여러분 에게 굳이 전도 하라고 강조할 이유가 무었입니까 라고 한다면 그 말에 동의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교회 에서는 똑같은 성경 66권의 말씀 가지고 전하며 가르치는 leader 들이 말씀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게 각양각색으로 설교라는 수단으로 가르치고 있기에 교회가 든든히 서가는 것이며 아울러 leader들은 어느 시대 에나 말씀 중심으로 전도를 강조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 당연히 전도 해야 한다고 늘외친것이 아닐까요.
전도에 대한 설교가 부임이후 단 한번도 없었다는 의견이 나오면 얄팍한 성경 지식으로 란 단어를 구사하며 면박에 가까운 핀잔을 준다면 결코 목회에 도움되지 않으며 그것도 설교의 일환으로 하다보니 속된말로 목회자가 교만하게 보일수박에 없는것 아니겠습니까.
교회 의 영적 질서를 세우려면 leader 는 고도의 인내심이 요구 되며 즉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기도하고 인내하며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이 나를 세우신 그 뜻을 상고하며 무던히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교회 공동체는 생명력 을 잃지않 을 것이며 하나님이 세우신 뜻 을 따라 본이되는 삶을 살아야 하나님의 뜻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감리교 게시판에 올리게 된 동기는 감리교 장로로써 그 자리를 떠나 다른 교단으로 가셨던 분을 만나서 돌아오시라고 설득하면서 생각했던 부분과 연합모임에서 정보를 교환하다 보면 각양각색의 사연과 의견들이 분분해서 평소에 필자가 생각하고 있던 바를 피력한 것이오니 어느 특정 교회나 특정인의 사연이 아님을 분명하게 서필합니다.
즉 이 말씀은 다윗왕의 시대가 곧 끝나간다 란 뜻이 되기도 하는 것 이겠지요.
다윗은 총 19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헤브론에서 7년 여 동안 6명 의 아들을 두었고 후에 예루살렘으로 옮겨서 13명을 더 낳았으니 참 많은 자식을 거느렸지요
다윗왕 40년 통치 시대가 끝나고 후임 왕이 들어서야 할 절대적 중요한 시기에 장자 승계의 명분이 불분명한 상태가 되었고 더더 군다나 적통승계가 무너지다 보니 혼란이 있었던 것 아닌가란 추론을 해봅니다.
다윗의 첫째 아들 암논은 다말 사건을 이르켜 압살롬 에게 살해 되고 둘째인 길르압 은 다윗의 족보 외에는 성경 어느 곳에도 기록되지 않아서 어떤 이유인지 는 필자가 모르니 그냥 넘어가고.
셋째 압살롬 은 아버지 다윗을 향해 반란을 일으키고 도망 가다가 그가 자랑하는 아름다운 머릿칼이 나뭇 가지에 걸리는 바람에 요압장군 에게 잡혀 죽임을 당했고 순서 대로라면 아도니아 그 다음은 솔로몬 인데 아도니아 와 이복 동생인 솔로몬이 함께 나서다 보니 그래서 많은 혼란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 집니다.
아도니아 와 솔로몬이 경쟁적 왕위 계승 경쟁에 아도니아 곁에는 군대장관 요압과 대 제사장 아비아달이 함께하였고.
솔로몬 곁에는 군 사령관 브나야 와 대 제사장 사독이 함께하여 나름대로 즉위식 을 할때에 솔로몬에게는 하나님 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 즉 왕을 세우는 일에 기름 부음 사역 을 담당할 나단이 함께 하므로 하나님 께서는 솔로몬 을 왕으로 세우실 결정을 이미 하셨기에 솔로몬이 다윗왕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일국 의 왕도 교회의 leader 들도 영적 질서를 바로 세우시기 위하여 친히 하나님 께서 세우신다 라고 보는 것입니다.
다윗은 왕상 2장 1~9절 말씀으 로 솔로몬 에게 유언을 합니다 특히 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던지 어디로 가던지 형통할 지라 이렇게 유언적 말을 남깁니다.
이 말씀은 국가나 교회든 간에 leader 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뜻이 깊이 담긴 말씀 이기에 leader 로 세움을 받은 사역자들 은 목회자나 교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leader 들은 하나님이 세워주신 그 뜻을 절대적 으로 잊어서는 안되며 솔로몬 이 갔던길을 가서는 안된다는 말씀도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필자가 피력하고자 하는 말의 서론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각 부서별로 leader 들을 세워서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명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특별히 목사라는 직함을 가진 분을 영적 leader 로 세우셔서 교인된 지체들을 성도로 바꿔가는 과정을 거쳐 가면서 서로 통용과 교제함으로 교회를 이 세상의 천국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세워진 교회들이 과연 천국일까요 그렇지가 않지요.
왜? 그럴까요.
솔로몬 이 하나님 께 일천번제 를 드리던 겸손함을 저버리고 아버지 유언대로 살지 않고 교만한생활을 하다보니 그의 말로의 결국은 헛되고 헛 되었다는 탄식을 하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필자와 대부분 의 성도들은 한 교회에서 은퇴하실 때까지 목회 여정을 마치시는 목사님을 존경하고 성자라 칭하기도 합니다.
한 교회에서 목회 여정을 마치실 때까지 별 문제들이 없었을까요 아니지요 많은 문제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그때 지혜롭고 슬기롭게 대처하며 서로 상처를 감싸주고 또 감싸준 결과 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대부분 평신도 들은 새로 부임해 오시는 목사님은 3년을 넘겨봐야 알 수 있다는 불문이 아닌 수식어를 곧장 쓰곤 하지요.
이 모두가 세우신 분의 뜻이 무엇이었던 가를 잊어버리고 솔로몬 처럼 교만해져서 내가 복음이되고 네가 복음이 되다 보니까 분쟁도 생기고 뜻하지 않는 분열이 생겨 서로 아픈 상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인격의 보고체요 공동체인데 leader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해서 설교를 빙자하여 자기 마음을 성도들 에게 심으려 하는 것은 고통의 시작이요 분열의 시한 폭탄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거룩성을 잊어 버리면 무엇이 될까요 교회 자체가 괴물로 변하는 것입니다.
특히 강단 에서는 언행 심사도 조심 해야 하고 성례는 정말로 신중에 신중을 기울여 성례 예식을 치뤄야 함은 물론 이거니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고 생각한다면 경솔하게 집례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설교 시간에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과 경청하는 성도들간에 무언의 약속처럼 되어있는 서로 간의 교감은 소히 은혜가 넘치면 자동으로 성도들 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 아멘 일 것입니다. 즉 아멘이 교회당 에서 우렁차게 나온다는 것은 바로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서로 소통이 되고 교감이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 겠지요.
억지로 아멘을 강조 한다면 결국은 서로가 기분 상하는 오점만 남을 뿐입니다.
이제 한국 교회가 갈수록 오점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교회가 비대해져서 발생하는 문제점 들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편안함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추세가 바로 교회를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시절에 왜 출애굽 일세대가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 못했을까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획하심 에 따라 모세라는 leader 를 앞세우시고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며 바로의 완악한 마음을 돌이키게 하사 백성들을 출애굽 시킨 사실을 목도하였고 다 경험한 1세대들 인데 왜 그들은 다 한결 같이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한 슬픈 역사를 만들고 말았을까요 그것도 하나님께서 직접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는 모습을 체험한 출애굽 1세대들 이 말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까지는 하나님 은혜 감사해서 방방 뛰던 자들도 오늘은 모든 걸 잊어버리고 언제 은혜 받았던가? 라는 ? 표를 남긴 채 방황하는 이들이 우리들 곁엔 늘 있어왔습니다.
그래서 수없이 강조하는 것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라고 살전 5장 16~18절에서 강조한 바울의 절규가 아니었던가 싶으며 그래서 성도들은 끊임없이 leader 가 귀가 따갑도 록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말도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 처럼 살면 굳이 전도를 안해도 예수 닮아가는 삶을 살다 보면 주변 사람들이 교회에 따라 나올 것이란 생각은 망상에 불과 합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해주니까 달다 쓰다란 평가를 할지언정 ‘그래 맛있는 음식을 해주셨으니 난 당신을 따라 가겠습니다’ 라고 나서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말도 되지요.
그래서 전도는 끊임없이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수십년 예수 믿었으니 여러분 에게 굳이 전도 하라고 강조할 이유가 무었입니까 라고 한다면 그 말에 동의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교회 에서는 똑같은 성경 66권의 말씀 가지고 전하며 가르치는 leader 들이 말씀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게 각양각색으로 설교라는 수단으로 가르치고 있기에 교회가 든든히 서가는 것이며 아울러 leader들은 어느 시대 에나 말씀 중심으로 전도를 강조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 당연히 전도 해야 한다고 늘외친것이 아닐까요.
전도에 대한 설교가 부임이후 단 한번도 없었다는 의견이 나오면 얄팍한 성경 지식으로 란 단어를 구사하며 면박에 가까운 핀잔을 준다면 결코 목회에 도움되지 않으며 그것도 설교의 일환으로 하다보니 속된말로 목회자가 교만하게 보일수박에 없는것 아니겠습니까.
교회 의 영적 질서를 세우려면 leader 는 고도의 인내심이 요구 되며 즉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기도하고 인내하며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이 나를 세우신 그 뜻을 상고하며 무던히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교회 공동체는 생명력 을 잃지않 을 것이며 하나님이 세우신 뜻 을 따라 본이되는 삶을 살아야 하나님의 뜻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감리교 게시판에 올리게 된 동기는 감리교 장로로써 그 자리를 떠나 다른 교단으로 가셨던 분을 만나서 돌아오시라고 설득하면서 생각했던 부분과 연합모임에서 정보를 교환하다 보면 각양각색의 사연과 의견들이 분분해서 평소에 필자가 생각하고 있던 바를 피력한 것이오니 어느 특정 교회나 특정인의 사연이 아님을 분명하게 서필합니다.
좋은글이라 정독했습니다.
좋은 리더는 세워지는 것이 아닌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통해 예수를 증거하는 목회자들을 본지 언제인지...
예수를 향한 이정표임을 인정하고, 정확하고 올바른 방향을 가르키는지
스스로 돌아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윤선생님 감사 합니다.
직함을 제가 모르기에 편의상 윤선생님
으로 호칭하오니 양해 부탁 드립니다.
저의 졸필을 좋은글 이라고 평가해 주심에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 기도
드리겠습니다.
ㅎㅎㅎ 잘 쓰신, 좋은 글에요..
이 글을 통해서, 원로장로님이 이런 생각을 가지신 분이구나.. 이렇게 느꼈습니다..
이현석 목사님 강령 하십니까.
관심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