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리는 내 고향
Author
함창석
Date
2024-11-13 12:25
Views
237
가천리는 내 고향
함창석
내 고향 가천리는 540여 년 넘게 선조들이 살아온 원주시 횡성군 영월군 경계 지역이다. 현재는 횡성군 안흥면 가천리이다. 우리 선조 중에는 원주 목에서 벼슬을 많이 하였다. 영월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영월에서 태어났다. 나는 가천리 안 터에서 태어났다. 7살까지 살았다. 아버지가 가정 사정으로 고향에 머물 때는 들리기도 하였다. 조상들 묘소가 고향에는 17세손(1480년경)부터 30세손(2020년경)까지 내려오고 있다.
2000여 년 전경 진한의 마지막 왕 태기가 박혁거세 군대에 쫓겨와 머물렀다는 설화가 있고 청동검, 청동거울도 출토되었다. 주천강, 섬강을 따라 가까운 곳에는 태기산성 터와 태기와 얽힌 어답사느 갑천, 병지방, 신대 등 지명들이 많이 남아 았다. 가까운 곳에는 태종대(이방원 조선 3대 임금)가 있고 스승 운곡 원천석 각림사도 전해오고 있다. 강원 관찰사 정철 시비 가천 8경도 있다. 치악산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목 삼형제바위가 유명하다.
현대 고향이라고 하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출생 장소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이다. 출생지는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도 이쪽에 속한다. 고향의 기준으로 출생지를 중시하는 입장 중에서도 물리적인 출생지를 극단적으로 중시하는 입장과 출생지에서의 성장기간을 어느 정도 고려하는 입장으로 갈린다. 출생 등록지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이다. 성장기 연고지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이다. 현재 제일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기준이다. 주로 초중고 재학 당시 거주지나 학교 소재지이다. 부계 선대의 고향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이다. 어떤 경우든지 본인의 인생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야 고향으로 간주 되며, 그외에는 연관 지역 또는 연고 지역 정도의 개념이다.
고향은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곳 또는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장소이다. 고향을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복합개념이라고 할 때 시간은 구체적인 증거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공간인 고향집 · 고향 마을 · 고향 산천이 거론되고, 인간으로는 살아 있는 그곳의 고향 사람과 그곳에 묻힌 죽은 조상, 그리고 객지에 나와 있는 고향 사람들이 제시된다. 고향은 나의 과거가 있는 곳이며, 정이 든 곳이며, 일정한 형태로 내게 형성된 하나의 세계이다. 고향은 공간이며 시간이며 마음이라는 세 요소가 불가분의 관계로 굳어진 복합된 심성이다. 공간, 시간, 마음 중에서 비중이나 우열을 논할 수는 없다. 살았던 장소와 오래 살았다는 긴 시간과 잊혀지지 않는 정을 분리시킬 수가 없다. 따라서, 고향은 구체적으로 객관적으로 어느 고을 어떤 지점을 제시할 수도 있고, 언제부터 어느 때까지 살았다는 시간을 제시할 수 있으면서도,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각인각색으로 모습을 달리할 수 있다.
"테라는 아들 아브람과, 아들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라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칼데아의 우르를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하란에 이르러 그곳에 자리 잡고 살았다. 테라는 이백오 년을 살고 하란에서 죽었다"(창 11:31-32).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은 노아의 10대손으로, 노아의 맏아들 셈의 후손이라고 나와 있다. 창세기는 또 아브라함의 고향을 수메르의 도시국가인 칼데아의 우르라고 가르쳐준다.
1937년 생인 송익섭 옹이 별세하여 장례식이 있었다. 오랫동안 고향을 지켜오며 마을 이장 일을 하셨다. 비록 작은 동네이지만 역사가 있는 동네이었다. 자손들이 많이 번성하였다. 함씨와 송씨는 혼맥으로 이어진 관계이다. 우씨도 있는데 마찬가지이다. 선영 아래 화장을 하여 유골함을 묻고 그 위에 비석 판을 올려놓는 것이다. 솔향마을이라는 전원주택(80호)이 들어와 있고 토박이는 40호 정도이다. 현재 주민등록상으로 120여 호가 등록이 되어 있다고 이장이 전해주었다. 내 고향은 변함이 없는 가천리이다. 내 유골도 선영 아래 묻히기를 바란다.
소작인들의 품삯
함창석
50년대 전후 내 고향
골짜기마다 한 개반
사람들이 많이도 살았다
대다수 사람들은
소작이나 화전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고
동네 부잣집 토지를
소작하는 이들의 애환
가을 타작하는 날
안식구는 부엌으로
남정네는 타작마당으로
하루종일 중노동하고
강냉이 댓되 품삯이라고
식구들이 하루 세 끼를
모두 먹었다고는 하지만
소작 토지를 얻으려면
읍소를 해야만 하였다고
장례식 치산 중인데
이장이 전하는 말
그 시대 추억담이다
산업화가 진행이 되며
안산 신도시로 이주하니
마을 주민은 줄고
지금은 임대도 어려우니
거저 경작하라 해도
묵는 토지가 지천이라고
세월의 변화를 말하니
내 고향 자화상이다
본향(本鄕, homeland)
함창석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 11:15,16)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잠깐 지나가는 순례자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나그네, 행인(벧전 2:11,17), 또는 외국인(히 11:13)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본향은 저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20)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육신이 태어난 곳이 제1의 고향이라면 죽음 이후에 우리가 가서 영원히 살아야 할 제2의 고향은 우리 주님이 계신 저 천국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영원히 살 사람들인 양 착각하고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승부를 보려고 하고, 가질 것 다 가지고, 즐길 것 다 즐기고, 누릴 것 다 누리고 영원히 살려고 하는 태도로 사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집이 있는 본향으로 돌아가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이 세상이나 세계가 다 사라질 존재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장차 무너질 것이고 사라질 것입니다. 보이는 세계는 잠깐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보고 있지 않은 세계가 영원한 것입니다(고후 4:18). 그러므로 사라질 것을 붙잡지 말고 영원한 것을 믿고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이 우리가 가서 거할 본향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을 사모하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육신이 태어나서 사는 세상이 이곳입니다. 육신이 속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으면 우리 영혼이 가서 살 나라는 천국입니다. 그 나라는 이곳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지나치게 이 세상을 사랑하거나 즐기면 안 됩니다(갈 5:24).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지 않습니다(요일 2:15,16). 너무 정주고 집착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보화를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마6:19).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롬 12:2).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고 살아야 합니다(빌 2:12).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면류관 쓰는 그날까지는 아직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끝난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의 상을 바라보며 푯대를 향하여 계속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빌 3:13).
함창석
내 고향 가천리는 540여 년 넘게 선조들이 살아온 원주시 횡성군 영월군 경계 지역이다. 현재는 횡성군 안흥면 가천리이다. 우리 선조 중에는 원주 목에서 벼슬을 많이 하였다. 영월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영월에서 태어났다. 나는 가천리 안 터에서 태어났다. 7살까지 살았다. 아버지가 가정 사정으로 고향에 머물 때는 들리기도 하였다. 조상들 묘소가 고향에는 17세손(1480년경)부터 30세손(2020년경)까지 내려오고 있다.
2000여 년 전경 진한의 마지막 왕 태기가 박혁거세 군대에 쫓겨와 머물렀다는 설화가 있고 청동검, 청동거울도 출토되었다. 주천강, 섬강을 따라 가까운 곳에는 태기산성 터와 태기와 얽힌 어답사느 갑천, 병지방, 신대 등 지명들이 많이 남아 았다. 가까운 곳에는 태종대(이방원 조선 3대 임금)가 있고 스승 운곡 원천석 각림사도 전해오고 있다. 강원 관찰사 정철 시비 가천 8경도 있다. 치악산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목 삼형제바위가 유명하다.
현대 고향이라고 하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출생 장소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이다. 출생지는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도 이쪽에 속한다. 고향의 기준으로 출생지를 중시하는 입장 중에서도 물리적인 출생지를 극단적으로 중시하는 입장과 출생지에서의 성장기간을 어느 정도 고려하는 입장으로 갈린다. 출생 등록지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이다. 성장기 연고지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이다. 현재 제일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기준이다. 주로 초중고 재학 당시 거주지나 학교 소재지이다. 부계 선대의 고향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이다. 어떤 경우든지 본인의 인생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야 고향으로 간주 되며, 그외에는 연관 지역 또는 연고 지역 정도의 개념이다.
고향은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곳 또는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장소이다. 고향을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복합개념이라고 할 때 시간은 구체적인 증거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공간인 고향집 · 고향 마을 · 고향 산천이 거론되고, 인간으로는 살아 있는 그곳의 고향 사람과 그곳에 묻힌 죽은 조상, 그리고 객지에 나와 있는 고향 사람들이 제시된다. 고향은 나의 과거가 있는 곳이며, 정이 든 곳이며, 일정한 형태로 내게 형성된 하나의 세계이다. 고향은 공간이며 시간이며 마음이라는 세 요소가 불가분의 관계로 굳어진 복합된 심성이다. 공간, 시간, 마음 중에서 비중이나 우열을 논할 수는 없다. 살았던 장소와 오래 살았다는 긴 시간과 잊혀지지 않는 정을 분리시킬 수가 없다. 따라서, 고향은 구체적으로 객관적으로 어느 고을 어떤 지점을 제시할 수도 있고, 언제부터 어느 때까지 살았다는 시간을 제시할 수 있으면서도,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각인각색으로 모습을 달리할 수 있다.
"테라는 아들 아브람과, 아들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라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칼데아의 우르를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하란에 이르러 그곳에 자리 잡고 살았다. 테라는 이백오 년을 살고 하란에서 죽었다"(창 11:31-32).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은 노아의 10대손으로, 노아의 맏아들 셈의 후손이라고 나와 있다. 창세기는 또 아브라함의 고향을 수메르의 도시국가인 칼데아의 우르라고 가르쳐준다.
1937년 생인 송익섭 옹이 별세하여 장례식이 있었다. 오랫동안 고향을 지켜오며 마을 이장 일을 하셨다. 비록 작은 동네이지만 역사가 있는 동네이었다. 자손들이 많이 번성하였다. 함씨와 송씨는 혼맥으로 이어진 관계이다. 우씨도 있는데 마찬가지이다. 선영 아래 화장을 하여 유골함을 묻고 그 위에 비석 판을 올려놓는 것이다. 솔향마을이라는 전원주택(80호)이 들어와 있고 토박이는 40호 정도이다. 현재 주민등록상으로 120여 호가 등록이 되어 있다고 이장이 전해주었다. 내 고향은 변함이 없는 가천리이다. 내 유골도 선영 아래 묻히기를 바란다.
소작인들의 품삯
함창석
50년대 전후 내 고향
골짜기마다 한 개반
사람들이 많이도 살았다
대다수 사람들은
소작이나 화전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고
동네 부잣집 토지를
소작하는 이들의 애환
가을 타작하는 날
안식구는 부엌으로
남정네는 타작마당으로
하루종일 중노동하고
강냉이 댓되 품삯이라고
식구들이 하루 세 끼를
모두 먹었다고는 하지만
소작 토지를 얻으려면
읍소를 해야만 하였다고
장례식 치산 중인데
이장이 전하는 말
그 시대 추억담이다
산업화가 진행이 되며
안산 신도시로 이주하니
마을 주민은 줄고
지금은 임대도 어려우니
거저 경작하라 해도
묵는 토지가 지천이라고
세월의 변화를 말하니
내 고향 자화상이다
본향(本鄕, homeland)
함창석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 11:15,16)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잠깐 지나가는 순례자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나그네, 행인(벧전 2:11,17), 또는 외국인(히 11:13)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본향은 저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 3:20)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육신이 태어난 곳이 제1의 고향이라면 죽음 이후에 우리가 가서 영원히 살아야 할 제2의 고향은 우리 주님이 계신 저 천국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영원히 살 사람들인 양 착각하고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승부를 보려고 하고, 가질 것 다 가지고, 즐길 것 다 즐기고, 누릴 것 다 누리고 영원히 살려고 하는 태도로 사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집이 있는 본향으로 돌아가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이 세상이나 세계가 다 사라질 존재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장차 무너질 것이고 사라질 것입니다. 보이는 세계는 잠깐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보고 있지 않은 세계가 영원한 것입니다(고후 4:18). 그러므로 사라질 것을 붙잡지 말고 영원한 것을 믿고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이 우리가 가서 거할 본향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을 사모하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육신이 태어나서 사는 세상이 이곳입니다. 육신이 속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으면 우리 영혼이 가서 살 나라는 천국입니다. 그 나라는 이곳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지나치게 이 세상을 사랑하거나 즐기면 안 됩니다(갈 5:24).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지 않습니다(요일 2:15,16). 너무 정주고 집착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보화를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마6:19).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롬 12:2).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고 살아야 합니다(빌 2:12).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면류관 쓰는 그날까지는 아직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끝난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의 상을 바라보며 푯대를 향하여 계속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빌 3:13).
감기약보다 감사
함창석
감사는 약입니다
만병통치약입니다
약국 감기약보다
면역력을 높입니다
감기약보다 감사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눈으로 본 느낌을
자기가 귀로 들은 느낌을
자기가 코로 맡은 느낌을
자기가 혀로 맛본 느낌을
자기가 피부로 느낀 것을
하나님께 두 손으로
공손히 올리는 것입니다
감사는 찬양입니다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나 다시 돌아갈래
함창석
독방 넓이는 차등이니
아주 작은 것은 5㎡가량으로
넓은 것은 3배 정도라고
죄수 신분에 따라서 다르다고
노동을 하면 임금
1만 5천 원가량도 지급
최고는 20만 원도 가능하다나
국방의무 병사보다 많다고
교도소를 나온 이들 중
나 다시 돌아갈래
막 하소연하는 자들도 있다고
재범이 되는 이유 중 하나
고시원 닭장과 같은 것일까만
오늘날 복지사회라곤 하나
쪽방촌이 드러나 있으며
도시에는 반지하도 있고
무허가 옥탑방까지 있지요
주거 상황이 열악하여
비혼 비출산 점점 늘어나기로
인구절벽까지 감내하여야
이 소자는 그 시절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
자유의 몸이 된 것일까만
시대의 운명 속으로
다시 빠져들고 싶지 않지요
1960년대 청소년 시절
살던 다다미 다락방은
죄수 독방 크기 정도이었을까
산골서 태어나 도시 고모네
다락방 그것도 감지덕지라
곁들어 살아야만 하였던 것이
하늘나라 우리 방 꿈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