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2:35-37(설교: 다윗이 주라 한 그리스도)의 주석

Author
최세창
Date
2024-10-2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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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마 22:41-46, 눅 20:41-44)

불트만(R. Bultmann)은 이 전승은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팔레스틴 교회에서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둘러싼 논쟁에 답하기 위해 만들었거나, 혹은 헬레니즘 교회에서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이상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추측한다.① 테일러는 언어나 문체로 보아 팔레스틴적 전승에 기초한 것이며, 헬레니즘 교단에서 유래됐을 가능성은 적다고 기술하고 있다(「주해서」).② 반면에, “한(Hahn)과 쉬나이더(Schneider)”③와 그닐카(J. Gnilka, 하권, p. 226)는 헬레니즘적 유다 그리스도교에 기원을 둔 것이라고 한다. 그닐카(J. Gnilka, 하권, p. 226)는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임을 상대화한 것은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 족보를 만들어 냈던 팔레스틴의 유다 그리스도교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특히, 그런 상대화가 주의 존엄성에 대립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35절의 ‘그리스도를’은 예수님이 자신을 언급한 것이 분명하다”(W. Hendriksen). 또한, 예수님이 11:3에서 “주가 쓰시겠다 하라”라고 하신 것을 볼 때, “예수 자신이 주라는 말을 사용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여기서 문제가 되어 있는 것은 예수께서 주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진정한 말씀이 아니라고 부정할 필요는 없다”(山口 昇).
이 단화의 구성에 있어서 35절 전반과 37절 후반은 마가가 덧붙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마가는 이 단화를 【35】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쌔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로 시작한다.
“언뜻 볼 때에 이 구절과 바로 앞의 구절 사이에는 전혀 관련성이 없는 것 같다. 마가복음에는 그 사건이 지금 성전 안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언급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대한 모호한 표현을 하지 않기 위하여, 결과적으로 28-34절과 35-37절은 서로 관련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당하다. 예수께서는 방금 전에 율법을 요약하시면서 십계명의 완성이 사랑임을 매우 강조하셨다. 그리고 이제는 청중으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믿음, 즉 그리스도에 대한 합당한 개념을 떠나서는 어떤 서기관이라도(어느 누구도)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에 관심을 갖게 하심으로써 이 사랑을 실천에 옮기고 계신다”(W. Hendriksen).
그는 더 이상 묻지 않는 그들에게 그 자신의 메시아적 인격과 존엄성에 대해 가르치실 기회로 삼으셨다. 어찌하여 ‘서기관’(1:2의 주석을 보라.)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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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 Bultmann, op. cit., p. 170.
2) in 山口 昇.
3) in J. Gnilka, 하권, p. 226, 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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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관들뿐만 아니라, 당대의 유대인들이 믿던 다윗의 자손으로서의 메시아(그리스도는 메시아라는 말의 헬라어 번역)관에 대해서는 8:29의 주석을 보라.
예수께서 그리스도를이라고 하신 것에 대해, 바클레이(W. Barclay)는 직접 자신을 가리키신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전후 문맥상 자신을 언급하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의 요지는, 어째서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만 하느냐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혈통만을 따지면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면에서 그리스도는 다윗 이상의 존재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는 사람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청중의 대답을 기다리시지 않고, 스스로 시편 110:1을 인용하여 대답하셨다. 【36】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는, 예수께서 이 시편(110편)의 작가가 다윗이기는 하나, 실질적으로는 성령께서 그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라는 뜻이다(왕하 23:2, 행 1:16, 벧후 1:21).
예수님은 시편 110:1을 메시아적인 의미로 해석하신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신약성경에도 여러 번 인용되고 있다(행 2:34, 35, 고전 15:25, 히 1:13). 이러한 인용구들의 의도는 그 구절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진술은 “승천과 재림 때의 마지막 성취 사이의 그분의 위치를 묘사하는 것이다”(E. Schweizer).
아무튼, 예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점은 다윗이 곧 야웨(여호와)께서 내 주 곧 아도나이께 이르시되라고 한 것이다. 즉, “다윗은 하나님 이외에도 자기의 (아도나이)라고 부를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山口 昇). 또, 하나님께서는 중보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신 자에게만 합당한바 탁월하고 능력이 있으며 권위가 있는 장엄한 약속을 하셨다는 것이다(엡 1:20, 23, 빌 2:5-11, 히 2:9, 계 5:1-10, 12:5).
이어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없음을 밝히셨다. 이 점에 대해, 마가는 【37】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의 요지는, 가 어찌 인간 다윗자손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리스도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피상적으로 육적인 면에서만 알고, 근본적으로 영적인 면에서는 알지 못하여(고후 5:16)④ 찾아온바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문제 삼으시는 것이다. 그들은 현세적이며 정치적인 통치자인 제 2의 다윗 왕으로서의 메시아관이 아니라, 이제라도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시고 성결의 영으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재확인되실 만민의 주로서의 메시아관(롬 1:3-4)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 그리스도 예수만이 영원한 천국의 주권자이시다.
예수님이 서기관들의 영적 무지를 책망하신 것에 대해 백성이 즐겁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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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필자의 고린도후서 5:16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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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출처: 최세창, 마가복음(서울: 글벗사, 2006, 3판 1쇄), pp. 547-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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