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주라 한 그리스도
Author
최세창
Date
2024-10-2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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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2:35-37>
35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쌔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 36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37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1. 시작하는 말
한때 로마에서는 황제를 주라 일컬었고,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왕을 천자, 또는 천황이라 하여 신격화하는 어처구니없는 잘못을 범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에도 창조주요 섭리자, 구원자요 심판자,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관자이신 영원불변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구원을 위해 강림하셔서 역사하셨습니다.
이런 내용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종교학이나 종교 철학이나 종교 교리나 이념이나 퀴어설 등에 입각하여 해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이나, 동성애자나, 많은 주들 중 한 주로 폄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주장들에 대해 성경은 단호하게 반대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부터 존재하신 유일한 주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2. 서기관들의 잘못된 주 이해인 메시아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어째서 율법 종교의 지도층인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느냐고 어이없어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대한 배경 설명은, 마태복음 22:41 이하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고 질문하셨고, 그들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몇 가지 그리스도관 곧 메시아관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던 마카비 시대에는, 레위족에서 제사장이자 왕인 메시아가 나온다는 기대가 높아졌습니다. 유대교의 한 종파인 쿰란 공동체에는, 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아와 왕으로서의 메시아라고 하는 두 사람의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유대인들의 주된 메시아관은, 다윗의 자손 중에서 메시아가 나타나서 지상에 다윗의 왕국을 정치적으로 확립하는 인물이고, 무력으로 독립은 물론 온 세상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왕이라는 사상입니다.
유대인들의 다양한 메시아관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의 취지는,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 곧 그리스도가 인간의 혈통만을 따지면 다윗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면에서 주 곧 그리스도는 다윗과는 비교 불허인 그 이상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주 곧 그리스도는 사람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주 곧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의 성육신이십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 서기관들을 비판한 목적이 있습니다. 청중에게 당신에 대한 믿음인 주 곧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유일신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율법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유대교의 지도층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선언입니다.
예수님이 아닌, 어떤 다른 존재를 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은―그들이 아무리 뛰어난 어떤 종교인이라 할지라도―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8:4 이하를 보면,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수없이 많은 주나 재림주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미혹하여 몸과 재산을 바치고 헌신하게 하다가 마각이 드러나는 바람에 쇠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현재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단의 폐해는 인생과 가정을 망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옥의 멸망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영생교의 교주가 영생의 주, 혹은 영생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다가 구속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영생의 주라고 하면서 철야 심문에 꾸벅꾸벅 졸았다고 해서,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누가 무슨 그럴 듯한 말이나 이론을 전개하더라도 미혹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교회나 교역자나 기독교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이 들리더라도, 영생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일도,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아무리 나쁜 것이라도 영생과 바꿀 만한 가치는 없습니다.
흔들릴 때에, 요한복음 6:66 이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영적 이해력과 영적 지각이 마비되어, 다만 이성적인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는 유대교 지도층에 대해 예수님은 시편 110:1을 인용하여 비판하셨습니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이 시편 110:1은, 예수님과 신약성경 기자들이 메시아적 의미로 해석하여 자주 인용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승천과 재림 때의 마지막 성취 사이의 주 예수님의 위치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이 관심을 가지시는 말씀은, ‘다윗이 주 곧 여호와께서 내 주 곧 아도나이께 이르시되’입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 이외에도 자기의 주 곧 아도나이라고 부를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중보자인 주 곧 아도나이께 영원부터 영원토록 하나님의 존재에게만 합당한 탁월하고, 능력이 있고, 권위가 있는 장엄한 약속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은 주 곧 아도나이로 하여금 마지막 원수인 죽음마저도 이기고, 부활하여 만물을 통치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고 주 예수님 안에 거하는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은덕으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판 내용은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했는데, 어째서 주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백성은 즐겁게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인간인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리스도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이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육체로만 알고, 근본적으로 영적인 면에서는 알지 못하여, 찾아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문제 삼으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지상적이며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제이의 다윗 왕으로서의 메시야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시고, 성결의 영으로는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재확인되실 만민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천국의 주권자시요, 믿는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해 주시는 주로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아직도 예수님을 인격 수양의 본인 성인 정도로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6에,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라고 한 바울의 고백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에나 기도할 때에는 분명히 예수님을 향해 주라고 부르는데, 실제의 생활에서는 예수님이 정말 주이신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의 믿음은 변화무쌍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만사가 형통하고, 기쁘고 즐거운 일이 생기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라, 자기가 잘나서 된 것으로 생각하느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잊어버립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만사가 불통하고 슬프고 괴로운 일이 생기면 사랑의 능력자이신 예수님을 주로 믿는 대신에, 번민과 원망을 주로 모셔 들이고 종노릇을 하기도 합니다. 행복할 때에는 그렇게 해 주신 예수님을 주로 모셔 기뻐하고, 불행할 때에는 죽음까지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로 모셔 해결 받으시기 바랍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실제 생활에서, 우리의 주 노릇을 제일 많이 하고 있는 게 무엇입니까?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주로 믿고 따르는 게 무엇입니까? 종교 교리나 사상, 재물이나 권력, 지식이나 명예, 유력자나 진영 논리, 감정이나 얄팍한 자존심, 고민이나 번민, 미움이나 증오, 슬픔이나 아픔, 불평이나 원망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나 그런 것들로, 천하를 주어도 바꾸지 않을 우리의 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과 거듭남,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은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시고, 부활․승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우리의 삶의 주요, 천국 영생의 주로 믿고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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