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차별을 부추기는 시대착오적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를 철회하기 바랍니다.
Author
김형권
Date
2024-10-1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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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차별을 부추기는 시대착오적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를 철회하기 바랍니다.
얼마 전 몇몇 연회본부에서 개체교회에 문자 메시지로 공문을 보냈습니다.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기도회 안내’(서울연회)라는 제목의 공문은 "종교개혁 기념주일을 맞이하여 한국교회 온 성도가 구국의 심정으로 악법 저지를 위한 2백만 연합예배와 큰 기도회를 갖고자" 하니 교회에서 광고와 참여 독려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또 며칠 후 이 예배의 조직위원회에서 포스터와 공문, 호소문을 보내왔습니다. 배추 한 포기가 2만 원, 깻잎 한 장에 120원까지 치솟고 자영업자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20% 아래로 추락하였으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여 그냥 쉬었다는 실업자가 240만 명을 헤아리지만, 정부와 여당은 민생은 뒷전이고 대통령 부인 구하기, 정적 제거에만 몰두하는 현실에서, 호소문의 '구국의 심정', '큰 기도회'라는 단어를 보고 도탄에 빠져 신음하는 국민적 정서에 교회가 늦게나마 공감하고 이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기로 매달리는 줄 알고 다행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호소문을 자세히 보니 ‘문명사적 전환기’,‘종교개혁’ 운운하며 교회의 회개와 결단을 촉구하고 사회적 책임에 미흡했던 것을 반성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핵심은 혐오와 배제의 논리를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성장세가 꺾인 한국교회가 사회적 약자를 제물로 삼아 기금을 모으고 부흥의 전환기를 만들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1027 한국교회 2백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조직위원회의 행사 기획에 우려를 표하며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적 분노를 제대로 보고 기독교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할 것을 요구합니다.
1, 그리스도인다운 삶과 사회적인 책임에 대한 올바른 고백을 하십시오.
선교 140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얻은 것은 선교 초기 사회 계몽 운동,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 군사독재 시절의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사참배를 독려하고 독재자들을 축복하며 노동자를 무시하고 부자들 편을 드는 부끄러운 과거도 있었지만, 아직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과 사회적 책임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 여론을 주도하던 교회가 이제는 상식적인 수준의 사회적 인식조차 따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인답기를 원하고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기를 원한다면 ‘그들만의 리그’인 초대형 동원 집회를 기획할 것이 아니라 세상과 이웃을 섬기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2.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먼저 반성하기 바랍니다.
호소문은 한국 사회가 대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북핵 위협, 수천조에 달하는 종합 부채, 기업가 정신의 소멸, 연금 고갈, 세대와 진영 간의 단절, 저출생, 반생명·반윤리의 악행과 법제화 시도, 극단적 이념 논쟁, 팬덤 정치, 교육 현장 붕괴, 극단적 노동운동, 마약과 동성애와 각종 중독 등으로 인해 성장의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 전체가 아파하며 대안을 마련하고자 노심초사하는 문제들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교회가 아무런 책임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남 얘기하듯 해서는 안 됩니다. 기업가 정신은 존중받아야 한다면서 노동운동은 극단적이라고 매도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세대와 진영 갈등이 가장 첨예한 곳이 교회라서 젊은이들이 등지고 떠나는 것 아닙니까? 선거 때마다 보수 후보를 강단에 세워 소개하고 지지하라고 하는 행동이 불법선거운동임을 몰랐습니까? 최소한 교회는 이념 논쟁에 대해서도 무죄하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지금이라도 사회의 부조리에 일조한 과거와 현재를 회개하고 사죄해야 합니다.
3. 성소수자를 교회 부흥의 제물로 삼으려는 혐오와 배제의 시도를 중단하십시오.
구약성서의 율법에 성밖으로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이라는 극단적인 명령은 동성애만이 아니라 과식이나 과음, 불효, 간음 같은 것들도 포함됩니다. 또 율법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를 저주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왜 한국교회는 무속인들과 교류하는 대통령 부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유독 성소수자들만을 문제로 삼을까요?
2천 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과오가 바로 마녀사냥입니다. 수많은 소수자와 약자들이 명확한 근거 없이 마녀라는 누명을 쓰고 맞아 죽고, 매달려 죽고, 불태워져 죽었습니다. 교회는 자신들이 처한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적을 규정하고 그들을 처단함으로 정의의 수호자를 자처하였습니다. 그런 폭력의 역사는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과 흑인, 아시아인, 비기독교인, 소수민족 등에 행사되었으며 최근에는 성소수자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 것은 한없는 사랑과 자비 때문입니다. 도저히 구원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죄인 중에 죄인, 악질 중에 악질이었던 우리도 역시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타인을 판단할 수 있는 선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의인을 자처하면서 혐오와 배제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맞바꾸려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행위입니다. 현대판 마녀사냥,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즉각 중단하기 바랍니다.
4. 듣기 좋은 말 잔치로 성도들을 현혹하지 마십시오.
조직위는 “1. 국민 여러분과 가정을 지켜내겠습니다. 2. 정부 당국과 함께 저출생 고령화의 난제를 해결하는 일에 힘쓰겠습니다. 3.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화해와 통일을 준비하는 교회로 도약하겠습니다.”라며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이 제2의 기적을 맞이하도록 섬기겠다고 약속합니다.
한국교회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어떤 대안과 정책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정이 새롭고 다양한 관점에서 정의되고 있는 걸 알고 있습니까? 저출생 고령화의 난제를 해결하겠다는 듣기 좋은 소리만 할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젊은이들을 찾아볼 수 없는 현실 먼저 직시하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화해와 통일을 준비하겠다는 교회는 한국에서 가장 격렬하게 북한을 저주하는 집단이고 논리는 군사독재 시절 반공에 머물러 있습니다.
대안도 없이 듣기 좋은 소리나 늘어놓는다고 해서 교회의 위상과 신뢰도가 올라가지도 않고 오히려 무지한 본색만 더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입니다. 이제부터는 책임질 준비가 된 말을 하고 성도들을 현혹하지 마십시오.
5. 목사들 자존심 때문에 성도들을 동원하는 것이라면 즉각 중단하십시오.
한국교회의 장자를 자처하는 두 교회 담임자 사이에 벌어진 알력과 자존심 대결 때문에 이번 연합예배와 큰 기도회가 열린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얼마 전 열린 기독교 국제회의에 주빈으로 초대받지 못한 유력한 대형교회 목사가 이에 대한 반감으로 연합예배를 조직하기 위해 각 교파의 총회를 찾아다니며 참여를 호소했다는 것인데, 언급된 목사들 면면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 같습니다.
국민은 물론이고 성도들도 더 이상 8~90년대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장기판의 졸도 아니고, 여기로 오라, 저기로 가라 동원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시건방진 목사들은 당장 석고대죄하십시오. 한국교회의 고령화는 이미 심각합니다. 동봉된 공문에는 방석을 준비해 오라고 적혀 있습니다. 목사 말을 하나님 말처럼 들어야 한다고 세뇌된 고령의 성도들이 목사들의 자존심 때문에 동원되어, 의자도 아니고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몇 시간을 견뎌야 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아립니다.
6. 결국은 돈 문제였습니까?
호소문의 마지막은 “200억의 기금을 조성하여 섬기겠습니다.”로 끝납니다. 200만 명이 1만 원씩 헌금하면 200억 원이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업을 위해, 이웃을 위해 헌금을 독려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기금의 집행 예정 사업 계획이 모호하고 혐오와 배제, 인권 유린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국제적인 연구 및 실행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 목사들을 보면 개체교회도 충분히 재단을 설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200만 명의 헌금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과연 누가 이 재단의 이사장이 되고 실소유주가 될지도 궁금합니다.
해마다 수억 원의 사례비를 받고 그 외에도 많은 판공비를 지출할 수 있는 목사들이 자신의 개인 사례비를 출연한다면 많은 환영과 칭찬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런 헌신과 의지는 보이지 않으니, ‘결국 돈 문제였느냐’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려운 경기에 고물가, 고실업 사회를 고단하게 버티는 작은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을 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7. 마지막으로 감리교회에 묻습니다.
연합예배를 기점으로 하면 감독회장과 감독의 임기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습니다. 백 번 양보해서 조직위원회 공동대회장에 감독회장의 이름이라도 올라갔더라면 체면이라도 차릴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닌데 왜 임기도 얼마 안 남으신 분들이 교단 차원의 공문까지 내고 참여를 독려한다는 문자를 보내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교회들을 부끄러움과 혼란에 내몰고 임기를 마친 후 ‘나 몰라라’하면 끝나는 일입니까? 당장 연회원들과 성도들에게 사과하기 바랍니다.
7~80년대에 대규모 군중 동원 집회 시절에 은혜받고 소명 받은 분들이 향수를 느끼며 그 시절을 다시 소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시대가 변하였습니다. 이 거창한 연합예배와 큰 기도회가 몰락하는 교회의 마지막 발악으로 비칠까 두렵습니다. 진정으로 교회가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고 싶다면 대규모 연합예배가 아니라 동시대인과 눈을 맞추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 ‘힘들다, 죽겠다’는 국민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지지율 20% 초반대의 무지, 무능, 무책임 대통령과 그 아내로 인한 혼란이 보이지 않습니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는 것을 가장 잘 아는 목사들이라서 손바닥으로 하늘 대신 성도들의 눈을 가리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겸손하기를 권고하며 기독교 존재의 의미는 물론이고 교세 확장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이 연합예배와 큰 기도회계획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합니다.
2024년 10월 15일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감리교농촌선교훈련원, 감리교시국대책연석회의,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감리회목회자모임 새물결,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남산교회, 동녘교회, 맑은샘교회, 문수산성교회, 바나바평화선교회, 사랑의사도교회, 산돌감리교회, 새소망감리교회, 선한이웃교회, 약속교회, 양화교회, 예사랑교회, 좋은만남교회, 차별을넘어서는감리회모임, 충주베델교회, 팔미교회, 평화교회연구소, 한사랑교회, 협성포럼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를 철회하기 바랍니다.
얼마 전 몇몇 연회본부에서 개체교회에 문자 메시지로 공문을 보냈습니다.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기도회 안내’(서울연회)라는 제목의 공문은 "종교개혁 기념주일을 맞이하여 한국교회 온 성도가 구국의 심정으로 악법 저지를 위한 2백만 연합예배와 큰 기도회를 갖고자" 하니 교회에서 광고와 참여 독려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또 며칠 후 이 예배의 조직위원회에서 포스터와 공문, 호소문을 보내왔습니다. 배추 한 포기가 2만 원, 깻잎 한 장에 120원까지 치솟고 자영업자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20% 아래로 추락하였으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여 그냥 쉬었다는 실업자가 240만 명을 헤아리지만, 정부와 여당은 민생은 뒷전이고 대통령 부인 구하기, 정적 제거에만 몰두하는 현실에서, 호소문의 '구국의 심정', '큰 기도회'라는 단어를 보고 도탄에 빠져 신음하는 국민적 정서에 교회가 늦게나마 공감하고 이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기로 매달리는 줄 알고 다행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호소문을 자세히 보니 ‘문명사적 전환기’,‘종교개혁’ 운운하며 교회의 회개와 결단을 촉구하고 사회적 책임에 미흡했던 것을 반성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핵심은 혐오와 배제의 논리를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성장세가 꺾인 한국교회가 사회적 약자를 제물로 삼아 기금을 모으고 부흥의 전환기를 만들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1027 한국교회 2백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조직위원회의 행사 기획에 우려를 표하며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적 분노를 제대로 보고 기독교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할 것을 요구합니다.
1, 그리스도인다운 삶과 사회적인 책임에 대한 올바른 고백을 하십시오.
선교 140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얻은 것은 선교 초기 사회 계몽 운동,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 군사독재 시절의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사참배를 독려하고 독재자들을 축복하며 노동자를 무시하고 부자들 편을 드는 부끄러운 과거도 있었지만, 아직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과 사회적 책임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 여론을 주도하던 교회가 이제는 상식적인 수준의 사회적 인식조차 따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인답기를 원하고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기를 원한다면 ‘그들만의 리그’인 초대형 동원 집회를 기획할 것이 아니라 세상과 이웃을 섬기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2.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먼저 반성하기 바랍니다.
호소문은 한국 사회가 대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북핵 위협, 수천조에 달하는 종합 부채, 기업가 정신의 소멸, 연금 고갈, 세대와 진영 간의 단절, 저출생, 반생명·반윤리의 악행과 법제화 시도, 극단적 이념 논쟁, 팬덤 정치, 교육 현장 붕괴, 극단적 노동운동, 마약과 동성애와 각종 중독 등으로 인해 성장의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 전체가 아파하며 대안을 마련하고자 노심초사하는 문제들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교회가 아무런 책임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남 얘기하듯 해서는 안 됩니다. 기업가 정신은 존중받아야 한다면서 노동운동은 극단적이라고 매도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세대와 진영 갈등이 가장 첨예한 곳이 교회라서 젊은이들이 등지고 떠나는 것 아닙니까? 선거 때마다 보수 후보를 강단에 세워 소개하고 지지하라고 하는 행동이 불법선거운동임을 몰랐습니까? 최소한 교회는 이념 논쟁에 대해서도 무죄하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지금이라도 사회의 부조리에 일조한 과거와 현재를 회개하고 사죄해야 합니다.
3. 성소수자를 교회 부흥의 제물로 삼으려는 혐오와 배제의 시도를 중단하십시오.
구약성서의 율법에 성밖으로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이라는 극단적인 명령은 동성애만이 아니라 과식이나 과음, 불효, 간음 같은 것들도 포함됩니다. 또 율법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를 저주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왜 한국교회는 무속인들과 교류하는 대통령 부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유독 성소수자들만을 문제로 삼을까요?
2천 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과오가 바로 마녀사냥입니다. 수많은 소수자와 약자들이 명확한 근거 없이 마녀라는 누명을 쓰고 맞아 죽고, 매달려 죽고, 불태워져 죽었습니다. 교회는 자신들이 처한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적을 규정하고 그들을 처단함으로 정의의 수호자를 자처하였습니다. 그런 폭력의 역사는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성과 흑인, 아시아인, 비기독교인, 소수민족 등에 행사되었으며 최근에는 성소수자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 것은 한없는 사랑과 자비 때문입니다. 도저히 구원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죄인 중에 죄인, 악질 중에 악질이었던 우리도 역시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타인을 판단할 수 있는 선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의인을 자처하면서 혐오와 배제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맞바꾸려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행위입니다. 현대판 마녀사냥,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즉각 중단하기 바랍니다.
4. 듣기 좋은 말 잔치로 성도들을 현혹하지 마십시오.
조직위는 “1. 국민 여러분과 가정을 지켜내겠습니다. 2. 정부 당국과 함께 저출생 고령화의 난제를 해결하는 일에 힘쓰겠습니다. 3.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화해와 통일을 준비하는 교회로 도약하겠습니다.”라며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이 제2의 기적을 맞이하도록 섬기겠다고 약속합니다.
한국교회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어떤 대안과 정책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정이 새롭고 다양한 관점에서 정의되고 있는 걸 알고 있습니까? 저출생 고령화의 난제를 해결하겠다는 듣기 좋은 소리만 할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젊은이들을 찾아볼 수 없는 현실 먼저 직시하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화해와 통일을 준비하겠다는 교회는 한국에서 가장 격렬하게 북한을 저주하는 집단이고 논리는 군사독재 시절 반공에 머물러 있습니다.
대안도 없이 듣기 좋은 소리나 늘어놓는다고 해서 교회의 위상과 신뢰도가 올라가지도 않고 오히려 무지한 본색만 더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입니다. 이제부터는 책임질 준비가 된 말을 하고 성도들을 현혹하지 마십시오.
5. 목사들 자존심 때문에 성도들을 동원하는 것이라면 즉각 중단하십시오.
한국교회의 장자를 자처하는 두 교회 담임자 사이에 벌어진 알력과 자존심 대결 때문에 이번 연합예배와 큰 기도회가 열린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얼마 전 열린 기독교 국제회의에 주빈으로 초대받지 못한 유력한 대형교회 목사가 이에 대한 반감으로 연합예배를 조직하기 위해 각 교파의 총회를 찾아다니며 참여를 호소했다는 것인데, 언급된 목사들 면면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 같습니다.
국민은 물론이고 성도들도 더 이상 8~90년대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장기판의 졸도 아니고, 여기로 오라, 저기로 가라 동원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시건방진 목사들은 당장 석고대죄하십시오. 한국교회의 고령화는 이미 심각합니다. 동봉된 공문에는 방석을 준비해 오라고 적혀 있습니다. 목사 말을 하나님 말처럼 들어야 한다고 세뇌된 고령의 성도들이 목사들의 자존심 때문에 동원되어, 의자도 아니고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몇 시간을 견뎌야 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아립니다.
6. 결국은 돈 문제였습니까?
호소문의 마지막은 “200억의 기금을 조성하여 섬기겠습니다.”로 끝납니다. 200만 명이 1만 원씩 헌금하면 200억 원이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업을 위해, 이웃을 위해 헌금을 독려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기금의 집행 예정 사업 계획이 모호하고 혐오와 배제, 인권 유린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국제적인 연구 및 실행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 목사들을 보면 개체교회도 충분히 재단을 설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200만 명의 헌금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과연 누가 이 재단의 이사장이 되고 실소유주가 될지도 궁금합니다.
해마다 수억 원의 사례비를 받고 그 외에도 많은 판공비를 지출할 수 있는 목사들이 자신의 개인 사례비를 출연한다면 많은 환영과 칭찬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런 헌신과 의지는 보이지 않으니, ‘결국 돈 문제였느냐’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려운 경기에 고물가, 고실업 사회를 고단하게 버티는 작은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을 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7. 마지막으로 감리교회에 묻습니다.
연합예배를 기점으로 하면 감독회장과 감독의 임기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습니다. 백 번 양보해서 조직위원회 공동대회장에 감독회장의 이름이라도 올라갔더라면 체면이라도 차릴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닌데 왜 임기도 얼마 안 남으신 분들이 교단 차원의 공문까지 내고 참여를 독려한다는 문자를 보내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교회들을 부끄러움과 혼란에 내몰고 임기를 마친 후 ‘나 몰라라’하면 끝나는 일입니까? 당장 연회원들과 성도들에게 사과하기 바랍니다.
7~80년대에 대규모 군중 동원 집회 시절에 은혜받고 소명 받은 분들이 향수를 느끼며 그 시절을 다시 소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시대가 변하였습니다. 이 거창한 연합예배와 큰 기도회가 몰락하는 교회의 마지막 발악으로 비칠까 두렵습니다. 진정으로 교회가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고 싶다면 대규모 연합예배가 아니라 동시대인과 눈을 맞추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 ‘힘들다, 죽겠다’는 국민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지지율 20% 초반대의 무지, 무능, 무책임 대통령과 그 아내로 인한 혼란이 보이지 않습니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는 것을 가장 잘 아는 목사들이라서 손바닥으로 하늘 대신 성도들의 눈을 가리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겸손하기를 권고하며 기독교 존재의 의미는 물론이고 교세 확장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이 연합예배와 큰 기도회계획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합니다.
2024년 10월 15일
감리교농촌선교목회자회, 감리교농촌선교훈련원, 감리교시국대책연석회의,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감리회목회자모임 새물결,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남산교회, 동녘교회, 맑은샘교회, 문수산성교회, 바나바평화선교회, 사랑의사도교회, 산돌감리교회, 새소망감리교회, 선한이웃교회, 약속교회, 양화교회, 예사랑교회, 좋은만남교회, 차별을넘어서는감리회모임, 충주베델교회, 팔미교회, 평화교회연구소, 한사랑교회, 협성포럼
그냥 신경 끄자고요
무관심만한 것도 없을 때가 있는데
이번에 그걸 써봄이 어떨까요
사람 안 변하잖아요
철회 안 해요
쪽팔려서 못 해요
200만 명 안 모여요
모여져도 아무 일 없어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교통혼잡으로 욕만 바가지로 먹고
쓰레기와 환경오염만 풍성할겁니다
뉴스엔 나올지 모르겠네요.
아시잖아요
저들의 하나님은 우리랑 달라요
그냥 두자고요
자기만족하고 꺼질테니까요
그날 비나 좀 풍성히 내렸으면 좋겠네요,
정작 광고하는 목사들도 차별금지법의 내용이나, 집회의 성격에 대해서는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감추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더군요.
문해력이 떨어지는 목사들 덕분에 성도의 수준이 셀프로 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