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길 / 팔월 마지막 날, 우리 어머니
Author
최천호
Date
2024-08-2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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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산모퉁이를 돌아
숲으로 숨어드는 이 길을
누가 처음 걸어갔을까
여기 머무는 깊은 외로움은
누구에게 배운 것이어서
저 끝까지 홀로 걷기만 하네
탐욕스러운 여름이 기운을 다했으니
화려하지 않은 이 길가에도
조용히 열매들이 맺히겠지
태양은 뜨겁고
아직 갈 길이 먼데
무더위 이겨내고
곧게 서 있는
꽃들이 나를 반기네
우리 어머니, 우리 감리교회
어머니는 오늘도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신다
시골집 냉장고 꺼야 하는디
밭에 고구마 캐야는디
방아 찧으면 쌀을 가져와야 하는디
농협 통장에 노령연금 들어왔나
그 돈 여기서도 찾을 수 있지
나는 그 말끝에
어머니, 그 말 오늘 열 번째 하셨어
하고 웃는다
밤 다 땄나
집 뒤 밤 다 떨어졌을 텐데
계절을 잊으셔서 그런 말씀 하시나
어머니 뇌세포가 점점 죽어가나 보다
귀가 어두우셔
아내 목소리는 점점 높아져
싸우는 것 같기도 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혼내는 것 같기도 하다
눈도 어두워 성경을 못 보시니
하루해가 길고 지루하신가 보다
그런 어머니가 옆에 계시니
아내에게는 미안하고
내 마음은 편하다
나의 어머니 같은 감리교회는
매년 같은 자리만 맴돌며
같은 말만 수백 번 토해내고
이 소리 저 소리
들리는 말은 많은데 해결책 없고
귀 어두워 하늘 음성 듣지 못하고
눈 어두워 하늘 계시 보지 못하니
꼭 늙으신 우리 어머니 같다
이런 감리교회를 보니
성도들에게 미안하고
기도하기가 부끄럽다
우리 어머니, 우리 감리교회
가슴 아프고 눈물이 난다
* 오래전 어머니 생존 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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