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신에게
Author
최세창
Date
2024-08-2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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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7:22-34>
22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23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26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27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28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34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1. 시작하는 말
‘남들이 나 같으면 다 잘 될 텐데.’라는 생각들을 합니다.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과 을과 병이 대화를 하는데, 갑은 을과 병이 자기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을은 갑과 병이 자기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병은 갑과 을이 자기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대화도 소통도 될 수 없습니다. 자기 말만 내세우느라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합니다.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대화나 상담이나 협상을 할 때는 상대 같아져야, 상대에게서 소통의 요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수와 소통해야 하는 강의나 강연이나 연설이나 선전이나 광고도 원리는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9:22을 보면, 바울은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2. 바울 사도가 아덴에서 한 설교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자들과 변론한 바울 사도는 아덴의 최고 의회, 또는 법정 장소로 사용된 언덕인 아레오바고 중앙에 서서 그 철학자들과 아덴 곧 아테네 사람들에게 설교했습니다. 그 설교는,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로 시작되었습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웨슬리(J. Wesley)는, “바울은 시민들에게 자연신론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였다. 경청할 만한 지혜와 예리하고도 내용이 풍부한 강의를 정중하게 하였다. 그들은 역시 새로운 것을 요청하였다. 바울은 종교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설교를 시도하였는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들에게는 새로운 것이었다. 바울은 가장 근원적인 것이면서 만물의 궁극적인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 가지 반론을 제기하고, 에피쿠로스학파나 스토아학파가 다 같이 바울의 말을 거부하였다.”라고 주석했습니다.
그 철학자들은 선입견이나 철학적인 고정관념을 앞세우지 말고, 조금이라도 바울 사도 같아지려는 생각을 했어야 합니다. 종교 지식은 물론, 철학 지식도 대단한 것 같은 사람이 머나먼 곳까지 걸어 다니는 고생을 하면서, 기이하고 새로운 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뭔가 값진 게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아덴 사람들아”라고 공손하게 호칭한 것은, 에피쿠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자들을 비롯한 교양 있는 헬라인들의 호감을 얻고, 그들로 하여금 주목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라고 한 바울 사도는, 그 근거로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알지 못하는 신”(Ἀγνώστῳ θεῷ)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주전 6세기경, 구레네 사람인 에피메니데스(Epimenides)가 아덴을 무서운 역병에서 구해 냈을 때, 많은 신들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혹시나 빠진 신들이 있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희고 검은 양들을 풀어놓고, 그 양들이 가서 앉는 곳에 제단을 쌓고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비문을 새기고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노울링(Knowling)은 “그러한 비문에서, 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인간이 어렴풋이 예배하거나, 불완전하게 예배하는 보이지 않는 능력을 좀더 분명히, 그리고 좀더 뚜렷하게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채워지지 않는 깊은 동경에 대한 증거가 있음을 현명하게도 알아내었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알지 못하는 신’으로 하나님을 가르쳤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로서 천지의 주인이시고 주권자이시며 주관자이시므로, 피조물인 인간이 만든 신전에 계시지 않습니다. 열왕기상 8:27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 왕은,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성전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성전 안에 제한될 정도의 작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3:24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라고 했습니다. 온 천지에 편재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특별히 성전에서 예배를 받으시고, 당신의 사자들을 통해 말씀을 주시고, 치유와 축귀의 기적을 행하시고, 교육하시고, 훈련하시는 등의 역사를 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인간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 않으시고, 무엇이 필요한 것처럼 인간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창조주로서 친히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고, 만물을 주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다스리게 하십니다.
장OO 권사님은, 교회에 다니기 전에 구세군이었던 아내를 몹시 핍박했습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라고 하면서, 믿음을 지키는 아내를 8년 동안이나 끈질기게 핍박하더니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아내는 극심한 핍박을 견디면서, 하나님께 끈질기게 간구했습니다. 말이 간구이지, 실은 하나님 앞에서의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어느 날인가도,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라야 그 남편을 구원받게 할 수 있느니라.” 결국 남편을 영생의 주님께 인도하였고, 남편은 충성스러운 권사가 되기까지 했습니다. 믿음의 승리요, 영혼 사랑의 승리입니다.
온 가족이 제가 목회하던 교회에 다녔는데, 어느 날 장 권사님이 제게 고백했습니다. “제 아내를 존경합니다. 정말 훌륭한 아내입니다.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제가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셋째,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 즉 아담으로부터 만드시고,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각 족속이 일어나고 망하는 연대와 국경을 정하셨습니다. 아덴 곧 아테네의 철학자들도 ‘알지 못하는 신’이고, 일반인들도 ‘알지 못하는 신’인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는 것입니다. 실상,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구원과 심판,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관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일반 계시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을 확실히 알게 하시는 특수 계시입니다.
그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이성적이거나 지성적이지만, 영적 무감각이나 영적 몰지각이나 영적 죽음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설령 안다고 해도 비인격적인 존재로 잘못 알거나, 한없이 멀리 떨어진 존재로 알거나, 유한하고 불완전하고 부도덕한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형상으로 아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을 힘입어 생존하고, 기동하며 일하고 생활하게 하십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하나님 안에서 움직이고 일하며 생활하는 것입니다. 철학이 말하는바 신의 추상적인 막연한 편재가 아니라, 인간의 생존에 직접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편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덴 곧 아테네의 어떤 시인들도 인간을 신의 소생이라고 했습니다. 스토아 철학자인 아라투스와 클레안테스 등의 시에 표현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제우스신의 소생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 표현을 인용한 것은, 아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성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에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인용하여 설교하였고, 헬라인들에게는 그들의 종교나 철학이나 시를 인용하여 설교했습니다.
석가모니와 공자와 소크라테스와 마호메트를 비롯한 모든 인간은 스스로 생명을 원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생명을 만든 것도 아닌데, 생명이 주어져서 인간이 되어 존재하고 움직이고 일하며 살다가 죽음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창조주요 섭리자, 구원자요 심판자,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은 인간의 고안과 기술에 의해 금이나 은이나 돌에 새겨진 신들과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인간은 단순한 하나님의 소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소생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인간의 손으로 만든 인간의 피조물인 신들과 같이 여길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신들은 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의 사색과 명상과 기술로 만든 작품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이 지식과 능력과 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다 더 훨씬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입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간과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대로 주 예수님이 오신 때인 복음의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유는 정하신 사람이신 주 예수님으로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놀라운 사실에 대해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는데, 바로 주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이 부활에 대해 기롱하는 무리가 있었고, 진지한 태도로 다시 듣겠다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다른 선교지를 향해 아덴을 떠났습니다. 바울 사도의 설교로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었는데,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아멘.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해지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공유합니다.
§행17:22 <아레오바고> ❶‘아레스(Ares)의 언덕’이란 뜻. ‘아덴’의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있는 높이 115m의 석회암 언덕(행 17:19). 헬라의 개혁자 솔론이 세운 대법원이 있었다. ‘아레스의 언덕’이란? 헬라의 전쟁신(훗날 로마의 전쟁신 마르스(Mars)와 동일시됨) 아레스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의 아들 하리로티오스를 살해하여 처음으로 이곳에서 재판을 받았다는 고사에 근거하여 명명되었다. 초기에는 소송을 다루는 ‘법원’ 역할을 했었다. ❷ 로마 시대에 이르러 아덴의 풍습과 도덕과 교육을 관장하고 또 새로운 종교나 철학이 유입되는 것을 통제하는(새로운 사상을 유포하는 자를 소환해 신분을 조사하는 등) 일종의 감독 기관 역할까지 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이곳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였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중에 아레오바고의 관리 곧 아레오바고 회의의 의원(혹은 법정의 판사)인 디오누시오가 있었다(행 17:34) (출전: 라이프성경사전)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 모든 일을 심하게 미신에 따라감. ‘종교’라는 단어는 통상 나쁘게 적용되는데, 흔히 ‘세계 4대 종교’ 혹은 ‘종교학과’는 이 단어를 매개로 기독교와 다른 종교, 이단, 그리고 심지어 잡신 샤머니즘 무당들이 한 묶음이나 동류로 취급한다. 또한 로마카톨릭과 개혁교회가 일치한다고 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은 현재 이를 넘어서서 “모든 종교에 다 구원이 있다.”라는 식으로 자신도 결코 뭐가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허황한 다른 종교들의 교리까지 헛소리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를 동류로 분류하고 혹은 골라 먹는 요리 중 하나로 취급합니다. ⇒ 이는 창조주이신 하늘의 하나님과 이방 잡신을 동류로 간주하는 인간의 타락이다.
§23 <알지 못하는 신에게> ☞ 이탈리아 로마에는 AD118년 건축한 2000년 된 웅장한 돔을 가진 석조 건물 판테온 신전이 있다. 판테온이란 만신(모든 신)이란 뜻이다. Pantheon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판(Pan)과 신을 뜻하는 테온(Theon)을 합친 말.
§24 <하나님> 사도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 ❶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❷천지의 주재 ❸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 ❹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❺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심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심 ❻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 ⇒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심 ❼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 ❽우리가 그의 소생 ❾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 하사 ’회개‘하라 하심 ❿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 ⓫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 ⇒ 부활
§25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 ❶하나님은 돈이 필요한 분이 아니시다. ❷ 교회의 헌금은 구약시대의 제물에 해당 ❸이는 목회자의 생활비나 용돈이 아니다. 예물이므로 반드시 절차를 지켜 하나님의 일에 적용되어야 하며, 아니면 인간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게 된다.
§29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 인간의 미신과 샤머니즘, 즉 종교심은 항상 눈으로 보는 신을 추구한다. 또한 현대 신학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까지도 다시 창조하는데,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하면서 그를 사람의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랑의 꼭두각시 인형 삼았다. [신4:28 너희는 거기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리라] [시115:4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7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사37:19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나 그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일 뿐이요 나무와 돌이라 그러므로 멸망을 당하였나이다] [렘25:6 너희는 다른 신을 따라다니며 섬기거나 경배하지 말며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써 나의 노여움을 일으키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합2:18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미5:13 내가 네가 새긴 우상과 주상을 너희 가운데에서 멸절하리니 네가 네 손으로 만든 것을 다시는 섬기지 아니하리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 대한민국도 복음이 전해지기 전 시대와 후 시대로 구분된다.
§31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 ❶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부활…. 이는 사람이 피하기 어려운 증거다. ❷이는 다른 신이나 다른 종교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 교회 안에도 부활은 사실이기에 믿고, 하나님의 창조, 심판, 지옥과 천국은 신화에 해당하여 안 믿는다는 분이 있는데, 이는 그가 하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들은 서로 떨어낼 수 없는 그 하나이기에, 그냥 믿거나? 그냥 안 믿거나 둘 중 하나이다.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❶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❷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 복음을 듣고 거절하는 2가지 방식 조롱과 내일로 연기,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는 시간….
필자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해지시길 기도합니다. 본문에 대한 제 소견을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늘 느끼는바 성경 탐구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성경을 읽는 이유는 거기에 영생과 구원이 쓰여 있기 때문이고, 이를 모른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우려하며…. 한 인생에 이보다 큰 가치가 다른 데 없다고 사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