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에 자전거 타기 / 새재길

Author
최천호
Date
2024-08-14 10:21
Views
308

말복에 자전거 타기 / 새재길

아침부터 계곡은 숨죽이고
재 넘어오는 바람을 기다리지만
검은 아스팔트에 화상 입은 듯한 바람은
종일 그 모습 보이질 않네

겨울이 길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
두 손으로 등 떠밀며
화려한 꽃을 피워
봄,
그 아름다운 선물 나누던 벚나무는
한 해 삶이 고단한지 철 이른 이때에
잎사귀를 땅에 떨구고
꿩들이 알 품는 오월이 되고서야
잠에서 깨어나 게으름 피우며
수줍게 꽃 피우던
대추나무도 제법 굵은 알을
두 손에 받쳐 들고 서 있네

아침저녁 빌딩 숲 사이에서
커피를 마시는 도시 사람들은
이 계곡에서 흐르는 저 맑은 물소리와
무섭도록 찬란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이곳 사람들이 모르는 척 슬쩍 내주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

손이 모자라 거두지 못한 복숭아는
마당 끝에 나와 앉은 노인의 가슴처럼
애처로이 땅에 뒹굴고
맑은 하늘은
젊은 가지에 싱싱하게 매단 사과를
붉게 물들이는데

끝이 보이지 않은 오르막에는
마지막까지 기어를 내리고
양손과 양발,
달음질하는 심장에 힘을 모아
폐 속에 남아 있던
아픈 이야기들을
남김없이 토해낼 때까지
허리 굽히고 엎드려 올라가야 하고
내리막에서는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더 천천히 속도를 낮추어
달려오는 바람 속으로
조심스레 마음을 맡겨야 하네

아! 정말 시원하고 시원한 바람,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드니
저녁 지어 놓으시고
손짓하시는 어머니 모습 뒤에
가을 하늘이 서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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