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 / 주산지

Author
최천호
Date
2024-08-03 13:06
Views
267

초복

정월 대보름날이면
어린 동생은 옆집 할멈에게
아침 일찍 달려가
더위를 팔았다.

할머니?
오냐!
내 더위 사세요.

할멈은 여름 내내
삼베 저고리 속에
무더위를 품고
아침이슬을 머금은
상추같이 미소를 지었다.



주산지

청송에 갔더니 깊은 산속에
삼백 년이나 된 저수지가 숨어 살더라

가슴 가득 품었던 맑은 물들을
하늘에서 자맥질하다
목이 말라 내려오는 작은 새들과
산허리를 달음질하다
지쳐 헐떡이는 노루들과
욕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랫동네 사람들에게
넉넉하게 나누어 주어도
모자람이 없어
한 번도 마르지 않았다더라

산을 넘어온 아침 햇살이
버드나무 잎사귀에
소낙비처럼 쏟아지면
살짝 스치던 바람은
은빛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더라

그곳에 가서 숨어 산다면
가슴에 품었다 흘려보내는 맑은 물처럼
투명하게 쏟아지는 아침 햇살처럼
나뭇잎을 스치는 은빛 바람처럼
한 삼백 년은 너끈하게 살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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