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물인 삶을 살자
Author
최세창
Date
2024-07-1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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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3:12-15>
12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14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할 수도 없고 덜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15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1. 시작하는 말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서 존재한 사람도 없고, 스스로 생명을 원해서 존재한 사람도 없습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모든 사람의 생명은, 창조주요 섭리자이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렇기는 하나, 존재하는 모든 사람의 삶이 다 하나님의 선물은 아닙니다. 침략 전쟁의 승리나, 세계적인 성공이나, 세계적인 출세가 실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마귀의 덫인 죄악의 결과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단한 인기와 존경을 받는 굉장한 생활이라고 해서 다 하나님의 선물인 생활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인류 구원과 참된 삶의 본이 되시려고 오신 주 예수님은, 천하만국을 보이며, 절하면 그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주겠다는 마귀의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2. 하나님의 선물인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삶
성경 본문은 남들이야 망하든 말든, 아니 남을 짓밟고서라도 출세하고 성공해야만 하겠다는 출세 지상주의나 성공 지상주의를 맹종하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새겨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전도서 3:12의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인생의 헛됨을 깊고 폭넓게 파악한 전도서 저자의 고백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기뻐하며”는 단순히 희로애락의 감정 중 하나인 기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다 내적인 여건이나 외적인 여건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기쁨이나 노여움, 슬픔이나 즐거움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전도서 저자가,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에 대해 새삼스럽게 가르칠 리가 없습니다. 그는 단순한 감정으로서의 기쁨이 아니라, 감정적인 기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영적 기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선진국에도 이권을 얻으려는 사람이 은밀히 건네는 엄청난 뇌물을 받고, 무척이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정치계를 비롯한 각계의 지도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존심을 짓밟는 것이고, 스스로 자존감을 짓뭉개는 것인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기뻐하며 가족들에게까지 뇌물을 받게 하고, 온 가족이 한통속이 되어 부정을 저지르거나 죄악을 행하며 즐거워하는 지성인들도 있지 않습니까? 무리를 지어 기뻐하며 악법을 만들어 국민을 괴롭히고 죽이는 권력자들이 있고, 침략 전쟁을 벌여 정복한 후에, 통치하는 악법을 만들어 합법적으로 악행을 즐기는 독재자들이 있습니다. 행악자의 죄악의 기쁨과 즐거움은, 달랠 길 없는 슬픔과 노염의 씨앗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천하를 주어도 바꾸지 않을 값진 생명을 가지고, 마귀가 기뻐할 삶을 만들면 안 됩니다.
어느 국가에나, 이권을 챙기려는 사람이 건네려는 뇌물을 거절함으로써 자존심을 세우고, 자존감을 높이는 각계의 지도자들이 많아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남들을 돕는 등의 선을 행하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보다 더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시민의 삶을 산다는 영적 사실에 대해 기뻐해야 합니다. 주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기뻐하고, 받은 은혜와 복을 나누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의 삶을 기뻐해야 합니다. 이런 영적 기쁨이야말로 주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기쁨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4:4을 보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했습니다. 역경에 처하거나, 순경에 처하거나 항상 주 예수님 안에서 기뻐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비결이 뭡니까? 그것은 자기 본위, 자기 위주, 자기중심인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성령을 좇아 주 예수님 안에서 항상 선을 추구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는 우리의 큰 기쁨이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기뻐해야 할 주 예수님의 큰 기쁨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전도의 열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5:7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믿는 우리는 말씀 순종으로 인한 시험과 환난을 기뻐하고, 복음 전도로 인한 시험과 핍박까지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2:1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기뻐하며 선을 행하고, 선을 행하며 기뻐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게 없는 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3. 먹고 수고하며 낙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제반 조건과 상관없이 우리가 주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삶을 살면, 일상적인 일인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즐거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먹고 마시고 일하는 것이, 무슨 즐거움일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런 게 무슨 하나님의 선물일까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이고, 소중한 복인가를 알게 됩니다. 금욕주의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즐겁게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것이 기독교의 교훈입니다.
전에 목회하던 교회에 장 모 권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의 평생소원은 마음껏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뭔지 모르고 양잿물을 마셨다가 끔찍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식도가 좁아지고, 식도 점막이 손상됐습니다. 노년에 이르도록 단 한 번도 식사다운 식사를 해 본적이 없습니다. 건강도 안 좋으신데, 항상 밝은 얼굴로 얼마나 열심히 심방을 돕는지 모릅니다. 또, 얼마나 전도를 많이 하시는지 모릅니다. 심방을 받는 가정에서 먹을 게 나오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실컷 먹고 마시는 게 내 평생 소원예요.” 그리고는 음료수만 찔끔찔끔 마십니다.
수고할 수 있다는 것은 소중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첨단 과학의 발달로 인해, 인간이 힘을 들이고 애를 쓸 일이 없어지는 현상이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까? 첨단 과학도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어야 합니다. 침략 전쟁을 일으켜서, 하나님의 선물인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낙을 누리는 군인들과 민간인들을 무참히 살상하는 인간들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을 좇아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시민입니다.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고 마시며, 교회 안팎의 일에 수고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시민인 우리는 선을 행하며 기뻐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으로 족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삼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섬김을 받으실 존재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조주요 섭리자, 구원자요 심판자, 믿는 사람의 죄 사함과 거듭남,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자이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행위는 영원한 것이며,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행위는 사랑의 행위이며, 진리의 행위이며, 공의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행하시는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 앞에서 경외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와 공의에 압도되어, 삼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며 살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숨겨진 과거나 현재나 미지의 미래를 다 주관하시고, 임의로 처분하실 수 있는 영원한 절대 주권자이심을 잊지 말고,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15 이하에, 매우 감동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에게 끔찍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히브리 여인들을 위해 조산할 때에 살펴서 딸이면 살려 두고, 아들이면 죽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씨를 말리려는 애굽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자신과 가족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 산파들은 애굽 왕도 두려웠지만,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히브리 여인들이 낳은 남자 아기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들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경외한 것입니다. 그 결과가 출애굽기 1:21에 나옵니다.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4.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사람들의 삶이 다 하나님의 선물은 아닙니다. 성공적인 삶이라고 해서 다 하나님의 선물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의 삶이라고 해서 다 하나님의 선물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나 주 예수님 안에서 기뻐하며 성령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영원한 사랑과 진리와 공의로 행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서 더 큰 은혜와 풍성한 복을 받고, 받은 은혜와 복을 나누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설교 동영상: 유튜브)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아멘.
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이참에 본문에 대한 간략한 제 소견을 공유합니다.
§14 <영원히> ☞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과는 다르게 ‘영원한’ 것에 가치를 두며, 이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초림과 재림의 예수님과 최후의 심판과 천년왕국을 넘어선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면, 아무리 성인군자로 시늉을 한다고 해도 거짓된 종교 생활에 불과하다. [창13: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약속은 창세기에 시작해 요한계시록과 영원까지 계속된다. [출3:15] [출19:9] [시9:5 이방 나라들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 영원히 지워지는 이름이 있다. [사9:7] [미4:5] [마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롬1:25] [계1: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15 ㈎ [신4:31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32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 창세기에 시작된 하나님의 언약은 변하지 않는다. [사46:9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 옛적 일
㈏ [행17: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 새로운 가르침, 이상한 것, 외국인들…, 타락한 인간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데, 철학이나 신학으로 교리를 새롭게 바꾸거나 이런 것을 찾아 다닌다. 기독교에서 인간의 만들어내는 모든 새로운 것들. 신학, 철학, 교리는 다 가짜다.
㈐ [엡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벧전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오래된 말씀들을 따라서, 새롭게 변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자기 생각과 행동이다. 대신 이는 신학이나 교리가 아니고,
㈑ [히9: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until the time of reformation” 맡겨 둔 것이니라] ☞ 성경은 그 자체로 완전하며, 인간에게 더해지게 성경이 허락한 것은 중세의 개혁이다.
필자의 설교에 "아멘.목사님께서 주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이참에 본문에 대한 간략한 제 소견을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