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병원 현충탑 이야기

Author
이경남
Date
2024-06-06 16:17
Views
471

서울대 병원 현충탑 이야기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앞에는 1950년 6월 28일 이곳에서 학살된 1000 여명의 군인들과 민간인들을 기리는 현충탑이 서 있다
50년 6월 28일 아침 인민군 제 9 땅크부대장 류경수가 이끄는 탱크 부대가 미아리를 넘어 당시 국군 부상병들이 치료를 받고 있던 서울대 병원을 공격한다
그러나 수비대는 겨우 1개 소대 그리고 부상병 중 움직일 수 있는 병사 80여명
물론 탱크를 앞세우고 공격하는 인민군을 막을 수 없었고 국군은 전멸을 한다
이후 이들에 의한 환자 학살 사건이 벌어진다
25에서 27일까지 3일 간의 전투에서 부상을 당한 서부 전선의 국군 약 4-500 백명과 민간인들이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이들이 모두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하나 하나 죽이기가 번거롭자 나중에는 한방에 몰아 넣고 집단 학살을 하는 방식을 택하고 열을 후에는 시신 냄새가 진동을 하자 창경궁 앞에 쌓아 놀고 휘발유를 뿌리고 소각하는 일까지 벌렸다
이 사건이 나와도 관계가 있는 것은 이 병원에 입원한 국군이 주로 의정부 지구 전투에서 부상을 당한 군인들이라는 점에서다
당시 1사단 문산 철교 파견 중대장으로 근무하던 큰아버지 이기형 대위는 육본에서 정보장교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전쟁이 발발하자 육본을 따라 피신하지 않고 반대로 전선으로 달려가는 선택을 하였고 26일 밤 허벅지에 총상을 입으며 중상을 당하고 만다 이후 이분의 행적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없는데 아마 장교였고 부하들에 의해 군인 치료 병원이었던 서울대 병원으로 후송 되었으리라는 추정을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큰아버지는 50년 6월 28일 서울대 병원 학살 사건에서 희생이 되셨을 가능성이 크다
이 때 희생된 이들의 유골이 아직도 서울대 병원 지하에 보관되어 있는데 전사자 유해 발굴단에 연락하여 유전자 검사를 통해 고인의 유해를 찾을 수 있을까 문의를 드렸더니 불에 탄 시신에서는 유전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답변이 왔다
이 사건은 625 당시 최초의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명백한 전쟁 범죄였고 이후 피아 간에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의 시초가 된다
이런 일을 벌린 인민군 9 땅크 여단의 부대장 류경수는 최초로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 영웅이 되어 북한에서 그 후로도 승승장구하며 국가적인 영웅으로 대접을 받고 지금도 김일성 가문이 조문을 할 정도이다
놀라운 사실은 인민군 탱크 부대가 서울대 병원을 점령할 당시 이들을 인도한 이들이 서울대 병원 의사를 하다가 월북 인민군 군의관으로 참전한 이들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서울대 병원 의사나 직원의 40%가 남로당원일 정도로 우리 사회의 좌경화가 심각한 상태였다
지금 나의 아내가 서울대 병원 간호사 출신인데 이녀를 만나기 위해 서울대 병원에 갈 때마다 나는 이 현충탑이 의미하는 것을 또 무엇보다 나의 가족과 관계된 일을 기억하며 숙연한 마음을 느끼곤 했다
나의 부친은 참 착하고 온유한 성품이셨으나 육군 특무대 부대장 출신으로 반공에 대한 신념이 투철한 분이셨고 그분이 나의 유년 시절 가끔씩 해 주시던 당시 시국에 대한 말씀이 가슴에 남아 있다
학창 시절 김구를 존경하던 나에게 부친이 한 마디를 하셨다
48년 4월 김일성 주도로 평양에서 열린 남북 연석회의는 결국 그의 계략에 이용만 당한 일이고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이 현실적으로 맞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연석회의에 참석했던 민족 변호사 허헌이 부친의 외가택 인척으로 가깝게 교류하던 사이였는데 부친이 이런 현실 인식을 가지신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일제 시대 그 어려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하던 3 사람의 변호사가 있었다 이인 김병로 그리고 허헌이다 허헌 변호사는 그후 월남하지 않고 북에 머물며 전인민회의 의장 그리고 김일성대학 총장을 지내다 사고사를 당한 것으로 안다)

625 전쟁 중에 큰아버지 이기형 대위도 전사하고 나의 부친도 이미 고인이 되신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런데 지난 해 국방부에서 연락이 왔다
1950년 12월 30일에 수여된 두 분의 훈장 3개 화랑무공훈장 2개(이기형 대위) 충무무공훈장 1개(이기용 준위) 를 받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해 봄 평택시장실에서 훈장 수여식을 가졌다
그 때 나는 한 가족의 비극적인 역사가 깊이 배어 있는 이 시를 낭송했다

현충원에서

동작동 국립묘지 33 묘역
여기에 큰아버지 고 이기형 대위의 묘비가 있다
육본에서 정보장교 교육 중
전쟁이 시작되자
지체없이 최전방 1사단으로 원대 복귀하고
다음 날 50년 6월 26일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어짜피 무너진 전선인데
퇴각하는 육본을 따라 피신하는 길을 선택했더라면
이건 우리들의 아쉬움이지만
그러나 그가 선택한 것은
그런 비굴이 아니라
전선으로 달려가는 용사의 길이었고
그는 결국
지금 여기 시신 조차 없는
차가운 비석으로만 남아 있다
동족상잔의 불행한 역사 속에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그 소중한 생명을 잃은
고통스런 역사도 이미 70여년 전의 일이다 보니
이곳 장교들의 묘역도 지금은 찾는 이 드문
쓸쓸한 모습이다
그러나 나는 올해도 이곳을 찾으며
평생 한번 만나보지도 못한
고 이기형 대위의 묘비 앞에
한떨기 국화꽃을 바친다
그리고 아주 잘 생기고 똑똑한
그러나 그 강직함 가운데 장렬한 죽음을 맞은
한 청년 장교와
전쟁의 잠화 가운데 4 형제 중 3형제가
남과 북의 군인으로 죽어야했던
황해도 신천 구월산 밑 박달리
한 가정의 비통한 역사를 가슴에 다시 담는다

2021.6.6. 일요일 오후 서울 국립묘지에서




Total Reply 2

  • 2024-06-08 09:46

    이 스토리는 꼭 교과서 실려 자라나는 세대에
    애국심을 갖게해야 하고 공산군의 잔학함도 깨달아 속지않게 해야합니다
    큰 아버님의 희생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 2024-06-08 09:54

    벛꽃이 피기시작할 무렵이면 창경궁을 들리는데
    서울대 병원 현충탑에 꼭 들러 이 스토리를 들려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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