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사전]피터스(Victor Willington Peters, 1902. 9. 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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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06-07-05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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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
남감리회 선교사. 한국명 피도수(皮道秀)

미국 캔자스에서 출생. 1928년 2월 12일 프린스턴신학교 주일예배에서 귀에 들리는 듯 \"한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소리를 듣고 주한 선교부에 연락하였고 이에 선교 요청을 받아 내한하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이를 계시로 여긴 피터스는 부모에게 편지하여 이 사실을 알렸는데, 아버지 피터스(F.N. Peters) 역시 이미 계시를 받아 알고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1928년 프린스턴신학교 대학원을 마친 후 그 해 8월 29일 미국 남감리회 선교사로 파송받아 내한하였다. 서울에 머물면서 한인수(韓寅洙) 목사에게 한국어를 배웠는데 한달 후에는 길에 나가 모르는 사람과 인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였고, 같은 해 12월 7일에는 용산교회에서 한국말로 설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음해 4월엔 천안교회 부흥회를 인도했고 안식년을 제외한 12년간 한국 선교를 위해 봉사했다.

1929년 남감리회 조선연회에서 견습을 받았고 경기도 양주, 포천지방에 파송받아 전도를 시작했으며 스톡스(M.B. Stokes)가 주관하는 서울 중앙전도관 직원으로 전국을 순회하는 부흥운동가로 활약하였다. 그의 전도여행은 대구, 대전, 개성, 해주, 청진, 진남포, 평양, 만주, 북경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었으며 1930년 9월 남감리회 조선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31년에는 서울 중앙전도관 부관장으로 취임하였으며, 1932년 서울 돈암리교회에 파송받아 시무하였다. 1933년 귀국하여 1년간 휴양하였고 1934년부터 다시 서울 중앙전도관 부관장으로 시무하면서 포천,양주지역 전도에 주력하였다. 그 해 개성 중앙전도관 총무로 부임하는 한편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였고 1937년 강원도 김화읍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부임한 지 약 3년 만에 김화읍교회를 교인 수 2백 50명으로 성장시켰고 한국식 석조 기와집으로 예배당을 신축하였다. 1938년 2월 27일에는 이화여전 영문과 출신의 한국인 한흥복(韓興福)과 결혼하였는데 당시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국제결혼이라 교회뿐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화젯거리가 되었다. 동료 선교사들까지도 반대한 이 결혼식은 한사연(韓士淵) 목사의 주례로 김화읍교회에서 베풀어졌는데 한국 선교를 위해 철저히 한국인이 되기 위해 애쓰던 그로서는 국적을 초월한 결혼이 그다지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일제 말기 선교사들에 대한 일제의 탄압으로 1941년 1월 부득이 한국에서 쫓겨갈 수밖에 없었고 해방 후 즉시 귀환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캘리포니아의 재미한인감리교회 협동목사로 봉직하다가 교단을 나사렛교회로 바꾸어 파사데나에 머물면서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나사렛교회 원로목사로 봉직하였다. 1975년 이화여자대학교 90주년 기념행사 때 초청받아 부인과 함께 내한한 적이 있다.

피터스는 한국에서 활동할 당시 한복과 고무신을 즐겨 신었고 서양 주택을 마다하고 한국식 주택에 살면서 한국 음식을 즐겨 먹었고 한국말로 유창한 설교를 구사할 수 있었다.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는 \"예수성찬\", \"파도를 잔잔케 명령하는 예수\", \"십자가 밑에 우는 마리아\",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 등의 성화(聖畵)를 그렸으며 한복의상을 입은 예수는 물론 십자가 밑에서 슬퍼하는 여인들을 한복 입은 한국 여성으로 표현하는 등 성화 속에 한국인의 모습을 그대로 등장시켰다. 그가 건축한 김화읍교회는 태화기독교사회관 건축양식을 딴 전통적 한국 건축물이었으며 한국인들이 등장하는 성화들로 장식된 교회였다.

피터스는 또한 철저한 신앙운동가였다. 자신의 생일보다 오히려 중생을 체험한 날(1922. 1. 7)을 중히 여긴 그는 수많은 부흥집회를 통해 무엇보다 교인의 중생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그의 설교의 주제는 자연 구원의 확신에 있었다. 그 무렵의 부흥운동가 이용도(李龍道) 목사와도 개인적인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그를 지원하였으며, 이용도가 별세한 후 3년이 지난 1936년 The Korea Mission Field에 \"시므온, 한국의 신비 운동가\"(Simeon, a Korean Mystic)라는 제목으로 12회에 걸쳐 그의 생애를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그 외에도 1935년 스톡스, 정남수(鄭南洙) 등이 주축이 되어 창간한 신앙지 〈성화〉(聖火)의 편집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신앙 및 성서에 관한 많은 글들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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