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사전]이필주(李弼柱, 1869. 11. 9~1942.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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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5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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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3.1운동 민족 대표 33인 중 1인이며, 일제시대 대표적 항일 민족 운동가인 이필주는 서울 정동(남창골이라는 설도 있음)에서 부친 이윤영(李允永)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부친 이윤영은 조선조 말기 퇴락한 선비의 한 사람이었고 가세는 빈궁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남촌(현 장충단 근처)으로 이사하였고 8세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그러나 가세가 빈한하여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생계를 돕기 위해 부친에게 제사공업을 배워 일을 시작하였다. 1886년 6월 부친이 별세하자 모친과 네 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의 책임이 지워졌다. 게다가 이필주는 흑사병에 감염되어 사경을 헤매다가 겨우 회생하였다. 그 후 4년여 동안 생을 비관하여 타락과 방탕의 길로 들어섰다. 계속되는 주색잡기로 몸과 마음을 망치고 허송세월만 하다가 1890년 정신을 가다듬고 자진하여 구한국 군대에 입대, 5년간 사병으로 복무하였다.

그 동안 군기를 준수하고 기예를 자습하여 평가시험 때마다 좋은 성적을 올려 계속 진급이 되었다. 1895년 동학란 진압에 출전하여 전라도 전주와 완산접전에서 승리하였고 일본식 군대훈련과정을 마쳐 참교(參校)가 되었다. 훈련대에 속하여 청일전쟁도 겪었고 시위대로 전보되면서 부교(副敎)로 승진, 6년간 러시아군대의 훈련도 받았다. 한편 1899년 29세의 늦은 나이에 결혼한 김인숙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으나, 1902년 어느 날 한꺼번에 모두 잃고 여기서 인생의 허무함을 깊이 체험하며 심한 고통에 빠졌다. 당시 이 깊은 수렁에서 그 모든 죽음과 고통의 책임을 자신의 죄책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예수교를 믿으면 무슨 고난을 당하든지 안심이 되고 위로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1902년 상동교회를 찾아가 입교하였다. 처음에는 돈독치 못한 신앙으로 부하 20여 명을 거느리고 취미 삼아 다녔으나 1년 후 결정적인 기독교 회심의 기회를 만났다. 당시 그의 회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하루 밤에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 내가 죽어 시체를 입관하여 놓고 내가 시체를 향하여 경계하기를 '네 죄로 인하여 이렇게 죽었느니라' 하고 비감한 말을 하다가 깬 일이 있었다. 그 후부터 나는 주색잡기를 온전히 끊고 아직 담배만 끊지 않고 기도를 힘써하고 세례문답공부와 개인전도에 힘을 많이 썼다."

1903년 강한 확신과 더불어 그 해 4월 미감리회 스크랜턴(W.B. Scranton) 선교사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새로운 체험에 몰입한 이필주는 기쁨에 넘쳐 전도의 사명을 자각했고 1903년 가을에 군을 제대하여 전도사업에 헌신할 것을 결심했다.

상동교회에서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며 개인전도에 열중했고 1904년 사경회 공부를 끝내고 속장이 되었으며 그 여름에는 권사가 되었다. 상동교회 전덕기 목사가 청년학원을 설립하자 동 학원의 체육담당 교사가 되고 1904년부터 공옥학교에서도 교편을 잡았다. 1907년 봄 청파동에 기도처를 마련, 교회로 발전시켰고 그 해 4월에 전도사 직첩을 받았다. 이어 협성신학교 2년 과정을 마치고 1913년 3월 지방회의 파송을 받아 왕십리교회에서 5년간 시무하였다. 1915년 4월 25일 목사 안수를 받았고, 1918년 6월에 정동교회로 전임, 시무하였다. 1919년 3.1운동의 사전계획에 깊숙이 가담하였고 정동교회 부목사 박동완과 함께 민족 대표 33인으로 나서서 일제의 한국강점의 부당성을 역설하였다. 곧 투옥되어 모진 형고를 치렀고 1921년 10월에 가서야 석방되었다. 이어 미아리교회로 부임, 인근 3개의 교회를 맡아 시무하였고 1922년 9월에는 연화봉교회로 옮겼다. 또한 협성신학교, 이천ㆍ천안 등지에서 개최된 교역자회의 연사로 참석, 큰 감동을 주었고 그 지도적 위치를 감당했다. 1934년 3월 수원지방의 남양교회에서 시무중 65세로 은퇴하고 원로목사로 남아 교회를 돌보았다. 일제 말기 가중된 신사참배 강요 등 교회탄압에 맞서 꿋꿋이 투쟁하던 중 해방을 몇 해 앞둔 1942년 별세하였다.

 

1962.3.1 독립유공자 훈장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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