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사전]아펜젤러(Alice Rebecca Appenzeller, 1885. 11. 9~1950.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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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06-07-05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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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감리회 여선교사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 아펜젤러(H.G. Appenzeller)의 장녀로 1885년 11월 9일 서울 정동에서 출생하였다.

한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백인으로서 이듬해(1886) 4월 25일 스크랜턴(W.B. Scranton)의 딸과 함께 유아세례를 받았다. 한국에서 유치원 과정을 마친 뒤 고국으로 돌아가 1902년 4월 랭카스터의 쉬픈고등학교에 입학, 1905년 2월 이를 졸업하였고 1909년 매사추세츠 주 웨슬리안대학을 졸업하였으며, 1922년 콜롬비아대학교 사범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09년 이후 한때 모교인 쉬픈고등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하였으며 윌슨 대통령의 딸(Jessie Wioson)과 함께 \"베타 시그마\"(일종의 학교)를 창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1902년 이후 줄곧 부친의 죽음이 충격으로 남아 있던 그는, 1915년 마침내 한국 선교사가 되어서 부친의 임지였던 한국에 부임하였다. 그는 이화학당 교사로 부임하여 주로 영어 및 역사를 강의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학생들에게 많은 격려와 위안을 아끼지 않았고, 1920년 프라이 당장이 귀국하였을 때는 당장서리로 봉직하였다. 1921년 잠시 귀국하였을 때는 석사 학위를 취득하는 한편 3층 총건평 7백 16평의 이화학당 교사신축을 위한 모금운동을 추진하여 목적을 달성한 다음 이듬해 귀국, 그 해 10월 월터의 후임으로 제6대 이화학당 당장에 취임하였으며 1925년 4월 이화학당 대학과를 이화여자전문학교로 승격, 초대 교장이 되었다. 그는 다시 줄기찬 모금운동으로 신촌의 5만여 평 부지를 매입, 1929년 전문학교와 고등보통학교를 완전히 분리시켰고 1934년 신교사를 기공, 이듬해(1935) 준공하여 프라이 홀에서 이사하였다.

1936년 이화 개교 50주년 기념식전에서는 15년 이상 근속자로 표창받았으며 당시 조선 중앙일보 사장 여운형에게 한국 언론계가 주는 감사장을 받았다. 이듬해(1937) 6월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명예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38년에는 기독교조선감리교회가 주는 은메달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1939) 교장직을 김활란 박사에게 위임하고 자신은 명예 교장이 되어 뒤에서 도왔다.

그러나 미\"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됨으로 해서 1940년 재한 미국 선교사들과 함께 미국으로 귀국, 스카릿대학에 4년간 출강하다가 이후 하와이 선교사업에 종사하였고(1943~1946), 1946년 12월, 해방된 한국에 돌아와 이화여자대학교의 명예 총장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혼란기에 이화학교의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던 중 1950년 2월 20일 아침 예배에서 설교 도중 뇌일혈로 쓰러져 별세하였다. 그의 생전의 업적을 추모하는 학교ㆍ언론기관ㆍ종교ㆍ사회단체 등이 참석하여 사회장으로 장례가 엄수되었고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