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7강 군병들이 예수를 희롱한 사건의 의미(15:16-20)

2013-03-15 19:49 관리자 2476
파. 군병들의 조롱<15:16-20>

<비교: 마 27:27-31, 요 19:2-3>

이 조롱 장면을 역사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당시에 있었던 유사한 예들을 계속해서 고려했다. 축제―유목민의 축제(Sakaien)와 크로노스 신의 축제, 그리고 사투르스 신의 축제―때의 죄수를 처형하기 전에, 그에게 왕이 입는 자색 외투를 입히는 고대의 관습이 있었는데, 그것과 일치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생각해 냈다.1) 특히, 이 이야기와 유사한 흥미 있는 이야기가 있다. 아그립바 왕(Julius Agrippa I)이 애굽에 도착했을 때, 민중은 그를 조롱하기 위해 카라바(Carabas)라는 바보에게 왕관 대신에 꽃다발을 씌우고, 왕의 외투 대신에 거적을 걸쳐 주고, 왕홀 대신에 갈대를 쥐어준 다음에 신하로서의 경의를 표하면서 ‘Mare’(주)라고 불렀다.2) 이보다 더 비슷한 관습들이 있었다. “주후 1세기말의 페르시아인들은 사카이안 축제에 유죄 판결을 받은 죄수를 왕좌에 앉혀 놓고, 잠시 동안 우스꽝스런 형태의 통치를 하게 했다는 보고가 있다. 로마인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관습에 관한 기록이 있다. 비텔리우스(Vitellius) 황제가 목을 잘리기 전에 당한 조롱과 학대는 비교될 만한 사건이다”(E. Schweizer).

“어떤 사람은 주변 세계의 유사한 예들을 통해 (이 단화가) 전설적으로 작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J. Gnilka, 하권, p. 407). 불트만(R. Bultmann)은 “16-20a절의 조롱 장면은 15b절의 주제(‘채찍질하고’)의 이차적 확대인데, 아마 전통적인 군인 관습으로 채색되었을 것이다.”3)라고 하였고, 또 “이 전설적 전승은 이방 헬레니즘에서 받아들여진 것일 수 있다.”4)라고 하였다. 그러나 슈바이처(E. Schweizer)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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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목민 축제에 대해서는 Strabo 11, 8, 4; 크로누스 신의 축제에 대해서는 Dio Chrys. 4, 157<여기서는 조롱과 학대가 결합되었다>; 사투르누스 신의 축제에 대해서는 Tacitus, Ann. 13, 15; 전체적으로는 A. Hermann, RAC VII, 414.”(in J. Gnilka, 하권, p. 407).
2) “Philo, Flaccus, 36-40”(in E. Schweizer와 J. Gnilka, 하권, p. 407).
3) R. Bultmann, op. cit., pp. 343-344.
4) Ibid., pp. 386-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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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세계의 예들을 통해 오히려 이 단화의 역사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올바른 설명을 하였다.

그닐카(J. Gnilka, 하권, p. 404)는 “문체상으로 있을 수 있는 사소한 개정들을 제외하고는 이 작은 단화에는 편집 과정에서 첨가된 것이 분명한 두 개의 문장이 있다. 그 하나는, 16절의 관계문인데, ‘뜰’을 사령부라고 설명함으로써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나타낸다(pars pro 새새). 다른 하나인 19절a는 학대의 모티프를 끌어들이는데, 이것은 유다인의 왕의 존엄성에 대한 조롱이라는 통일된 주제를 벗어나므로 이차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1)······두 첨가문은 마르코의 편집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대인의 왕의 존엄성에 대한 조롱이라는 것이 반드시 어떤 고정된 형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또 있었다고 해도 로마 군인들이 조롱하는 마당에 꼭 그런 형식을 다 좇았다고는 할 수 없으므로, 이차적인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마가는 이 단화를【16】군병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로 시작한다.

군병들은 안토니아 수비대이거나 빌라도가 가이사랴에서 데려온 군대일 것이다. 베스파시안(Vespasian) 때까지 유대를 통치하는 총독들의 휘하에는 그 지역에서 모집한 용병밖에는 없었다. 유대인들은 군 복무에서 면제되었으므로, 군대는 팔레스틴의 비유대인 거주자들로 구성되었다(W. L. Lane, “Sch\"urer, I. 459f”2)). 그들은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치안을 담당하였다.

설화자는 브라이도리온(πραιτώριον: 사령부)이 총독의 관저와 재판정으로도 사용되었던 로마 지방 총독의 본영이 사령부로 불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외 헤롯궁, 장군의 천막, 시위대의 병사, 시위대 자체 및 로마의 관청 등도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이상근). 여기서는 뜰이라는 부분으로 사령부라는 전체를 나타낸 것이다(“Swete,p.374”,3) J. Gnilka, 하권, pp. 405-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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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irsch, Fruhgeschte, I. 169. E. Schweizer, 187. Dormeyer, Passion, 188f”(in J. Gnilka, 하권, p. 404).
2) in J. Gnilka, 하권, pp. 405-406.
3) in W. W. Wes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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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은 아윌레(αὐλη)이며 ‘뜰’, ‘궁전’, ‘왕이 사는 성’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뜰’이 어울린다. 이제 사람들이 뜰 안으로 들어갔으므로 재판이 공개적인 바깥 장소에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군인들이 대략 600명이나 되는 온 군대를 모은 것은, 십자가에 못박을 예수님을 한낱 노리개로 여겨 희롱하려고 하는 것이다. 렌스키(R. C. H. Lenski)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조롱하라고 명령했다고 하나,1) 그런 근거가 없다(W. Hendriksen).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유대 교권자들과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유대인들 그리고 빌라도의 영적 맹목에 이어 로마 군인들의 영적 맹목이 드러난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각계각층의 인간들에게서 버림받으셨다.

그 강퍅한 군인들이 예수님을 왕처럼 꾸며 희롱하는 모습에 대해, 마가는【17】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라고 하였다.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는 채찍질(15:15)에 의해 터지고 찢어진 살에 엉겨 붙은 예수님의 옷을 벗긴 후에(마 27:28), 왕이라고 하신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 왕을 상징하는 자색 옷(요 19:2)을 입힌 것을 가리킨다. 마태복음 27:28에는 “홍포”로 되어 있어서 군인의 바랜 주홍빛 망토가 아닌가 싶다.2)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는 왕관을 모방하여 가시나무 가지들을 둥글게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강제로 씌웠다는 뜻이다. 로마의 군인들―실은 로마의 용병들―은 예수님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서 마냥 즐거워하는 야만성을 드러내었다.

군인들의 계속된 희롱에 대해, 마가는【18】예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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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 W. Hendriksen.
2) E. P. Gould, E. Schweizer, C. E. G. Swift, “Swete, p. 375”(in W. W. Wessel), R. Earle, R. A. Cole. W. W. Wessel, 이상근, 마경일. 특히, “Appian, bell. civ. 2. 150에는 자색 옷이 군인 망토를 나타내는 증빙구를 제시한다”(in J. Gnilka, 하권, p. 406의 주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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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는 군주에게 흔히 행하는 신하의 예로서 ‘유대인의 왕 만세!’를 의미한다.

그 군인들의 계속된 희롱에 대해, 마가는【19】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라고 하였다.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는 왕의 홀을 모방하여 예수님의 손에 쥐어주었던 갈대를 도로 빼앗아서 예수님의 머리를 치는 것을 의미한다(마 27:29-30).

침을 뱉으며는 14:65의 주석을 보라.

꿇어 절하더라는 왕에게 경배하는 것을 흉내낸 것이다. 여기서 예수께 대한 그들의 희롱은 절정에 달한다. 그러나 실은 그들 자신이 희롱당한 것이었다. 예수님을 희롱하느라고 행한 일이 참으로 예수께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포함한 온 인류의 왕이시다.

희롱을 끝낸 군인들에 대해, 마가는【20】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라고 하였다.

끌고 나가니라는 엑사구신(ἐξάγουσιν)이며, 여기서는 예루살렘 성밖으로 끌고 나갔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사형 집행은 시내에서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레 16:27, 민 15:35, 요 19:20, 히 13:12, 13). 이런 관습은 로마도 다를 바 없었다.

“일반적으로 십자가형의 선고를 받은 자들은 벌거벗겨진 채,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채찍을 맞았다(cf. Dionysius of Halicarnassus VII. 69. ‘그들은 벌거벗은 몸을 채찍으로 때리면서 그를 따라갔다.’ Josephus, Antiquities XIX. iv. 5)”(W. L. Lane). 그러나 예수님은 미리 채찍질을 당했으므로 그냥 끌려가셨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인간들의 대접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인 줄 아시는 예수님은 줄곧 침묵하시면서 견디어 내며 순종하셨다(10:34, 시 22:6-7,사 53:3-10). 이 사실을 아는 신령한 자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0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T 02-426-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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