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7

완고함의 수건을 벗으십시오

  • 날 짜  :  04·27(토요일)
  • 찬  송 :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 성  경 :  고린도후서 3:13~18
  • 요  절 :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7)

오늘 본문은 언뜻 보아 수건에 대한 이야기 같습니다. 여기서 수건이란 손이나 몸을 닦는 헝겊이 아니라, 얼굴을 가리는 두건을 가리킵니다. 13절은 모세가 쓴 수건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돌판을 가지고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는 말씀(출 34:35)에서 온 것으로, 모세 얼굴의 광채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주목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4, 15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쓰고 있던 수건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이 수건을 벗지 못해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을 수 없었는데, 그들이 쓴 수건은 바로 마음의 완고함이었습니다. 완고함이란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것, 타성에 젖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지나친 자기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음과 완고함의 수건은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만 없어질 수 있고(14, 16), 그 수건이 벗겨질 때 성령께서 주시는 무한한 자유를 누립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17)
사람들은 굳이 자유를 말하거나 희구하지 않습니다.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기에, 자유가 없는 사람은 그럴 자유가 없기에 그렇습니다. 자유란 누리면 그만이지, 그것에 대해 따로 논쟁하거나 정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즉 자유가 무엇인지 몰라도 우리는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 자유는 무엇을 소유하거나 성취할 때 얻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리석음을 벗어나고 완고함에서 탈출할 때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성령 안에 있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갇혀 있는 감옥이 있습니다. 바로 ‘나’라는 감옥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면서 억압당해 왔고, 그래서 나는 늘 옳고 의롭다는 어리석음과 완고함에 빠져 지냅니다. 어리석음은 늘 완고하기 마련이고, 완고함은 당연히 어리석음 그 자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 수건이 벗겨지고, 주의 영이 있는 곳에 거할 때 우리는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것을 묻지 않고도 티 없는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설 때마다 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주께서 주시는 자유는 부귀영화가 허락한 방종과는 다른 것임을 깨닫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 말씀 안에 붙잡혀 마음에 찔림을 받고 가책을 느낄 때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됨을 믿습니다. 성령 안에서 거듭나 참 자유를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창연 목사 _후용교회